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뉴스 Archives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news/category/media/moving 영등포 소식,소비자평가,뉴스,영등포구 지역포털 Fri, 10 Apr 2026 14:18:28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6.9.4 https://ydpcj.kr/wp-content/uploads/2017/07/cropped-panelbiz_logo-32x32.jpg 동영상 뉴스 Archives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news/category/media/moving 32 32 236799152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8 https://ydpcj.kr/news/21400 https://ydpcj.kr/news/21400#respond Fri, 10 Apr 2026 14:16:54 +0000 https://ydpcj.kr/?p=21400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8 📩 불교 초기 전법의 흐름을 바꾼 한 사람, 그리고 한 도량의 탄생 이야기. 수닷타 장자의 신심으로 태어난 기원정사 이야기, 오늘 경전산책에서 함께 만나 보세요. 🙏 https://www.youtube.com/watch?v=lRDXVG1hkdk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8www.youtube.com [경전산책 48] 수닷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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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8

📩 불교 초기 전법의 흐름을 바꾼 한 사람,

그리고 한 도량의 탄생 이야기.
수닷타 장자의 신심으로 태어난
기원정사 이야기,
오늘 경전산책에서 함께 만나 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8www.youtube.com

[경전산책 48]
수닷타가 지은 급고독원(給孤獨園)의 인연
(須達多) 수닷다(Sudatta) 장자는 프라세나지트(파세나디) 왕이 다스리는 코살라국 출신의 장자였다. 수닷타라는 이름은 잘 베푸는 사람이라는 뜻. 그의 별칭은 급고독(給孤獨, Anāthapiṇḍika)인데, 아프고 힘들어도 도움의 손길이 가 닿지 않는 고독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사위성(舍衛城) 사위는 산스크리트어 ‘슈라바스티(Śrāvastī)’의 음역어로,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위성(舍衛城)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삿된 것을 많이 믿사옵니다. 여래께서는 대자비로 사위성으로 왕림하여 살펴주소서.”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거기에는 정사(精舍) 정사의 사전적 의미는 ‘정신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가르침을 베푸는 학사·서당의 의미와, 정신을 수양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사찰, 암자를 뜻하기도 한다. 정사는 원래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의 절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교 최초의 절이라 할 수 있는 죽림정사(竹林精舍)가 바로 정사였다.
가 없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수닷타 장자가 말하였다.“제자가 일으키겠사오니, 원컨대 허락하여 주소서.”세존께서 잠자코 계셨으므로 수닷타 장자가 말하였다.
“원컨대 사리불(舍利佛) 사리푸트라(舍利弗,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 또는 사리풋다(팔리어: Sāriputta), 사리불(舍利佛)은 석가의 십대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지혜제일이라고 불린다.
을 보내시어 법식을 가르쳐 주게 하시옵소서.”그리하여 곧 명으로 같이 가서 두루 살피며 돌아다녔지만 뜻에 맞는 데가 없었고, 오직 태자의 기타원(祇陀園) 기타(祇陀) 태자는 제타(Jeta) 태자의 음사다. 코살라의 지배자 파세나디 왕의 태자이다.
만이 그 땅이 편편하여 바르고 숲과 나무가 울창하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중간 위치였다.수닷타 장자가 태자에게 아뢰자, 태자는 웃는 말로 말하였다.“유희하는 곳으로 쓰려 하십니까?”수닷타 장자가 간절히 두 번 세 번 청하자, 태자가 말하였다.“황금을 땅에 깔되 빈틈이 없게 하면,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수닷타 장자가 말하였다.“좋습니다. 삼가 그 값을 따르겠습니다.”태자 기타가 말하였다.“내가 장난치는 말입니다.”수닷타 장자가 말하였다.“태자께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그리고 곧 같이 논쟁하였다. 이 때에 수타회천인(首陁會天人) śuddha-āvāsa의 음사로 한역하여 정거천(淨居天)이라고 한다. 불환과(不還果)를 얻은 성자가 머무는 곳이다.
이 사람으로 변화하여 내려와 평론을 하면서 자세히 말하였다.“대저 태자의 법으로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값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중간에 후회를 마셔야 합니다.”마침내 결단을 내려 그에게 허락하자, 곧 사람과 코끼리에 금을 지워 나오게 하여 80경(頃) 안을 잠깐 사이에 채우고자 하였으나, 약간의 땅이 남았다.
수닷타 장자는 생각하였다.‘어느 광의 금이면 될까?’기타 태자가 말하였다.“싫으시면 그만두십시오.”수닷타 장자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기타 태자는 생각하였다.‘부처님께서는 틀림없는 대덕이구나. 이 사람으로 하여금 보배를 가벼이 여기는 것을 이렇게까지 하게 하셨으니.’그리고 곧 수닷타 장자에게 명하며 말하였다.“동산의 땅은 장자에게 속하되, 숲의 나무는 나에게 속하므로 나 자신이 부처님께 올리겠습니다.”곧 공사가 시행되었는데, 육사외도(六師外道) 육사외도는 서기전 500년 무렵 인도에서 활동하던 6명의 자유 사상가를 가리킨다. 푸라나 캇사파, 막칼리 고살라, 아지타 케사캄바린, 파쿠다 캇차야나, 산자야 벨랏티풋타, 니간타 나타풋타이다.
가 이를 듣고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장자 수닷타 장자가 기타 동산을 사서 구담(瞿曇) 석가모니 부처의 일족인 석가족의 성씨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Gautama’ 혹은 ‘Gotama’, 팔리어로는 ‘Gotama’이고, 한역 경전에서는 흔히 구담(瞿曇)으로 표기되거나 교답마(喬答摩), 구답마(瞿答摩) 등으로 번역된다. ‘고타마’라는 말의 유래는 한국어로는 대체로 go(瞿)는 소(牛), tama(曇)는 최상(最上)으로 ‘으뜸가는 소’ 혹은 ‘최상의 소’로 소개된다.
을 위하여 정사를 세운다 하니 우리 도중(徒衆)과 도술 겨룸을 허락하여 사문이 이기면 세우기를 허락하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일으킬 수 없게 하소서.”그러므로 왕은 수닷타 장자를 불러 물었다.“지금 이 육사가 말하기를 ‘경이 동산을 사서 구담을 위하여 정사를 세운다 하니, 그 사문 제자와 함께 기술을 겨루게 하여 이기면 정사 세울 것을 허락하고, 그렇지 못하면 세울 수 없게 하라’고 합니다.”수닷타 장자가 집에 돌아가서 때묻은 옷을 입고 근심을 하고 있는데, 이때 사리불이 그 다음날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서 수닷타 장자의 집에 도착하여 물었다.“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계십니까?”수닷타 장자는 자세히 대답하였다.“이 육사 외도의 무리들은 출가한 지 오래고 정성스럽게 배운 바가 있어서 기술은 미칠 이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스님을 압니다만, 기술을 겨루겠다고 허락하실 수 있겠습니까?”사리불이 말하였다.“비록 이 육사 외도의 무리가 염부제 인도신화에 나오는 수미산의 사방에 위치한 네 육지 중 남쪽에 위치한 육지를 말한다. 염부(閻浮)는 잠부(Jambu)나무를 의미하고 제(提)는 섬·육지를 의미하는 범어 dvīpa의 음차이다.
에 가득 차서 그 수가 대숲과 같다 하더라도 내 발 위의 한 터럭도 움직일 수 없으리다. 무엇이든지 겨루려 하면 마음대로 허락하십시오.”수닷타 장자는 기뻐하며 다시 새 옷을 입고 목욕하고 향수 등을 바르고서 즉시 가서 왕에게 아뢰었다.“제가 그에게 물었더니, 그들 뜻대로 하라 하셨습니다.”왕은 육사에게 말하였다.“이제 그대들에게 사문과 함께 기술 겨룸을 허락하노라.”그러자 육사는 나라 인민들에게 널리 알렸다.“이로부터 7일 후에 성 밖에서 사문과 기예를 겨룰 것이다.”사위국에는 18억 인이 있었다. 이 때에 그 나라 법으로 북을 쳐서 대중을 모았는데, 동북[銅鼓]을 치면 7억 인이 모였고, 은북[銀鼓]을 치면 14억 인이 모였고, 금북[金鼓]을 치면 모두가 다 모였다. 7일의 기한이 차자 편편하고 넓은 처소에 가서 금북을 두드리니 모두가 다 모였는데, 육사의 도중(徒衆)만도 3억 인이 있었다. 이때 인민들은 모두가 국왕과 그 육사들을 위하여 높은 자리를 마련하였고, 이 때에 수닷타 장자는 사리불을 위하여 높은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때 사리불은 한 나무 아래에서 여러 선정에 들어 생각하였다.‘이 모임의 대중들이 삿된 것을 익혀 온 지 오래라 뽐내면서 높은 체하니, 초개 같은 군생들을 무슨 덕으로써 항복시킬까?’생각한 뒤에 서원을 세워 말하였다.“만약 내가 수없는 겁 동안 부모에게 효도하고 사문과 바라문을 공경하였다면, 내가 처음 모임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대중들이 나에게 예배하게 되리라.”육사는 대중이 이미 모였는데도 사리불만이 아직 와 있지 않음을 보고 바로 왕에게 아뢰었다.“구담 제자는 스스로가 기술 없음을 아는지라, 많은 회중이 이미 다 모였는데도 두려워서 오지 않습니다.”왕은 수닷타 장자에게 말하였다.“겨룰 때가 이미 되었으니, 부처님 제자는 마땅히 와서 담론해야 하리라.”그 때 수닷타 장자가 사리불에게 가서 무릎 꿇고 아뢰었다.“대덕이시여, 대중들은 이미 모였습니다. 원컨대 모임에 나오소서.”이때 사리불이 선정에서 일어나 다시금 가사를 바로잡고 니사단(尼師檀) 니사단(niṣīdana)은 비구가 앉거나 누울 적에 땅에 펴서 몸을 보호하며, 또 와구(臥具) 위에 펴서 와구를 보호하는 네모 진 깔개를 말한다.
을 왼쪽 어깨에 메고 천천히 사자왕과 같은 걸음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가자, 이때 대중들과 여러 육사들은 갑자기 일어나며 풀이 바람에 쏠리듯 모르는 결에 절을 하는데, 이 때에 사리불은 바로 수닷타 장자가 마련한 자리로 올라갔다. 육사 무리 안에 노도차(勞度差)라는 한 제자는 요술을 잘 부렸다. 그가 대중 앞에서 주문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만들자, 저절로 자라고 넓어져 그늘이 대중의 모임을 덮으면서 가지와 잎은 울창해지며 꽃과 열매가 저마다 기이한지라, 대중들이 모두 말하였다.“이 변화야말로 바로 노도차가 한 일이로다.”이때 사리불이 곧 신통의 힘으로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그 나무의 뿌리를 뽑아 땅에 거꾸러뜨리면서 부수어 작은 티끌로 만들어 버리자, 대중들이 모두 말하였다.“사리불이 이겼도다.” [중략]이때 사리불은 몸을 솟구쳐 허공에서 네 가지 위의를 나타내며 열여덟 가지 변화를 부리고, 변화를 부린 뒤에는 도로 신족(神足)을 거두고 그의 본래 자리에 와 앉자, 이 때에 모인 대중들은 그의 신통력을 보고 모두 기뻐하였다. 그 때 사리불이 바로 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자 그 복과 행을 따라 저마다 도의 자취를 얻었고, 육사의 무리 3억 제자들도 사리불에게 출가하여 도를 배웠다.
수닷타 장자는 사리불과 함께 가서 정사를 설계하여 손으로 새끼 끝을 잡는데, 이 때에 사리불이 빙그레 웃으므로 수닷타 장자가 물었다.“스님, 왜 웃으십니까?”사리불이 대답하였다.“당신이 여기에 땅을 경영하기 시작하자, 여섯의 욕계 하늘에 궁전이 벌써 이룩되었습니다.”즉시 도의 눈[道眼]을 빌어 수닷타 장자가 다 보고 나서 사리불에게 물었다.“이 여섯 욕계 하늘에서 어디가 가장 즐거운 곳입니까?”사리불이 말하였다.“제4천(天) 색계 제4선천(禪天). 정거천(淨居天)은 불환과(不還果, 성문(聲聞)의 세 번째 지위인 아나함과)를 증득한 성인이 나는 하늘이다. 불환은 ‘욕계(欲界, 욕망의 세계)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자’란 의미이다.
에는 욕심이 적고 족한 줄 알며, 항상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이 그 안에 와 나시므로 법의 가르침이 끊어지지 않습니다.”수닷타 장자가 말하였다.“저는 장차 제4천 안에 가서 나겠습니다.”그러자 다른 궁전은 모두 다 사라졌다.수닷타 장자가 다시 새끼를 잡자 이 때에 사리불이 참연(慘然)히 근심하는 빛을 띠므로 수닷타 장자가 곧 물었다.“존자께서는 무엇 때문에 근심하는 빛을 띠십니까?”사리불이 대답하였다.“당신은 지금 이 땅 속의 개미들이 보이십니까? 당신은 과거 비바시불(毘婆尸佛) 비바시불(毘婆尸佛)은 과거칠불 중 첫 번째 부처로, 산스크리트어로 Vipasyin인데, 산스크리트 비파신(Vipasyin)을 음역하여 비바시불(毘婆尸佛)이라 하였다.
때에도 이 땅에 그 세존을 위하여 정사를 세우셨는데, 이 개미들이 아직도 이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가섭불(迦葉佛) 과거 7불 중 제6불. 석가모니가 출세하기 전 부처님이다.
 때까지 그러하여 91겁 동안 한 가지 몸을 받았습니다.”정사를 세우는데, 부처님을 위하여 만든 굴은 묘한 전단(栴檀)을 이용하여 향을 만들어 발랐고, 별방(別房)으로 머무를 곳도 1천2백 처소였다. 무릇 120처소에서 따로 건추(健椎-악기의 일종)를 치고 나서 왕에게 아뢰었다.“대왕이시여, 사신을 보내어 부처님을 청하소서.”왕이 즉시 사신을 보내어 왕사성에 나아가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여 “원컨대 세존이시여, 사위국으로 왕림하소서”라고 하게 하였으므로 부처님과 4부 대중은 앞뒤로 에워싸고 큰 광명을 뿌리고 천지를 진동시키면서 사위국에 이르셨다.
승민(僧旻)ㆍ보창(寶唱) 등 편집, 『경률이상』 이 이야기는 『현우경(賢愚經)』 제10권에 나오며, 『잡아함경』ㆍ『열반경』ㆍ『중본기경』과 모든 율(律)에서도 대체로 같다.
 제3권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8]
수닷타가 지은 급고독원(給孤獨園)의 인연
― 기원정사는 어떻게 불교의 중심이 되었는가
안녕하세요.
오늘은 불교 초기 전법의 흐름을 바꾼 한 사람,
그리고 한 도량의 탄생 이야기를
경전 속 인연으로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기원정사, 또는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
오늘날 전 세계 불교인들이 찾는 가장 중요한 인도 성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부처님께서 처음 포교를 시작하셨을 때,
그 중심은 마가다국이었습니다.
왕사성, 죽림정사, 빔비사라 왕.
그러나 성도 후 약 10년이 지나면서
불법은 점차 인도 서북쪽의 강대국, 코살라국으로 뻗어 나가게 됩니다.
그 결정적인 인연이 바로 수닷타 장자,
사람들이 급고독장자라 불렀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수닷타(Sudatta). 이름 그대로 ‘잘 베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위성에서 가장 큰 부를 이룬 거상이었지만,
재산을 자신을 위해 쌓아 두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을 돌보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급고독장자’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는 아직 부처님의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수닷타 장자는 장사 일로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을 찾습니다.
그곳의 처남 집은 잔칫날처럼 부산했습니다.
‘무슨 큰일이 있는 것인가?’ 하고 묻자,
처남은 뜻밖의 말을 전합니다.
“내일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에 초대했습니다.”
그 순간 수닷타 장자는 놀라 말합니다.
“부처님이라니! 그 이름조차 듣기 어려운 분이
이미 이 세상에 나오셨단 말인가?”
그날 밤, 그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부처님을 뵌다는 생각 하나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날이 밝기도 전에 집을 나선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타바나(寒林), 이른바 시다림이라 불리던 묘지 숲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명상에 잠겨 계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닷타 장자를 보시자
이미 깊은 인연이 있음을 아시고,
곧바로 깊은 법을 설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보시의 공덕을 말씀하시고,
이어 계율을 지키는 삶의 가치를 밝히신 뒤,
그 과보로 얻는 천상의 즐거움을 차례로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충분히 열렸을 때,
마침내 괴로움과 그 원인,
괴로움의 소멸과 그 소멸로 이끄는 길, 사성제를 설하셨습니다.
수닷타 장자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의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수다원, 성자의 흐름에 든 사람의 지위에 이르렀고,
삼보에 귀의하며 서원합니다.
“평생 부처님과 교단을 후원하겠습니다.”
왕사성에서의 공양을 마친 뒤, 수닷타 장자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부처님, 다음 우안거에는 부디 저희 코살라국 사위성으로 오셔서
저의 나라 사람들에게도 이 진리를 설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그 뜻을 받아들이시며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사가 없다면, 머물 수 없겠구나.”
그때 수닷타 장자는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이때부터 기원정사의 인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사위성으로 돌아온 수닷타 장자는
부처님과 승가가 머무를 도량을 찾습니다.
너무 시끄럽지도 않고,
너무 외지지도 않으며,
수행과 전법에 모두 알맞은 곳.
마침내 그가 눈여겨본 곳이 제타 태자의 동산이었습니다.
수닷타 장자는 태자에게 동산을 팔 것을 간곡히 청했지만
처음에는 단호히 거절당합니다.
그러다 태자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여겨 농담처럼 말합니다.
“동산 가득히 황금을 깔 수 있다면 팔겠소.”
그러나 수닷타 장자는 농담처럼 던진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재산을 처분해 황금을 마련하고,
동산 위에 하나하나 깔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타 태자는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
결국 그는 말합니다.
“동산의 땅은 장자에게 드리겠습니다.
대신 이 숲의 나무는 내가 직접 부처님께 보시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타 태자의 숲에 급고독장자의 정사가 세워지고,
그곳은 곧 기수급고독원,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기원정사로 완성됩니다.
불교는 바로 이 기원정사에서
교단의 틀을 갖추고 중생의 삶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약 30회의 우안거 가운데 19회를 이곳에서 보내셨고,
『금강경』을 비롯한 수많은 가르침이 이 정사를 배경으로 설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세계의 불자들은 기원정사를 순례하며
아무것에도 머무르지 않고 베풀었던
보시 제일 수닷타 장자의 삶을 기억합니다.
무주상 보시는 경전 속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으로 증명된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원정사는 왕이 세운 절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신심과 결단, 그리고 베풂이 만든 자리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가.”
다음 시간에도 경전 속 인연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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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7 https://ydpcj.kr/news/21347 https://ydpcj.kr/news/21347#respond Fri, 03 Apr 2026 16:32:34 +0000 https://ydpcj.kr/?p=21347 [영등포 소비자저널 =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7   📩 참는다는 건 약한 걸까요,   아니면 가장 강한 수행일까요? 『라운인욕경』이 들려주는 인욕의 가르침을 함께 들어 보세요. 🙏 https://www.youtube.com/watch?v=Ofv30ww8BYw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7www.youtube.com [경전산책 47] 악한 행을 참는다는 것(인욕)은 최고의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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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 =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7

 

📩 참는다는 건 약한 걸까요,

 

아니면 가장 강한 수행일까요?
『라운인욕경』이 들려주는
인욕의 가르침을 함께 들어 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7www.youtube.com

[경전산책 47]
악한 행을 참는다는 것(인욕)은 최고의 수행이다
아난 존자는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계셨는데, 이때 사리불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중 필두인 인물.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석가모니의 제자들을 ‘사리불과 나머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샤리뿌뜨라(Śāriputra), 팔리어로는 사리뿟따(Sāriputta)라고 하는데, 이 명칭을 한역하여 ‘사리불(舍利佛)’ 혹은 ‘사리자(舍利子)’라고 한다. ‘샤리뿌뜨라’는 ‘샤리의 아들’이란 뜻인데, 샤리는 그의 어머니 이름이다. 금강경과 함께 널리 알려진 반야심경은 사리자 즉 사리뿟따를 향해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하는 내용이다.
은 라훌라와 함께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성안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이때 어떤 경박한 이가 두 현자를 만나보고 속으로 생각하기를, ‘구담(瞿曇) 석가모니 부처의 일족인 석가족의 성씨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Gautama’ 혹은 ‘Gotama’, 팔리어로는 ‘Gotama’이고, 한역 경전에서는 흔히 구담(瞿曇)으로 표기되거나 교답마(喬答摩), 구답마(瞿答摩) 등으로 번역된다. ‘고타마’라는 말의 유래는 한국어로는 대체로 go(瞿)는 소(牛), tama(曇)는 최상(最上)으로 ‘으뜸가는 소’ 혹은 ‘최상의 소’로 소개된다.
 사문의 첫째 제자가 라훌라와 함께 걸식하는구나!’ 하고는 곧 독한 마음을 내어서 땅의 모래와 흙을 집어 사리불의 발우에 넣어서 라훌라의 머리를 쳤다. 사리불이 라훌라를 보니 피가 흘러서 얼굴을 더럽혔다. 그는 말하였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니, 삼가서 독을 품지 말도록 하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겨야 한다. 세존께서 늘 이르시기를, ‘참는 것이 가장 유쾌하며, 오직 지혜로운 이만이 부처의 계율을 듣고 평생토록 범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참음으로써 보배를 삼자. 방자한 마음으로 악을 행함은 자신을 불에 던지는 것과 같다. 스스로 높은 체하는 어리석은 이는 건전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재앙이 도리어 몸을 해치는 것을 계산하지 못한 것이다. 방자한 마음이 저지른 화는 수미산보다 무거워서 수명을 마쳐도 그 죄악은 16분의 1도 줄지 아니한다. 어리석은 이가 청정하게 계를 지니는 출가 수행자를 향하여 악을 행함은 마치 횃불을 들고 바람을 안고 가면서 어리석어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반드시 자기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쓸모없는 사람은 독을 품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되, 마치 비구가 출가 수행자의 네 가지 도[四道] 출가자들이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경지의 하나로, 수다원(須陀洹)·사다함(斯陀含)·아나함(阿那含)·아라한(阿羅漢)을 말한다.
를 믿는 것과 같이한다. 불제자는 항상 마음을 굴복시켜 악함이 생기면 곧 없애야 한다. 용맹함 가운데 우두머리인 천신이나 제왕이 비록 힘이 세다고 하지만 악함을 참는 것보다 못 하나니, 그 힘이 가장 위이다.”
라훌라는 피가 얼굴에 이리저리 흘러내림을 보고 물에 가서 피를 씻으면서 혼자 말했다.
‘나의 아픔은 잠깐이나 그의 오랜 괴로움은 어찌할꼬? 그 사람은 악하나 그 형편 또한 모질구나. 나는 성내는 마음이 없지만, 슬프다. 그는 어찌할꼬? 우리 세존 부처님께서 나에게 큰 자비를 가르치시기를 난폭한 사람이 흉악함을 지향하더라도 출가 수행자는 잠자코 참음으로써 높은 덕을 이루며, 사나운 이의 잔인함을 어리석은 이는 공경하더라도 출가 수행자는 지키어 참으므로 난폭하고 어리석음을 업신여기라 하셨다. 이 사람의 악함을 내 어찌 미워하랴. 바퀴가 돎은 끝없으니, 어찌 한 번뿐이랴. 내 부처님의 경전으로서 어리석고 미혹함을 가르쳐 일깨우려고 하나 마치 잘 드는 칼로 썩은 시체를 베어도 시체가 아픈 줄을 모르는 것은 칼이 날카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곧 시체가 느낌이 없기 때문이며, 천상의 감로를 돼지에게 주어도, 돼지가 버리고 달아나는 것은 감로가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곧 돼지가 귀하게 여기지 않는 까닭이다.’
부처님의 참 말씀으로써 세간의 사납고 어리석음을 가르침이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사리불과 라훌라는 함께 돌아왔다. 공양을 마치고 발우를 씻고 손을 씻고 양치질하고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서 머리를 숙여 부처님 발에 절하였다.
사리불은 물러앉아 본말(本末)을 갖추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악한 마음은 일어나면 반드시 쇠한다. 그 경박한 이는 죽으면 밤중에 무택지옥(無擇地獄)에 들어가리니, 지옥 귀신이 고통을 주어 그 독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으며, 8만 4천 세의 수명이 다하면 혼신은 다시 독한 뱀의 몸을 받아서 무거운 독이 도리어 그 몸을 해치되 끝나면 다시 시작되곤 하며, 곧이어 전갈의 몸을 받아 항상 모래와 흙을 먹기를 만 년이 되어야 마치리라. 성내는 마음으로 계를 지닌 이를 대했기 때문에 독한 몸을 받은 것이며, 모래와 흙을 발우 속에 넣은 까닭에 세상마다 모래와 흙을 먹는 것이다. 죄가 끝나면 나와서 사람으로 태어나는데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땐 그 어머니는 늘 앓으며 집안이 날로 쇠하며, 아이로 태어나면 미련하고 둔하며, 도무지 손발이 없으므로 그의 부모와 친척들이 놀라서 ‘이 무슨 요물이 상서롭지 못하게 왔는가?’ 하고 곧 가져다 네거리에 버려두면 오가는 사람들이 다 놀라 기와나 돌멩이를 던지고, 칼이나 막대로 그의 머리를 쳐서 한껏 지치면 열흘이나 한 달 만에 죽으며, 죽은 뒤에 혼신은 다시 태어나는데 도무지 손발이 없으며, 미련하고 둔하기가 앞에서와 같으며, 5백 생을 지나야 그 무거운 죄는 끝나며, 나중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늘 두통을 앓느니라.”
세존께서 거듭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무릇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참지 못한 이는 태어나는 곳마다 부처님 세상을 만나지 못하며, 법을 어기고 비구를 멀리하며, 항상 세 나쁜 갈래에서 끝나면 다시 시작하기를 겁을 넘기며, 혹 남은 복이 있으면 나와서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천품이 항상 어리석고 사나움이 저절로 따르며, 마음으로 성인을 미워하고 부처님을 헐뜯으며, 생김새가 누추하여 남에게 미움을 받으며, 나자마자 가난하고 벼슬하지 못하며, 소원과 복이 서로 어그러져서 천신이나 성현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밤엔 늘 나쁜 꿈을 꾸고 요괴함이 잇따르며, 재앙이 판을 쳐서 사는 곳이 편안치 못하여 마음으로 늘 두려움에 떠나니, 이러한 까닭은 악한 마음을 참고 굴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한 행을 참는 이는 나는 곳마다 늘 편안하며 온갖 재앙이 사라지며, 원하면 곧 뜻대로 되며, 얼굴이 훤히 빛나고 몸이 건강하고 병이 없으며, 부하고 영화롭고 높고 귀하나니, 다 인욕하고 자비와 은혜로 중생을 제도한 까닭이다. 참음은 곧 복이니, 몸이 편안하고 부모가 편안하며 친척이 화목하여 즐겁지 아니함이 없나니, 지혜로운 이는 깊이 관찰하여 그 마음을 조복하라. 마음이란 남을 그르치고 집을 무너뜨리고 자기를 위태롭게 하여 극형을 받으며, 지옥에서 삶아지고 타며 아귀가 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하나니, 다 마음의 허물이니라.
세존께서 또 말씀하셨다.
“차라리 잘 드는 칼로 배를 꿰고 살을 베며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지언정 악을 행하지 않고 조심하라. 차라리 수미산을 이고 죽어 바다에 뛰어들어 고기밥이 될지언정 악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 뜻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부처님의 밝은 법은 세속과 다르다. [중략]
참음의 밝음은 해와 달보다 뛰어나며, 용과 코끼리의 힘이 사납다고 하지만 참음에 비하면 만만분의 1도 못하다. 7보가 번쩍이는 세속에서는 귀한 것이나, 그것이 불러온 근심으로 재앙을 이루며, 참음의 보배는 처음이나 끝이나 편안함을 얻는다. 시방에 보시함이 비록 큰 복이지마는 그 복은 참는 것만 못 하다. 참고 자비를 행하면 세상마다 근심이 없으며, 마음속이 든든하고 끝내 해독이 없다. 세상에서 믿을 것이 없으나 오직 참음만은 믿어도 좋다. 참음은 편안한 집이다. 재앙과 요괴가 생기지 않으며, 참음은 신비한 갑옷이다. 어떤 무기도 들어오지 못한다. 참음은 큰 배니 어려움을 건널 수 있고, 참음은 좋은 약이니 능히 뭇 생명을 건진다.
참는 자의 뜻은 어떤 원이든지 다 얻는다. 내가 지금 부처가 되어서 모든 하늘에게 섬김을 받으며 홀로 삼계를 거니는 것도 다 참은 힘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모든 사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인욕경을 외워서 잠깐이라도 지니고 기록하고 외우고 선포하며, 참음의 덕을 펴서 중생을 건져야 한다.”
부처님께서 경을 이야기해 마치시자 모든 사문들은 다 크게 환희하여 절하고 갔다.
서진 (西晉) 법거(法炬) 한역, 『라운인욕경(羅云忍辱經)』 이 경은 라훌라의 일화와 인욕의 공덕에 대해 설한다. 라훌라는 부처님이 출가 전에 본 아들이지만, 후에 부처님에게 출가하여 제자가 된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머물 때, 라훌라는 사리불과 함께 성에 들어가서 탁발을 한다. 그런데 경박한 이들이 사리불의 발우 안에 모래흙을 집어넣고, 라훌라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린다. 하지만 라훌라는 평소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그들에게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고 참고서 그냥 돌아온다. 부처님은 두 제자가 겪은 일을 듣고 두 사람이 인욕한 공덕이 얼마나 큰지 설명한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7]
악한 행을 참는다는 것
— 인욕은 왜 최고의 수행인가
안녕하세요.
우리는 살면서 이런 순간을 자주 만납니다.
부당한 말을 들었을 때,
억울하게 상처를 받았을 때,
마음속에서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오를 때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말이지요.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이걸 그냥 참아야 하나?”
“참는 게 정말 수행일까?”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서 아주 분명한 답을 들려주신
한 경전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바로 『라운인욕경(羅云忍辱經)』,
곧 라훌라의 일화를 통해
인욕(忍辱), 악한 행을 참고 견디는 수행의 깊이를 설한 경전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와 함께
이른 아침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성안으로 탁발을 나섭니다.
그때 한 경박한 사람이 두 출가자를 보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구담 사문의 첫째 제자가 라훌라와 함께 걸식하는구나.’
그는 곧 악한 마음을 내어
사리불의 발우에 모래와 흙을 집어넣고,
라훌라의 머리를 쳐서 피가 흐르게 합니다.
하지만 사리불과 라훌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대응도 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은 다친 라훌라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다.
악을 보고도 독을 품지 말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겨야 한다.
참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며, 가장 깊은 수행이다.”
라훌라는 피를 씻으며 혼잣말처럼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의 아픔은 잠깐이지만,
그 사람의 어리석음이 가져올 괴로움은 얼마나 클까.
나는 성내지 않지만, 그는 얼마나 깊은 괴로움 속에 머물게 될까.’
그들은 아무 원망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돌아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인욕의 공덕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악한 마음은 반드시 스스로를 해친다.
분노로 계를 지닌 이를 해친 이는
그 과보를 길고 깊게 받게 된다.”
그리고 곧 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한 행을 참고 견디는 이는
태어나는 곳마다 편안하며,
재앙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안정되며,
복과 지혜가 함께 자란다.”
부처님께서는 단호하게 선언하십니다.
“용과 코끼리의 힘이 아무리 세다 해도
참음의 힘에는 미치지 못한다.
보시의 공덕이 크다 하나
참음의 공덕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이렇게 비유하십니다.
참음은 어떤 무기도 뚫지 못하는 갑옷이며,
어려움을 건너는 큰 배이고,
생명을 살리는 좋은 약이며,
끝내 우리를 보호하는 편안한 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금 부처가 되어 삼계를 자유로이 다니는 것도
모두 참음의 힘 때문이다.”
이 가르침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참는다는 것은
약해지는 일일까요,
아니면 가장 강해지는 일일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인욕은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에 끌려가지 않는 힘,
악으로 악을 만들지 않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라운인욕경』은
차라리 몸에 큰 고통을 겪더라도
악을 행하지 말라고까지 강하게 설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 번의 분노,
한 번의 악한 말이
우리 삶을 얼마나 깊이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부처님께서는 이미 꿰뚫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경전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말 한마디가 곧바로 상처가 되고,
억울한 평가와 무시가 너무 쉽게 오가는 시대,
분노가 마음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거의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관계 속에서,
또는 화면 너머의 말 한 줄 앞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선택의 순간에 서 있습니다.
맞설 것인가, 되갚을 것인가,
아니면 잠시 멈추어 마음을 지킬 것인가.
이 경전은 말해 줍니다.
그 순간 참아낸 마음 하나가
약함이 아니라,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 가장 강한 수행일 수 있다고.
오늘, 분노 대신 한 번 숨을 고르고,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하며,
되받아치기보다 내려놓는 선택이
어쩌면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가장 깊은 수행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오르는 그 상황이
다시 내 앞에 펼쳐진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되받아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
마음을 지킬 수 있을지,
악으로 악을 키우지 않고
인욕과 자비로 이 순간을 건널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게 됩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이 가르침이 말하는 바른 선택을
오늘의 삶 속에서 한 번이라도 실천해 보기를 조심스레 발원합니다.
이 영상이 마음에 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인연을 이어 주시고,
분노로 마음이 무거운 분들께 조용히 전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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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6 https://ydpcj.kr/news/21273 https://ydpcj.kr/news/21273#respond Fri, 27 Mar 2026 17:55:54 +0000 https://ydpcj.kr/?p=21273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6 📩 착한 일은 미리 해야 힘이 됩니다. 급할 때 하는 선행이 아니라, 지금부터 쌓아 두는 마음의 준비.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가르침을 오늘 함께 들어 보세요. 🙏 https://www.youtube.com/watch?v=kmGRxAbKWV4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6www.youtube.com [경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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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6

📩 착한 일은 미리 해야 힘이 됩니다.
급할 때 하는 선행이 아니라,
지금부터 쌓아 두는 마음의 준비.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가르침을
오늘 함께 들어 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6www.youtube.com

[경전산책 46]
착한 일은 미리 해야 힘이 된다
—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의 선행 이야기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존자에게 물었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려고 하면 마땅히 앞서 착한 일을 해야 합니까, 곧 뒤에 해야 합니까?”“마땅히 앞서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뒤에 하는 것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대왕께서 목이 마를 때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려고 하면 갈증이 가십니까?”“갈증이 가시지 않습니다. 앞서 우물을 파놓아야 합니다.”“그런 까닭으로 착한 일도 앞서 해놓아야 합니다.”“배가 고플 때 사람으로 하여금 씨 뿌려 경작하게 하면 곡식이 곧 익어서 먹을 수 있습니까?”“먹을 수 없습니다. 먼저 준비를 해놓아야 합니다.”
“사람도 이와 같이 먼저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착한 일을 하면 사람의 몸에 이롭지 않습니다.”“비유하자면 왕에게 원한이 있는데 그때를 당해서 전투에 필요한 것을 갖추려 하면 되겠습니까?”“그러면 안 됩니다. 원한이 있으면 미리 준비해야 마땅합니다.”“부처님께서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먼저 스스로 생각해서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뒤에 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대도(大道)를 버리고 사도(邪道)를 취하는 것을 하지 말며, 어리석은 사람을 모범으로 삼아서 착한 일을 안 하고 악한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후에 주저앉아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바른길을 버리고 부정한 길을 취하면 죽음에 임해서 후회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 하권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6]
착한 일은 미리 해야 힘이 된다
—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의 선행 이야기
안녕하세요.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급한 일부터 해결하고, 여유가 생기면 좋은 일도 하지.”
“지금은 상황이 안 되니, 나중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선행을 하자.”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착한 일은 마음의 여유가 생긴 뒤에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해 두어야 진짜 이익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나선비구경』에 전해지는
밀린다왕과 나가세나존자의 문답 가운데,
선(善)은 왜 미리 준비해야 하는가를 묻는
아주 현실적인 가르침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불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은 무엇일까요?
선(善)은 나와 남을 이롭게 하고 마음을 맑히는 쪽이며,
악(惡)은 탐욕·성냄·어리석음에 물들어 나와 남을 해치고 삶을 더 괴롭게 만드는 쪽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기준을 이렇게 잡아 주십니다.
내가 몸·말·뜻으로 하는 행동이
나와 남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
스스로 비추어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교에서의 선과 악은
어디에 고정된 규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상황 속에서 스스로 비추어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내려놓은 절대적인 명령은 아닙니다.
중요한 점은, 선과 악의 결과가
어디 먼 곳에서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몸과 이 마음 안에서 자라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선도 내가 짓고, 그 결과도 내가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불교의 윤리는 명령이 아니라
매 순간 깨어서 선택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모든 가르침을
아주 간결한 한 문장으로 정리하셨습니다.
‘악한 행위는 스스로 멈추고,
이로운 일은 기꺼이 실천하며,
그 모든 바탕이 되는 마음을 먼저 맑히는 것,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선행은 착한 일을 많이 쌓으라는 말이 아니라,
삶을 미리 단단히 준비하는 태도입니다.
이제 이런 선악의 이해를 바탕으로,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가 던진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함께 들어 보겠습니다.
“왜 선은 미리 행해야 하는가?”
어느 날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존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려고 할 때,
마땅히 앞서 해야 합니까, 아니면 일이 닥친 뒤에 해야 합니까?”
나가세나 존자는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대왕이여, 착한 일은 반드시 앞서 해야 합니다.
뒤에 하는 것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왕은 쉽게 납득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나가세나는 아주 쉬운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대왕이여, 목이 몹시 마를 때 그제야 우물을 파기 시작하면 갈증이 가시겠습니까?”
왕이 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미리 우물을 파 두어야 합니다.”
나가세나는 다시 묻습니다.
“배가 고플 때 씨를 뿌리면 곧바로 곡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말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먼저 준비해야 합니다.”
나가세나는 또 묻습니다.
“원한을 품은 적이 있는데 전쟁이 닥친 뒤에 그제야 무기를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왕은 고개를 젓습니다.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나가세나 존자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대왕이여,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위급한 일이 닥친 뒤에 그제야 착한 일을 하려 하면 이미 늦습니다.
착한 일은 필요해질 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해지기 전에 이미 쌓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부처님께서는 ‘미리’ 선을 행하라고 하셨을까요?
평소에 선을 익혀 두지 않으면,
위기 앞에서는 분노와 두려움, 이기심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마음을 닦는 일을 일상처럼 해 두면,
어려운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바른 선택이 나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선행은 응급처치가 아닙니다.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수단이 아니라, 삶 전체를 지탱하는 준비입니다.
우리말에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하지요.
미리 준비한 사람은 근심이 없습니다.
선행도 이와 같습니다.
미리 쌓아 둔 마음의 힘이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지켜 줍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평소에 미리 마음을 닦고 있는가?”
“문제가 생긴 뒤에야 선해지려 하지는 않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선은 언젠가를 위해 미뤄 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조용히 준비해 두는 삶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오늘,
작은 친절 하나,
작은 배려 하나,
작은 바른 선택 하나가
언젠가 다가올 어려운 순간에
나를 지켜 줄 가장 든든한 힘이 될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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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5 https://ydpcj.kr/news/21205 https://ydpcj.kr/news/21205#respond Fri, 20 Mar 2026 14:59:59 +0000 https://ydpcj.kr/?p=21205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5 📩 “이게 바로 나야.” 정말 그럴까요? 『밀린다 팡하』,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문답 속 깊은 가르침을 함께 들어 보세요. 🙏 https://www.youtube.com/watch?v=rUCpnbr4xXQ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5www.youtube.com [경전산책 45]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이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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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5

📩 “이게 바로 나야.”

정말 그럴까요?
『밀린다 팡하』,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문답 속
깊은 가르침을 함께 들어 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5www.youtube.com

[경전산책 45]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이름에 대한 문답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가까이 가서 공손히 예배드리고 다정하고 정중하게 인사말을 나누고 예의 바르게 한쪽에 비켜 앉았다. 나가세나 존자도 답례로써 왕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밀린다 왕 메난드로스 왕은 인도 북서부 사갈라를 수도로 세워진 헬레니즘계 왕조인 인도-그리스 왕국의 국왕이다. 팔리어로는 밀린다(Milinda)로 알려져 있다.
은 나가세나 존자 나가세나(Nāgasena)는 기원전 2세기경 인도의 불교 승려(비구)이다. 지금의 카슈미르 지방에 해당하는 중인도 카얀가라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에게 물었다.
“존자는 어떻게 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나는 나가세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동료 비구들은 나를 나가세나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는 나를 나가세나라고 부르는 외에도, 수라세나, 비라세나, 시하세나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름은 명칭에 지나지 않고 거기에는 어떤 인격적 개체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나가세나 존자는 ‘이름 속에 내포된 인격적 개체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왕은 다시 나가세나 존자를 향하여 질문했다.
“나가세나 존자여, 만약에 인격적 개체를 인정할 수 없다면 그대에게 사사의 공양을 제공하는 자는 누구이고 그것을 받아 사용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계행을 지키고 수행에 힘쓰는 자는 누구입니까? 수도한 결과 열반에 이르는 자는 누구입니까?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음행하고 거짓말하고 술 마시는 자는 누구입니까? 무간지옥에 떨어질 오역 죄를 짓은 자는 누구입니까? 만일 인격적 개체가 없다면 공덕도 없으며 선행, 악행의 과보도 없을 것입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설령 당신을 죽이는 자가 있더라도 거기에 살생의 죄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승단에는 스승도 없고 계를 주는 사람도 없고 계도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당신은 나에게 말하길, ‘나의 동료 비구들은 나를 나가세나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나가세나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존자여, 그러면 머리털이 나가세나입니까?”
“대왕이여,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손톱, 살갗, 살, 힘줄, 뼈, 뼛골, 콩팥, 염통, 간장, 늑막, 지라, 폐, 창자, 창자막, 위, 똥, 담즙, 담,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 뇌, 이것 중 어떤 것이 나가세나란 말입니까? 아니면 이들 전부가 나가세나란 말입니까?
“그중 어떤 것도, 그리고 그것들 전부도 나가세나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존자여, 물질적 형태, 감수작용, 표상작용, 형성작용, 식별작용 중 어느 하나가 나가세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색. 수. 상. 행. 식을 모두 합친 것이 나가세나입니까?
“대왕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온(五蘊) 밖에 무언가가 나가세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여, 나는 당신에게 물을 수 있는 데까지 물어보았으나 나가세나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가세나는 빈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나가세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앞에 있는 나가세나가 없다는 소리는 거짓에 불과합니다.”
그때 나가세나 존자는 밀린다 왕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대왕이여, 당신은 귀족 출신으로 호화롭게 자랐습니다. 만일 당신이 한낮 더위에 뜨거운 땅이나 모래펄을 밟고 또 울퉁불퉁한 자갈 위를 걸어왔다면 발을 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몸은 피로하고 마음은 산란하여 온몸에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걸어서 왔습니까? 아니면 수레를 타고 왔습니까?”
“존자여, 나는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대왕이여, 당신이 수레를 타고 왔다면 무엇이 수레인가를 설명해 주십시오, 수레 채가 수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수레 굴대가 수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퀴나 차체나 차틀이나 멍에나 밧줄이나 바큇살이나 채찍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이것들 밖에 ‘수레’라는 것이 따로 있습니까?”
“아닙니다.”
“대왕이여, 나는 당신에게 물을 수 있는 데까지 물어보았으나 수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레란 단지 빈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타고 왔다던 수레는 대체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당신은 ‘수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한 셈이 됩니다. 전 인도에서 제일가는 왕이 무엇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했습니까?”
이렇게 물은 다음 나가세나 존자는 5백 명 요나카 인과 8만 명 비구들에게 말했다.
“밀린다 왕은 여기까지 수레로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수레인가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했을 때 어느 것이 수레라고 단정적인 주장을 내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들은 대왕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5백 명의 요나카 인은 환성을 지르고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존자에게 다시 말했다.
“존자여,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수레는 이들 모든 것, 즉 수레채, 굴대, 바퀴, 차체, 차틀, 밧줄, 멍에, 바큇살, 채찍 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반연하여 ‘수레’라는 명칭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수레’라는 이름을 바로 파악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나에게 질문한 모든 것, 즉 인체의 33가지 유기물과 존재의 5가지 구성요소를 반연하여 ‘나가세나’라는 명칭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바지라라 비구니는 이런 시구를 읊었습니다.
‘마치 여러 부분이 모이므로 ‘수레’라는 말이 생기듯
다섯 가지 구성요소가 존재할 때, 생명 있는 존재라는 이름이 생기노라.’
“훌륭하십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정말 희유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한 질문은 매우 어려웠습니다만 훌륭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부처님이 계신다면 당신의 대답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 밀린다 왕과의 문답이 밀린다 팡하(Milinda Pañha -밀린다의 질문) 또는 미란타왕문경(弥蘭陀王問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불전으로, 나가세나와 인도-그리스 왕국의 왕 메난드로스 1세와의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문답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동서 사회의 가치관이나 종교관을 비교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상권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5]
나는 누구인가
—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이름에 대한 문답
안녕하세요.
우리는 평생 이렇게 살아갑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게 바로 나야.”
이름, 직업, 성격, 역할…
우리는 그것이 곧 ‘나 자신’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물으십니다.
“그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오늘은 『나선비구경』, 또는 『미란타왕문경』이라 불리는 경전,
팔리어 『밀린다 팡하』, 곧 ‘밀린다의 질문’에 전해지는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문답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이 경전은 기원전 2세기 무렵,
동서 문명이 만났던 인도 북서부에서
실제 인물들의 문답을 바탕으로 성립된 경전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불교가 어떻게 답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옛날, 인도 북서부를 다스리던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존자를 찾아옵니다.
왕은 공손히 예를 갖추고 이렇게 묻습니다.
“존자여, 당신은 세상에 어떤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까?”
나가세나 존자는 차분히 대답합니다.
“대왕이여, 사람들은 나를 나가세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단지 부르는 표지일 뿐,
그 안에 고정된 인격적 실체는 없습니다.”
이 말에 왕은 깜짝 놀라 다시 묻습니다.
“존자여, 만약 참된 ‘나’라는 실체가 없다면,
공양을 받는 이는 누구이며
계를 지키고 수행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선을 행하는 이는 누구이며
악을 저지르는 이는 또 누구입니까?
열반에 이르는 이는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왕은 이어 집요하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나가세나란 무엇입니까?
머리카락입니까?
손톱입니까?
살과 뼈입니까?
아니면 오온, 곧 색·수·상·행·식 가운데 어느 하나입니까?”
나가세나 존자는 고개를 젓습니다.
“아닙니다.” “그것들도 아닙니다.”
“그 모두를 합쳐도 아닙니다.”
“그 밖에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왕은 답답해집니다.
“그렇다면 존자여, 나가세나는 결국 없는 이름, 빈 말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이때 나가세나 존자는 왕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집니다.
“대왕이여, 이곳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레입니까?
바퀴입니까?
굴대입니까?
차체입니까?”
왕은 하나하나 부정합니다.
“아닙니다.”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자 나가세나가 말합니다.
“대왕이여, 그 어느 것도 수레가 아니라면
대왕은 수레를 타고 오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대왕께서는 거짓말을 하신 것입니까?”
왕은 그제야 깨닫습니다.
“아닙니다. 수레란 바퀴와 굴대와 차체와 여러 부속이 함께 모여 있을 때,
그것을 가리켜 ‘수레’라 부르는 것입니다.”
나가세나 존자는 미소 지으며 말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몸과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의식이
인연 따라 모여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나’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 안에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습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를 허무하게 만들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나’라는 생각에 너무 단단히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역할, 내 상처를
전부 ‘나’라고 붙잡고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인연 따라 잠시 모인 이름일 뿐이라고.
이 사실을 알면 우리는 조금 가벼워집니다.
조금 덜 상처받고,
조금 덜 싸우며,
조금 덜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가르침은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나’는 정말 전부입니까?”
“혹시 이름에 불과한 것을 너무 무겁게 끌어안고 있지는 않습니까?”
수레가 부서지면 다시 고치면 되듯이,
지금의 ‘나’도 언제든 새롭게 바뀔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아(無我)가 허무가 아니라
자유의 가르침인 이유입니다.
오늘, 이름 뒤에 숨은 집착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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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4 https://ydpcj.kr/news/21145 https://ydpcj.kr/news/21145#respond Sun, 15 Mar 2026 14:43:20 +0000 https://ydpcj.kr/?p=21145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4 📩 내가 본 것이 전부일까요? 부분만 보고 전부라 믿고 있지는 않은지, 부처님의 비유로 함께 돌아봅니다. 오늘, 잠시 마음을 열어 보세요. 🙏 https://www.youtube.com/watch?v=XdmrvhQAGO0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4www.youtube.com [경전산책 44] 부분적인 지식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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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4

📩 내가 본 것이 전부일까요?

부분만 보고 전부라 믿고 있지는 않은지,
부처님의 비유로 함께 돌아봅니다.
오늘, 잠시 마음을 열어 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4www.youtube.com

[경전산책 44]
부분적인 지식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
그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비구들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옛날 어느 한 나라에 왕이 있는데, 이름은 경면(鏡面)이었다. 그 경면왕은 일찍이 어느 때에 여러 시각장애인을 보며 장난삼아 즐기고자 하여, 곧 칙명을 내려 널리 국내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알려서 모두 모이게 하였다.시각장애인들이 모이자 왕은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너희 시각장애인들은 코끼리의 생김새를 잘 아느냐? 그 모양이 어떻든가?’그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한결같은 소리로 대답하였다.‘천왕이시여, 우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참으로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지 못합니다.’그러자 왕이 다시 말하였다.‘너희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코끼리에 관해 알지 못하였다면 지금이라도 코끼리의 형상을 알고 싶지 않느냐?’그때 그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다시 같이 대답하였다.‘천왕이시여, 우리는 정말로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왕의 은혜를 입는다면, 어쩌면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경면왕은 즉시 명령을 내려 코끼리 조련사를 불러서 말하였다.‘그대는 속히 나의 코끼리가 있는 우리에 가서 코끼리 한 마리를 내 앞으로 몰고 와서 여러 시각장애인들에게 보이라.’그때 코끼리 조련사는 왕의 칙명을 받고, 즉시 코끼리를 몰고 와서 왕의 궁 앞에 놓고 여러 시각장애인들에게 말하였다.‘이것이 코끼리입니다.’그때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각각 손으로 그 코끼리를 만졌다.그때 코끼리 조련사는 다시 여러 시각장애인들에게 말하였다.‘그대들은 코끼리를 만져 본 뒤에 사실대로 왕에게 아뢰십시오.’그러자 여러 시각장애인 중에 어떤 이는 코를 만졌고, 어떤 이는 어금니를 만졌고, 어떤 이는 귀를 만졌고, 어떤 이는 머리ㆍ목ㆍ등ㆍ갈비ㆍ꼬리와 다리의 여러 신체 부분을 만지고 더듬었다.
그때 왕이 물었다.‘시각장애인인 너희들은 코끼리 생김새를 이미 알았느냐?’여러 시각장애인들이 함께 왕에게 대답하였다.‘천왕이시여, 저희들은 이미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았습니다.’그때 왕이 다시 물었다.‘너희 시각장애인들이 만약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았다면, 코끼리는 어떤 모양이더냐?’그때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제각기 왕에게 아뢰었다.‘천왕이시여, 코끼리의 모양은 마치 동아줄과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의 모양은 말뚝과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키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항아리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는 집의 들보와 같습니다.’
‘천왕이시여, 코끼리는 용마루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대자리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절구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는 비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그러자 왕은 여러 시각장애인들에게 말하였다.‘너희들은 코끼리인지 코끼리가 아닌지도 모르면서 하물며 코끼리의 모양을 알 수 있겠느냐?’그때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각자 자기를 고집하며 서로 다투었는데, 저마다 손으로 그 얼굴들을 막고 서로 옳다고 말씨름하면서 상대를 헐뜯으며 각각 말하였다.이때 경면왕은 그 시각장애인들이 이렇게 다투는 것을 보고 크게 웃으면서 즐거워하고 좋아했다.왕은 그때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들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멋대로 이 일에 관해 서로 다투지만일찍이 가르쳐 말해 준 이 없었으니어떻게 코끼리의 몸을 알 수 있으리요.’
비구들아, 정말로 그러하니, 세간의 여러 사문과 바라문들도 그와 같아서 이미 진실하게 괴로움의 진리, 괴로움의 원인인 집(集)의 진리, 사라짐[滅]의 진리, 도(道)의 진리를 알지 못하였다. 이미 진실하게 알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다투고 생사를 헤매면서 서로 헐뜯고 서로 욕질을 한 줄 알아야 한다. 이미 다툼질하고 고집부리기를 쉬지 않으며, 각각 손으로 그 얼굴을 스스로 막는 것이 마치 저 여러 시각장애인들이 함께 서로 시달리고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
사나굴다(闍那崛多) 등 한역, 『기세경(起世經)』 제5권 『불설장아함경』 19권 「세기경(世記經)」, 『육도집경(六度集經)』 8권 「경면왕경(鏡面王經)」, 담무참 한역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2권, 『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 1권에도 실려 있다. 임금은 여래ㆍ정변지에 비유하고 대신은 방등의 대열반경에 비유하고 코끼리는 불성에 비유하고 소경들은 모든 무명 중생에게 비유하였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4]
내가 본 것이 전부일까?
— 코끼리를 만진 사람들
안녕하세요.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다 알아.”
“그건 이미 판단이 끝난 문제야.”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부분을 보고 전체를 안다고 믿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깊은 무명(無明)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기세경(起世經)』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 전해지는
아주 유명한 비유,
‘코끼리를 만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다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 비유는 동아시아에서 ‘군맹무상(群盲撫象)’, 곧 보지 못하는 이들이 코끼리를 더듬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로 전해집니다.
옛날, 한 나라에 경면왕(鏡面王)이라는 임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앞을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장난삼아 시험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고 있느냐?
그 모양이 어떻든가?”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전하, 저희는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였으니
코끼리의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왕은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알고 싶지 않느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왕은 코끼리 한 마리를 궁 앞으로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손으로 만져 보고, 사실대로 나에게 말해 보아라.”
어떤 이는 코를 만졌고,
어떤 이는 상아를,
어떤 이는 귀를,
어떤 이는 다리를,
어떤 이는 등을,
또 어떤 이는 꼬리를 만졌습니다.
왕이 묻자,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예, 전하. 이제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코끼리는 모두 달랐습니다.
“동아줄 같습니다.”
“아닙니다, 말뚝입니다.”
“아닙니다, 키와 같습니다.”
“아닙니다, 항아리입니다.”
“아닙니다, 집 들보입니다.”
“아닙니다, 용마루입니다.”
“아닙니다, 대자리입니다.”
“아닙니다, 절구입니다.”
“아닙니다, 빗자루입니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만진 곳만을 옳다며 서로 다투자,
경면왕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조롱이 아니라,
부분만 보고도 전부를 안다고 믿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한눈에 본 데서 나온 씁쓸한 웃음이었습니다.
서로가 모두 조금씩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기 주장만 옳다고 고집하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너희는 코끼리인지도 모르면서,
어찌 그 모습을 안다고 말하느냐?”
그리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너희들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멋대로 이 일에 관해 서로 다투지만
일찍이 가르쳐 말해 준 이 없었으니
어떻게 코끼리의 몸을 알 수 있으리요.”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아, 세상의 사문과 바라문들도 이와 같다.
삶이 왜 괴로운지,
그 괴로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서로 다투고 헐뜯으며 끝없는 생사 속을 헤맨다.”
부분만 보고,
자기가 만진 것만이 전부라 믿으며
서로를 부정하고 싸우는 모습은
바로 이 이야기 속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말합니다.
모든 중생은 진리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각자 자기 경험과 생각에 따라
“내가 옳다”고 믿으며 살아간다고.
즉, 사람마다 자기만의 부처님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 모습이
바로 코끼리를 만지는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입니다.
만약 그들 중 한 사람이 눈을 떠 코끼리 전체를 보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잘못 보았는지를 먼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뉴스 한 줄, 영상 한 장면,
누군가의 말 한 토막만 보고
사람을 단정하고,
세상을 재단하고,
서로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진실은 더 멀어집니다.
그렇게 굳어진 마음이
진실을 외면하는 습관이 되고,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편견이 되어
결국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사는 사회까지도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부처님의 진리이자, 우리 안에 깃든 불성(佛性)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듬는 사람들은 어둠 속을 헤매는 우리 자신입니다.
코끼리는 하나인데,
우리 또한 각자 다른 부분만 만지며
그것이 전부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요?
진리는 하나이지만,
우리는 아직 부분만 보고
스스로를 다 안다고 믿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조금 더 멈추어 보고,
조금 더 들어 보고,
조금 더 넓게 바라보는
하루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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