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7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7

[영등포 소비자저널 =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7

 

📩 참는다는 건 약한 걸까요,

 

아니면 가장 강한 수행일까요?
『라운인욕경』이 들려주는
인욕의 가르침을 함께 들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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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산책 47]
악한 행을 참는다는 것(인욕)은 최고의 수행이다
아난 존자는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으로부터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 계셨는데, 이때 사리불 석가모니의 십대제자 중 필두인 인물.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석가모니의 제자들을 ‘사리불과 나머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샤리뿌뜨라(Śāriputra), 팔리어로는 사리뿟따(Sāriputta)라고 하는데, 이 명칭을 한역하여 ‘사리불(舍利佛)’ 혹은 ‘사리자(舍利子)’라고 한다. ‘샤리뿌뜨라’는 ‘샤리의 아들’이란 뜻인데, 샤리는 그의 어머니 이름이다. 금강경과 함께 널리 알려진 반야심경은 사리자 즉 사리뿟따를 향해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하는 내용이다.
은 라훌라와 함께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성안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이때 어떤 경박한 이가 두 현자를 만나보고 속으로 생각하기를, ‘구담(瞿曇) 석가모니 부처의 일족인 석가족의 성씨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Gautama’ 혹은 ‘Gotama’, 팔리어로는 ‘Gotama’이고, 한역 경전에서는 흔히 구담(瞿曇)으로 표기되거나 교답마(喬答摩), 구답마(瞿答摩) 등으로 번역된다. ‘고타마’라는 말의 유래는 한국어로는 대체로 go(瞿)는 소(牛), tama(曇)는 최상(最上)으로 ‘으뜸가는 소’ 혹은 ‘최상의 소’로 소개된다.
 사문의 첫째 제자가 라훌라와 함께 걸식하는구나!’ 하고는 곧 독한 마음을 내어서 땅의 모래와 흙을 집어 사리불의 발우에 넣어서 라훌라의 머리를 쳤다. 사리불이 라훌라를 보니 피가 흘러서 얼굴을 더럽혔다. 그는 말하였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으니, 삼가서 독을 품지 말도록 하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겨야 한다. 세존께서 늘 이르시기를, ‘참는 것이 가장 유쾌하며, 오직 지혜로운 이만이 부처의 계율을 듣고 평생토록 범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참음으로써 보배를 삼자. 방자한 마음으로 악을 행함은 자신을 불에 던지는 것과 같다. 스스로 높은 체하는 어리석은 이는 건전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재앙이 도리어 몸을 해치는 것을 계산하지 못한 것이다. 방자한 마음이 저지른 화는 수미산보다 무거워서 수명을 마쳐도 그 죄악은 16분의 1도 줄지 아니한다. 어리석은 이가 청정하게 계를 지니는 출가 수행자를 향하여 악을 행함은 마치 횃불을 들고 바람을 안고 가면서 어리석어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반드시 자기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쓸모없는 사람은 독을 품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되, 마치 비구가 출가 수행자의 네 가지 도[四道] 출가자들이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경지의 하나로, 수다원(須陀洹)·사다함(斯陀含)·아나함(阿那含)·아라한(阿羅漢)을 말한다.
를 믿는 것과 같이한다. 불제자는 항상 마음을 굴복시켜 악함이 생기면 곧 없애야 한다. 용맹함 가운데 우두머리인 천신이나 제왕이 비록 힘이 세다고 하지만 악함을 참는 것보다 못 하나니, 그 힘이 가장 위이다.”
라훌라는 피가 얼굴에 이리저리 흘러내림을 보고 물에 가서 피를 씻으면서 혼자 말했다.
‘나의 아픔은 잠깐이나 그의 오랜 괴로움은 어찌할꼬? 그 사람은 악하나 그 형편 또한 모질구나. 나는 성내는 마음이 없지만, 슬프다. 그는 어찌할꼬? 우리 세존 부처님께서 나에게 큰 자비를 가르치시기를 난폭한 사람이 흉악함을 지향하더라도 출가 수행자는 잠자코 참음으로써 높은 덕을 이루며, 사나운 이의 잔인함을 어리석은 이는 공경하더라도 출가 수행자는 지키어 참으므로 난폭하고 어리석음을 업신여기라 하셨다. 이 사람의 악함을 내 어찌 미워하랴. 바퀴가 돎은 끝없으니, 어찌 한 번뿐이랴. 내 부처님의 경전으로서 어리석고 미혹함을 가르쳐 일깨우려고 하나 마치 잘 드는 칼로 썩은 시체를 베어도 시체가 아픈 줄을 모르는 것은 칼이 날카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곧 시체가 느낌이 없기 때문이며, 천상의 감로를 돼지에게 주어도, 돼지가 버리고 달아나는 것은 감로가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곧 돼지가 귀하게 여기지 않는 까닭이다.’
부처님의 참 말씀으로써 세간의 사납고 어리석음을 가르침이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사리불과 라훌라는 함께 돌아왔다. 공양을 마치고 발우를 씻고 손을 씻고 양치질하고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서 머리를 숙여 부처님 발에 절하였다.
사리불은 물러앉아 본말(本末)을 갖추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악한 마음은 일어나면 반드시 쇠한다. 그 경박한 이는 죽으면 밤중에 무택지옥(無擇地獄)에 들어가리니, 지옥 귀신이 고통을 주어 그 독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으며, 8만 4천 세의 수명이 다하면 혼신은 다시 독한 뱀의 몸을 받아서 무거운 독이 도리어 그 몸을 해치되 끝나면 다시 시작되곤 하며, 곧이어 전갈의 몸을 받아 항상 모래와 흙을 먹기를 만 년이 되어야 마치리라. 성내는 마음으로 계를 지닌 이를 대했기 때문에 독한 몸을 받은 것이며, 모래와 흙을 발우 속에 넣은 까닭에 세상마다 모래와 흙을 먹는 것이다. 죄가 끝나면 나와서 사람으로 태어나는데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땐 그 어머니는 늘 앓으며 집안이 날로 쇠하며, 아이로 태어나면 미련하고 둔하며, 도무지 손발이 없으므로 그의 부모와 친척들이 놀라서 ‘이 무슨 요물이 상서롭지 못하게 왔는가?’ 하고 곧 가져다 네거리에 버려두면 오가는 사람들이 다 놀라 기와나 돌멩이를 던지고, 칼이나 막대로 그의 머리를 쳐서 한껏 지치면 열흘이나 한 달 만에 죽으며, 죽은 뒤에 혼신은 다시 태어나는데 도무지 손발이 없으며, 미련하고 둔하기가 앞에서와 같으며, 5백 생을 지나야 그 무거운 죄는 끝나며, 나중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늘 두통을 앓느니라.”
세존께서 거듭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무릇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참지 못한 이는 태어나는 곳마다 부처님 세상을 만나지 못하며, 법을 어기고 비구를 멀리하며, 항상 세 나쁜 갈래에서 끝나면 다시 시작하기를 겁을 넘기며, 혹 남은 복이 있으면 나와서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천품이 항상 어리석고 사나움이 저절로 따르며, 마음으로 성인을 미워하고 부처님을 헐뜯으며, 생김새가 누추하여 남에게 미움을 받으며, 나자마자 가난하고 벼슬하지 못하며, 소원과 복이 서로 어그러져서 천신이나 성현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밤엔 늘 나쁜 꿈을 꾸고 요괴함이 잇따르며, 재앙이 판을 쳐서 사는 곳이 편안치 못하여 마음으로 늘 두려움에 떠나니, 이러한 까닭은 악한 마음을 참고 굴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한 행을 참는 이는 나는 곳마다 늘 편안하며 온갖 재앙이 사라지며, 원하면 곧 뜻대로 되며, 얼굴이 훤히 빛나고 몸이 건강하고 병이 없으며, 부하고 영화롭고 높고 귀하나니, 다 인욕하고 자비와 은혜로 중생을 제도한 까닭이다. 참음은 곧 복이니, 몸이 편안하고 부모가 편안하며 친척이 화목하여 즐겁지 아니함이 없나니, 지혜로운 이는 깊이 관찰하여 그 마음을 조복하라. 마음이란 남을 그르치고 집을 무너뜨리고 자기를 위태롭게 하여 극형을 받으며, 지옥에서 삶아지고 타며 아귀가 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하나니, 다 마음의 허물이니라.
세존께서 또 말씀하셨다.
“차라리 잘 드는 칼로 배를 꿰고 살을 베며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지언정 악을 행하지 않고 조심하라. 차라리 수미산을 이고 죽어 바다에 뛰어들어 고기밥이 될지언정 악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 뜻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부처님의 밝은 법은 세속과 다르다. [중략]
참음의 밝음은 해와 달보다 뛰어나며, 용과 코끼리의 힘이 사납다고 하지만 참음에 비하면 만만분의 1도 못하다. 7보가 번쩍이는 세속에서는 귀한 것이나, 그것이 불러온 근심으로 재앙을 이루며, 참음의 보배는 처음이나 끝이나 편안함을 얻는다. 시방에 보시함이 비록 큰 복이지마는 그 복은 참는 것만 못 하다. 참고 자비를 행하면 세상마다 근심이 없으며, 마음속이 든든하고 끝내 해독이 없다. 세상에서 믿을 것이 없으나 오직 참음만은 믿어도 좋다. 참음은 편안한 집이다. 재앙과 요괴가 생기지 않으며, 참음은 신비한 갑옷이다. 어떤 무기도 들어오지 못한다. 참음은 큰 배니 어려움을 건널 수 있고, 참음은 좋은 약이니 능히 뭇 생명을 건진다.
참는 자의 뜻은 어떤 원이든지 다 얻는다. 내가 지금 부처가 되어서 모든 하늘에게 섬김을 받으며 홀로 삼계를 거니는 것도 다 참은 힘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모든 사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인욕경을 외워서 잠깐이라도 지니고 기록하고 외우고 선포하며, 참음의 덕을 펴서 중생을 건져야 한다.”
부처님께서 경을 이야기해 마치시자 모든 사문들은 다 크게 환희하여 절하고 갔다.
서진 (西晉) 법거(法炬) 한역, 『라운인욕경(羅云忍辱經)』 이 경은 라훌라의 일화와 인욕의 공덕에 대해 설한다. 라훌라는 부처님이 출가 전에 본 아들이지만, 후에 부처님에게 출가하여 제자가 된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머물 때, 라훌라는 사리불과 함께 성에 들어가서 탁발을 한다. 그런데 경박한 이들이 사리불의 발우 안에 모래흙을 집어넣고, 라훌라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린다. 하지만 라훌라는 평소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그들에게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고 참고서 그냥 돌아온다. 부처님은 두 제자가 겪은 일을 듣고 두 사람이 인욕한 공덕이 얼마나 큰지 설명한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7]
악한 행을 참는다는 것
— 인욕은 왜 최고의 수행인가
안녕하세요.
우리는 살면서 이런 순간을 자주 만납니다.
부당한 말을 들었을 때,
억울하게 상처를 받았을 때,
마음속에서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오를 때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말이지요.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이걸 그냥 참아야 하나?”
“참는 게 정말 수행일까?”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서 아주 분명한 답을 들려주신
한 경전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바로 『라운인욕경(羅云忍辱經)』,
곧 라훌라의 일화를 통해
인욕(忍辱), 악한 행을 참고 견디는 수행의 깊이를 설한 경전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와 함께
이른 아침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성안으로 탁발을 나섭니다.
그때 한 경박한 사람이 두 출가자를 보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구담 사문의 첫째 제자가 라훌라와 함께 걸식하는구나.’
그는 곧 악한 마음을 내어
사리불의 발우에 모래와 흙을 집어넣고,
라훌라의 머리를 쳐서 피가 흐르게 합니다.
하지만 사리불과 라훌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대응도 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은 다친 라훌라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다.
악을 보고도 독을 품지 말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겨야 한다.
참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며, 가장 깊은 수행이다.”
라훌라는 피를 씻으며 혼잣말처럼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의 아픔은 잠깐이지만,
그 사람의 어리석음이 가져올 괴로움은 얼마나 클까.
나는 성내지 않지만, 그는 얼마나 깊은 괴로움 속에 머물게 될까.’
그들은 아무 원망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돌아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인욕의 공덕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악한 마음은 반드시 스스로를 해친다.
분노로 계를 지닌 이를 해친 이는
그 과보를 길고 깊게 받게 된다.”
그리고 곧 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한 행을 참고 견디는 이는
태어나는 곳마다 편안하며,
재앙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안정되며,
복과 지혜가 함께 자란다.”
부처님께서는 단호하게 선언하십니다.
“용과 코끼리의 힘이 아무리 세다 해도
참음의 힘에는 미치지 못한다.
보시의 공덕이 크다 하나
참음의 공덕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이렇게 비유하십니다.
참음은 어떤 무기도 뚫지 못하는 갑옷이며,
어려움을 건너는 큰 배이고,
생명을 살리는 좋은 약이며,
끝내 우리를 보호하는 편안한 집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금 부처가 되어 삼계를 자유로이 다니는 것도
모두 참음의 힘 때문이다.”
이 가르침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참는다는 것은
약해지는 일일까요,
아니면 가장 강해지는 일일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인욕은
억지로 눌러 참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에 끌려가지 않는 힘,
악으로 악을 만들지 않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라운인욕경』은
차라리 몸에 큰 고통을 겪더라도
악을 행하지 말라고까지 강하게 설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 번의 분노,
한 번의 악한 말이
우리 삶을 얼마나 깊이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부처님께서는 이미 꿰뚫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경전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말 한마디가 곧바로 상처가 되고,
억울한 평가와 무시가 너무 쉽게 오가는 시대,
분노가 마음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거의 필요 없는 세상입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관계 속에서,
또는 화면 너머의 말 한 줄 앞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선택의 순간에 서 있습니다.
맞설 것인가, 되갚을 것인가,
아니면 잠시 멈추어 마음을 지킬 것인가.
이 경전은 말해 줍니다.
그 순간 참아낸 마음 하나가
약함이 아니라,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 가장 강한 수행일 수 있다고.
오늘, 분노 대신 한 번 숨을 고르고,
말 대신 침묵을 선택하며,
되받아치기보다 내려놓는 선택이
어쩌면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가장 깊은 수행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오르는 그 상황이
다시 내 앞에 펼쳐진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되받아치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
마음을 지킬 수 있을지,
악으로 악을 키우지 않고
인욕과 자비로 이 순간을 건널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게 됩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이 가르침이 말하는 바른 선택을
오늘의 삶 속에서 한 번이라도 실천해 보기를 조심스레 발원합니다.
이 영상이 마음에 닿으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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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로 마음이 무거운 분들께 조용히 전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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