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佛) Archives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news/category/reli/불佛 영등포 소식,소비자평가,뉴스,영등포구 지역포털 Wed, 27 May 2026 15:07:31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6.9.4 https://ydpcj.kr/wp-content/uploads/2017/07/cropped-panelbiz_logo-32x32.jpg 불(佛) Archives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news/category/reli/불佛 32 32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5 https://ydpcj.kr/news/21735 https://ydpcj.kr/news/21735#respond Wed, 27 May 2026 15:06:56 +0000 https://ydpcj.kr/?p=21735 🔔📰 띵동! 지금 시각 영등포 소비자저널 신문 배달왔어요!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5 🌿 많은 말이 오가는 때입니다. 하지만 말보다 중요한 것은 삶으로 보여 주는 실천입니다. 계율은 남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라 내 마음을 맑게 지키는 기준입니다. 나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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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띵동! 지금 시각 영등포 소비자저널 신문 배달왔어요!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5

🌿 많은 말이 오가는 때입니다.

하지만 말보다 중요한 것은
삶으로 보여 주는 실천입니다.
계율은 남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라
내 마음을 맑게 지키는 기준입니다.
나는 법을 말하는가,
아니면 법을 살고 있는가?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도선 스님이 일깨운
계율의 참뜻을 함께 돌아봅니다.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5www.youtube.com

[경전산책 55]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켜라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중생을 교화하심은 한 사람이라도 구제하고자 하심이니, 크신 가르침은 모두가 하나의 이치를 드러내는 것으로 귀결되기를 기약하는 것이다.그러나 중생은 욕심에 집착하고 욕심의 근본은 이른바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 품고 있는 마음에 따라 마음을 쉬게[止心] 하는 법을 열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욕심을 일으키는 근본이 되니, 욕심을 없애려면 반드시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쉬어야 한다
마음을 쉬는 것은 밝은 지혜로부터 말미암고, 지혜는 정(定)을 일으키는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며, 정(定)을 일으키는 공(功)은 계(戒)가 아니면 넓힐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특히 계를 존중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계는 무상보리(無上菩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부처의 깨달음)의 근본이니, 마땅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한 것이다.
계를 지키는 마음은 요약하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지지문(止持門) 소극적으로 몸과 말로 하는 나쁜 짓을 억제하여 살생ㆍ투도ㆍ사음ㆍ망어ㆍ악구 등의 죄업을 짓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에 있어서는 계본(戒本) 계본(戒本)은 불교에서 승려가 할 계율을 모은 조항인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ratimoksya)를 말한다.
이 가장 표준이 되는 것이며, 작지문(作持門) 계율에서 산 것을 죽이는 일ㆍ훔치는 일을 행하는 것ㆍ거짓말을 못하게 하는 소극적인 행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보시ㆍ방생 등의 선한 일을 지어 계율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에 있어서는 갈마(羯磨) 수계 · 참회 · 징벌 · 의결 등과 같은 승가 내의 행사나 사건들을 처리하는 공식 회의를 말한다.
가 그 큰 조목을 맺는 것이다. 후배들은 먼저 수행을 하는 데 있어 이 법을 으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율장(律藏)에 이르기를, “만약에 계를 외우지 못한다면 평생토록 갈마(羯磨)를 여의지 말고 그에 의지하여 머무르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부처님의 법이 점차 중국으로 전하여지니 상법(像法) 부처님 열반 후 시대를 세 단계로 나눌 때, 정법(正法) 다음의 시기를 말한다. 겉모양은 불법이 남아 있으나 수행과 깨달음의 힘이 점차 약해진 시대를 뜻한다.
과 정법(正法)이 섞여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순박했다. 처음에는 2부(部)와 5부 2부는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뉜 최초의 분열을 말하고, 5부는 다시 세분된 주요 교단 다섯 갈래를 말한다.
의 다름이 있었고, 중간에는 18부와 5백 부 불교가 더욱 세분되어 18개 부파로 나뉜 시기를 말하며, 5백 부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매우 많은 분파로 갈라졌음을 뜻한다.
의 구별이 있었으며, 끝에는 여러 무리들이 서로 일어나 각자 서로 앞서 인도하는 사람임을 다투었으나, 더러는 연(緣)을 쫓아서 법이 기울어 떨어짐이 없었다. 그러므로 도(道)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어나고, 도를 크게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사람은 뒤집어지고 위태로울지언정 차라리 법은 맑고 바른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갈마(羯磨)는 성인의 가르침으로 예나 지금이나 면면히 이어져 왔고, 세상이 점점 번잡해짐에 따라 그 조목의 수가 더욱 많아졌다. 그 실제의 기록을 고찰하여 보면 흔히는 전에 들어서 배운 가르침을 요약한 것으로, 그 으뜸이 되는 실마리를 살펴보면 간략하여 본래의 근거는 없어졌으며, 마음을 본받아 법으로 제정한 것이 적지 않으나 낱낱이 밝혀서 외워야만 할 것들이 지극히 많다.
성인의 말씀을 가벼이 업신여겨서 행동이 형법(刑法)의 그물에 걸려들게 되었는데도 같지 않은 견해에만 모두 힘써서 다투어 시비(是非)의 혼미함에 집착하고,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아 더욱 어두워지게 되니, 마침내 정법(正法)이 이때에 이르러 땅에 가라앉게 되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에 갈마를 하는 것이 백법(白法)만 같지 못하고 백법을 행하는 것이 갈마법(羯磨法)만 같지 못하다면, 갈마를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점점 바른 법이 없어지게 만드는 것이니, 마땅히 문구(文句)를 그대로 따라야지 보태거나 빼서 법과 비니(毘尼-계율)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셨으니, 이와 같이 배우고 가르쳐야 마땅할 것이다.
만약 망령되게 지칭해서 올바른 뜻이 혼란하게 되면, 예전에는 여러 관(關)에서 편찬한 『행사초(行事鈔)』가 있어서 그 종류가 많으면서도 자세하였으나 여러 가지 일들이 너무 많아서 끝내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갈마 한 가지만 간략하게 들어서 구별하여 표시를 하고 제목을 붙였다. 이를테면 과택(科擇-조목을 나누어 판단함)ㆍ출납(出納-받아들이고 내보냄, 즉 허용과 금지의 구분)ㆍ흥폐(興廢-세우고 폐함, 시행과 중지)ㆍ시비(是非-옳고 그름의 판단) 같은 것은, 저 『행사초』에서는 그것을 설명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다만 법 그 자체를 중심으로 하여 사례(事例)에까지 미쳤고, 증거를 끌어다가 인용한 것은 권(券)의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고 적용하는 것에 두었다.
그러나 율장(律藏)에는 빠져 있어서 뜻에도 버릴 것과 보충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여러 부(部)를 통괄하고 본문(本文)을 간추렸으니, 반드시 이것과 저것이 모두 없다면 이치가 다 어그러지고, 아울러 편(篇)에 이르러 갖추어 드러내더라도 옛 율장의 흔적과 다르게 될 것이다.
갈마는 비록 그 수가 많으나 요약하여 나누면 여덟 가지가 된다. 처음은 심념갈마(心念羯磨) 마음속으로 결의하여 성립하는 가장 간단한 갈마(의결 절차). 공식적인 회의 형식 없이 스스로 마음으로 결정하여 성립되는 경우를 말한다.
로 시작하여 마지막은 백사갈마(白四羯磨) 승가의 공식 의결 절차 중 가장 완전한 형식. 한 번의 고지(白)와 세 번의 확인을 거쳐 총 네 번의 선언으로 성립된다. 출가 수계나 중대한 의결에 사용되는 엄격한 절차이다.
로 끝나는데, 이들은 각각 구제(救濟)를 완성하는 공덕이 있기 때문에 모두를 율(律)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표시하였다. 이제 그때에 나아가 그것으로서 요점을 드러내어 밝히고 같은 종류를 모아서 편(篇)으로 엮었다. 글은 열 편으로 배열하였고 뜻은 모두 일곱 가지이다. 어찌 감히 여러 배우는 이들에게 전할 수 있으리요. 그것으로 스스로를 밝혀 늘 힘쓰고자 한다.
도선(道宣) 중국 남산 율종(南山律宗)의 시조로, 645년 현장(玄奘)이 귀국하여 홍복사(弘福寺)에서 역경할 때 감문가(勘文家)가 되어 수백 권의 율부와 전기를 써냈다. 특히 사분율종(四分律宗)을 이루어 이른바 남산 율종을 세웠다.
 편집,
『담무덕부사분율산보수기갈마(曇無德部四分律刪補隨機羯磨)』 서문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5]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켜라
— 법은 맑고, 사람은 흔들린다
안녕하세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괴로움에서 건져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많은 가르침도 결국은 하나로 돌아옵니다.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쉽게 흔들립니다.
욕심이 일어나고, 분노가 치밀고, 집착이 붙잡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을 끊고자 한다면 먼저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경전은 이렇게 일러 줍니다.
계(戒)가 바탕이 되어 정(定)이 일어나고,
정이 깊어질 때 지혜가 밝아진다고.
그래서 계를 존중하지 않고는 깨달음으로 나아갈 길이 바로 서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경에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계는 무상보리(無上菩提), 곧 더할 나위 없는 깨달음의 근본이니, 마땅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켜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도덕 권고가 아닙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어디서 생기는지,
수행의 뿌리가 어디에 놓이는지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계는 뿌리이고, 정은 줄기이며, 지혜는 꽃과 같습니다.
뿌리가 흔들리면 그 위에 아무것도 설 수 없습니다.
계율은 단순한 금지 조항이 아닙니다.
계율은 마음을 흐리지 않게 지켜 주는 기준입니다.
생명을 해치지 말라.
남의 것을 빼앗지 말라.
거짓말로 상처 주지 말라.
이것은 남을 통제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내 마음을 맑게 지키기 위한 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형식은 남고 정신은 흐려지기 쉽습니다.
절차는 지키지만 마음은 비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또는 반대로 “마음만 중요하다”고 하면서 기본을 가볍게 여기기도 합니다.
도선 스님은 바로 이 점을 깊이 경계합니다.
불교에서 갈마(羯磨)는 승가 공동체가 법에 따라 합의하고 실행하는 공식 절차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말합니다.
절차만 남고 바른 실천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것은 법을 점점 흐리게 만드는 길이 된다.
또 선한 마음만 말하면서 정해진 법의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그 또한 법을 무너뜨리는 길이 된다.
형식과 정신은 따로가 아닙니다.
둘이 함께 설 때 법이 바로 섭니다.
도선 스님이 살던 시대는 정법과 상법이 뒤섞이고
여러 종파가 서로 앞섰다고 다투던 혼란기였습니다.
그 속에서 스님은 단호히 일깨웁니다.
사람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법은 본래 맑다.
법이 흐려 보이는 것은 법이 변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흐려졌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도는 믿음에서 피어나고, 그 믿음을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는 힘이 바로 계율입니다.
계율은 남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닙니다.
나를 바로 세우는 기준입니다.
작은 거짓을 멈추는 용기,
작은 이익을 내려놓는 결단,
작은 분노를 다스리는 태도.
이 작은 실천이 마음을 단단하게 합니다.
그 단단함 위에서 정이 자라고, 그 위에서 지혜가 밝아집니다.
그래서 계는 깨달음의 첫걸음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
그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내 마음을 흐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법은 늘 맑습니다.
우리가 그 맑음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 나는 어떤 작은 계율을 지키며 살 것인가.
그 작은 실천이 나를 지키고 세상을 지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본 말씀은
중국 남산 율종의 시조인 도선(道宣) 스님이
『담무덕부사분율산보수기갈마』의 서문에서 밝힌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도선 스님은 계율을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법을 지탱하는 근본으로 보았습니다.
법은 늘 맑게 서 있습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마다 그 맑음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힘,
그것이 계율을 지키는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떠한가.
나는 법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법을 살고 있는가?
그 답은 말이 아니라, 나의 하루가 증명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발행정보

제호: 영등포 소비자저널

도메인: ydpcj.kr

발행처: 영등포 소비자저널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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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4 https://ydpcj.kr/news/21726 https://ydpcj.kr/news/21726#respond Sat, 23 May 2026 15:47:57 +0000 https://ydpcj.kr/?p=21726 🔔📰 띵동! 지금 시각 영등포 소비자저널 신문 배달왔어요!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4 🔥 화가 날 때 그 불씨를 키울 것인가, 내려놓을 것인가.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달마다라선경』의 가르침을 통해 “분노를 멈추는 자비 수행”을 함께 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EwBFBruXLSE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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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띵동! 지금 시각 영등포 소비자저널 신문 배달왔어요!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4

🔥 화가 날 때

그 불씨를 키울 것인가, 내려놓을 것인가.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달마다라선경』의 가르침을 통해
“분노를 멈추는 자비 수행”을 함께 해보세요,🙏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4www.youtube.com

[경전산책 54]
누가 나를 욕할 때 이렇게 생각하라
수행을 하는 자가 만약 널리 자비로운 마음을 닦고자 한다면 마땅히 먼저 그 마음을 소연(所緣-마음이 붙드는 대상) 마음으로 인식하는 대상, 곧 6식(六識)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6경(六境)과 같은 것을 말한다.
에 묶고 이를 점차 익혀 한량없는 허물과 죄를 없애서 마음이 다투는 바 없고, 또한 원한으로 맺음이 없으며, 성냄이 없고 청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하는 자가 자심(慈心)의 방편을 닦고자 한다면 먼저 이를 평등한 마음으로 사유하여 모든 중생들을 인연하여 그 마음을 견고하게 해서 성냄을 멸하여 없애고 자심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든 중생을 한꺼번에 바라보며
“모두 행복하기를” 하고 크게 자비를 내는 것으로도 오히려 성냄에 얽매인다고 한다면, 그런 자는 마땅히 그 나에게 가장 고맙고 사랑스러운 사람에 대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자심을 닦고 다음으로 보통으로 가까운 사람,조금 덜 가까운 사람, 특별한 감정이 없는 사람 , 및 나를 힘들게 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에 대하여 차례로 자비를 아홉 단계로 세밀하게 나누어 닦아 익혀 차츰 성냄의 마음을 여의고 따뜻하게 아끼고 걱정해 주는 마음을 일으켜 갖가지 기쁨과 편안함이 될 만한 것들을 함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즐거움을 함께한 다음에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법의 도움이 되는 마음을 일으켜 광대자(廣大慈-넓은 자비)ㆍ극원자(極遠慈-멀리까지 미치는 자비)ㆍ무량자(無量慈끝이 없는 자비-)의 세 가지 자심을 닦아야 한다. 성냄을 없애 부드럽고 어진 사랑의 마음에 머물게 하고, 그 상응하는 공덕과 선근에 따라 모든 불법을 기꺼이 함께 나누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갖가지 법락(法樂)과 더불어 갖가지 자심을 닦게 하는 것이다. 먼저 출가의 즐거움을 주고, 다음으로 깊이 집중하여 마음이 맑고 고요해지는 즐거움을 주며, 다음으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즐거움을 주고, 다음으로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열반의 즐거움을 준다.
혹시 수행이 성냄으로 인하여 교란을 당할 경우 이와 같이 생각하라.
‘내가 본래 이와 같은 성냄으로써 많은 살해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치에 거스르는 큰 죄를 일으켜서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되었으며, 큰 지옥에서 다시 고통의 독을 받고, 혹은 벌ㆍ전갈ㆍ지네ㆍ독사ㆍ악룡(惡龍)ㆍ해귀(害鬼)ㆍ나찰(羅刹)이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갖가지 독과 해(害)의 종류를 만들었으니, 지금 이를 제거하여 없애지 않는다면 또다시 그와 같은 고통들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편이 능히 저 성냄을 중지시킬 것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하라.
‘욕을 하는 자나 받는 자나 너와 나를 구별할 것 없이 다 같이 덧없는 것들이어서 잠시 잠깐도 머물러 있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둘이 모두 지나가 버리어서 그 나쁜 소리 또한 이미 사라져 버렸거늘 나중에 일어난 두 사람이 까닭 없이 서로 다툰다. 그러나 지금 이들 두 사람 또한 순간순간 사라져 버려서 허망하여 아무런 실상이 없는데, 대체 누가 욕을 하고 누가 욕을 먹는단 말이며, 왜 이처럼 거꾸로 되어있단 말인가? 이는 마치 허공과 더불어 서로 싸우면서 이를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니, 귀가 허망으로부터 잘못된 생각을 일으켜 번뇌의 업이 일어난 것이며, 저 사람의 혀 또한 이와 같다. 모두가 인연을 따라서 생멸하는 것인데, 대체 누가 욕을 하고 누가 이를 듣는단 말인가.’
수행하여 이와 같이 사유할 때 성냄의 결박이 풀어져 능히 자심을 닦아서 번뇌의 때를 여의고 청정해질 수 있다.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한역, 『달마다라선경(達摩多羅禪經)』 이 경은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가 한역한 경으로 줄여서 『달마다라경(達摩多羅經)』ㆍ『달마선경(達摩禪經)』이라 하고, 별칭으로 『달마다라선경』ㆍ『달마선경』ㆍ『부정관경』ㆍ『수행도경』ㆍ『수행도지경』ㆍ『수행방편선경』이라고도 한다. 이 경은 달마다라라는 비구가 수집한 삼매법에 대한 경이라는 뜻으로 부처님 이후의 선법의 계승에 대해 설한다.
 2권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4]
누가 나를 욕할 때 이렇게 생각하라
— 성냄을 끊는 자비의 수행
안녕하세요.
살다 보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억울하게 욕을 듣거나 이유 없이 비난을 받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분노가 올라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경전산책은 『달마다라선경(達摩多羅禪經)』에 전해지는
아주 구체적인 수행의 방법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경전은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자비를 널리 닦고자 한다면, 먼저 마음이 향할 대상을 분명히 세우고
그 마음을 익혀 성냄과 원한을 없애야 한다.”
“자비의 방편을 닦고자 한다면, 먼저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인연하여 그 마음을 굳건히 하라.”
마음이 향할 대상을 분명히 세운다는 것은
한 사람을 떠올려 그가 편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그 마음을 꾸준히 길러 가는 것입니다.
‘평등한 마음’이란 가까운 사람과 미운 사람을 가르지 않는 마음이며,
‘모든 중생을 인연한다’는 것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
누구에게나 자비를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속의 다툼과 원한은 서서히 옅어집니다.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면 경전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나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닦고,
그 다음 보통으로 가까운 사람,
특별한 감정이 없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까지
차례로 자비를 넓혀 가라는 것입니다.
경전은 이를 자비를 아홉 단계로 세밀하게 익히는 수행이라 설명합니다.
자비는 단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한 마음은 점차 경계를 넘어
결국 모든 존재를 향해 열립니다.
자비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상대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참된 평안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경전이 더욱 빛나는 부분은 바로 여기입니다.
수행 중에 누군가가 나를 욕하여 마음이 흔들릴 때
이렇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나는 성냄 때문에 수많은 고통을 겪어 왔다.
이 분노를 그대로 두면 또다시 괴로움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사유합니다.
“욕하는 자도, 욕을 듣는 나도
모두 잠시 잠깐 존재하는 덧없는 존재다.
그 말도 또한 이미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누가 욕하고 누가 욕을 듣는가?
귀는 잠깐 소리를 들었을 뿐이고,
혀는 잠깐 말을 내었을 뿐이며
모두 인연 따라 생겼다 사라질 뿐입니다.
경전은 말합니다.
허공과 싸우면서 그것을 ‘나’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이렇게 깊이 사유할 때 성냄의 결박은 조금씩 풀립니다.
이 가르침은 고대 수행자만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댓글 하나에 상처받고,
단체 채팅방의 말 한 줄에 밤잠을 설치고,
직장에서의 한마디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오늘의 우리에게 더 절실한 이야기입니다.
분노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여파는 오래갑니다.
화를 낼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잘못했어.”
“저 말은 참을 수 없어.”
하지만 그 말은 이미 지나간 소리입니다.
분노는 상대를 향해 던지는 불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 안에서 먼저 타오릅니다.
이미 지나간 말을 붙들고 스스로를 태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비는 상대를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행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분노를 표현하는 것을 솔직함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노를 그대로 내는 것은
용기라기보다 즉각적인 반응일 때가 많습니다.
진짜 힘은 분노를 선택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진짜 강함은 상대를 꺾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습니다.
자비는 부드럽지만 약하지 않습니다.
자비는 성냄을 넘어선 자리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힘입니다.
욕하는 자도,
욕을 듣는 나도,
모두 잠시 머물다 사라질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성냄인가, 자비인가.
분노는 나도 해치고 남도 해칩니다.
자비는 남을 살리고 먼저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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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https://ydpcj.kr/news/21700 https://ydpcj.kr/news/21700#respond Fri, 15 May 2026 15:58:01 +0000 https://ydpcj.kr/?p=21700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 오늘의 경전산책, 부처님오신날 연등의 기원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 이야기입니다. 작은 마음 하나가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N4xZvUOnFo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www.youtube.com [경전산책 53]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貧女一燈] 이야기 나는 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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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 오늘의 경전산책,

부처님오신날 연등의 기원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 이야기입니다.
작은 마음 하나가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www.youtube.com

[경전산책 53]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貧女一燈] 이야기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그 나라에 난타(難陁)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고독하여 구걸하면서 살아갔다.
그녀는 국왕과 신민의 노소들이 모두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로 빈천한 집에 태어나, 복밭을 만났건마는 종자가 없을까?’
못내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미미한 공양이나마 기약하고, 곧 나가 구걸하기를 늦도록 쉬지 않았으나 겨우 돈 1전을 얻었을 뿐이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가서 기름을 사려 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물었다.
“1전어치 기름을 사봐야, 너무 적어 쓸 데가 없을 텐데 무엇에 쓰려는가?”
난타는 그 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그를 가엾이 여겨 기름을 갑절로 주었다. 그는 그것을 얻고 매우 기뻐하여 등불 하나를 만들어서 절로 갔다.
그것을 부처님께 바친 뒤 부처님 앞에 있는 여러 등불 가운데 두었다. 그리고 서원을 세웠다.
‘저는 지금 빈궁하여 이 작은 등불로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이 공덕으로써 저로 하여금 내생에 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중생의 어두움을 없애게 하소서.’
이렇게 서원을 세우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났다.
밤이 지나 다른 등불은 모두 꺼졌으나 그 등불만은 홀로 켜져 있었다.
그때 목련(目連)은 그날 당번이 되었다. 날이 밝은 것을 보고 등불을 걷어치우려다가 그 한 등불만이 홀로 밝게 타면서 심지가 닳지 않은 것이 새로 맨 등불 같은 것을 보았다. 그는 낮에 켜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고, 그것을 꺼 두었다가 저녁에 다시 켜려고 손으로 끄려 하였다. 그러나 불꽃은 여전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옷자락으로 부쳤으나 불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목련이 그 등불을 끄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지금 그 등불은 너희 성문들로서는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네가 4해(海)의 물을 거기에 쏟거나 산바람으로 그것을 불더라도 그것은 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체중생을 두루 건지려고 큰마음을 낸 사람이 보시한 물건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난타 여인은 다시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그에게 수기를 주셨다.
“너는 오는 세상 두 아승기와 백 겁 동안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등광(燈光)이라 하고, 10호(號) 여래가 지닌 공덕의 모습을 표현한 여래, 응공, 정변지 등 열 가지 이름을 가리킨다.
를 완전히 갖출 것이다.”
이에 난타는 수기를 받고 기뻐하여 꿇어앉아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어 그는 비구니가 되었다.
아난과 목련은 그 가난한 여자가 고액을 면하고 집을 떠나 수기 받는 것을 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난타 여인은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오랫동안 구걸하면서 살아 왔으며, 또 무슨 행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네 무리들이 공경하고 우러르면서 다투어 공양하려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에 가섭이라는 부처님이 계셨다. 그때에 어떤 거사의 부인은 몸소 나아가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을 청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어떤 가난한 여자에게 공양받기를 먼저 허락하고 계셨다. 그 여자는 이미 아나함의 도를 얻은 여자였다.
그때 장자의 부인은 자기의 재산이 많은 것을 믿고 그 가난한 여자를 업신여겨, 부처님께 먼저 그 청을 받은 것을 불쾌히 여겨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제 공양을 받지 않고 저 거지의 청을 먼저 받으셨습니까?’
이렇게 나쁜 말로 성인을 업신여겼다. 그 뒤로 5백 년 동안 그는 언제나 빈천한 거지 집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 뒷날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고 공경하며 기뻐하였기 때문에 지금 부처님을 만나 집을 나와 수기를 받았고 온 나라가 공경하고 우러르느니라.”
그때 대중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나라 왕과 신민들은 그 가난한 여자가 부처님께 등불 하나를 바침으로써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모두 흠앙하는 마음을 내어 저마다 훌륭한 의복 등 네 가지 물건을 보시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귀천 노소를 막론한 온 나라 남녀들이 향유(香油) 등불을 다투어 준비하여 기원정사로 가지고 가서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혜각 한역, 『현우경』 3권 「빈녀난타경(貧女難陀經)」 『경율이상』 38권에도 실려 있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3]
난타의 등불
— 연등은 왜 마음을 밝히는가
안녕하세요.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지면
절마다 연등이 달리고,
거리에도, 사람들의 마음에도 불빛이 하나씩 켜집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연등은 언제부터, 그리고 왜 켜기 시작했을까요?’
오늘의 경전산책은 그 질문에 가장 깊은 대답을 들려주는 이야기,
난타경(難陀經)에 전해지는 가난한 여인, 빈녀 난타의 등불 이야기입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습니다.
그 나라에 난타(難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몹시 가난하여 의지할 곳 없이
구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난타는 왕과 백성들, 남녀노소가
향유를 붓고 수많은 등불을 밝히며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업으로 이렇게 가난한 몸을 받았을까.
이렇게 훌륭한 복밭을 만났건만, 내게는 뿌릴 씨앗조차 없는 것일까.”
이 생각은 원망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삶을 돌아보는 참회였고,
무언가라도 올리고 싶다는 간절함이었습니다.
난타는 마음을 다잡고 그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구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해가 기울 무렵, 손에 남은 것은 겨우 동전 한 전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돈을 꼭 쥐고 기름집으로 향했습니다.
기름집 주인이 물었습니다.
“이만한 기름으로는 쓸 데가 없을 텐데, 무엇에 쓰려는가?”
난타는 숨기지 않고 말했습니다.
“부처님께 등불 하나라도 올리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기름집 주인은 그 마음이 가엾고 귀하여 기름을 갑절로 담아 주었습니다.
난타는 그 기름으로 작은 등불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절로 올라가
이미 밝혀진 수많은 등불 사이에
자신의 등을 올려 두었습니다.
그녀는 그 앞에서 아주 조용히 서원을 세웠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 가난하여 이 작은 등불 하나밖에 올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공덕으로 내 생에 지혜의 빛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둠을 밝히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깊이 예를 올린 뒤 아무 말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날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았습니다.
다른 등불들은 모두 꺼졌는데,
난타의 등불 하나만 홀로 환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등불을 정리하던 이는 신통제일로 불리던 목련존자였습니다.
목련은 날이 밝았으니 등불을 거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손으로 불을 끄려 했습니다.
그러나 불꽃은 꺼지지 않았고,
옷자락으로 덮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련아, 그 등불은 너희 성문들로는 끌 수 없다.
설령 이 세상의 모든 바닷물을 다 쏟아붓고, 거센 산바람으로 불어도
그 등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등불은 일체중생을 건지겠다는 큰 마음으로 올린 보시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난타는 다시 부처님 앞에 나아와 땅에 엎드려 예배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녀에게 수기를 주셨습니다.
“너는 앞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득한 세월을 지나,
수많은 겁이 흐른 뒤 마침내 부처가 될 것이다.”
가난한 여인,
등불 하나 올린 그 마음으로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난과 목련은 다시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난타는 어떤 업으로 오랫동안 가난하게 살았으며,
또 어떤 인연으로 이와 같은 큰 과보를 얻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과거의 인연을 들려주셨습니다.
과거 가섭불 시대,
부유한 장자의 부인이
한 가난한 여인이 부처님께 먼저 공양 올리는 것을 보고
교만한 마음으로 업신여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 업으로 오랫동안 빈천한 삶을 살게 되었으나,
뒤늦게 다시 공경과 보시의 마음을 내었기에
오늘 이 인연을 만나 수기를 받게 되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해지자 왕과 백성들은 깊이 감동했고,
서로 다투듯 향유와 등불을 준비해
기원정사로 가져와 부처님께 공양했습니다.
이때부터 등불 공양이 널리 퍼졌다고 경전은 전합니다.
이 연등의 전통은 우리나라에서도 깊게 이어졌습니다.
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부처님오신날 연등은
왕과 백성, 귀천을 가리지 않고 함께 밝히는 등불이 되었고,
오늘날의 연등회로 이어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천 개의 등이 함께 밝혀지는 그 장면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각자의 마음이 서로의 어둠을 비추는 수행의 자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묻게 됩니다.
연등은 왜 중요한가?
연등은 무엇을 밝히는가?
난타의 이야기가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연등은 부를 드러내는 공양이 아니라
마음을 드러내는 공양이라는 사실입니다.
등불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서원,
“나 하나 밝아지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른 이의 어둠까지 함께 비추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세상을 밝힙니다.
그래서 부처님오신날의 연등은 장식이 아니라 수행입니다.
빛을 켜는 행위이기 전에 내 마음의 방향을 밝히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밝히는 연등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용기가 된다면,
그 등불은 이미 난타의 등불이 되어
지금 이 자리에서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주변의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 하나를
건네고 싶어지지는 않으신가요.
말 한마디,
안부 한 통,
조용한 기도 하나라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밝히는 그 작은 마음의 불빛이
누군가의 어둠을 비추는 연등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은 이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의 등불을 켜고 있는가?”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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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 https://ydpcj.kr/news/21652 https://ydpcj.kr/news/21652#respond Fri, 08 May 2026 14:22:10 +0000 https://ydpcj.kr/?p=21652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 💬 사람을 따를 것인가, 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따를 것인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네 가지 분별의 기준.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함께 나눕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STnP5JhWey0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www.youtube.com [경전산책 52]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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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

💬 사람을 따를 것인가,

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따를 것인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네 가지 분별의 기준.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함께 나눕니다.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www.youtube.com

[경전산책 52]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야 할까?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옳은 말씀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진실하여 헛됨이 없으니 제가 금강석처럼 굳게 지키겠습니다. 언젠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비구들은 네 가지 법에 의지해야 합니다. 즉,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며[依法不依人],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며[依義不依語],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며[依智不依識], 요의경(了義經 ; 바른 뜻의 경전)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 ; ‘바르지 못한 경전)에 의지하지 말 것입니다[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다, 가섭아. 법에 의지한다는 것은 곧 여래의 열반에 의지함이다. 모든 여래의 가르침이 곧 법의 성품이며, 법의 성품이 곧 여래다.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 것인데, 여래를 무상하다고 말한다면 그는 법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 것이다. 법의 성품을 알지 못한 사람에게는 의지하지 말아라. 아라한과 같은 이는 세상에 나와 법을 지키는 사람이니 그런 줄 알고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여래의 은밀하고 깊은 법을 잘 알아 여래가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파계한 몸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여래는 무상하고 변한다고 말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의지하지 말아라.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뜻은 깨달음이고 깨달았다는 뜻은 만족함이다. 만족하다는 뜻은 여래의 영원하고 변하지 않음이다. 또한, 이 뜻은 교법(敎法)이 영원함이고, 교법이 영원하다는 것은 승가가 영원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뜻에 의지함이다.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꾸며대는 언론과 번지르르한 문장에 팔리지 말라는 뜻이며, 교활하고 아첨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하는 말에 의지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란 곧 여래다. 여래의 공덕을 잘 알지 못하는 성문들의 분별은 지식이니 거기에는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여래가 곧 법신인 줄 알면 그것은 지혜이니 의지해야 한다. 여래의 방편으로 이루어진 몸을 보고 그것이 오온(五蘊)에 속하고 음식물로 기르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지식이니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 소승은 불요의이고 대승은 요의이다. 만약 여래가 음식물로 자란다고 하면 불요의이고, 영원해서 변하지 않는다고 하면 요의이다. 여래의 열반이 불이 꺼짐과 같다고 하면 불요의이고, 여래가 법의 성품에 든다면 요의이다. 성문승은 밭갈이가 서툴러 열매를 거두지 못함과 같으니 의지하지 말 것이고, 대승의 진리는 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방편으로 말한 것이므로 의지해야 한다.
너희들은 이와 같은 네 가지 의지하고 의지하지 말 곳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육안밖에 갖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 이 네 가지 의지할 곳을 말한 것이지, 지혜의 눈을 가진 이를 위해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네 가지 의지할 곳을 거듭 말하겠다. 법이라 함은 곧 법의 성품이고, 뜻이라 함은 영원해서 변치 않음이며, 지혜라 함은 중생들이 모두 부처의 성품을 지냈다는 것이고, 요의라 함은 모든 대승의 법문을 통달하는 것이다.“
담무참 한역, 『대반열반경』 제6권 「여래성품(如來性品)」
부처님의 말씀은 의어(義語)이지 문어(文語)가 아니다
사리불이 여쭈었다.“일체의 법 질문 중에 ‘일체의 법(萬法)’이란 세간의 언설(言說)로 세운[安立] 법을 말한다. 말이라는 법은 도대체가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문자이고 말일 뿐, 뜻이 될 수는 없다. 모든 법의 참 뜻은 언설을 끊었기 때문이다.
이란 모두 다 언어와 문자일 뿐이나 언어와 문자의 모습이 바로 뜻이 되지는 않느니라. 실다운 뜻을 언어로 의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제 여래께서는 어떻게 법을 설하시겠습니까?” 금강경에서는 여래는 진어자(是眞語者) 실어자(實語者) 여어자(如語者) 불광어자(不誑語者) 불이어자(不異語者), 즉 참된 말만 하는 이이며, 실다운 말만 하는 이이며, 여실한 말만 하는 이이며, 속이지 않는 말만 하는 이이며, 다르지 않은 말만 하는 이라고 하였다. ‘참된 말씀'(眞語)이라 함은 일체의 유정 무정의 온갖 존재가 다 부처의 성품을 갖추었음을 뜻하고, ‘실다운 말씀'(實語)이라 함은 중생들이 악업을 지어서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을 뜻하고, ‘진리다운 말씀(如語)이란 중생이 선법(善法)을 닦으면 반드시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말씀하신 예이고, ‘속이지 않는 말씀(不誑語)’이라 함은 반야바라밀법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낸다고 말씀한 것이 반드시 헛되지 않음을 뜻하며, ‘다르지 않는 말씀(不異語)이라 함은 여래께서 하신 말씀은 처음에도 거룩하고 중간에도 거룩하고 마지막에도 거룩하여 그 깊은 뜻이 미묘하여 일체의 하늘 마귀나 외도가 더 뛰어난 말을 할수 없고 부처님의 말씀을 파괴할 수 없음을 뜻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내가 법을 설하는 것은 너희 중생들이 말씀을 일으키는 데(상태나 환경)에 있으므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설하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설하는 것이니라.
내가 설한 것은 의어(義語: 뜻말)이지 문어(文語:글말)가 아니니라.
중생이 설명하는 것은 문어이지 의어(義語)가 아니니라.
의어가 아닌 것은 모두 공허하여 실답지 않은 것이니, 공허하여 실답지 않은 말은 그 뜻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뜻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모두가 속이는 말[妄語]이니라.”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2]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 부처님이 남기신 네 가지 기준
안녕하세요.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과 정보 속에서 살아갑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어떤 말이 옳은지,
내 삶을 어디에 기대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대반열반경』에는 이런 혼란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네 가지 기준,
사의지(四依法)가 전해집니다.
이 가르침은 한 번의 설법으로 끝난 말씀이 아니라,
가섭존자가 ‘늘 듣던 그 말씀’을 다시 되뇌며 새기는 장면으로 펼쳐집니다.
가섭존자가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의지처를
저는 금강석처럼 굳게 지키겠습니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며(依法不依人),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며(依義不依語),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며(依智不依識),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依了義經 不依不了義經).’”
가섭은 마치 스스로를 단단히 다짐하듯,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속에서 다시 꺼내어 확인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착하다, 가섭아.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라.
법에 의지한다는 것은 곧 여래의 열반에 의지함이니라.”
여기서 ‘법’은 단순한 규칙이나 교리 목록이 아닙니다.
여래의 가르침이 드러내는 법의 성품,
곧 변하지 않는 진리의 자리입니다.
열반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여래를 무상하다고 단정하는 이는
법의 성품을 알지 못한 자라고.
결국 이 첫 번째 기준은 분별의 출발점입니다.
사람의 권위나 외형이 아니라,
그 말이 진리에 맞는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존경받을 수 있지만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말과 뜻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경전은 ‘뜻’을 깨달음과 연결합니다.
그 깨달음은 여래의 상주불변한 성품을 보는 자리입니다.
반대로 ‘말’은 겉만 번지르르한 표현, 이익을 위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은 『금강삼매경』에서 더욱 또렷해집니다.
“내가 설한 것은 의어(義語)이지 문어(文語)가 아니니라.”
말은 손가락이고 뜻은 달입니다.
말과 글은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말을 붙들다 뜻을 놓치면 아무리 그럴듯해도 공허해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아는 것’의 깊이를 묻습니다.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라.”
지식은 분별하고 축적합니다.
지혜는 통찰하고 꿰뚫어 봅니다.
지식은 많이 아는 것이고, 지혜는 바르게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래를 단지 오온으로 이루어진 몸,
음식으로 유지되는 존재로만 이해한다면
그것은 지식에 머무는 것이라고.
그러나 여래가 법신이며, 중생 모두가 불성을 지녔음을 안다면 그것이 지혜입니다.
열반경은 이를 직접 정의합니다
“지혜란,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녔음을 아는 것이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지식을 지혜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세 번째 기준은 더욱 절실합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 바르게 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지막은 가르침의 깊이와 방향에 대한 기준입니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了義)는 궁극의 뜻이 완전히 드러난 가르침이고,
불요의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설한 방편의 가르침입니다.
열반경은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열반을 “불이 꺼진다”처럼 이해하면 불요의이고,
여래가 법의 성품에 든다고 본다면 요의입니다.
여래를 음식으로 자라는 존재로만 보면 불요의이고,
상주불변을 본다면 요의입니다.
부처님은 방편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방편에 머물지 말고 그 방편이 가리키는 궁극의 방향을 보라고 하십니다.
형식이 아니라 본질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 네 가지를 설하신 뒤 부처님은 다시 거듭 당부하십니다.
“나는 육안밖에 갖지 못한 중생들을 위하여 이 네 가지 의지할 곳을 말한 것이지, 지혜의 눈을 가진 이를 위하여 말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시 정리하십니다.
“법은 법의 성품이며,
뜻은 영원하여 변치 않음이며,
지혜는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녔음을 아는 것이며,
요의는 대승의 깊은 법문을 통달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한 교리 정리가 아닙니다.
스승이 곁에 없을 때에도 길을 잃지 않도록 남겨 준 분별의 기준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을 따르기 쉽고,
말에 흔들리기 쉽고,
지식을 지혜로 착각하기 쉽고,
형식을 본질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는 옛 경전의 문장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붙드는 나침반이 됩니다.
결국 부처님의 이 말씀은
“스스로 분별하고, 스스로 등불이 되라”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은 이 질문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인가, 말인가, 지식인가,
아니면 법의 성품과 뜻과 지혜와 궁극의 방향인가.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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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은혜는 하늘보다 깊고 바다보다 넓다” https://ydpcj.kr/news/21645 https://ydpcj.kr/news/21645#respond Fri, 08 May 2026 03:35:07 +0000 https://ydpcj.kr/?p=21645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부모은중경의 가르침, 다시 새기는 ‘십대은(十大恩)’ “부모의 은혜는 하늘보다 깊고 바다보다 넓다” 불교 경전인 부모은중경 속 ‘십대은(十大恩)’이 담긴 이미지가 최근 온라인과 SNS를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미지에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평생 베푸는 열 가지 은혜가 담겨 있으며, 단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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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부모은중경의 가르침, 다시 새기는 ‘십대은(十大恩)’

“부모의 은혜는 하늘보다 깊고 바다보다 넓다”
불교 경전인 부모은중경 속 ‘십대은(十大恩)’이 담긴 이미지가 최근 온라인과 SNS를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미지에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평생 베푸는 열 가지 은혜가 담겨 있으며, 단순한 효(孝)의 의미를 넘어 부모의 희생과 사랑을 되새기게 하는 메시지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십대은’은 부모가 자녀를 키우며 겪는 고통과 헌신을 열 가지로 정리한 내용이다.
첫 번째는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으로,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목숨 걸고 보호하는 은혜를 뜻한다. 이어 출산의 고통을 견디는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아이를 낳고 고통을 잊는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이 이어진다.
또한 부모는 자신이 먹지 못하더라도 자식을 먼저 먹이고, 편한 자리보다 아이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한다. 젖을 먹여 키우고, 더러운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자녀가 먼 길을 떠나면 밤잠을 설칠 만큼 걱정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특히 아홉 번째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험한 일이나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의 희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마지막 열 번째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은 자식이 어른이 되어도 끝없이 걱정하고 사랑하는 부모 마음을 나타낸다.
전문가들은 현대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가족 간 대화와 정이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이러한 전통적 가르침이 다시금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불교계 관계자는 “부모은중경은 단순히 효도를 강요하는 경전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깨닫고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라며 “가정의 달뿐 아니라 평소에도 부모의 은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부모은중경 은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읽혀온 대표적인 효(孝) 경전으로, 부모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인간의 도리와 감사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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