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5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5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5

📩 “이게 바로 나야.”

정말 그럴까요?
『밀린다 팡하』,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문답 속
깊은 가르침을 함께 들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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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산책 45]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이름에 대한 문답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가까이 가서 공손히 예배드리고 다정하고 정중하게 인사말을 나누고 예의 바르게 한쪽에 비켜 앉았다. 나가세나 존자도 답례로써 왕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밀린다 왕 메난드로스 왕은 인도 북서부 사갈라를 수도로 세워진 헬레니즘계 왕조인 인도-그리스 왕국의 국왕이다. 팔리어로는 밀린다(Milinda)로 알려져 있다.
은 나가세나 존자 나가세나(Nāgasena)는 기원전 2세기경 인도의 불교 승려(비구)이다. 지금의 카슈미르 지방에 해당하는 중인도 카얀가라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에게 물었다.
“존자는 어떻게 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나는 나가세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동료 비구들은 나를 나가세나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는 나를 나가세나라고 부르는 외에도, 수라세나, 비라세나, 시하세나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름은 명칭에 지나지 않고 거기에는 어떤 인격적 개체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나가세나 존자는 ‘이름 속에 내포된 인격적 개체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왕은 다시 나가세나 존자를 향하여 질문했다.
“나가세나 존자여, 만약에 인격적 개체를 인정할 수 없다면 그대에게 사사의 공양을 제공하는 자는 누구이고 그것을 받아 사용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계행을 지키고 수행에 힘쓰는 자는 누구입니까? 수도한 결과 열반에 이르는 자는 누구입니까?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음행하고 거짓말하고 술 마시는 자는 누구입니까? 무간지옥에 떨어질 오역 죄를 짓은 자는 누구입니까? 만일 인격적 개체가 없다면 공덕도 없으며 선행, 악행의 과보도 없을 것입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설령 당신을 죽이는 자가 있더라도 거기에 살생의 죄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승단에는 스승도 없고 계를 주는 사람도 없고 계도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당신은 나에게 말하길, ‘나의 동료 비구들은 나를 나가세나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나가세나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존자여, 그러면 머리털이 나가세나입니까?”
“대왕이여,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손톱, 살갗, 살, 힘줄, 뼈, 뼛골, 콩팥, 염통, 간장, 늑막, 지라, 폐, 창자, 창자막, 위, 똥, 담즙, 담,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 뇌, 이것 중 어떤 것이 나가세나란 말입니까? 아니면 이들 전부가 나가세나란 말입니까?
“그중 어떤 것도, 그리고 그것들 전부도 나가세나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존자여, 물질적 형태, 감수작용, 표상작용, 형성작용, 식별작용 중 어느 하나가 나가세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색. 수. 상. 행. 식을 모두 합친 것이 나가세나입니까?
“대왕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온(五蘊) 밖에 무언가가 나가세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여, 나는 당신에게 물을 수 있는 데까지 물어보았으나 나가세나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가세나는 빈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나가세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앞에 있는 나가세나가 없다는 소리는 거짓에 불과합니다.”
그때 나가세나 존자는 밀린다 왕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대왕이여, 당신은 귀족 출신으로 호화롭게 자랐습니다. 만일 당신이 한낮 더위에 뜨거운 땅이나 모래펄을 밟고 또 울퉁불퉁한 자갈 위를 걸어왔다면 발을 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몸은 피로하고 마음은 산란하여 온몸에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걸어서 왔습니까? 아니면 수레를 타고 왔습니까?”
“존자여, 나는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대왕이여, 당신이 수레를 타고 왔다면 무엇이 수레인가를 설명해 주십시오, 수레 채가 수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수레 굴대가 수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퀴나 차체나 차틀이나 멍에나 밧줄이나 바큇살이나 채찍이 수레입니까?”
“아닙니다, 존자여.”
“그렇다면 이것들 밖에 ‘수레’라는 것이 따로 있습니까?”
“아닙니다.”
“대왕이여, 나는 당신에게 물을 수 있는 데까지 물어보았으나 수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레란 단지 빈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타고 왔다던 수레는 대체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당신은 ‘수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한 셈이 됩니다. 전 인도에서 제일가는 왕이 무엇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했습니까?”
이렇게 물은 다음 나가세나 존자는 5백 명 요나카 인과 8만 명 비구들에게 말했다.
“밀린다 왕은 여기까지 수레로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수레인가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했을 때 어느 것이 수레라고 단정적인 주장을 내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들은 대왕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5백 명의 요나카 인은 환성을 지르고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존자에게 다시 말했다.
“존자여,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수레는 이들 모든 것, 즉 수레채, 굴대, 바퀴, 차체, 차틀, 밧줄, 멍에, 바큇살, 채찍 따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반연하여 ‘수레’라는 명칭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수레’라는 이름을 바로 파악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나에게 질문한 모든 것, 즉 인체의 33가지 유기물과 존재의 5가지 구성요소를 반연하여 ‘나가세나’라는 명칭이 생기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바지라라 비구니는 이런 시구를 읊었습니다.
‘마치 여러 부분이 모이므로 ‘수레’라는 말이 생기듯
다섯 가지 구성요소가 존재할 때, 생명 있는 존재라는 이름이 생기노라.’
“훌륭하십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정말 희유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한 질문은 매우 어려웠습니다만 훌륭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부처님이 계신다면 당신의 대답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 밀린다 왕과의 문답이 밀린다 팡하(Milinda Pañha -밀린다의 질문) 또는 미란타왕문경(弥蘭陀王問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불전으로, 나가세나와 인도-그리스 왕국의 왕 메난드로스 1세와의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문답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동서 사회의 가치관이나 종교관을 비교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상권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5]
나는 누구인가
—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이름에 대한 문답
안녕하세요.
우리는 평생 이렇게 살아갑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게 바로 나야.”
이름, 직업, 성격, 역할…
우리는 그것이 곧 ‘나 자신’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물으십니다.
“그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오늘은 『나선비구경』, 또는 『미란타왕문경』이라 불리는 경전,
팔리어 『밀린다 팡하』, 곧 ‘밀린다의 질문’에 전해지는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존자의 문답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이 경전은 기원전 2세기 무렵,
동서 문명이 만났던 인도 북서부에서
실제 인물들의 문답을 바탕으로 성립된 경전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불교가 어떻게 답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옛날, 인도 북서부를 다스리던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존자를 찾아옵니다.
왕은 공손히 예를 갖추고 이렇게 묻습니다.
“존자여, 당신은 세상에 어떤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까?”
나가세나 존자는 차분히 대답합니다.
“대왕이여, 사람들은 나를 나가세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단지 부르는 표지일 뿐,
그 안에 고정된 인격적 실체는 없습니다.”
이 말에 왕은 깜짝 놀라 다시 묻습니다.
“존자여, 만약 참된 ‘나’라는 실체가 없다면,
공양을 받는 이는 누구이며
계를 지키고 수행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선을 행하는 이는 누구이며
악을 저지르는 이는 또 누구입니까?
열반에 이르는 이는 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왕은 이어 집요하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나가세나란 무엇입니까?
머리카락입니까?
손톱입니까?
살과 뼈입니까?
아니면 오온, 곧 색·수·상·행·식 가운데 어느 하나입니까?”
나가세나 존자는 고개를 젓습니다.
“아닙니다.” “그것들도 아닙니다.”
“그 모두를 합쳐도 아닙니다.”
“그 밖에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왕은 답답해집니다.
“그렇다면 존자여, 나가세나는 결국 없는 이름, 빈 말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이때 나가세나 존자는 왕에게 오히려 질문을 던집니다.
“대왕이여, 이곳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레입니까?
바퀴입니까?
굴대입니까?
차체입니까?”
왕은 하나하나 부정합니다.
“아닙니다.”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자 나가세나가 말합니다.
“대왕이여, 그 어느 것도 수레가 아니라면
대왕은 수레를 타고 오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대왕께서는 거짓말을 하신 것입니까?”
왕은 그제야 깨닫습니다.
“아닙니다. 수레란 바퀴와 굴대와 차체와 여러 부속이 함께 모여 있을 때,
그것을 가리켜 ‘수레’라 부르는 것입니다.”
나가세나 존자는 미소 지으며 말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몸과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의식이
인연 따라 모여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나’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 안에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습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를 허무하게 만들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나’라는 생각에 너무 단단히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역할, 내 상처를
전부 ‘나’라고 붙잡고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인연 따라 잠시 모인 이름일 뿐이라고.
이 사실을 알면 우리는 조금 가벼워집니다.
조금 덜 상처받고,
조금 덜 싸우며,
조금 덜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가르침은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이 붙잡고 있는 ‘나’는 정말 전부입니까?”
“혹시 이름에 불과한 것을 너무 무겁게 끌어안고 있지는 않습니까?”
수레가 부서지면 다시 고치면 되듯이,
지금의 ‘나’도 언제든 새롭게 바뀔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아(無我)가 허무가 아니라
자유의 가르침인 이유입니다.
오늘, 이름 뒤에 숨은 집착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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