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문화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 영등포 소식,소비자평가,뉴스,영등포구 지역포털 Wed, 14 Oct 2026 14:34:59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7.1.3 https://ydpcj.kr/wp-content/uploads/2026/07/cropped-ChatGPT-Image-2026년-6월-12일-오전-10_54_46-1-32x32.png 예술/문화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 32 32 배종덕의 역사 칼럼1 https://ydpcj.kr/news/22257 Sun, 11 Oct 2026 04:44:32 +0000 https://ydpcj.kr/news/22257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배종덕의 역사 칼럼1

『일본서기』 신공황후의 기록과 호태왕 비문 비교

신공황후는 중애천황의 부인이다.
중애천황은 중애8년 9월 군신에게 웅습토벌을 의논토록 명했다.
신(神)이 황후에게 “웅습보다 보물이 많은 나라, 비유하면 처녀의 눈썹(睩)과 같고 다쿠부스마시라노쿠니(杼衾新羅國저금신라국)라 불리는 나라가 있다.
나에게 제사를 지내면 그나라가 항복해올 것이며, 웅습도 복종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
천황은 믿지않고 웅습을 공격했다가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고, 이듬해 죽었다.
신공황후는 제사를 지낸후 10월 노를 젓는 수고로움 없이 신라에 이르렀다.
신라왕은 항복하였다. 춘추로 말빗과 말채찍을 바치겠으며, 아리나례하가 역류하고 강의 돌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일이 없는 한 춘추로 조공하겠다고 했다.
신공 47년 4월 백제왕은 구저, 미주류. 막고를 보내 조공하도록 했다. 그때 신라국의 조사(調使)도 구저와 함께왔다.
신라의 공물은 진귀한 것이 많았지만, 백제의 공물은 적고 보잘 것 없었다.
까닭을 물었더니, 신라인이 백제인의 공물을 빼앗아 자기나라 공물로 대신하고,
신라의 천한 물건으로 백제의 공물로 바꾸었다고 대답했다.
천웅장언을 신라에 파견, 백제의 헌상물을 함부로 바꾼 것을 꾸짖었다.
신공 49년 3월에 황전별, 녹야별을 장군으로 임명하고, 구저등과 함께 군사를 정돈하여 바다를 건너가 탁순국에 이르러 신라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목라근자, 사사노궤에게도 정병을 이끌고 사백개로와 함께 가도록 하였다.
그후 모두 탁순에 집결하여 신라를 공격하여 깨뜨리고,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7국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군사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서 고해진에 이르러 남만 침미다례를 무찌르고 백제에게 주었다.
백제왕 초고와 왕자 귀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비리(比利)등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그때 백제왕이 항상 서번(西蕃)이라 칭하며 해마다 조공하겠다고 맹세하였다.
신공 55년 백제 초고왕이 죽었고 다음해 왕자 귀수가 왕위에 올랐다.
신공 64년 백제국 귀수왕이 죽고 왕자 침류가 왕위에 올랐다.
신공 65년 백제 침류왕이 죽고 숙부 진사가 찬탈하여 왕이 되었다.
신공 69년 황태후가 치앵궁에서 죽었다.
이상은 『일본서기』 「신공기」를 요약한 것이다.
「역설의 한일고대사 任那新論 (김인배·김문배) 」에서
저금신라국(杼衾新羅國)의 다쿠부스마는 ‘(눈)닦구(이불)벗으마’의 뜻이며 잠깨는 신라 또는 개명한 신라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또한 ‘아리나례하’는 규슈의 유명해를 가르키고, 탁순,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및 고해진, 남만 침미다례까지 모두 규슈에 있었던 지명으로 비정하고 있다.
규슈의 서쪽에 신라 분국들이 있었고, 동쪽에는 가야 분국들이 있었다.
백제 분국은 규슈 중부에 있었는데, 기나이(나라, 교또 근처)에 있던 야마토 왜가 일본내해 세토나이까이를 건너와서 백제 분국과 손을 잡고 신라 분국들을 친 이야기를 신공기에 적은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가 정확치 않다. 『일본서기』는 서기 720년에 편찬되었다.
신공 49년이라면 서기249년이다.
야마토 왜가 백제분국과 손을 잡고 서기 249년에 신라 분국들을 침략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광개토태왕 비문에는 ‘왜가 신묘년(서기 391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과 연합, 신라를 깨부수어 신민으로 삼았으며, 병신년(396년)에 태왕이 직접 수군을 이끌고 패잔국민들을 토벌했다’고 기록했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일본은 서기 369~562 한국 남부지방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서기』기록 신공황후 재위기간은 서기 201~268이므로 일본학자들은 120년 이주갑 적용을 주장한다.
일본서기 기록은 신공 55년(서기 255년)에 백제 초고왕이 죽고, 다음해 백제 왕자 귀수가 왕위에 올랐다고 하는데, 삼국사기 기록은 백제 근초고왕이 375년 죽고, 이어 근구수왕이 왕위에 올랐다고 했다.
서로가 120년 차이가 나므로 이주갑을 적용해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서기의 초고왕과 삼국사기 근초고왕은 전혀 다른 왕들이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백제에 5대 초고왕(165~214), 6대 귀수왕(214~234), 13대 근초고왕(346~375), 14대 근구수왕(375~384)이 있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초고와 귀수는 규슈에 있던 백제 분국의 왕들 이름일 뿐이지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왕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배종덕 칼럼니스트
]]>
오운홍 박사님의 대한민국의 고대사3 https://ydpcj.kr/news/22254 Sun, 11 Oct 2026 03:59:46 +0000 https://ydpcj.kr/news/22254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오운홍 박사님의 대한민국의 고대사3
(4분 동영상)

 

 

<고딩이면 알 수 있는 시원한 고대사 3>

무령왕릉 묘지의 원래 주인은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1971년 7월,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발굴된 무령왕릉에는 2개의 지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왕의 지석으로,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께서 나이가 62세 되는 계묘(523)년 5월 7일에 돌아가셨다”란 글자가 25대 무령왕임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또 하나의 지석, 왕비의 지석 뒷면에 새겨진 ‘매지권’은 한국 사학계가 아직도 풀리지 않은 논쟁의 화두로 남아있습니다. 매지권의 내용은
‘전(錢) 1만 문 이상 1건으로, 을사년(525년) 8월 12일에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이 돈으로 토왕, 토백, 토부모, 상하 여러 관리에게
남서쪽 토지(申地 신지)를 매입해서, 이천 석으로 능묘를 만들었기에
문서를 작성하여 뚜렷이 남기니, 율령(법령)에 구애받지 않는다’ 합니다.
왕비 지석의 ‘매지권’이 실제 상황이라는 재야사학자들의 의견에 대해
주류 강단사학계는 묘를 만들 때, 주술적으로
지신(地神)에게 터를 매입하고, 그것을 증명한다는 내용을
돌에 새긴 것이라 하면서 ‘매지권’에 대한 의견을 일축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오운홍은 『무령왕릉의 비밀』이란 책(2021)에서
주류 사학계가 주장하는 대로, ‘지신에게 고하는 주술적 행위’는
왕과 왕비의 지석 위에 놓인 오수전 꾸러미라고 말합니다.
돈 1만 문 이상의 금액으로 토지를 사서 능묘를 만들었다는 매지권은 상거래 요건을 갖추었고, 백제 영토가 아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문서라 주장합니다.
[매매가] 전(錢) 1만 문 이상,
[매매 일자] 을사년(525년) 8월 12일,
[매수자]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
[매도자] 토왕, 토백, 토부모와 상하 관리
[매도 물건] 신지(申地, 남서쪽 토지)
[공사 비용] 이천 석으로 능묘를 만들었다
[문서로 표시] 문서를 작성하여 (돌에 새겨) 남긴다
[단서 조항] 율령(법령)에 구애받지 않는다
오운홍은 [매도 물건]인 ‘신지(申地)’의 신(申)을 단서로, 문서를 작성한 곳이 남서쪽 토지(신지)의 반대쪽, 무령왕릉 기준으로 동북쪽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쓴 『한국사의 기준점 찾기』(2022) 202-228쪽에, 수촌리에서 발굴된 유물이 당시 묘지 구입가(전 1만 문)에 상당한 물품이라 봅니다. 또 수촌(水村)리는 무령왕릉의 동북쪽에 있으며, 그곳에서 계약이 성사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수촌리 유물 발굴을 소개하는 경향신문(2017.12.21.)과 KBS HD 역사스페셜(2005.7.8.)이 있는데, 발굴된 유물이 무령왕릉 유물과 똑같습니다.
또 유물이 발굴된 수촌리는 무령왕릉의 동북쪽 5Km, 가까이 있습니다.
수촌리에서 발굴된 금동관모, 금동신발, 중국제 도자기, 금동허리띠, 환두대도, 유리구슬 등은 제작 기법과 재료가 무령왕릉 유물과 같으며, 국사학계는
두 곳 유물이 탄소측정 등으로 동시대에 묻힌 유물이라 합니다.
수촌리 유물과 무령왕릉 유물이 동시대에 제작되었고 동시대에 묻혔다면
무령왕릉과 수촌리 유물은 상거래의 인과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무령왕릉에는 있고 수촌리 유물에는 없는 것이 ‘왕과 왕비의 금제 관식’과
‘노잣돈’인데, ‘노잣돈 오수전’이 공주나 수촌리 지역에서 발굴되지 않은 것은
무령왕릉 조성 당시 이 지역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화폐입니다.
왕릉에서 나온 오수전은 철전(鐵錢)으로 양나라에서 주조된 것이 분명한데,
수촌리에 있는 토지 매도자(원주인)는 그곳에서 사용하지 않는 화폐 대신에
그에 상당하는 귀중품을 받았으리라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수촌리에서 발굴된 유물이며, 전(錢) 1만 문에 상당하는 물품입니다.
강단사학계는 수촌리 유물을 한반도 백제로 보니, 해석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운홍은 수촌리 유물을 ‘매지권’의 전 1만 문에 상당하는 물품으로 봄으로써 역사 해석이 명쾌해졌고, 전후좌우 관계가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왕비의 지석을 매지권으로 보는 이유는 ①백제 영토가 아니고, ②무령왕의 묘를 숨길 수밖에 없었고, ③매지권이 상거래 요건을 갖추었고, ④수촌리 유물이 무령왕릉 유물과 똑같으며, ⑤매지권의 ‘신지’와 발굴된 ‘수촌리’가 방향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매지권으로 보면 매도자인 수촌리 토후를 무령왕릉 토지의 원래 주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26.9.30. <(사)손에 잡히는 역사연구소> 제공]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4 https://ydpcj.kr/news/22251 Sun, 11 Oct 2026 03:48:52 +0000 https://ydpcj.kr/news/22251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4

📩 우리는 왜
놓아야 할 것을
끝까지 붙잡고 있을까요?
에초에 붙잡을 수 없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들려주신
오온의 다섯 가지 비유
오늘, 한 번 들어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4www.youtube.com

[경전산책 74]
왜 우리는 붙잡으려 하는가
–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승국 미승국(靡勝國):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설하실 때 머무셨다고 전하는 고대 인도의 나라이다.
을 다니시다가 강을 건너게 되셨다.
부처님께서는 강 한가운데에서 커다란 물거품 덩어리가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저 커다란 물거품 덩어리가 물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을 보아라.
눈 밝은 사람이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단단하거나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거품은 텅 비어 있고 진실한 실체가 없으며,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 흩어져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과 물질을 뜻하는 색(色)도 이와 같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색은 몸과 물질적 현상, 수는 느낌, 상은 대상을 알아보고 떠올리는 인식, 행은 의지와 여러 마음 작용, 식은 대상을 분별하여 아는 의식을 뜻한다.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내 안에 있는 것이든 밖에 있는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모두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 어떤 색도 영원하거나 견고하지 않다. 그것은 여러 조건에 따라 잠시 생겨난 것이며, 끊임없이 변하고 마침내 사라진다.
그러므로 색은 영원하지 않고, 온전히 만족을 줄 수 없으며, ‘나’라고 할 만한 변하지 않는 실체도 없다고 관찰해야 한다.
색의 성품에는 본래 견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거품 하나가 생겨났다가 곧 사라지는 모습을 보아라.
눈 밝은 사람이 그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거품은 텅 비어 있고 진실한 실체가 없으며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 위의 거품에는 견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느낌을 뜻하는 수(受)도 이와 같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느낌도 조건에 따라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과거·미래·현재의 느낌과 안팎의 느낌, 거칠거나 미세한 느낌, 좋거나 나쁜 느낌, 멀거나 가까운 느낌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 어떤 느낌도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느낌은 변하고 사라지므로 그것을 붙잡아 ‘이것이 나다’ 또는 ‘이것이 내 것이다’라고 할 수 없다.
수의 성품에도 본래 견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늦여름의 뜨거운 한낮에 멀리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아라.
아지랑이는 마치 그곳에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붙잡을 만한 실체가 없다.
우리의 인식과 생각을 뜻하는 상(想)도 이와 같다.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고 이름을 붙이며, 그것이 좋다거나 싫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 인식은 대상과 경험, 기억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미래·현재의 인식과 안팎의 인식, 거칠거나 미세한 인식, 아름답거나 추한 인식, 멀거나 가까운 인식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상은 영원하지 않고 조건에 따라 생겨나며, 끊임없이 달라졌다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그것을 변하지 않는 ‘나’라고 할 수 없다.
상의 성품에도 본래 견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좋은 목재를 구하려고 도끼를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고 하자.
그는 크고 곧게 자란 파초 파초(芭蕉): 바나나와 비슷한 식물이다. 줄기를 한 겹씩 벗기면 단단한 속심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경전에서는 견고한 실체가 없음을 보여 주는 비유로 사용된다.
를 발견하고 밑동을 자른 뒤, 가지와 잎을 쳐 내고 줄기를 한 겹씩 벗겨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벗겨도 그 안에서는 단단한 속심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의 의지와 여러 마음 작용을 뜻하는 행(行)도 이와 같다.
행은 수많은 조건이 모여 끊임없이 생겨나고 변한다. 하나의 생각과 의지가 영원히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미래·현재의 행과 안팎의 행, 거칠거나 미세한 행, 좋거나 나쁜 행, 멀거나 가까운 행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파초의 줄기를 한 겹씩 벗겨도 단단한 중심을 찾을 수 없듯이, 행에서도 변하지 않는 실체를 찾을 수 없다.
행의 성품에도 본래 견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마술사가 제자와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인 네거리에서 환술을 보여 준다고 하자.
마술사는 환술로 많은 코끼리와 말, 수레와 군사, 시종들의 모습을 만들어 보여 준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자세히 살펴보면 환술로 나타난 모습일 뿐 진실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의식을 뜻하는 식(識)도 이와 같다.
식도 여러 조건에 따라 생겨나고 변하며 사라진다. 마치 환술로 나타난 모습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체가 없다.
과거·미래·현재의 의식과 안팎의 의식, 거칠거나 미세한 의식, 좋거나 나쁜 의식, 멀거나 가까운 의식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환술로 나타난 모습에 변하지 않는 실체가 없듯이, 식에도 영원히 머무는 ‘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식의 성품에도 본래 견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후한(後漢) 안세고(安世高) 한역, 오음 오음(五陰)·오온(五蘊): 사람을 이루는 다섯 가지 요소인 색·수·상·행·식을 말한다. ‘오음’은 옛 한역에서 사용한 표현이며, 오늘날에는 주로 ‘오온’이라고 한다.
비유경(五陰譬喩經) 2세기 중엽 안식국(安息國) 출신의 학승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하였다. 5온(蘊)을 물거품·아지랑이·파초·요술 등에 비유하여 공(空)함을 설하신 경전이며, 총 1권으로 되어있다. 약경명(略經名)은 『오음유경(五陰喩經)』이고, 이역본은 『불설수말소표경(佛說水沫所漂經)』이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4]
왜 우리는 붙잡으려 하는가
–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
안녕하세요.
우리는 늘 무언가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내 몸과 감정, 생각을 붙잡으며 “이것이 바로 나다”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몸이 조금 아프면 마음까지 흔들리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는 이런 변해 가는 몸과 마음을 단단한 ‘나’라고 믿고 살아가도 될까요?
부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견고하지 않으며, 자세히 살펴보면 붙잡을 만한 실체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오음비유경』에 실린 말씀을 통해 우리가 왜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리고 왜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강을 건너시다가 물 위를 떠내려가는 큰 물거품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이 물거품을 자세히 보아라.”
멀리서 보면 마치 어떤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그 안에는 붙잡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손으로 잡으려 하면 곧 흩어지고 사라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의 몸을 비롯한 물질적 현상, 곧 색(色)에 비유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몸을 단단하고 분명한 ‘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몸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몸은 잠시 인연 따라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는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내릴 때 빗방울이 물 위에 거품 하나를 일으켰다가 곧 사라지는 모습을 보아라.”
이것이 느낌, 곧 수(受)입니다.
기쁨도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괴로움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칭찬을 들으면 기쁘고, 비난을 들으면 마음이 상하지만, 그 느낌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잠깐 일어난 느낌을 오래 붙잡습니다.
느낌은 물 위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거품과 같은데, 우리는 그것을 붙잡고 스스로 괴로움을 키웁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한여름 뜨거운 들판 위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아라.”
멀리서 보면 마치 물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대상을 알아보고 떠올리는 인식과 생각, 곧 상(想)입니다.
우리는 생각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기억으로 과거를 만들고, 상상으로 미래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생각도 아지랑이와 같습니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조건 따라 일어나고, 조건 따라 사라질 뿐입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재목을 구하려고 숲에 들어간 사람이 크고 곧은 파초나무를 보고 단단한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잘라서 껍질을 벗기고 속을 쪼개 보면 그 안에는 단단한 중심이 없습니다.
이것이 행(行)입니다.
행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마음의 작용과 의지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 무언가를 하려는 마음,
습관처럼 반복되는 마음의 움직임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마음도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연과 습관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흐름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환술사가 네거리에서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만들어 보여 주는 것을 보아라.”
사람들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듯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의식, 곧 식(識)입니다.
우리는 “내가 안다”, “내가 본다”, “내 마음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의식도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눈으로 보면 보는 의식이 일어나고, 귀로 들으면 듣는 의식이 일어납니다.
좋은 말을 들으면 마음이 밝아지고, 불편한 말을 들으면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의식도 고정된 주인이 아니라 보고 듣는 대상과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흐름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우리 존재를 이루는 다섯 가지,
곧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을 다섯 가지 비유로 보여주셨습니다.
몸과 물질적 현상은 물거품과 같고, 느낌은 물 위의 거품과 같으며, 인식과 생각은 아지랑이와 같고, 마음의 작용은 속심 없는 파초와 같으며, 의식은 환영과 같습니다.
여기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붙잡을 수 있는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에서도 같은 뜻으로 이어집니다.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모든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으며,
물거품과 이슬과 번개처럼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보라는 뜻입니다.
『오음비유경』과 『금강경』의 가르침은 결국 한곳으로 모입니다.
변하는 몸과 감정과 생각을 영원한 ‘나’로 붙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붙잡을 대상 자체가 본래 붙잡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거품을 손에 쥐려 하면 사라지고, 아지랑이를 향해 달려가면 허망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변하는 몸과 마음을 “이것이 나다”라고 붙잡는 순간, 우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그 실상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가르치십니다.
이는 억지로 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자세히 보면, 그것이 본래 붙잡을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내려놓음은 억지가 아니라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을 마치며 이 물음을 남겨 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그것은 정말 나의 것인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조금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붙잡은 손을 조금 놓을 때, 마음도 조금 가벼워집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오운홍 박사님의 대한민국의 고대사2 https://ydpcj.kr/news/22241 Fri, 02 Oct 2026 14:17:53 +0000 https://ydpcj.kr/news/22241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오운홍 박사님의 대한민국의 고대사2

고알고사2 성왕은 부왕의 묘를 왜 감추었을까요?youtu.be

<고딩이면 알 수 있는 시원한 고대사2>

백제 무령왕릉을 한반도에 숨겨 놓은 사연, 아십니까?

1971년 7월 5일, 충남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빗물 배수로를 만드는 중에
발굴되었는데, 무덤 속의 지석으로 백제 25대 무령왕릉을 확인하였습니다.
1440여 년이 지나도록 도굴되지 않은 까닭은
무령왕릉이 봉분 없이 다른 두 봉분 사이에 끼어있어서
그동안 도굴꾼이 몰라봤기 때문입니다.

누가 무령왕릉을 조성했을까요? (아들) 성왕(26대)이라고 봅니다.
그가 왜 이곳에 숨겼는지 의문을 풀려면, 앞서, 약칭 <고,알,고,사1>에서 본
①‘한반도에는 백제 왕궁 주춧돌이 없다’는 것과
②백제 도읍이 현 중국대륙에 있었던 것을 재확인해야 합니다.

숨겼다고 보는 증거로는, 이번 <고알고사2>에서 말하는 것처럼
③공주와 부여지역의 굴식돌방무덤과는 다른 양식의 벽돌무덤이라는 것이고
④쌓은 벽돌 중에 무령왕 사망 11년 전에 만들어진 벽돌도 있다는 것과
⑤벽돌에 새긴, ‘남조 건업(중국 남경) 사람’은 생산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발견된 지석은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과 같은 것으로,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이란 글자가 25대 무령왕임을 입증한 것입니다.
⑥비석과 같은 지석이 무덤 속에 있다는 것은, 숨겨 놓았다는 증거입니다.

<고등학교 한국사>에 “‘양직공도 그림과 함께 소개된 무령왕’은
백제를 중흥시켜,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고,
세력을 키워 가야에도 진출하고, 잇따라 고구려를 격파했다.” 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무령왕이 어떻게 한반도 공주에 묻혀 있느냐며
오운홍은 『무령왕릉의 비밀』이란 책을 썼습니다.

한반도에 숨겨 놓았다는 증거(⑥)에, 의문을 추가 한다면
⑦왕릉 규모가 왜 작은가, 혹 벽돌을 싣고 가는 선박에 한계가 있었나?
⑧왕릉이 왜 다른 고분 사이에 끼어있나?
⑨목관 재료 금송은 당시 한반도에 없었다는데, 어디서 구했을까?

숨겼다고 보는 증거 9가지에다, 숨긴 정황까지 있다면 더욱 확실해집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백제본기>의 AD395년 기록이 똑같이,
고구려 광개토왕(19대)이 침공했고, 백제 아신왕(17대)이 패했다 합니다.
또 <광개토대왕 비문>에 백제(백잔)와 신라가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조공한 기록이 있습니다.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도 ‘장수홍제호태열제 장수왕(20대)’은
신라 왕 매금과 백제 왕 어하라를 남쪽 평양에서 만나, 납공 액수와
(궁궐) 수비 군사의 수를 정했다는데, 이는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의 속국이라는 증거이고, <광개토대왕 비문>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백제 도성에 고구려 속관(속국관리)이 상주했다는 상황이 추론됩니다.

『고구려사략』 안원대제(23대) 편에, ‘숨기게 된 정황’이 있습니다.
‘사마(왕)의 처 연(燕)씨(15세 왕비)가 사오의 처 백(苩)씨를 투기하다가
사마를 독살(AD523.5)하였고, 사마의 서자 명농(성왕)은
상(喪) 당한 것을 숨기고 보위(왕)에 올랐다. (고구려의 속관 질문에)
명농은 아비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부왕이 물려주고) 평소 즐기는 사냥을
나갔다고 모면하였다’ 합니다.

왕비가 사오의 처(백씨)를 ‘투기할만한 정황’이 <백제본기>에 있습니다.
“무령왕 23년(523년) 2월에 왕이 한성으로 행차하였는데,
좌평 인우와 달솔 사오를 대동하여 쌍현성을 쌓게 했다.
성을 쌓는 공사 책임자 달솔 사오(백씨의 부)를 그곳에 남게 하고
왕은 3월, 한산에서 돌아왔다. 여름(그해) 5월에 왕이 세상을 떠났다.”
이는 『고구려사략』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교차 검증자료가 됩니다.

『고구려사략』처럼, 성왕은 고구려 속관을 계속 속여야 하는 과정에서,
‘아비의 묘를 숨겨야 할 정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숨겨 놓은 묘가 20세기에 발굴된 무령왕릉이라고 봅니다.
커다란 충격 속에, 혹자가 필자의 해석과 주장을 부인하려면,
먼저 ①에서 ⑨까지 증거를 반박해야 하고, 그다음에 <광개토대왕 비문>과 『고구려사략』과 <백제본기>에 나온 ‘독살 정황의 기록’을 부정해야 합니다.
[2026.9.23. <(사)손에 잡히는 역사연구소> 제공]​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3 https://ydpcj.kr/news/22234 Fri, 02 Oct 2026 13:52:33 +0000 https://ydpcj.kr/news/22234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3

📩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 마음도 새롭게 살펴볼까요?
법문은 많이 들었는데,
왜 마음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까요?
혹시 말씀을 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요?
『여래사자후경』은
햇빛과 메아리의 비유로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집니다.
말에 머물면 무엇을 놓치게 되는지,
오늘 경전산책에서 함께 살펴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3www.youtube.com

[경전산책 73]
왜 우리는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가
– 말에 머물고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이유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해와 달의 궁전에 있는 승장전에 머무시며, 9만 9천억 명의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다. 그 자리에는 8만 4천억 나유타 나유타(那由他):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매우 큰 수를 나타내는 인도의 수 단위이다.
 백천만 명의 보살마하살도 모여 있었다.
[중략]
승적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미래 세상의 모든 법성 법성(法性): 모든 존재와 현상이 지닌 본래의 참된 성품을 말한다.
 가운데 유독 저에게 ‘선남자여, 그대는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물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으며, 모든 존재의 참된 성품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저의 말재주로는 제가 어느 곳에서 왔다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이 보살은 모든 법의 뜻을 간략히 말하여 진실한 도의 이치를 보여 주었느니라.
승적보살이 말한 비길 데 없는 법은 말로 설명하거나 펼쳐 보일 수 없다. 그것은 문자를 벗어나 있고 위와 아래를 떠났으며, 오고 가는 것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것은 어떤 길로도 찾아갈 수 없으며, 마음과 생각과 의식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 인연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이름도 없고 말도 없다.
말로 펼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으며, 눈으로 볼 수도 없다. 여러 조건이 모여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본래부터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도 아니며 모든 형상을 떠나 있다. 한 글자로도 나타낼 수 없으니, 진실한 법을 문자로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면 네가 어떻게 나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겠느냐?”
그때 광음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설명해 주십시오. 모든 중생이 법을 말하면서도 그 법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광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도 햇빛을 받으며 그 빛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태양이 어떤 모습인지 햇빛이 어떤 빛깔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태양의 빛은 이런 모습이다’라고 설명해 주더라도, 태양의 빛 자체는 이름과 문자를 떠나 있으므로 말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듣는 말과 소리도 여러 인연이 모여 생겨난 것이다.
이를테면 깊은 산골짜기에서 들리는 메아리와 같다. 산골짜기도 본래 비어 있고 메아리도 실체가 없지만, 여러 조건이 모이면 소리가 생겨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모든 말은 네 가지 변재 안에 들어 있다.
아직 말하지도 않고 마음도 일으키지 않은 때를 법변이라 하고, 마음은 일어났으나 아직 말하지 않은 때를 의변이라 한다.
법을 분별하여 말로 설명할 때를 사변이라 하고, 막힘이나 걸림 없이 자유롭게 말할 때를 요설변이라 한다. 법변·의변·사변·요설변: 법과 그 뜻을 이해하고, 알맞은 말로 막힘없이 설명하는 네 가지 능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중생이 하는 모든 말은 이 네 가지 변재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진실한 이치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통해 태양과 햇빛에 대해 알게 되면, 교만한 마음을 버리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참된 뜻을 구하려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깨달음을 구하려는 사람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루는 오온 오온(五蘊):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이루는 다섯 요소이다. 몸인 색과 느낌·인식·의지 작용·의식인 수·상·행·식을 말한다.
 안에서 찾아야 하느니라.”
원위(元魏) 천축 불타선다 한역, 『여래사자후경(如來師子吼經)』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73]
왜 우리는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가
– 말에 머물고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이유
안녕하세요.
우리는 많은 가르침을 듣고 살아갑니다.
법문을 듣고 경전을 읽으며, 마음에 남는 좋은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알고 있는 말이 많아진 만큼 우리의 마음과 행동도 달라지고 있을까요?
오늘 경전산책에서는 『여래사자후경』에 전하는 말씀을 통해, 법을 듣고 말하는 것과 그 참뜻을 깨닫는 것은 어떻게 다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비구와 보살 대중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때 승적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으며, 모든 존재의 참된 성품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디에서 왔다고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승적보살의 말을 칭찬하시며 대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들이여, 승적보살은 모든 법의 뜻을 간략히 말하여 진실한 도의 이치를 보여 주었느니라.
진실한 법은 문자로 온전히 나타낼 수 없고, 위와 아래를 떠났으며, 오고 가는 것에서도 벗어나 있다.

이름과 말로 붙잡을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정한 모습도 없으며, 마음과 생각으로도 다 헤아릴 수 없느니라.”
그때 광음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법을 말하면서도 그 법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경전의 질문은 법을 듣는 사람보다 먼저 법을 말하는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법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참뜻까지 깨달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을 말하는 사람도 그 뜻을 놓칠 수 있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 역시 말에만 머물러서는 가르침의 본뜻을 깨닫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과 햇빛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여,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도 햇빛을 받으며 그 빛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태양이 어떤 모습인지 햇빛이 어떤 빛깔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태양의 빛에 관해 설명해 주더라도, 그 빛 자체는 이름과 문자를 떠나 있으므로 말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느니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햇빛의 따뜻함을 느끼며 그 빛에 의지해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 태양과 햇빛에 관해 어느 정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에 관한 설명이 태양 그 자체일 수는 없습니다.
이 비유는 말과 가르침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은 우리가 진실을 이해하도록 이끌어 주는 소중한 길입니다.
다만 말은 진실을 가리키는 것이지, 말 자체가 곧 진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깊은 산골짜기의 메아리를 비유로 드셨습니다.
깊은 산에서 소리를 내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 메아리는 오직 산이 만든 것도 아니고,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생긴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산골짜기의 지형을 비롯한 여러 조건이 모였을 때 메아리가 생겨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도 이와 같습니다.
생각과 경험, 상황과 관계 등 여러 조건이 모여 하나의 말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말에만 매달리기보다 그 말이 어떤 인연에서 나왔으며,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이 경전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이 일어나고 표현되는 모습을 네 가지 변재로 설명하셨습니다.
아직 마음도 말도 일어나지 않은 때를 법변(法辯)이라 하고, 마음은 일어났지만 아직 말하지 않은 때를 의변(義辯)이라 합니다.
법을 분별하여 말로 설명하는 것을 사변(辭辯)이라 하고, 막힘이나 걸림 없이 자유롭게 설명하는 것을 요설변(樂說辯)이라 합니다.
이 네 가지 변재는 법의 뜻과 말이 드러나는 여러 국면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을 잘하더라도 그 가르침이 자신의 삶에서 확인되지 않는다면, 아직 말의 문턱에 머물러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여, 참된 뜻을 구하려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깨달음을 구하려는 사람도 자신의 오온 안에서 찾아야 하느니라.”
오온(五蘊)이란 우리를 이루는 몸과 느낌, 인식, 의지와 여러 마음 작용, 그리고 의식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찾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지금 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마음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느낌과 생각을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화를 설명하는 것과 내 안에서 일어나는 화를 알아차리는 것은 다릅니다.
집착이 괴로움을 만든다는 말을 아는 것과 실제로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도 다릅니다.
무상이라는 말을 외우는 것과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음을 자신의 삶에서 받아들이는 것 역시 다릅니다.
듣고 이해하는 것은 공부의 중요한 시작입니다.
그러나 들은 가르침을 자신의 몸과 마음에 비추어 보고, 그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꾸어 갈 때 공부는 비로소 삶의 지혜가 됩니다.
설법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전하는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지 함께 돌아보아야 합니다.
법을 듣는 사람은 좋은 말씀이라고 감탄하는 데 머물지 말고, 그 말이 자신의 어떤 마음과 행동을 가리키는지 살펴야 합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을 마치며 생각해 봅니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데 머물고 있을까요, 아니면 그 말씀을 내 삶에서 확인하며 실천하고 있을까요?
오늘 들은 가르침 가운데 한 가지라도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말이 가리키는 뜻을 내 몸과 마음에서 살피고 작은 행동으로 옮길 때, 그 가르침은 비로소 살아 있는 지혜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