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 영등포 소식,소비자평가,뉴스,영등포구 지역포털 Sun, 20 Sep 2026 15:14:03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7.1.1 https://ydpcj.kr/wp-content/uploads/2026/07/cropped-ChatGPT-Image-2026년-6월-12일-오전-10_54_46-1-32x32.png 교육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 32 32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1 https://ydpcj.kr/news/22215 Sun, 20 Sep 2026 15:07:55 +0000 https://ydpcj.kr/news/22215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1

🌿 추석을 앞두고

가족과 이웃의 평안을 빌어 봅니다.
미래에 부처가 되리라는 말씀을 들은 승만부인은
그 기쁨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굳은 서원을 세웠습니다.
좋은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려면
우리는 무엇을 다짐해야 할까요?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우리의 일상을 보살의 길로 이끄는
승만부인의 서원을 함께 만나 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1www.youtube.com

[경전산책 71]
보살은 어떤 서원을 세워야 할까요
— 승만부인의 열 가지 다짐과 세 가지 큰 서원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무렵 바사닉왕과 말리 왕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왕과 왕비가 함께 의논하였다.
“우리 딸 승만은 총명하고 지혜로우니, 부처님을 뵙게 된다면 그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부처님의 공덕을 알려 믿음을 일으키게 하면 좋겠습니다.”
말리 왕비가 대답하였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왕과 왕비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찬탄하는 편지를 써서 전제라라는 궁녀에게 맡겼다.
전제라는 승만부인이 머무는 아유사국의 궁궐로 가서 그 편지를 정중하게 전하였다.
승만부인은 편지를 받아 머리 위로 높이 받들고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그는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부처님을 직접 뵙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일으켰다.
그때 부처님께서 허공에 모습을 나타내셨다.
승만부인과 여러 사람이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공경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승만부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여래의 진실한 공덕을 찬탄하였다. 이 선한 공덕으로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천상과 인간 세상에서 자유로운 왕이 될 것이다.
태어나는 곳마다 언제나 나를 만나 지금과 같이 나의 공덕을 찬탄할 것이며, 수많은 부처님께 공양한 뒤에는 마침내 부처를 이룰 것이다. 그 이름은 보광여래 승만부인이 미래에 성불하여 받게 될 부처님의 이름이다.
·응공·정변지 부처님의 덕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응공은 모든 이의 공양을 받을 만한 분, 정변지는 모든 진리를 바르게 두루 아는 분이라는 뜻이다.
라 할 것이다.
그 부처님의 세계에는 나쁜 갈래가 없고, 늙고 병들며 쇠약해지는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서로 맞지 않아 다투거나 고통받는 일도 없으며, 나쁜 갈래라는 이름조차 없을 것이다.
그곳의 중생들은 몸과 기운과 수명이 원만하고 풍요로운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그 세계에는 오직 대승의 길을 걷는 보살들이 머물며, 여러 선근을 닦은 중생들이 그곳에 태어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수많은 중생과 천상 사람, 인간들이 그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그곳에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승만부인은 자신이 미래에 부처를 이룰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부처님 앞에서 공경히 열 가지 큰 다짐을 세웠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다음과 같이 실천하겠습니다.
첫째, 제가 받은 계율을 어기려는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
둘째, 어른과 존경받을 분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다.
셋째, 모든 중생에게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넷째, 다른 사람의 훌륭한 모습이나 좋은 생활을 보고 질투하지 않겠습니다.
다섯째, 자신의 몸과 마음, 바깥의 재물과 물건을 아끼며 내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다.
여섯째, 저 자신만을 위하여 재물을 모으지 않고, 받은 것이 있으면 가난하고 어려운 중생들을 돕는 데 사용하겠습니다.
일곱째, 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하여 사섭법 중생을 가까이하여 바른길로 이끄는 네 가지 실천입니다. 베푸는 일, 따뜻한 말, 이로운 행동, 상대와 함께하는 실천을 말한다.
을 실천하겠습니다. 집착하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거리낌 없는 마음으로 중생들을 받아들여 바른길로 이끌겠습니다.
여덟째,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사람, 구금된 사람, 병든 사람과 온갖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게 되면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편안해지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운 뒤에야 떠나겠습니다.
아홉째, 생명을 해치는 그릇된 생업에 종사하거나 계율을 어기는 사람을 보더라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그릇된 행동은 바르게 고치도록 돕고, 받아들여 이끌어야 할 사람은 자비로 품어 바른길로 이끌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에 오래 머물게 하고, 천상과 인간의 선한 삶은 늘어나며 나쁜 갈래는 줄어들게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에 널리 이어지도록 그들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열째,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잊는 것은 곧 대승을 잊는 것이고, 대승을 잊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을 잊는 것입니다. 보살이 대승의 길을 굳게 걷지 않는다면 올바른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 지닐 수 없으며, 끝내 평범한 삶의 한계를 뛰어넘기 어렵습니다.
저는 올바른 가르침을 잊을 때 생기는 큰 허물과, 이를 지키는 보살이 얻게 되는 한량없는 이익을 알기에 이 열 가지 큰 다짐을 세웁니다.”
승만부인은 이어서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자리에서 저의 다짐을 증명해 주십시오.
이 열 가지 다짐을 끝까지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여 의심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바른 이익과 평안을 잃지 않도록, 저는 지금 부처님 앞에서 진실한 서원을 세웁니다.
제가 이 열 가지 다짐을 세운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이 대중 가운데 하늘의 꽃이 내리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게 해 주십시오.”
승만부인이 이와 같이 말하자 허공에서 하늘의 꽃이 내리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승만부인이 말한 그대로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본 모든 사람이 의심을 거두고 크게 기뻐하였다. 사람들은 자신들도 승만부인과 함께 같은 곳에 태어나 같은 수행을 실천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승만부인은 부처님 앞에서 다시 세 가지 큰 서원을 세웠다.
“첫째, 저는 이 진실한 서원으로 한량없는 중생을 편안하게 하고자 합니다. 이 선근으로 어느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올바른 가르침을 아는 지혜를 얻게 해 주십시오.
둘째, 제가 올바른 가르침을 아는 지혜를 얻은 뒤에는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모든 중생에게 그 가르침을 전하겠습니다.
셋째, 제가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 지닌 뒤에는 몸과 생명과 재산을 아끼지 않고 그 가르침을 보호하고 지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승만부인의 세 가지 큰 서원을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마치 온갖 빛깔이 모두 허공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의 서원도 모두 이 세 가지 큰 서원 안에 들어 있느니라. 이 세 가지 서원은 참으로 넓고 크니라.”
유송 구나발타라 한역,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 산스크리트경명은 Śrīmālā(devī)siṁhanāda (sūtra)이고, 티벳어경명은 Ḥphags pa lha mo dpal phreṅ gi seṅ geḥi sgra shes bya ba theg pa chen poḥi mdo이다. 줄여서 『사자후경』ㆍ『사자후방편경』ㆍ『승만경』ㆍ『승만대방편방광경』ㆍ『승만사자후경』ㆍ『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경』이라고도 한다. 총 1권이며, 유송(劉宋)시대에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436년에 번역하였다. 경의 제목은 ‘승만 부인이 일승을 설한 대승 경전’이라는 의미이다. 『승만경』은 여래장사상을 설한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재가의 여인이 설한 경전이라는 점에서 『유마경(維摩經)』과 함께 재가주의를 표방하는 경전으로도 평가된다. 이 경은 사위국 파사닉왕의 딸로 아유사국으로 시집간 승만부인이 부처님께 자기의 사상을 여쭙자 부처님께서 이를 기쁘게 받아들인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1]
보살은 어떤 서원을 세워야 할까요
— 승만부인의 열 가지 다짐과 세 가지 큰 서원
안녕하세요.
우리는 새해가 되거나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새로운 다짐을 세웁니다.
화를 줄이겠다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고 바르게 살겠다고 마음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다짐을 잊거나 실천을 뒤로 미루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을 향해 살아가는 보살은 어떤 다짐을 세워야 할까요?
오늘 경전산책에서는 『승만경』에 전하는 승만부인의 열 가지 다짐과 세 가지 큰 서원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습니다.
그 무렵 바사닉왕과 말리 왕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왕과 왕비에게는 아유사국의 왕비가 된 승만이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승만이 총명하고 지혜로우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 깊이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찬탄하는 편지를 써서 궁녀 전제라를 통해 승만부인에게 보냈습니다.
승만부인은 편지를 받아 머리 위로 높이 받들고 기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직접 부처님을 뵙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허공에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승만부인은 여러 사람과 함께 부처님께 공경히 예를 올리고, 게송으로 여래의 공덕을 찬탄했습니다.
“여래의 거룩한 모습은 세상에 견줄 이가 없으며,
비할 데 없이 불가사의하오니 지금 공경히 예배합니다.
여래의 몸은 다함이 없고 지혜 또한 끝이 없으시며,
모든 법에 항상 머무시니 저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승만부인의 찬탄을 들으시고, 승만부인이 훗날 깨달음을 이루어 보광여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 수행자가 미래에 부처를 이룰 것이라고 미리 밝혀 주시는 것을 수기라고 합니다.
승만부인은 이 수기를 개인적인 영광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처님의 말씀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겠다는 굳은 뜻으로 공경히 서서,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지켜 나갈 열 가지 큰 다짐을 세웠습니다.
첫째,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받은 계율을 어기려는 마음을 내지 않겠습니다.
둘째, 존경해야 할 어른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다.
셋째, 모든 중생에게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넷째,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좋은 물건을 보고 질투하지 않겠습니다.
다섯째, 몸과 재물을 비롯하여 자신이 가진 것을 아끼기만 하는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다.
여섯째, 자신만을 위하여 재물을 쌓지 않고, 받은 것이 있으면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겠습니다.
일곱째,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하여 사섭법을 실천하겠습니다.
베풀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이로운 행동을 하며, 상대와 함께하는 삶을 통해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끌겠다는 것입니다.
여덟째,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사람과 구금된 사람, 병들거나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돕겠습니다.
아홉째, 생명을 해치는 그릇된 생업에 종사하거나 계율을 어기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잘못된 행동은 고치도록 돕고, 자비로 품어야 할 사람은 받아들여 바른길로 이끌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열째,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 지니고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승만부인의 다짐은 자신만 깨끗하게 살겠다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계율을 지키고 탐욕과 성냄과 질투를 다스리는 일에서 시작하여,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을 바르게 이끌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에 오래 머물도록 지키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승만부인은 자신이 세운 열 가지 다짐의 진실함을 밝히기 위해, 하늘의 꽃이 내리고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기를 청했습니다.
그러자 허공에서 꽃이 내리고, 승만부인이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승만부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세 가지 큰 서원을 세웠습니다.
첫째, 저는 어느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올바른 가르침을 아는 지혜를 얻겠습니다.
둘째, 저는 그 지혜를 얻은 뒤에는 지치지 않고 모든 중생에게 가르침을 전하겠습니다.
셋째, 저는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 지닌 뒤에는 몸과 생명과 재산을 아끼지 않고 그 가르침을 보호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승만부인의 서원을 칭찬하며 말씀하셨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의 서원이 모두 이 세 가지 큰 서원 안에 들어 있느니라.”
이 세 가지 서원은 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중생에게 전하며, 끝까지 지켜 나가겠다는 보살의 길을 보여 줍니다.
승만부인의 서원은 깨달음이 막연한 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의 실천을 통해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계를 지키고 교만과 성냄을 줄이며, 다른 사람이 지닌 좋은 모습을 질투하지 않는 것.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외롭고 병들어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
배운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지켜 나가는 것.
이것이 보살의 서원을 오늘의 삶으로 옮기는 길입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을 마치며 생각해 봅니다.
나는 좋은 마음을 내는 데 머물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고 있을까요?
열 가지를 한꺼번에 실천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오늘은 화를 내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한 번 살피거나,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일부터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원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소원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 가고자 세운 삶의 방향입니다.
그 다짐을 오늘의 작은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우리의 일상도 보살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0 https://ydpcj.kr/news/22175 Sat, 12 Sep 2026 14:05:23 +0000 https://ydpcj.kr/news/22175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0

🌿 여덟 살 묘혜가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보살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들려주신
마흔 가지 삶의 기준.
그 가운데 나는 무엇을
실천하고 있을까요?
오늘, 보살의 길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함께 살펴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0www.youtube.com

[경전산책 70]

보살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수마제경』에 전하는 마흔 가지 실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기사굴산에서 비구 1,250명과 보살 1만 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왕사성에 묘혜라는 장자의 딸이 있었다. 묘혜는 여덟 살이었으며,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워 보는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묘혜는 지난 세상에서 한량없이 많은 부처님을 가까이하여 공양하고 선근을 심은 사람이었다.

묘혜는 부처님을 찾아가 그 발에 예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뒤,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말씀드렸다.

“위없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께서는 세상을 밝히는 큰 등불이십니다. 보살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여쭙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혜야, 무엇이든 물어보아라. 내가 너를 위하여 설명하여 의심을 풀어 주리라.”

묘혜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해야 단정하고 아름다운 몸과 부유하고 존귀한 삶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부처님 앞에 연꽃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자유로운 신통을 얻어 한량없는 불국토를 다니며 여러 부처님께 예경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세상에서 원망을 사지 않고, 자신이 하는 말을 사람들이 믿게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불법을 가로막는 장애를 없애고, 수행을 방해하는 온갖 마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목숨을 마칠 때 부처님을 뵙고 청정한 가르침을 들어 괴로움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까?

크나큰 자비를 갖추신 부처님이시여, 저를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묘혜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네가 이처럼 깊고 미묘한 뜻을 잘 물었도다.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여라. 내가 너를 위하여 말해 주리라.”

묘혜가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기쁜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혜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단정하고 아름다운 몸을 받느니라.

첫째, 나쁜 벗을 만나더라도 성내지 않는다.

둘째, 큰 자비심에 머문다.

셋째, 바른 가르침을 깊이 좋아한다.

넷째,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한다.

또 묘혜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부유하고 존귀한 삶을 얻느니라.

첫째, 필요한 때에 알맞게 보시한다.

둘째,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없이 보시한다.

셋째, 기쁜 마음으로 보시한다.

넷째, 보시한 대가나 과보를 바라지 않는다.

또 묘혜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느니라.

첫째,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말을 버린다.

둘째, 그릇된 견해를 지닌 사람을 바른 견해에 머물게 한다.

셋째, 사라질 위기에 놓인 바른 가르침을 보호하여 오래 머물게 한다.

넷째,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또 묘혜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부처님 앞에 연꽃으로 태어나 연화좌에 앉게 되느니라.

첫째, 여러 꽃과 열매와 고운 가루 향을 부처님과 탑에 뿌려 공양한다.

둘째,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

셋째,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여 연화좌에 모신다.

넷째, 부처님의 깨달음을 깊이 믿고 이해한다.

또 묘혜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한 불국토에서 다른 불국토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느니라.

첫째, 다른 사람이 선을 닦는 것을 보고 방해하지 않는다.

둘째, 다른 사람이 바른 법을 설할 때 비난하거나 훼방하지 않는다.

셋째, 부처님의 탑과 사찰에 등불을 밝혀 공양한다.

넷째, 여러 선정을 언제나 부지런히 닦고 익힌다.

또 묘혜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원망을 사지 않느니라.

첫째, 아첨하는 마음 없이 선한 벗을 가까이한다.

둘째, 다른 사람의 뛰어난 점과 훌륭한 수행을 질투하지 않는다.

셋째, 다른 사람이 명예를 얻으면 항상 기뻐한다.

넷째, 보살의 수행을 업신여기거나 비방하지 않는다.

또 묘혜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이느니라.

첫째, 말과 행동이 언제나 서로 일치하게 한다.

둘째, 선한 벗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는다.

셋째, 가르침을 들을 때 허물부터 찾지 않는다.

넷째, 가르침을 설하는 사람에게 나쁜 마음을 품지 않는다.

또 묘혜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불법을 가로막는 장애에서 벗어나 신속히 청정해지느니라.

첫째, 깊고 기쁜 마음으로 삼취정계를 받아 지킨다.

둘째, 매우 깊은 경전의 가르침을 듣더라도 비방하지 않는다.

셋째, 처음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을 부처님처럼 공경한다.

넷째, 모든 중생을 평등한 큰 자비심으로 대한다.

또 묘혜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수행을 방해하는 온갖 마군에서 벗어나느니라.

첫째, 모든 법의 성품이 평등함을 안다.

둘째,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셋째, 언제나 부지런히 부처님을 생각한다.

넷째, 자신이 닦은 모든 선근을 중생과 깨달음을 위하여 회향한다.

또 묘혜야, 보살이 네 가지 법을 성취하면 목숨을 마칠 때 여러 부처님께서 그 앞에 나타나시느니라.

첫째, 다른 사람이 무엇을 구하면 보시하여 그 뜻을 채워 준다.

둘째, 모든 선한 가르침을 깊이 믿고 이해한다.

셋째, 여러 보살에게 장엄에 필요한 물품을 보시한다.

넷째, 삼보에 부지런히 공양한다.”

묘혜 동녀는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듣고 나서 세존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보살의 모든 수행을 제가 빠짐없이 받들어 실천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제가 이 마흔 가지 수행 가운데 하나라도 빠뜨리고 닦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고 여래를 속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당나라 보리류지 한역, 『수마제경』1)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0]

보살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 부처님이 밝힌 삶의 기준과 깨달음의 길

안녕하세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마음을 한 번쯤 품어 봅니다.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살고 싶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어떤 삶을 ‘바른 삶’이라고 말할까요?

오늘은 부처님께서 직접 밝히신 『수마제경』을 통해 보살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기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기사굴산에서 많은 비구들과 보살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 부처님을 찾아온 이는 뜻밖에도 어린 소녀였습니다.

왕사성에 살던 여덟 살의 묘혜, 수마제라고도 불리는 아이였습니다.

이 어린 소녀는 부처님께 묻습니다.

“보살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질문으로 이 경전은 시작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아이의 질문에 답하시며 보살이 살아가는 길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핵심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입니다.

먼저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쁜 사람을 만나도 쉽게 성내지 않고,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며,

바른 가르침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부처님을 공경하는 삶.

이렇게 살아갈 때 사람의 모습은 자연히 온화해집니다.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때에 맞게 베풀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기꺼이 나누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

이러한 삶은 자연히 복과 넉넉함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간질하지 않고, 바르지 못한 생각을 바르게 이끌며,

옳은 가르침을 지키고, 사람들을 좋은 길로 이끄는 삶.

이렇게 살아갈 때 관계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 이런 삶을 말씀하십니다.

남의 선행을 방해하지 않고, 남의 말을 들을 때 비난하지 않으며,

공양을 아끼지 않고,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이러한 삶은 마음을 점점 맑게 만듭니다.

또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남을 시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며,

좋은 벗을 가까이하고, 보살의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

이렇게 살면 삶에 원망이 남지 않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말의 중요성도 강조하십니다.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으며,

남의 말을 들을 때 허물을 찾지 않고, 설법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

이렇게 살아갈 때 그 사람의 말은 신뢰를 얻게 됩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보살의 삶을 네 가지씩 나누어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이 가르침은 모두 합하면 무려 마흔 가지에 이릅니다.

그래서 이 경전에서는 이를 ‘보살의 사십행’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우리 삶에 꼭 필요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전에서 더 중요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어린 소녀 수마제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수행을 잘 닦으면 너와 같은 여자라도

반드시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훗날 수승공덕보장여래가 될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수기(授記)’라고 합니다.

미래의 깨달음을 부처님께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경전은 단순히 좋은 삶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어떤 모습이든지, 바른 수행을 닦으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사회에서 제약이 많았던 여성에게도

성불의 길이 열려 있음을 밝힌 아주 깊은 가르침입니다.

수마제는 이 말씀을 듣고 이렇게 서원합니다.

“이 모든 가르침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실천하겠습니다.”

이 장면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많이 듣지만 실천은 뒤로 미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조용히 스스로를 비추어 보게 됩니다.

지금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남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보살의 삶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의 말 한마디, 마음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 그 가운데 한 가지만이라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한 걸음이 이미 보살의 길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1) 이 경은 묘혜(妙慧), 즉 수마제(須摩提)라는 여덟 살 난 여자아이와 부처님간의 대화를 통해 여성의 성불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부처님께서 수마제와 같은 여자아이도 6바라밀을 비롯한 40가지의 보살 수행법을 잘 닦는다면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서원한 수마제에게 언젠가 깨달음을 이루어 수승공덕보장(殊勝功德寶藏)여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내려주시는 내용이다 .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9 https://ydpcj.kr/news/22156 Fri, 04 Sep 2026 14:16:28 +0000 https://ydpcj.kr/news/22156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9

🌿 호흡에 집중할수록

왜 생각은 더 많아질까요?
『소도지경』은 호흡만 붙잡기 전에
몸과 마음, 생활을 함께 살피라고 가르칩니다.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는
뜻밖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호흡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의 길을 함께 만나 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9www.youtube.com

[경전산책 69]
호흡명상은 왜 잘되지 않을까요
— 『소도지경』이 말하는 몸과 마음의 수행 조건
수행자가 호흡을 고르게 하여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데에는 네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자신이 선하다는 생각만 믿고 계율을 분명히 지키지 않으며, 몸의 욕망을 따르기 때문이다.
둘째, 계율을 지키지 않아 지혜가 생기지 않고, 지혜가 없으므로 몸의 상태를 알지 못하며, 그로 인해 마음이 미혹되기 때문이다.
셋째,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전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치를 분명히 알 수 없고, 분명히 알지 못하면 마음에 의심이 생긴다.
넷째, 자신의 수명과 복이 날마다 줄어들고 있음을 자주 헤아리지 않은 채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네 가지 원인 때문에 호흡을 안정시키지 못한다.
수행자가 호흡을 고르게 하여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면, 앉아서 수행할 때 나타나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는 거친 숨[喘] 천(喘): 거칠고 가쁜 숨을 말한다. 이 경전에서는 생각이 일어나 마음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거친 호흡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이고, 다른 하나는 고요히 쉬는 숨[息] 식(息): 일반적으로는 숨이나 호흡을 뜻하지만, 이 경전에서는 호흡이 고르게 되고 몸과 마음이 쉬어 안정되는 상태까지 아우른다.
이다. 여기에는 다시 생겨남과 사라짐이라는 두 가지 원리가 있다.
거친 숨이란 무엇이며, 고요히 쉬는 숨이란 무엇인가?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날 때 숨이 거칠어지고, 생각이 멈출 때 숨도 고요해진다.
생겨남과 사라짐이란 무엇인가?
이 경전에서는 생각이 멸하는 것을 생겨남이라 하고,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죽음이라 한다.
먼저 이러한 관계를 알아야 생각과 호흡이 어떤 원인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분별할 수 있다.
수행을 방해하는 데에도 네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자신이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모르고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며, 절제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맛에 탐닉하는 것이다.
둘째, 마음이 눈앞의 대상에 끌려가면서 이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많이 구하여 괴로움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셋째, 마음을 경계하여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 하지만 잠이 너무 많아 본래의 마음챙김을 잃고, 꿈속에서도 그릇된 생각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넷째, 의심으로 악한 마음이 날마다 늘어나 이간하는 말과 거짓된 말, 성내는 마음에 빠지고 몸과 말이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머물러서는 선정을 가까이하기 어렵다.
거친 숨과 고요한 숨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일어났다가 멈추는 것을 자주 관찰해야 한다. 이를 바르게 관찰하려면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선지식을 가까이해야 한다.
둘째, 가르침을 받아들여 그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릇되게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아침부터 밤까지 경전을 읽고 외우며 그 뜻을 익혀야 한다.
넷째, 계율을 지키고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 네 가지를 갖추면 호흡을 안정시키기가 쉬워진다.
몸에는 네 가지 불균형이 있다.
몸을 이루는 땅의 성질이 지나쳐도 편안하지 않고, 물의 성질이 지나쳐도 편안하지 않으며, 불의 성질이 지나치거나 바람의 성질이 지나쳐도 편안하지 않다.
이 네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몸이 편안히 쉴 수 있다.
마음에도 네 가지 병이 있다.
어리석음이 많으면 마음이 멈추지 못하고, 성냄이 많아도 마음이 멈추지 못한다. 음욕이 많거나 의심이 많아도 마음은 고요히 머물지 못한다.
이 네 가지가 가라앉지 않으면 마음도 쉴 수 없다.
호흡과 관련해서도 네 가지 장애가 있다.
지나치게 결과를 구하면 호흡이 안정되지 않고, 생각이 너무 많아도 안정되지 않는다. 들뜬 기쁨이 지나쳐도 안정되지 않고, 숨이 거칠고 가빠도 안정되지 않는다.
수행자가 이러한 원인에서 벗어나면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몸에 종기나 부스럼, 옴과 같은 질병이 있거나 몸이 지나치게 비대하면 앉아서 수행하기가 편안하지 않다.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의 불기운이 일어나 편안하지 않고,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몸이 무거워지고 눈이 뻑뻑해져 편안하지 않다.
배가 부른데도 맛을 탐하여 계속 먹고 절제하지 않으면 몸의 바람 기운이 일어나 편안하지 않다. 음식을 지나치게 적게 먹어도 몸이 편안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번뇌의 성향에 따라서도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어리석음이 많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자주 드나들기보다 먼저 경전을 외우며 자신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성냄이 많다면 성냄을 키우는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음욕이 많다면 음악과 오락, 아름다운 모습처럼 욕망을 자극하는 대상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한다.
의심이 많다면 듣기 좋은 말만 계속 좇지 말고, 스스로 마음을 지키며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의심을 살펴야 한다.
구하는 것이 많다면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생각하여 집착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생각이 너무 많다면 ‘내 것’이라고 붙잡는 생각이 괴로움의 근본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들뜬 기쁨이 지나치다면 그것이 오래가지 않으며 뒤에 괴로움이 따를 수 있음을 헤아려 신속히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숨이 거칠고 한숨이 많다면 마음을 온화하게 하고 거친 말을 삼가며, 앉아 있는 동안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수행자가 이러한 원인을 알지 못하면 끝내 도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 그러나 이를 잘 다스리면 지혜가 조금씩 자라나 도에 이르기가 쉬워진다.
도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과거의 일을 알고 있더라도, 그 일로 인해 다시 집착하는 생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되풀이해서 일으킨 생각은 다시 새로운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벼를 심으면 벼를 거두고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는 것처럼, 마음에 심은 생각도 그에 따른 결과를 낳는다.
생각을 거듭하면 그것들이 모여 괴로움을 불러오고, 그 결과를 받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죽이려는 생각을 일으키면 살생의 씨앗을 심게 되고, 훔치려는 생각을 키우면 도둑질의 씨앗을 심게 된다.
음탕한 생각을 키우면 그릇된 성행위의 씨앗을 심고, 이간하려는 생각을 키우면 이간하는 말의 씨앗을 심는다.
욕하려는 생각을 키우면 거친 말의 씨앗을 심고, 속이려는 생각을 키우면 거짓말의 씨앗을 심으며, 꾸며 내는 말을 생각하면 쓸데없이 꾸미는 말의 씨앗을 심는다.
질투하는 생각을 키우면 질투의 씨앗을 심고, 성내는 생각을 키우면 성냄의 씨앗을 심으며, 의심을 거듭하면 의심의 씨앗을 심는다.
이처럼 같은 생각을 자꾸 되풀이하면 그 생각은 더욱 자라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선정에 들어가 그릇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다시 열 가지 악의 씨앗을 심지 않으면, 이전에 남아 있던 씨앗도 차츰 사라지게 된다.
곡식을 많이 거두었더라도 다시 씨앗을 심지 않으면 저장해 둔 양식이 조금씩 줄어들어 결국 다하는 것과 같다.
선정에 들어 그릇된 생각을 버리는 것도 이와 같다. 악한 씨앗을 다시 심지 않으면 이전의 악도 차츰 소멸한다.
선정을 닦아 악을 버리는 일은 복이 된다. 복은 온갖 악을 다하게 하고 오직 도를 향한 생각을 자라게 한다.
도는 지혜를 낳고, 지혜가 생기면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며 자신도 구할 수 있다.
불도를 향해 나아가 현세에서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알고 수행하려는 사람은 과거·미래·현재의 세 가지 생각을 살펴야 한다. 각각의 생각에는 복이 되는 생각과 죄가 되는 생각이 있다.
경전을 읽거나 선정을 닦을 때 오래전의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모욕당했던 일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따라 성냄이나 욕망을 일으켜 행동으로 옮긴다면 악이 더욱 커져 자신을 다스릴 수 없게 된다.
그러한 생각은 괴로움의 근본이 되므로 과거의 죄가 되는 생각이라 한다.
반대로 경전을 읽거나 선정을 닦을 때 과거에 겪은 즐거움과 괴로움을 떠올리고, 그것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살펴 선한 마음을 일으킨다면 과거의 복이 되는 생각이라 한다.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에서도 어지러운 생각이 크게 일어나 본래의 마음챙김을 잃고, 탐욕과 음욕을 따라 많은 것을 구하며 자신이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한다면 미래의 죄가 되는 생각이다.
반대로 고요한 가운데 선한 생각의 씨앗을 심어 지혜를 자라게 한다면 미래의 복이 되는 생각이다.
집에서 단정하게 생활하며 계율을 지키다가도, 갑자기 욕심을 일으켜 많은 가축을 기르고 재산을 늘리려 한다면 근심이 더해지고 계율을 잃게 된다. 이것이 현재의 죄가 되는 생각이다.
반대로 집에서 계율을 지키고 선한 생각을 더욱 키우며 항상 욕심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현재의 복이 되는 생각이다.
불도를 구하려는 사람은 먼저 무엇이 죄가 되고 무엇이 복이 되는지 분명히 알아야 지혜를 키울 수 있다.
모든 번뇌를 끊어 아라한의 길을 구하는 것도 불도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다.
복을 늘리려면 바른 가르침을 많이 들어야 하고, 지혜를 기르려면 경전을 익혀야 하며, 가르침의 핵심을 알려면 계율을 지켜야 한다.
계율을 지키면 경전의 뜻을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자신도 복을 얻을 수 있다.
후한 지요 한역, 『소도지경』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9]
왜 호흡명상은 잘 되지 않을까
– 부처님이 밝힌 수행의 실제 조건
안녕하세요.
요즘 많은 분들이 호흡명상과 마음챙김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자주 합니다.
“호흡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앉으면 오히려 마음이 더 흔들립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부처님께서는 이미 이 문제를 분명히 짚어 주셨습니다.
여기서 먼저 한 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호흡을 관찰하는 수행, 곧 안반념(安般念)은 가장 기본이 되는 수행법이었습니다.
호흡은 늘 우리와 함께 있고, 몸과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며,
집중과 지혜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기불교에서도 호흡 관찰은
선정에 들어가는 중요한 관문이자 마음을 바르게 보는 수행으로 강조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단순히 “호흡을 보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호흡이 잘 되지 않는가”까지 분명히 짚어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도를 수행하는 사람이 호흡을 구해도 얻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행 전체의 문제입니다.
첫째, 계율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활이 흐트러지면 마음은 고요해질 수 없습니다.
욕망을 따라가는 삶 위에서는 호흡 또한 결코 안정되기 어렵습니다.
둘째, 지혜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지금 일어나는 상태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셋째,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방향을 모른 채 수행하면 노력은 쌓이지만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넷째, 자기 삶을 자주 살피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명과 복은 날마다 줄어드는데 마음은 늘 바깥으로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자꾸 뒤로 밀리고 호흡도 쉽게 고요해지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호흡 자체도 깊이 있게 설명하셨습니다.
숨이 거칠게 일어나는 것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과 관계가 있고,
숨이 고요히 쉬어지는 것은 마음이 쉬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뜻[意]이 생겨 일으킨 것이 숨 찬 것이고, 뜻이 쉬는 것이 숨을 쉬는 것이다.”
이 말은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뜻은 분명합니다.
수행은 단지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일이 아니라,
마음이 일어나고 쉬는 것을 자세히 보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호흡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함께 보는 일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수행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생활 속에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몸에도 병이 있고, 마음에도 병이 있으며, 호흡에도 병이 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수행이 흔들리는 실제 이유를 밝히신 것입니다.
몸이 무겁고 불균형하면 앉아 있어도 불편하고 호흡은 자연히 거칠어집니다.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가 되고, 너무 적게 먹어도 문제가 됩니다.
잠이 지나치게 많아도 마음은 흐려집니다.
마음에도 병이 있습니다.
어리석음이 많으면 마음이 흐려지고, 성냄이 많으면 거칠어지며,
욕심이 많으면 들뜨고, 의심이 많으면 쉬지 못합니다.
이 네 가지가 강하면 마음은 가라앉지 못하고 호흡 또한 편안해지지 않습니다.
호흡에도 또한 병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호흡을 너무 애써 붙잡으려 해도 안 되고,
너무 많이 생각해도 안 되며,
수행이 잘된다고 들떠 기뻐해도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지나친 조작과 집착은 오히려 호흡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호흡만 다루지 말고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호흡은 따로 다루는 대상이 아니라, 삶과 마음이 함께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또한 수행의 바탕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들은 바를 잘 이해하며,
경전을 익히고, 계를 지켜야 한다.”
이 네 가지가 갖추어질 때 호흡은 자연히 안정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생각에 대해서도 매우 깊이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은 씨앗과 같다.”
무엇을 자주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삶이 만들어집니다.
화를 생각하면 화가 자라고, 욕심을 자주 생각하면 욕심이 자랍니다.
과거를 붙잡는 생각, 미래를 걱정하는 생각, 현재에 집착하는 생각.
이 세 가지 흐름 속에서 마음은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수행은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다시 심지 않으면 괴로움은 점점 사라진다.”
생각을 계속 키우면 괴로움은 이어집니다.
그러나 선정 속에서 놓아버리면 차츰 소멸됩니다.
그래서 오늘, 조용히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나는 호흡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고 있는가,
아니면 삶과 마음을 바로 세우고 있는가.
호흡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른 삶 위에서 자연스럽게 맑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가르침을 떠올리며,
잠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알아차림이 이미 수행의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
씨앗도사 김형동 교수님 강의 https://ydpcj.kr/news/22118 Mon, 31 Aug 2026 11:03:56 +0000 https://ydpcj.kr/news/22118/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씨앗도사 김형동 교수님 강의 (10분 동영상)
하늘 천(天)자에 대한 의미
天 = 二 + 人(아래 위치) = 천 지 인 合字
夭 = 삐칠 별 + 大(큰, 하늘)=하늘이 삐친 글자
     = 일찍 죽을 요
仁 = 二 + 人(옆에 위치) = 천 지 인 合字
     = 어질 인
无 = 二 + 人(행할 인)
     = 없을 무

天 하늘천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youtu.be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8 https://ydpcj.kr/news/22112 Mon, 31 Aug 2026 10:54:44 +0000 https://ydpcj.kr/news/22112/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8

📩 여름의 끝자락,

잠시 마음을 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별주부전’과 닮은 이야기가
이미 불교 경전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뻔히 알면서도
욕망에 흔들리고 속임수에 넘어갈까요?
원숭이와 자라의 이야기에 담긴
부처님의 지혜를 함께 만나 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8www.youtube.com

[경전산책 68]
왜 우리는 속고 또 속는가
– 의심과 욕망이 우리를 흔드는 이유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유행하시면서 대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에 비구들이 모여 의논하여 말하였다.
“이 폭지(暴志)라는 비구니는 집과 생업을 버리고 도를 배워서 실천하기 위해 삼보에 귀의하였다. 그런 즉 부처님[佛]께서는 아버지가 되며 불법[法]은 어머니가 되고 비구 대중들[比丘衆]은 형제가 되는 것이다.본래 도법(道法)으로써 사문이 되었으니 도의(道誼)를 따르고 닦으며 3독의 때를 버리고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승가를 시봉하며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기고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等心]을 행하여 득도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나쁜 마음을 품고 부처님을 비방하며 존귀한 분을 욕하고 대중 스님들을 가볍게 여겨 욕하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며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 하는 말을 꿰뚫어 아시고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오셔서 물으셨다.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느냐?”
비구들은 자신들이 의논한 바를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구니는 단지 이번 세상에만 여래에게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니, 태어날 때마다 그러했느니라.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과거 무수겁 전에 한 원숭이 왕이 있었는데 숲 속에서 과일과 물을 먹고 살았다. 일체의 기어 다니는 벌레나 숨쉬는 것들이나 사람 등을 불쌍히 여겨 다 제도하여 무위의 도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때 자라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와 친한 친구가 되어 지냈으며 서로 존중하며 애초부터 서로 거슬리는 일이 없었다. 그 자라는 자주자주 원숭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음식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하며 옳은 이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그런데 자라의 아내가 남편이 자주 외출을 하여 집에 없는 것을 보고 밖에서 음탕하게 처신해 절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자주 외출을 하는데 어디에 가는 것입니까? 밖에서 방일하여 함부로 지내는 것은 아닌지요?’
그 남편 자라가 대답하였다.
‘나는 원숭이와 친구가 되었소. 그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또한 이치[義理]를 깨닫게 해주는 이요. 자주 가서 경법에 대해 논하곤 하니, 유쾌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만 할 뿐 달리 방일한 짓은 하지 않소.’
그러나 그 아내는 그 말을 믿지 않고 그렇지 않을 거라고 하였다. 또한 자기 남편을 자주 유혹해서 불러내는 원숭이에 대해 화가 났다. 그래서 그를 죽여 버린다면 자기 남편이 그만 둘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곧 그 아내는 병이 난 체하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 남편은 열심히 약으로 치료하였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아내 자라는 남편 자라에게 말하였다.
‘이렇게 힘써서 약으로 치료하는 데도 내 병은 깊어만 가네요.당신의 그 친한 친구인 원숭이의 간을 먹어야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남편이 대답하였다.
‘그는 나의 친한 친구로서 몸을 의지하고 목숨을 의탁하여 서로 믿는 사이인데 어찌 그렇게 해서 당신을 살릴 수가 있겠소?’
그 아내가 대답하였다.
‘부부라는 것은 한 몸인데 이제 나를 구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원숭이를 위하니 이는 진실로 도리에 맞지 않는 것 같군요.’
그 남편은 아내가 이렇게 조르자 그 아내를 중히 여겨서 원숭이에게 가서 말하였다.
‘나는 자주자주 그대의 처소에 왔었는데 그대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와보지를 않았소. 내 집에 한번 오셔서 약소한 음식이나마 드시기를 청합니다.’
원숭이가 대답하였다.
‘나는 육지에 살고 그대는 물 속에서 사는데 내가 어떻게 그대를 따라가겠소.’
자라가 말하였다.
‘내가 그대를 등에 업고 가면 갈 수가 있을 것이오.’
그러자 원숭이는 즉시 그를 따라 나섰다. 자라가 원숭이를 등에 업고 가는 도중에 원숭이에게 말했다.
‘그대를 청하는 까닭을 알고 싶지 않으시오? 사실은 나의 아내가 병이 깊은데 그대의 간을 복용하면 병이 나을 것 같다 하여 모셔가는 것이오.’
원숭이가 대답하였다.
‘그대는 어찌 그 말을 일찍 하지 않으셨소? 나는 간을 나무에 걸어놓고 가지고 오지 않았소. 빨리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와야 하겠소.’
그리고는 즉시 되돌아가 나무 위에 뛰어 오르면서 기뻐하였다. 그때 자라는 원숭이에게 물었다.
‘그대는 마땅히 간을 가지고 나의 집에 가야 하거늘 오히려 나무 위로 올라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니 어찌된 일이오?’
원숭이가 대답하였다.
‘이 천하에 제일가는 바보 같으니라고, 간을 나무에 걸어 놓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친구라고 하면서 함께 돌아가기를 꾀하여몸을 의지하고 목숨을 의탁한 사이인데 내 목숨을 위태롭게 하려 한단 말이오? 이제 나는 돌아왔으니 각자 자기 길을 갑시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자라의 아내는 바로 폭지 비구니였고, 자라는 바로 조달이었으며, 원숭이 왕은 바로 나였느니라.”
축법호(竺法護) 한역, 생경(生經) 1권 불설별미후경(佛說鼈獼猴經)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8]
왜 우리는 속고 또 속는가
– 의심과 욕망이 우리를 흔드는 이유
안녕하세요.
우리가 어릴 때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
‘토끼의 간 이야기’, 혹은 ‘별주부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단순한 전래동화가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이야기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오늘은 『생경』에 전해지는 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그 이야기 속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많은 비구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 한 비구니가 부처님과 대중을 비방하고 거친 말을 일삼는 일이 있었습니다.
비구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기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그러했느니라.”
그리고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아주 먼 옛날, 숲 속에 한 원숭이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혜롭고 자비로워 많은 생명들에게 이로움을 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자라 한 마리가 그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둘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자라의 아내가 남편의 외출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심은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곧 질투로 바뀌었고, 질투는 마침내 욕망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병든 척하며 말했습니다.
“이 병은 원숭이의 간을 먹어야 낫겠습니다.”
남편 자라는 괴로워했지만 끝내 그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속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라는 원숭이를 찾아가 더욱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대는 늘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나는 아직 그대를 한 번도 초대한 적이 없소.
오늘은 꼭 내 집에 와서 함께 음식을 나누고 싶소.”
원숭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나는 육지에 살고, 그대는 물에 사니 어떻게 갈 수 있겠소?”
자라는 곧 대답했습니다.
“내 등에 올라타면 우리 집에 갈 수 있소.”
원숭이는 그 말을 믿고 아무 의심 없이 자라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잔잔하던 물 위를 천천히 건너가던 중, 자라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결국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사실은… 내 아내의 병을 고치려면 그대의 간이 필요하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원숭이는 잠시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왜 이제야 말씀하셨소? 나는 간을 나무에 두고 왔소. 돌아가서 가져와야 하겠소.”
자라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서둘러 되돌아갔습니다.
숲에 도착하자마자 원숭이는 재빨리 나무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구려. 세상에 간을 꺼내 두는 법이 어디 있겠소?
친구라 하면서 나를 속여 목숨을 해치려 하다니,
이제 우리는 함께 갈 수 없소. 각자의 길을 갑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자라의 아내는 바로 지금의 그 비구니였고, 자라는 조달, 곧 제바달다였느니라. 그는 부처님의 사촌이자 제자였지만 욕심과 시기로 인해 부처님을 해치려 했던 인물이니라. 그리고 그 원숭이 왕은 바로 나였느니라.”
이 이야기는 『생경』에만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타카 본생경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널리 전승되어 온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본래 인도에서는 원숭이와 악어 이야기로 전해졌고,
중국을 거치면서 자라와 원숭이 이야기로 바뀌었으며,
우리나라에 와서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곧 ‘별주부전’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래동화의 뿌리 가운데 불전설화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재미로 들려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원숭이는 부처님의 전생이고, 자라는 제바달다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자라의 아내가 보여 준 마음은
의심과 질투, 그리고 욕망이 어떻게 사람을 어리석게 만드는지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욕망은 눈을 흐리게 합니다.
의심은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배신은 마침내 자기 자신까지 그릇되게 만듭니다.
반대로 지혜는 위기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합니다.
이 가르침은 지금 우리의 삶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의심하기도 하고,
욕심 때문에 옳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 자체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 마음에 끌려가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지금 내 선택은 지혜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욕망에서 나온 것인가.
지금 내 마음은 믿음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의심에 흔들리고 있는가.
그 차이가 한순간의 기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 자체를 바꾸게 됩니다.
익숙한 이야기 속에 담긴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 조금 더 맑은 마음으로 조금 더 바른 선택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마음 하나가 이미 수행의 시작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