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뉴스 Archives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news/category/media/moving 영등포 소식,소비자평가,뉴스,영등포구 지역포털 Fri, 15 May 2026 15:58:38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6.9.4 https://ydpcj.kr/wp-content/uploads/2017/07/cropped-panelbiz_logo-32x32.jpg 동영상 뉴스 Archives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news/category/media/moving 32 32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https://ydpcj.kr/news/21700 https://ydpcj.kr/news/21700#respond Fri, 15 May 2026 15:58:01 +0000 https://ydpcj.kr/?p=21700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 오늘의 경전산책, 부처님오신날 연등의 기원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 이야기입니다. 작은 마음 하나가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N4xZvUOnFo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www.youtube.com [경전산책 53]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貧女一燈] 이야기 나는 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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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 오늘의 경전산책,

부처님오신날 연등의 기원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 이야기입니다.
작은 마음 하나가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www.youtube.com

[경전산책 53]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貧女一燈] 이야기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그 나라에 난타(難陁)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고독하여 구걸하면서 살아갔다.
그녀는 국왕과 신민의 노소들이 모두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로 빈천한 집에 태어나, 복밭을 만났건마는 종자가 없을까?’
못내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미미한 공양이나마 기약하고, 곧 나가 구걸하기를 늦도록 쉬지 않았으나 겨우 돈 1전을 얻었을 뿐이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가서 기름을 사려 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물었다.
“1전어치 기름을 사봐야, 너무 적어 쓸 데가 없을 텐데 무엇에 쓰려는가?”
난타는 그 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그를 가엾이 여겨 기름을 갑절로 주었다. 그는 그것을 얻고 매우 기뻐하여 등불 하나를 만들어서 절로 갔다.
그것을 부처님께 바친 뒤 부처님 앞에 있는 여러 등불 가운데 두었다. 그리고 서원을 세웠다.
‘저는 지금 빈궁하여 이 작은 등불로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이 공덕으로써 저로 하여금 내생에 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중생의 어두움을 없애게 하소서.’
이렇게 서원을 세우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났다.
밤이 지나 다른 등불은 모두 꺼졌으나 그 등불만은 홀로 켜져 있었다.
그때 목련(目連)은 그날 당번이 되었다. 날이 밝은 것을 보고 등불을 걷어치우려다가 그 한 등불만이 홀로 밝게 타면서 심지가 닳지 않은 것이 새로 맨 등불 같은 것을 보았다. 그는 낮에 켜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고, 그것을 꺼 두었다가 저녁에 다시 켜려고 손으로 끄려 하였다. 그러나 불꽃은 여전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옷자락으로 부쳤으나 불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목련이 그 등불을 끄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지금 그 등불은 너희 성문들로서는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네가 4해(海)의 물을 거기에 쏟거나 산바람으로 그것을 불더라도 그것은 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체중생을 두루 건지려고 큰마음을 낸 사람이 보시한 물건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난타 여인은 다시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그에게 수기를 주셨다.
“너는 오는 세상 두 아승기와 백 겁 동안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등광(燈光)이라 하고, 10호(號) 여래가 지닌 공덕의 모습을 표현한 여래, 응공, 정변지 등 열 가지 이름을 가리킨다.
를 완전히 갖출 것이다.”
이에 난타는 수기를 받고 기뻐하여 꿇어앉아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어 그는 비구니가 되었다.
아난과 목련은 그 가난한 여자가 고액을 면하고 집을 떠나 수기 받는 것을 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난타 여인은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오랫동안 구걸하면서 살아 왔으며, 또 무슨 행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네 무리들이 공경하고 우러르면서 다투어 공양하려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에 가섭이라는 부처님이 계셨다. 그때에 어떤 거사의 부인은 몸소 나아가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을 청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어떤 가난한 여자에게 공양받기를 먼저 허락하고 계셨다. 그 여자는 이미 아나함의 도를 얻은 여자였다.
그때 장자의 부인은 자기의 재산이 많은 것을 믿고 그 가난한 여자를 업신여겨, 부처님께 먼저 그 청을 받은 것을 불쾌히 여겨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제 공양을 받지 않고 저 거지의 청을 먼저 받으셨습니까?’
이렇게 나쁜 말로 성인을 업신여겼다. 그 뒤로 5백 년 동안 그는 언제나 빈천한 거지 집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 뒷날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고 공경하며 기뻐하였기 때문에 지금 부처님을 만나 집을 나와 수기를 받았고 온 나라가 공경하고 우러르느니라.”
그때 대중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나라 왕과 신민들은 그 가난한 여자가 부처님께 등불 하나를 바침으로써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모두 흠앙하는 마음을 내어 저마다 훌륭한 의복 등 네 가지 물건을 보시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귀천 노소를 막론한 온 나라 남녀들이 향유(香油) 등불을 다투어 준비하여 기원정사로 가지고 가서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혜각 한역, 『현우경』 3권 「빈녀난타경(貧女難陀經)」 『경율이상』 38권에도 실려 있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난타의 등불
— 연등은 왜 마음을 밝히는가
안녕하세요.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지면
절마다 연등이 달리고,
거리에도, 사람들의 마음에도 불빛이 하나씩 켜집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연등은 언제부터, 그리고 왜 켜기 시작했을까요?’
오늘의 경전산책은 그 질문에 가장 깊은 대답을 들려주는 이야기,
난타경(難陀經)에 전해지는 가난한 여인, 빈녀 난타의 등불 이야기입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습니다.
그 나라에 난타(難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몹시 가난하여 의지할 곳 없이
구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난타는 왕과 백성들, 남녀노소가
향유를 붓고 수많은 등불을 밝히며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업으로 이렇게 가난한 몸을 받았을까.
이렇게 훌륭한 복밭을 만났건만, 내게는 뿌릴 씨앗조차 없는 것일까.”
이 생각은 원망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삶을 돌아보는 참회였고,
무언가라도 올리고 싶다는 간절함이었습니다.
난타는 마음을 다잡고 그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구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해가 기울 무렵, 손에 남은 것은 겨우 동전 한 전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돈을 꼭 쥐고 기름집으로 향했습니다.
기름집 주인이 물었습니다.
“이만한 기름으로는 쓸 데가 없을 텐데, 무엇에 쓰려는가?”
난타는 숨기지 않고 말했습니다.
“부처님께 등불 하나라도 올리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기름집 주인은 그 마음이 가엾고 귀하여 기름을 갑절로 담아 주었습니다.
난타는 그 기름으로 작은 등불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절로 올라가
이미 밝혀진 수많은 등불 사이에
자신의 등을 올려 두었습니다.
그녀는 그 앞에서 아주 조용히 서원을 세웠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 가난하여 이 작은 등불 하나밖에 올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공덕으로 내 생에 지혜의 빛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둠을 밝히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깊이 예를 올린 뒤 아무 말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날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았습니다.
다른 등불들은 모두 꺼졌는데,
난타의 등불 하나만 홀로 환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등불을 정리하던 이는 신통제일로 불리던 목련존자였습니다.
목련은 날이 밝았으니 등불을 거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손으로 불을 끄려 했습니다.
그러나 불꽃은 꺼지지 않았고,
옷자락으로 덮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련아, 그 등불은 너희 성문들로는 끌 수 없다.
설령 이 세상의 모든 바닷물을 다 쏟아붓고, 거센 산바람으로 불어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등불은 일체중생을 건지겠다는 큰 마음으로 올린 보시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난타는 다시 부처님 앞에 나아와 땅에 엎드려 예배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녀에게 수기를 주셨습니다.
“너는 앞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득한 세월을 지나,
수많은 겁이 흐른 뒤 마침내 부처가 될 것이다.”
가난한 여인,
등불 하나 올린 그 마음으로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난과 목련은 다시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난타는 어떤 업으로 오랫동안 가난하게 살았으며,
또 어떤 인연으로 이와 같은 큰 과보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과거의 인연을 들려주셨습니다.
과거 가섭불 시대,
부유한 장자의 부인이
한 가난한 여인이 부처님께 먼저 공양 올리는 것을 보고
교만한 마음으로 업신여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 업으로 오랫동안 빈천한 삶을 살게 되었으나,
뒤늦게 다시 공경과 보시의 마음을 내었기에
오늘 이 인연을 만나 수기를 받게 되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해지자 왕과 백성들은 깊이 감동했고,
서로 다투듯 향유와 등불을 준비해
기원정사로 가져와 부처님께 공양했습니다.
이때부터 등불 공양이 널리 퍼졌다고 경전은 전합니다.
이 연등의 전통은 우리나라에서도 깊게 이어졌습니다.
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부처님오신날 연등은
왕과 백성, 귀천을 가리지 않고 함께 밝히는 등불이 되었고,
오늘날의 연등회로 이어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천 개의 등이 함께 밝혀지는 그 장면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이 서로의 어둠을 비추는 수행의 자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묻게 됩니다.
연등은 왜 중요한가?
연등은 무엇을 밝히는가?
난타의 이야기가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연등은 부를 드러내는 공양이 아니라
마음을 드러내는 공양이라는 사실입니다.
등불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서원,
“나 하나 밝아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이의 어둠까지 함께 비추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세상을 밝힙니다.
그래서 부처님오신날의 연등은 장식이 아니라 수행입니다.
빛을 켜는 행위이기 전에 내 마음의 방향을 밝히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밝히는 연등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용기가 된다면,
그 등불은 이미 난타의 등불이 되어
지금 이 자리에서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주변의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 하나를
건네고 싶어지지는 않으신가요.
말 한마디,
안부 한 통,
조용한 기도 하나라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밝히는 그 작은 마음의 불빛이
누군가의 어둠을 비추는 연등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은 이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의 등불을 켜고 있는가?”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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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왜 우리를 태어나게 했을까? https://ydpcj.kr/news/21679 https://ydpcj.kr/news/21679#respond Wed, 13 May 2026 06:09:03 +0000 https://ydpcj.kr/?p=21679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씨앗도사 김형동 교수님 강의 (4분 동영상) 신은 왜 우리를 태어나게 했을까?​ https://youtu.be/GxEwNoyXW6E?si=ESffkGaHvT8NHNxd 신은 왜 우리를 태어나게 했을까?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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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도사 김형동 교수님 강의 (4분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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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뜻을 아시나요? https://ydpcj.kr/news/21663 https://ydpcj.kr/news/21663#respond Sat, 09 May 2026 13:47:55 +0000 https://ydpcj.kr/?p=21663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씨앗도사 김형동 교수님 강의 (14분 동영상) 아리랑의 뜻을 아시나요? https://youtube.com/watch?v=Ip5ZDXoZljw&si=LUqdu4CmBwC4NIsI 아리랑의 뜻을 아시나요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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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 https://ydpcj.kr/news/21652 https://ydpcj.kr/news/21652#respond Fri, 08 May 2026 14:22:10 +0000 https://ydpcj.kr/?p=21652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 💬 사람을 따를 것인가, 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따를 것인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네 가지 분별의 기준.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함께 나눕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STnP5JhWey0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www.youtube.com [경전산책 52]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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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

💬 사람을 따를 것인가,

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따를 것인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네 가지 분별의 기준.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함께 나눕니다.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www.youtube.com

[경전산책 52]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야 할까?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옳은 말씀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진실하여 헛됨이 없으니 제가 금강석처럼 굳게 지키겠습니다. 언젠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비구들은 네 가지 법에 의지해야 합니다. 즉,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며[依法不依人],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며[依義不依語],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며[依智不依識], 요의경(了義經 ; 바른 뜻의 경전)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 ; ‘바르지 못한 경전)에 의지하지 말 것입니다[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다, 가섭아. 법에 의지한다는 것은 곧 여래의 열반에 의지함이다. 모든 여래의 가르침이 곧 법의 성품이며, 법의 성품이 곧 여래다.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 것인데, 여래를 무상하다고 말한다면 그는 법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 것이다. 법의 성품을 알지 못한 사람에게는 의지하지 말아라. 아라한과 같은 이는 세상에 나와 법을 지키는 사람이니 그런 줄 알고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여래의 은밀하고 깊은 법을 잘 알아 여래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파계한 몸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여래는 무상하고 변한다고 말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의지하지 말아라.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뜻은 깨달음이고 깨달았다는 뜻은 만족함이다. 만족하다는 뜻은 여래의 영원하고 변하지 않음이다. 또한, 이 뜻은 교법(敎法)이 영원함이고, 교법이 영원하다는 것은 승가가 영원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뜻에 의지함이다.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꾸며대는 언론과 번지르르한 문장에 팔리지 말라는 뜻이며, 교활하고 아첨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하는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란 곧 여래다. 여래의 공덕을 잘 알지 못하는 성문들의 분별은 지식이니 거기에는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여래가 곧 법신인 줄 알면 그것은 지혜이니 의지해야 한다. 여래의 방편으로 이루어진 몸을 보고 그것이 오온(五蘊)에 속하고 음식물로 기르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지식이니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 소승은 불요의이고 대승은 요의이다. 만약 여래가 음식물로 자란다고 하면 불요의이고, 영원해서 변하지 않는다고 하면 요의이다. 여래의 열반이 불이 꺼짐과 같다고 하면 불요의이고, 여래가 법의 성품에 든다면 요의이다. 성문승은 밭갈이가 서툴러 열매를 거두지 못함과 같으니 의지하지 말 것이고, 대승의 진리는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방편으로 말한 것이므로 의지해야 한다.
너희들은 이와 같은 네 가지 의지하고 의지하지 말 곳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육안밖에 갖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 이 네 가지 의지할 곳을 말한 것이지, 지혜의 눈을 가진 이를 위해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네 가지 의지할 곳을 거듭 말하겠다. 법이라 함은 곧 법의 성품이고, 뜻이라 함은 영원해서 변치 않음이며, 지혜라 함은 중생들이 모두 부처의 성품을 지냈다는 것이고, 요의라 함은 모든 대승의 법문을 통달하는 것이다.“
담무참 한역, 『대반열반경』 제6권 「여래성품(如來性品)」
부처님의 말씀은 의어(義語)이지 문어(文語)가 아니다
사리불이 여쭈었다.“일체의 법 질문 중에 ‘일체의 법(萬法)’이란 세간의 언설(言說)로 세운[安立] 법을 말한다. 말이라는 법은 도대체가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문자이고 말일 뿐, 뜻이 될 수는 없다. 모든 법의 참 뜻은 언설을 끊었기 때문이다.
이란 모두 다 언어와 문자일 뿐이나 언어와 문자의 모습이 바로 뜻이 되지는 않느니라. 실다운 뜻을 언어로 의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제 여래께서는 어떻게 법을 설하시겠습니까?” 금강경에서는 여래는 진어자(是眞語者) 실어자(實語者) 여어자(如語者) 불광어자(不誑語者) 불이어자(不異語者), 즉 참된 말만 하는 이이며, 실다운 말만 하는 이이며, 여실한 말만 하는 이이며, 속이지 않는 말만 하는 이이며, 다르지 않은 말만 하는 이라고 하였다. ‘참된 말씀'(眞語)이라 함은 일체의 유정 무정의 온갖 존재가 다 부처의 성품을 갖추었음을 뜻하고, ‘실다운 말씀'(實語)이라 함은 중생들이 악업을 지어서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을 뜻하고, ‘진리다운 말씀(如語)이란 중생이 선법(善法)을 닦으면 반드시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말씀하신 예이고, ‘속이지 않는 말씀(不誑語)’이라 함은 반야바라밀법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낸다고 말씀한 것이 반드시 헛되지 않음을 뜻하며, ‘다르지 않는 말씀(不異語)이라 함은 여래께서 하신 말씀은 처음에도 거룩하고 중간에도 거룩하고 마지막에도 거룩하여 그 깊은 뜻이 미묘하여 일체의 하늘 마귀나 외도가 더 뛰어난 말을 할수 없고 부처님의 말씀을 파괴할 수 없음을 뜻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내가 법을 설하는 것은 너희 중생들이 말씀을 일으키는 데(상태나 환경)에 있으므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설하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설하는 것이니라.
내가 설한 것은 의어(義語: 뜻말)이지 문어(文語:글말)가 아니니라.
중생이 설명하는 것은 문어이지 의어(義語)가 아니니라.
의어가 아닌 것은 모두 공허하여 실답지 않은 것이니, 공허하여 실답지 않은 말은 그 뜻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뜻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모두가 속이는 말[妄語]이니라.”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 부처님이 남기신 네 가지 기준
안녕하세요.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과 정보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떤 말이 옳은지,
내 삶을 어디에 기대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대반열반경』에는 이런 혼란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네 가지 기준,
사의지(四依法)가 전해집니다.
이 가르침은 한 번의 설법으로 끝난 말씀이 아니라,
가섭존자가 ‘늘 듣던 그 말씀’을 다시 되뇌며 새기는 장면으로 펼쳐집니다.
가섭존자가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의지처를
저는 금강석처럼 굳게 지키겠습니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며(依法不依人),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며(依義不依語),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며(依智不依識),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依了義經 不依不了義經).’”
가섭은 마치 스스로를 단단히 다짐하듯,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속에서 다시 꺼내어 확인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착하다, 가섭아.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라.
법에 의지한다는 것은 곧 여래의 열반에 의지함이니라.”
여기서 ‘법’은 단순한 규칙이나 교리 목록이 아닙니다.
여래의 가르침이 드러내는 법의 성품,
곧 변하지 않는 진리의 자리입니다.
열반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여래를 무상하다고 단정하는 이는
법의 성품을 알지 못한 자라고.
결국 이 첫 번째 기준은 분별의 출발점입니다.
사람의 권위나 외형이 아니라,
그 말이 진리에 맞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존경받을 수 있지만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말과 뜻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경전은 ‘뜻’을 깨달음과 연결합니다.
그 깨달음은 여래의 상주불변한 성품을 보는 자리입니다.
반대로 ‘말’은 겉만 번지르르한 표현, 이익을 위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은 『금강삼매경』에서 더욱 또렷해집니다.
“내가 설한 것은 의어(義語)이지 문어(文語)가 아니니라.”
말은 손가락이고 뜻은 달입니다.
말과 글은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말을 붙들다 뜻을 놓치면 아무리 그럴듯해도 공허해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아는 것’의 깊이를 묻습니다.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라.”
지식은 분별하고 축적합니다.
지혜는 통찰하고 꿰뚫어 봅니다.
지식은 많이 아는 것이고, 지혜는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래를 단지 오온으로 이루어진 몸,
음식으로 유지되는 존재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은 지식에 머무는 것이라고.
그러나 여래가 법신이며, 중생 모두가 불성을 지녔음을 안다면 그것이 지혜입니다.
열반경은 이를 직접 정의합니다
“지혜란,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녔음을 아는 것이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지식을 지혜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세 번째 기준은 더욱 절실합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 바르게 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지막은 가르침의 깊이와 방향에 대한 기준입니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了義)는 궁극의 뜻이 완전히 드러난 가르침이고,
불요의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설한 방편의 가르침입니다.
열반경은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열반을 “불이 꺼진다”처럼 이해하면 불요의이고,
여래가 법의 성품에 든다고 본다면 요의입니다.
여래를 음식으로 자라는 존재로만 보면 불요의이고,
상주불변을 본다면 요의입니다.
부처님은 방편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방편에 머물지 말고 그 방편이 가리키는 궁극의 방향을 보라고 하십니다.
형식이 아니라 본질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 네 가지를 설하신 뒤 부처님은 다시 거듭 당부하십니다.
“나는 육안밖에 갖지 못한 중생들을 위하여 이 네 가지 의지할 곳을 말한 것이지, 지혜의 눈을 가진 이를 위하여 말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시 정리하십니다.
“법은 법의 성품이며,
뜻은 영원하여 변치 않음이며,
지혜는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녔음을 아는 것이며,
요의는 대승의 깊은 법문을 통달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한 교리 정리가 아닙니다.
스승이 곁에 없을 때에도 길을 잃지 않도록 남겨 준 분별의 기준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따르기 쉽고,
말에 흔들리기 쉽고,
지식을 지혜로 착각하기 쉽고,
형식을 본질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는 옛 경전의 문장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붙드는 나침반이 됩니다.
결국 부처님의 이 말씀은
“스스로 분별하고, 스스로 등불이 되라”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은 이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인가, 말인가, 지식인가,
아니면 법의 성품과 뜻과 지혜와 궁극의 방향인가.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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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 영상 기사 https://ydpcj.kr/news/21639 https://ydpcj.kr/news/21639#respond Thu, 07 May 2026 14:14:20 +0000 https://ydpcj.kr/?p=21639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긴 영상은 이제 옛말”…AI로 유튜브 핵심만 보는 시대 최근 유튜브 콘텐츠 소비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긴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기보다, 핵심만 빠르게 파악하려는 이용자가 늘면서 AI 기반 영상 요약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해당 영상은 이러한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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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긴 영상은 이제 옛말”…AI로 유튜브 핵심만 보는 시대
최근 유튜브 콘텐츠 소비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긴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기보다, 핵심만 빠르게 파악하려는 이용자가 늘면서 AI 기반 영상 요약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해당 영상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튜브 콘텐츠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특히 1시간 이상의 긴 영상도 짧은 시간 안에 핵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AI 도구와 활용법이 강조된다.
AI 영상 요약 기술은 영상의 음성과 자막을 분석해 핵심 내용을 텍스트로 정리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이용자는 전체 영상을 시청하지 않고도 주요 메시지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서비스는 긴 영상을 몇 초에서 수십 초 내에 요약해 제공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영상에서는 대표적인 활용 방법으로
▲관심 콘텐츠 사전 필터링
▲강의·정보 영상 학습 효율 향상
▲불필요한 시청 시간 감소 등을 제시한다.
특히 바쁜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시간 절약과 정보 습득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또한 최근에는 모바일 앱이나 크롬 확장 프로그램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유튜브 요약 기능을 사용할 수 있어 접근성도 크게 향상됐다.
영상의 주요 구간을 자동으로 나누고, 핵심 내용을 정리해 제공하는 기능도 등장했다. �
미래를 보는 창 – 전자신문
다만 전문가들은 “요약은 참고용일 뿐, 모든 내용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감정 전달이나 맥락 이해가 중요한 콘텐츠의 경우 전체 시청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튜브가 단순한 ‘영상 소비 플랫폼’을 넘어 ‘정보 탐색 도구’로 진화하면서, AI 기반 콘텐츠 요약 기술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영등포 소비자저널은 디지털 소비 트렌드의 변화와 이에 따른 이용자 행태를 지속적으로 조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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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도사 김형동 교수님 강의 동영상
보신각과 사대문이 주는 가르침
(7분 동영상)

보신각과 사대문이 주는 가르침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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