세계사 Archives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news/category/역사/세계사 영등포 소식,소비자평가,뉴스,영등포구 지역포털 Fri, 15 May 2026 15:58:38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7.0.4 https://ydpcj.kr/?esm_media_gateway=1&attachment_id=21979&size=full&v=1784315567 세계사 Archives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news/category/역사/세계사 32 32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https://ydpcj.kr/esm/21700 https://ydpcj.kr/esm/21700#respond Fri, 15 May 2026 15:58:01 +0000 https://ydpcj.kr/?p=21700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 오늘의 경전산책, 부처님오신날 연등의 기원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 이야기입니다. 작은 마음 하나가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N4xZvUOnFo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www.youtube.com [경전산책 53]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貧女一燈] 이야기 나는 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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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 오늘의 경전산책,

부처님오신날 연등의 기원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 이야기입니다.
작은 마음 하나가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www.youtube.com

[경전산책 53]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貧女一燈] 이야기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그 나라에 난타(難陁)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고독하여 구걸하면서 살아갔다.
그녀는 국왕과 신민의 노소들이 모두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로 빈천한 집에 태어나, 복밭을 만났건마는 종자가 없을까?’
못내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미미한 공양이나마 기약하고, 곧 나가 구걸하기를 늦도록 쉬지 않았으나 겨우 돈 1전을 얻었을 뿐이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가서 기름을 사려 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물었다.
“1전어치 기름을 사봐야, 너무 적어 쓸 데가 없을 텐데 무엇에 쓰려는가?”
난타는 그 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그를 가엾이 여겨 기름을 갑절로 주었다. 그는 그것을 얻고 매우 기뻐하여 등불 하나를 만들어서 절로 갔다.
그것을 부처님께 바친 뒤 부처님 앞에 있는 여러 등불 가운데 두었다. 그리고 서원을 세웠다.
‘저는 지금 빈궁하여 이 작은 등불로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이 공덕으로써 저로 하여금 내생에 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중생의 어두움을 없애게 하소서.’
이렇게 서원을 세우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났다.
밤이 지나 다른 등불은 모두 꺼졌으나 그 등불만은 홀로 켜져 있었다.
그때 목련(目連)은 그날 당번이 되었다. 날이 밝은 것을 보고 등불을 걷어치우려다가 그 한 등불만이 홀로 밝게 타면서 심지가 닳지 않은 것이 새로 맨 등불 같은 것을 보았다. 그는 낮에 켜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고, 그것을 꺼 두었다가 저녁에 다시 켜려고 손으로 끄려 하였다. 그러나 불꽃은 여전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옷자락으로 부쳤으나 불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목련이 그 등불을 끄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지금 그 등불은 너희 성문들로서는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네가 4해(海)의 물을 거기에 쏟거나 산바람으로 그것을 불더라도 그것은 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체중생을 두루 건지려고 큰마음을 낸 사람이 보시한 물건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난타 여인은 다시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그에게 수기를 주셨다.
“너는 오는 세상 두 아승기와 백 겁 동안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등광(燈光)이라 하고, 10호(號) 여래가 지닌 공덕의 모습을 표현한 여래, 응공, 정변지 등 열 가지 이름을 가리킨다.
를 완전히 갖출 것이다.”
이에 난타는 수기를 받고 기뻐하여 꿇어앉아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어 그는 비구니가 되었다.
아난과 목련은 그 가난한 여자가 고액을 면하고 집을 떠나 수기 받는 것을 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난타 여인은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오랫동안 구걸하면서 살아 왔으며, 또 무슨 행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네 무리들이 공경하고 우러르면서 다투어 공양하려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에 가섭이라는 부처님이 계셨다. 그때에 어떤 거사의 부인은 몸소 나아가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을 청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어떤 가난한 여자에게 공양받기를 먼저 허락하고 계셨다. 그 여자는 이미 아나함의 도를 얻은 여자였다.
그때 장자의 부인은 자기의 재산이 많은 것을 믿고 그 가난한 여자를 업신여겨, 부처님께 먼저 그 청을 받은 것을 불쾌히 여겨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제 공양을 받지 않고 저 거지의 청을 먼저 받으셨습니까?’
이렇게 나쁜 말로 성인을 업신여겼다. 그 뒤로 5백 년 동안 그는 언제나 빈천한 거지 집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 뒷날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고 공경하며 기뻐하였기 때문에 지금 부처님을 만나 집을 나와 수기를 받았고 온 나라가 공경하고 우러르느니라.”
그때 대중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나라 왕과 신민들은 그 가난한 여자가 부처님께 등불 하나를 바침으로써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모두 흠앙하는 마음을 내어 저마다 훌륭한 의복 등 네 가지 물건을 보시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귀천 노소를 막론한 온 나라 남녀들이 향유(香油) 등불을 다투어 준비하여 기원정사로 가지고 가서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혜각 한역, 『현우경』 3권 「빈녀난타경(貧女難陀經)」 『경율이상』 38권에도 실려 있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난타의 등불
— 연등은 왜 마음을 밝히는가
안녕하세요.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지면
절마다 연등이 달리고,
거리에도, 사람들의 마음에도 불빛이 하나씩 켜집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연등은 언제부터, 그리고 왜 켜기 시작했을까요?’
오늘의 경전산책은 그 질문에 가장 깊은 대답을 들려주는 이야기,
난타경(難陀經)에 전해지는 가난한 여인, 빈녀 난타의 등불 이야기입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습니다.
그 나라에 난타(難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몹시 가난하여 의지할 곳 없이
구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난타는 왕과 백성들, 남녀노소가
향유를 붓고 수많은 등불을 밝히며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업으로 이렇게 가난한 몸을 받았을까.
이렇게 훌륭한 복밭을 만났건만, 내게는 뿌릴 씨앗조차 없는 것일까.”
이 생각은 원망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삶을 돌아보는 참회였고,
무언가라도 올리고 싶다는 간절함이었습니다.
난타는 마음을 다잡고 그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구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해가 기울 무렵, 손에 남은 것은 겨우 동전 한 전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돈을 꼭 쥐고 기름집으로 향했습니다.
기름집 주인이 물었습니다.
“이만한 기름으로는 쓸 데가 없을 텐데, 무엇에 쓰려는가?”
난타는 숨기지 않고 말했습니다.
“부처님께 등불 하나라도 올리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기름집 주인은 그 마음이 가엾고 귀하여 기름을 갑절로 담아 주었습니다.
난타는 그 기름으로 작은 등불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절로 올라가
이미 밝혀진 수많은 등불 사이에
자신의 등을 올려 두었습니다.
그녀는 그 앞에서 아주 조용히 서원을 세웠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 가난하여 이 작은 등불 하나밖에 올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공덕으로 내 생에 지혜의 빛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둠을 밝히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깊이 예를 올린 뒤 아무 말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날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았습니다.
다른 등불들은 모두 꺼졌는데,
난타의 등불 하나만 홀로 환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등불을 정리하던 이는 신통제일로 불리던 목련존자였습니다.
목련은 날이 밝았으니 등불을 거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손으로 불을 끄려 했습니다.
그러나 불꽃은 꺼지지 않았고,
옷자락으로 덮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련아, 그 등불은 너희 성문들로는 끌 수 없다.
설령 이 세상의 모든 바닷물을 다 쏟아붓고, 거센 산바람으로 불어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등불은 일체중생을 건지겠다는 큰 마음으로 올린 보시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난타는 다시 부처님 앞에 나아와 땅에 엎드려 예배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녀에게 수기를 주셨습니다.
“너는 앞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득한 세월을 지나,
수많은 겁이 흐른 뒤 마침내 부처가 될 것이다.”
가난한 여인,
등불 하나 올린 그 마음으로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난과 목련은 다시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난타는 어떤 업으로 오랫동안 가난하게 살았으며,
또 어떤 인연으로 이와 같은 큰 과보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과거의 인연을 들려주셨습니다.
과거 가섭불 시대,
부유한 장자의 부인이
한 가난한 여인이 부처님께 먼저 공양 올리는 것을 보고
교만한 마음으로 업신여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 업으로 오랫동안 빈천한 삶을 살게 되었으나,
뒤늦게 다시 공경과 보시의 마음을 내었기에
오늘 이 인연을 만나 수기를 받게 되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해지자 왕과 백성들은 깊이 감동했고,
서로 다투듯 향유와 등불을 준비해
기원정사로 가져와 부처님께 공양했습니다.
이때부터 등불 공양이 널리 퍼졌다고 경전은 전합니다.
이 연등의 전통은 우리나라에서도 깊게 이어졌습니다.
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부처님오신날 연등은
왕과 백성, 귀천을 가리지 않고 함께 밝히는 등불이 되었고,
오늘날의 연등회로 이어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천 개의 등이 함께 밝혀지는 그 장면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이 서로의 어둠을 비추는 수행의 자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묻게 됩니다.
연등은 왜 중요한가?
연등은 무엇을 밝히는가?
난타의 이야기가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연등은 부를 드러내는 공양이 아니라
마음을 드러내는 공양이라는 사실입니다.
등불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서원,
“나 하나 밝아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이의 어둠까지 함께 비추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세상을 밝힙니다.
그래서 부처님오신날의 연등은 장식이 아니라 수행입니다.
빛을 켜는 행위이기 전에 내 마음의 방향을 밝히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밝히는 연등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용기가 된다면,
그 등불은 이미 난타의 등불이 되어
지금 이 자리에서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주변의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 하나를
건네고 싶어지지는 않으신가요.
말 한마디,
안부 한 통,
조용한 기도 하나라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밝히는 그 작은 마음의 불빛이
누군가의 어둠을 비추는 연등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은 이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의 등불을 켜고 있는가?”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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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순치황제 출가시 https://ydpcj.kr/esm/20219 https://ydpcj.kr/esm/20219#respond Fri, 21 Nov 2025 16:04:17 +0000 https://ydpcj.kr/?p=20219 [영등포 소비자저널 =조석제 대표기자] ▣ 순치황제 출가시 (順治皇帝 出家詩) ▲ 순치황제 순치제(順治帝)는 청나라 3대 세종(世宗)인데 재위 18년(1644~1661) 동안 만주와 중국까지 통일한 영웅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호는 순치(順治)인데 역사적으로는 18년간 황제의 자리에 있다가 1661년 1월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일설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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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 =조석제 대표기자]

▣ 순치황제 출가시
(順治皇帝 出家詩)

▲ 순치황제

순치제(順治帝)는
청나라 3대 세종(世宗)인데
재위 18년(1644~1661) 동안
만주와 중국까지 통일한
영웅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호는 순치(順治)인데
역사적으로는 18년간
황제의 자리에 있다가
1661년 1월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일설에 의하면
태종(太宗)과 더불어
수없는 정복전쟁으로
청(淸)을 세우고
18년간 권좌에 있었으나
이 시를 남기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홀연히 납자(衲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후에 조정에서
황제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더 조사해보아야
할 일이지만
불가(佛家)에
이 시가 전해오고 있다.

개인 생각으로는
당시 상황이나
일부 기록 등을 통하여 판단해보면
천연두(天然痘)로
붕어(崩御) 한 것으로 사료된다.

순치 황제의 출가 시는
불가(佛家)에서
널리 회자(膾炙)되고 암송된다.

불가와 인연이 없는 나로서도
가끔 되뇌고 했던 터라
잠시 시간을 내어 흑지(黑紙)에
금니(金泥)로 자서 해 보았다.

순치황제 출가시(順治皇帝 出家詩)

天下叢林飯似山
(천하총림반사산)
곳곳이 수행처요,
쌓인 것이 밥이거늘

鉢盂到處任君餐
(발우도처임군찬)
대장부 어디 가서
세 끼니 걱정하랴

黃金白璧非爲貴
(황금백벽비위귀)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것이 아니라오

惟有袈裟被最難
(유유가사피최난)
가사 장삼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렵다네

朕乃大地山河主
(짐내대지산하주)
내 비록 산하대지의
주인이련만

憂國憂民事轉煩
(우국우민사전번)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더욱 고뇌이네

百年三萬六千日
(백년삼만육일천)
인간의 백 년 삶이
삼만 육천 날이지만

不及僧家半日閑
(불급승가반일한)
승가에서 한나절
쉼만 못하다네

悔恨當初一念差
(회한당초일념차)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의 잘못으로

黃袍換却紫袈裟
(황포환각자가사)
가사장삼 버리고서
곤룡포를 입게 됐네

我本西方一衲子
(아본서방일납자)
이 몸은 알고 보면
서천국의 스님인데

緣何流落帝王家
(연하류락제왕가)
어찌하여
제왕가에 떨어졌나

未生之前誰是我
(미생지전수시아)
태어나기 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이며

我生之後我是誰
(아생지후아시수)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누구던가

長大成人纔是我
(장대성인재시아)
자라나 사람 되어
잠깐 동안 나 라더니

合眼朦朧又是誰
(합안몽롱우시수)
눈 한번 감은 뒤에
내 또한 누구련가

百年世事三更夢
(백년세사삼경몽)
백 년의 세상 일은
삼경의 꿈속이요

萬里江山一局碁
(만리강산일국기)
만리 강산은
한판의 바둑이라

禹疏九州湯伐桀
(우소구주탕벌걸)
우임금 구주를 나누고
탕 임금은 걸을 치며

秦呑六國漢登基
(진탄육국한등기)
진시황 육국을 통합하고
한 태조가 기틀 닦네

兒孫自有兒孫福
(아손자유아손복)
자손들은 제 스스로
살 복 타고나니

不爲我孫作馬牛
(불위아손작마우)
자손을 위한다고
말, 소 노릇 그만 마소

古來多少英雄漢
(고래다소영웅한)
예로부터
많고 적은 영웅들

南北東西臥土泥
(남북동서와토니)
푸른 산 저문 날에
한 줌 흙이로다

來時歡喜去時悲
(내시환희거시비)
올 때는 기뻐하고
갈 적에는 슬퍼하니

空在人間走一回
(공재인간주일회)
공연히 인간세상
한 바퀴를 돌았구나

不如不來亦不去
(불여불래역불거)
애당초 오잖으면
갈 길조차 없으리니

也無歡喜也無悲
(야무환희야무비)
기쁨이 없었는데
슬픔인들 있을 쏜 가

每日淸閑自己知
(매일청한자기지)
나날이 한가로움
네 스스로 알 것이니

紅塵世界苦相離
(홍진세계고상리)
풍진에 있더라도
온갖 고통 여의리라

口中吃的淸和味
(구중흘적청화미)
입으로 맛 들임은
시원한 선열미(禪悅味)요

身上願被白衲衣
(신상원피백납의)
이 몸에 입는 것은
남루한 가사로다

四海五湖爲上客
(사해오호위생객)
사해와 오호에서
자유로운 객이 되어

逍遙佛殿任君棲
(소요부전임군서)
부처님 도량 안에
마음대로 노닐세라

莫道出家容易得
(막도출가용이득)
세속 떠나
출가하기 쉽다고 하지 마소

昔年累代重根基
(석년누대중근기)
속세에 쌓아놓은
선근(善根) 없인 아니 되네

十八年來不自由
(십팔년래부자유)
十八연간 지내면서
자유라곤 없었으니

山河大戰幾時休
(산하대전기시휴)
강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싸웠더냐

我今撒手歸山去
(아금철수귀산거)
내 이제 손을 털고
청산으로 돌아가니

那管千愁與萬愁
(나관천수여만수)
천만 가지 근심 걱정
마음 쓸 것 하나 없네

일설(一說)에 의한
출가시(出家詩)에 대한
유래(由來)를 살펴보면
순치제의 후궁 중에
동귀비(董貴妃)가 있었는데
황제는 동귀비를 너무나 사랑하여
그녀가 곁에 없으면
밥도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아끼던 동귀비가
덧없이 죽어버리자
황제는 죽은 동귀비를
황후에 봉한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옥좌를 내팽개치고 출가하여
산시 성의 명찰 오대산(五臺山)에
죽치고 들어박혀 버렸다.

아무리 조정 대신들이
돌아오기를 간청해도
들은 척을 안 하자
대신들과 황실은 어쩔 수 없이
황제가 병으로 죽었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역사서에는 재위 10년 만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 시를 보면 18년 되는 해에
세속을 버리고 입산하여
스님이 된 것으로 되어 있다.

청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모두 불교를 돈독히 신앙하여
불사를 많이 이룬 사실이 있다.

순치 황제가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는 것도 사실일까?

자신은 전생(前生)에
인도의 스님으로서
산길을 가다가 쉬고 있는데
들판에서 왕의 행차가
길게 늘어져 있고 풍악이 울리며
호위가 삼엄한 광경을 보고,
‘왕 노릇도 한 번은
해볼 만한 일이구나.’하는
생각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뒷날 황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출가 시에서
황제는 그것을 후회하고 있다.

어느 절에 노스님 한 분이 계셨다.
덕이 높고 수행이 깊은 노스님은
여간해서 아프시지도 않고
대중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가셨다.

어느 날 짓궂은 손자 상좌들이
노스님 언제 옷 벗으실 겁니까? 하고
여쭈면
뒷산 바위가 무너지는 때에
옷을 벗으마 하셨다.

하루는 상좌(上座)에게
지필묵(紙筆墨)을 가져오라 하시고
사람 얼굴을 그린 후에
눈동자는 남겨두며 하시는 말씀이
사십 년 후에 이 그림을 걸개로 하여
중원 천하를 돌아다니며
“자기 영(靈) 찾으시오.” 하고
소리를 치고 다니면
내가 나타나
눈동자를 그려줄 것이라고 하시고는
목욕재계하고
의복을 단정히 하시고
좌탈입망(坐脫立亡) 하시니
갑자기 뒷산 바위가 무너져 내렸다.

사십년 후에 청나라에는
순치 황제가 원 천하를 통일하여
자금성(紫禁城)에 앉아 있는데
성 밖에서 문득
“자기 영을 찾으시오.”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에 이끌린 듯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어느 스님이
걸개그림을 들고 있는데
눈이 없어
황제가 붓을 들어
눈동자를 그려주자
“사십 년 만에 스승님을 뵙습니다.”
하면서 스님이 큰 절을 올리고
연유를 말하니

순치는 홀연히
자신의 전생을 깨달아 버렸다.

그 길로 곤룡포(袞龍袍)를
벗어던지고 산으로 들어 가
출가를 하여 시를 지으니
그것이 유명한 순치 황제
출가 시의 유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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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은 동이족이 쌓았다. https://ydpcj.kr/esm/20031 https://ydpcj.kr/esm/20031#respond Sun, 19 Oct 2025 15:59:31 +0000 https://ydpcj.kr/?p=20031 [영등포 소비자저널 =조석제 대표기자] “만리장성은 동이족이 쌓았다!” 옥스퍼드 교수가 폭로한 중국 대륙의 진짜 역사에, 전 세계 학계 충격 [해외감동사연] – (1시간8분 동영상)  https://youtube.com/watch?v=DUX6Wjdp1x0&si=OWX7LImDu0oweqmN 동이족이 쌓은 만리장성, 옥스퍼드 교수가 폭로한 중국 대륙의 진짜 역사에, 전 세계 학계 충격 [해외감동사연]youtube.com 한민족은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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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 =조석제 대표기자]

“만리장성은 동이족이 쌓았다!”

옥스퍼드 교수가 폭로한 중국 대륙의 진짜 역사에, 전 세계 학계 충격 [해외감동사연] –
(1시간8분 동영상)

동이족이 쌓은 만리장성, 옥스퍼드 교수가 폭로한 중국 대륙의 진짜 역사에, 전 세계 학계 충격 [해외감동사연]youtube.com

한민족은 필독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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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고고학이 입증한 백제의 요서 지배 https://ydpcj.kr/esm/20029 https://ydpcj.kr/esm/20029#respond Sun, 19 Oct 2025 15:55:02 +0000 https://ydpcj.kr/?p=20029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과학과 고고학이 입증했다! 백제의 요서 지배, 부정할 수 없다. (16분 동영상) – YouTube – https://m.youtube.com/watch?v=T0C58Z5EIKs&pp=0gcJCR4Bo7VqN5tD 과학과 고고학이 입증했다! 백제의 요서 지배, 부정할 수 없다m.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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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과학과 고고학이 입증했다!

백제의 요서 지배, 부정할 수 없다.
(16분 동영상)

과학과 고고학이 입증했다! 백제의 요서 지배, 부정할 수 없다m.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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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3 https://ydpcj.kr/esm/19747 https://ydpcj.kr/esm/19747#respond Sat, 06 Sep 2025 07:17:39 +0000 https://ydpcj.kr/?p=19747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https://www.youtube.com/watch?v=DyOSWhPySlk&t=41s 박영동법사의 경전산책 3www.youtube.com [경전산책 3] 국가를 보존하기 위한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국왕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한다면, 그는 오래 보존하지 못하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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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https://www.youtube.com/watch?v=DyOSWhPySlk&t=41s

박영동법사의 경전산책 3www.youtube.com

[경전산책 3]

국가를 보존하기 위한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국왕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한다면, 그는 오래 보존하지 못하고 또 도적이 많을 것이다.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국왕이 인색하고 탐욕스러워 조그만 일로도 곧 화를 내고 의리(義理)를 살피지 않는다면,  재물을 탐착하여 보시하기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면,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람 됨됨이가 포악하여 자애로운 마음이 없다면, 백성들을 억눌러 함부로 가두고 그들이 감옥에서 나올 기약이 없게 한다면, 법도가 없고 대신들 또한 바른 행을 살피지 않는다면, 남의 여자를 탐하고 제 아내를 멀리한다면, 술을 좋아하고 즐겨 나랏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노래와 춤과 놀이를 좋아하여 나랏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늘 병에 시달리며 건강한 날이 없다면, 충성스럽고 효성스러운 신하를 믿지 않아 심복이 적고 튼튼한 대신이 없다면, 이것이 이른바 ‘국왕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는 것이니라.”

“만일 국왕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세상에 오래 머무르게 되느니라.

열 가지란 무엇인가?

만일 국왕이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성을 내지 않으며 또 조그만 일로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하인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 말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해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한다면, 법도에 맞게 재물을 거두고 잘못된 법도로 하지 않는다면, 남의 여자를 탐하지 않고 항상 자기 아내를 보호한다면, 술을 마시지 않아 마음이 거칠거나 어지럽지 않다면, 실없이 웃으며 놀지 않고 외적을 항복 받는다면, 법을 살펴 다스리며 끝내 왜곡시키지 않는다면, 신하들과 화목하며 다투지 않는다면, 왕이 병이 없고 기력이 왕성하다면, 그는 오래 보존할 것이요, 아무도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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