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39
📩누군가를 바꾸려다 마음이 지친 적 있으신가요?
부처님은 “놓는 순간, 변화가 시작된다”고 하셨습니다.
『금강삼매경』 이야기, 조용히 함께 들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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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산책 39]
중생을 교화한다는 생각도, 교화함이 없다는 생각도 내지 말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영취산 안에서 큰 비구의 무리 1만 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일체의 대중을 위해 대승경전을 말씀하셨으니, 일미(一味) ‘일미’는 모든 사물은 천차만별로 다른 듯하지만, 그 참모습은 절대 평등하여 다르지 않고 똑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진실(眞實)․무상(無相)․무생(無生)․결정(決定) 결정(決定)은 승해(勝解, 확실한 다른 이해)의 마음 작용의 다른 말이다.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결정이란 인지(印持)를 의미한다. 인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새기고 유지함’으로, 도장 찍듯이 마음에 확실한 이해를 새긴 후 그 이해를 상실하지 않고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實際) 실제(實際)는 산스크리트어 ‘koti’ 혹은 ‘bhūta-koti’의 한역어로, ‘실재 · 진실의 영역 · 한계’라는 의미를 가진다. 진실된 영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한다.
․본각(本覺) 모든 존재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마음의 맑고 깨끗한 성품인 깨달음 그 자체. 본각은 우주 법계(法界)의 근본 본체인 진여(眞如)의 본질이며, 중생의 본체로서 여래장(如來藏:여래가 될 수 있는 성품)이라고 한다. 『기신론』에 의하면, 이 본각의 본체는 헛된 생각을 떠나 있어서 불각의 어두움이 없을 뿐 아니라, 지혜의 광명이 있어 법계를 두루 밝히고, 평등하여 불이(不二)라고 하고 있다.
․이행(利行) 선행(善行)으로 중생을 이롭게 함을 말한다.
이라 표현하셨다.“만일 이 경전을 듣거나 네 구절의 게송만을 받아 지녀도 이 사람은 곧 부처님 지혜의 경지에 들어가서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할 수 있을 것이며, 일체중생을 위한 위대한 선지식이 되리라.”부처님께서는 이 경전을 말씀하신 뒤,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으셔서는 곧 금강삼매(金剛三昧) 금강석(金剛石)에 비유할 만한 굳음과 예리함을 가지고 모든 번뇌, 즉 아무리 미세한 번뇌까지도 끊어 없애는 힘을 가진 선정(禪定)을 말한다.
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삼매로부터 일어나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모든 부처님 지혜의 경지는 참다운 법의 모습인 결정성(決定性)에 들어가기 때문에 방편과 신통이 모두 모습 없는[無相] 이익을 얻게 하느니라. 유일한 깨달음의 진리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렵다. 모든 2승들이 알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부처님과 보살만이 알 수 있으니라. 제도할 수 있는 중생에게는 모두 한맛[一味]의 가르침을 설하느니라.”
이때 해탈보살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세존이시여, 만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정법(正法)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상법(像法) 정법시대가 끝난 다음의 일천 년간으로 민중의 불법에 대한 소질(素質)은 정법시대보다 열악하지만, 불법을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은 정법시대와 닮아 있으며 불교전(佛敎典)의 번역이나 해석, 탑사(塔寺)의 건립 등을 통하여 불법의 이익이 전해지는 시대로 불법이 형식화돼 형태만 남은 시대를 말한다.
이 세상에 머무르는 어지러운 시대[末劫]에 사는 5탁 질서와 정의가 파괴된 혼란한 세상을 지칭하는 말. 다섯 가지의 혼탁함, 즉 겁탁․견탁․번뇌탁․중생탁․명탁을 지칭한다.
의 중생들은 가지가지의 악업이 많아 3계를 윤회하며 벗어날 때가 없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후세 중생을 위해 한 맛의 결정적인 진실을 설하셔서 저 중생들이 함께 해탈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선남자여, 그대는 내가 세상에 나온 원인을 물어서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며, 저 중생들이 세상에 나온 결과를 얻게 할 수 있다. 이 오직 하나뿐인 중대한 일[一大事]은 헤아릴 수 없으니, 위대한 사랑과 연민[大慈大悲] 때문이니라. 내가 만일 말하지 않는다면 즉시 인색함과 탐욕에 떨어지리니, 너희들은 한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너희들을 위해 설하리라.선남자여, 만일 중생을 교화한다면 교화한다는 생각도 없고, 교화함이 없다는 생각도 내지 않아야 그 교화가 더욱 클 것이니라.저 중생들이 모두 대상과 주체라는 생각을 여의게 해야 하느니라. 일체의 대상과 주체는 본래 공적(空寂)한 것이니라. 만일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마음은 허깨비처럼 변화되지 아니할 것이며, 허깨비도 없고 변화도 없으면 바로 생김이 없는 법을 얻을 것이요, 생김이 없는 마음은 변화함이 없는 데 있느니라.”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이 경은 부처님이 여러 보살과 비구들의 질문에 대하여 일승(一乘) 진실(眞實)에 대하여 설한다. 1권으로 되어있다. 금강삼매경의 이름이 최초로 나타난 기록은 도안(道安, 314-385)의 북량유록(北倞遺錄)으로서 경의 목록 가운데 금강삼매경이라고 나타나고 있지만, 양나라 시대의 번역자 미상이라고 되어있다. 이 경의 문헌학적 해명은 분명치 않으나 일반적으로 신라에서 재구성된 문헌으로 간주되고 있다. 원효(元曉)가 이에 대한 소(疏)를 저술하였는데, 원효의 소는 중국에 『금강삼매경론』으로 개칭되어 전해졌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39]
교화하려는 마음을 놓을 때, 진짜 변화가 시작됩니다
― 『금강삼매경』이 들려주는 깊은 역설
안녕하세요.
오늘의 경전산책에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생각도, 교화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내지 말라”는
아주 깊고도 역설적인 가르침을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이 말씀은 『금강삼매경』에 전해지는 부처님의 법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모든 대중을 위해 대승의 깊은 진리를 설하셨습니다.
“이 경전을 듣거나,
네 구절의 게송만이라도 받아 지니면
그 사람은 곧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
방편으로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일체 중생을 위한 선지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곧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이 깨달음의 경지는
이해하기도, 들어가기도 어렵다.
이것은 오직 부처님과 보살만이 아는 세계이며,
받아드릴 준비가 된 이들에게는,
표현은 달라도 본질은 하나인 가르침이 설해진다.”
그때 해탈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만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정법이 사라지고 세상이 어지러워질 때,
탐욕과 분노로 괴로워하는 중생들은
어떻게 해탈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도 너무도 닮아 있는 질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위대한 자비와 연민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한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너희들을 위해 설하리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 경전의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만일 중생을 교화하고자 한다면,
‘내가 교화한다’는 생각도,
‘나는 교화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 교화가 참으로 크다.
왜냐하면,
중생과 나, 대상과 주체라는 생각 자체가 이미 분별이기 때문이다.
일체의 대상과 주체는 본래 공하고 고요한 것이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교화란 말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분별이 사라질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교화란 누군가를 바꾸려는 행위가 아니라,
분별이 사라진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자비의 작용입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바꾸려 하고,
설득하려 하고,
깨우치려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미 마음속에는
‘나’와 ‘너’가 나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대상도 없고, 주체도 없다.
모두가 본래 공하다.”
누군가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순간,
이미 그 자리에 벽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이 가르침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집착 없이, 우월감 없이, 계산 없이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내 삶이 진실하다면
그 자체가 이미 가르침이 됩니다.
『금강삼매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화하려는 마음마저 내려놓을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 열린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내 마음 하나를 비워보는 연습을 해 보시면 어떨까요?
그 자리에, 이미 가장 깊은 교화는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맙습니다.
성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