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0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0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0

🌿 가야산 정상에서 들려온 부처님의 한 말씀.
지금, 내 마음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요?
잠시 내려놓고 들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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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산책 40]
가야산 정상에서, 보살의 길을 묻다
세존께서 가야성의 가야산 꼭대기에서 처음으로 보리(菩提) 보리(菩提)는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에서 수행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참다운 지혜 · 깨달음 또는 앎의 경지를 일컫는 단어 bodhi에서 나왔다.보제(菩提)라고도 하는데, 보리심이란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부처가 되려는 마음을 말한다.
를 얻고, 족히 천여 명이 되는 큰 비구 대중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홀로 고요히 사람이 없는 곳에서 모든 부처님들의 깊고 깊은 삼매에 드시어 법계를 관찰하고 이렇게 생각하셨다.
‘내가 아뇩다라삼먁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뇩다라(阿耨多羅)’는 무상(無上)을 뜻하고, ‘삼먁삼보리(三藐三菩提)’는 정변지(正遍知) · 정등각(正等覺)을 뜻한다. 『금강경』에서는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이란 뜻의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란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 말의 원어는 ‘anuttara-samyak-sambodhi’이다. 한문의 음사표기는 ‘아누다라삼막삼보제(阿耨多羅三藐三菩提)’이지만, 속화된 발음의 변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읽는다. 그 이상의 것이 없으며[無上], 완전히 평등하며[正等], 완전히 모든 것을 포괄하는[正遍] 지혜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을 가리킨다.
를 얻고 일체 지혜를 얻어서 할 일을 이미 끝냈으며, 모든 무거운 짐을 벗고 모든 험한 길을 건넜으며, 무명을 없애고서 참된 밝음을 얻었으며, 모든 화살을 뽑아 갈애를 끊었으며, 법의 배[船]를 이룩하고 법의 북[鼓]를 두드리고 법의 소라를 불고 법의 당기를 세워서 생사의 씨앗을 돌려 열반의 성품을 보이며, 삿된 길을 막아 바른 길을 열고, 모든 죄의 밭을 여의어 복 밭[福田]을 보이리라.
이제 내가 저 법을 관찰하건대 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에 있어서 무슨 지혜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또 무엇으로써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증득하는 데에 몸으로써 얻는다하고 마음으로써 얻는다 하겠는가.
만약에 몸으로써 몸을 얻는다면 몸은 곧 앎[知]이 없고 깨달음이 없어서 풀과 같기도 하고, 나무와 같기도 하고, 흙덩이와 같기도 하고, 그림자와 같기도 하여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고, 사대(四大) 사대(四大, cattāri mahā-bhūtāni, Sk. catvāri mahā-bhūtāni)란 네 가지 근본 물질을 말한다. 원어의 뜻은 사대종(四大種)이지만 줄여서 사대라고 한다. 또한 이것을 사계(四界, catasso dhātuyo)라고도 부른다. 사대는 원래 오온(五蘊) 가운데 색온(色蘊)을 설명하는 말로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말한다.
로 만들어졌고, 부모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그 성질이 무상(無常)한 것이니, 설령 의복ㆍ음식ㆍ와구(臥具)ㆍ목욕[藻浴]으로써 유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법은 언젠가는 반드시 허물어지고 사라지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마음으로써 마음을 얻는다면 마음은 곧 환(幻)과 같이 뭇 인연을 따라 나는 것이어서 처소도 없고 형상도 없고 물체도 없어 아무것도 없기 마련이다.
보리란 다만 명자(名字)가 있어서 세속 때문에 말하는 것일 뿐 소리도 없고 빛깔도 없고 이루어짐도 없고 지어감도 없고 들어감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어서 오고 가는 길이 끊기며, 모든 언설(言說)을 뛰어넘고 삼계(三界)에 벗어나서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깨닫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고 관(觀)하는 것도 없으며, 희론(戱論) 희론(戱論, prapanca)은 대상을 분별해서 거기에 언어와 의미를 부여하는 지적 작용을 말한다. 혹은 언어에 대응하는 실체 관념을 형성하는 전도된 인식이라는 의미도 있다. 여기서 ‘희(戱)’는 진실이 모자란다는 뜻이다. 따라서 희론이란 허망한 언어, 무의미한 말, 헛소리, 부질없는 말에 가까운 쓸데없는 말장난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희론(戱論)은 잘못되고 무의미한 말로서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이며, 진리에 어긋나고 그릇된 집착과 차별에서 비롯돼 사람들을 망상의 세계 속에 빠뜨리는 것이다. 탐ㆍ진ㆍ치 삼독심에 오염된 마음작용이 희론이다. 주객전도된 전도몽상 번뇌 망상이 희론이다. 한역에서는 희론을 ‘허위(虛僞), 망상(妄想)’과 같이 좋지 않은 뜻으로만 쓰인다. 실제로 행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면서 말로만 떠드는 것, 경전(經典)에 어떤 색다른 구절을 기억해 가지고 어떤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느니 해서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 희론이다. 그래서 희론은 진정한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
을 여의어 다투는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관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음향(音響)이 없고 문자(文字)가 없어서 언어의 길을 여의었나니, 이와 같이 보리를 증득해야 하거늘 무슨 지혜로써 보리를 증득하고 보리의 법을 증득하는 것이겠는가.’
그때 문수사리 법왕자 문수보살님은 만수실리(曼殊室利, Manjusri)라는 출가 승려였다. 이 만수실리가 문수사리(文殊師利)로 음역되었고, 다시 ‘문수’로 축약되어 흔히 문수보살로 불리게 된다. 문수보살님은 문수사리법왕자보살(文殊師利法王子菩薩)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에서 법왕자(法王子)란 법왕(法王)인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크게 부각되어서인지 문수는 문수동자같이 동자승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문] “세존이시여, 만약에 보리가 이러한 상(相)이라면 선남자ㆍ선여인이 어떻게 보리에 발심하여 머뭅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답] “선남자ㆍ선여인은 마땅히 저 보리의 상과 같이 하여 발심하여 머물러야 하리라.”
[문] “세존이시여, 보리의 상을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답] “보리의 상이란 삼계를 벗어나고 일체 세속의 명자와 언어를 벗어나고 일체의 음향을 벗어난지라, 발심이 없는 발심으로 모든 발심을 없애나니, 이것이 곧 보리심을 내어 머무는 것이니라.”
그때 모임 가운데에 월정광덕(月淨光德)이란 천자가 있었는데, 아뇩다라삼먁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문]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보살(菩薩)은 범어 보디사뜨와(Bodhisattva)의 음역으로,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이다. 보살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큰 서원을 세우고 ‘자리이타행’을 닦아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다. ‘마하살(摩訶薩)’은 보살을 더 높여 부르는 존칭이며, 보살마하살은 ‘대보살’이라는 뜻이다. 마하살타(摩訶薩埵)의 준말로 다른 말로 대중생(大衆生), 대유정(大有情), 대사(大士)의 뜻이 있다.
이 처음으로 무슨 법을 관하기에 보살행을 행하고 무슨 법에 의지하기에 보살행을 행합니까?”
[답]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행은 대비로써 근본을 삼나니 모든 중생들을 위해 그러합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대비는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대비는 정직한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정직한 마음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정직한 마음은 일체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일체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일체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은 다름이 없고 다름을 여의는 행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다름이 없고 다름을 여의는 행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입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다름이 없고 다름을 여의는 행은 깊고 깨끗한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깊고 깨끗한 마음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입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깊고 깨끗한 마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습니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육바라밀(六波羅蜜) 바라밀(婆羅蜜) 또는바라밀다(波羅蜜多)는산스크리트어빠라미따(पारमिता pāramitā)를 음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 완전한 상태·구극(究極)의 상태·최고의 상태를 뜻한다. 불교의 교리상으로는, 바라밀은미망과생사의 차안(此岸: 이 언덕)에서해탈과열반의 피안(彼岸: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며, 또한 이를 위해보살이 닦는 덕목·수행·실천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바라밀은 뜻에 따라 번역하여 도피안(到彼岸) 또는 도(度)라고도 한다. 도피안(到彼岸: 피안에 이르다)은열반이라는 이상적인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도(度)는 현실의 차안(此岸)에서 이상적인 상태인 피안(彼岸)으로 사람들을 넘기기 위한 덕목·수행 또는 실천이라는 의미이다. 대표적인 바라밀들로는 《반야경》에서 설법하는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6바라밀(六波羅蜜)이 있다.
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6바라밀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입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6바라밀은 방편과 지혜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방편과 지혜는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입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방편과 지혜는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방일하지 않음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방일하지 않음은 세 가지 선한 행[三善行] 3선행(三善行)은 3묘행(三妙行) 또는 3청정(三清淨)이라고도 하는데, 몸 · 말 · 뜻으로 행하는 선한 행위를 말한다.
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세 가지 선한 행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세 가지 선한 행은 열 가지 선한 업의 도[十善業道] 십선업(十善業)이라고도 한다. 산스끄리뜨어로는 daśakuśala-karmāni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십선은 업이 되어 반드시 그 결과를 남기기 때문에 십선업도(十善業道)라고 불렀으며,『반야경』등 초기 대승경전에서는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십선계(十善戒)라고 불렀다. 십선은 그 행위가 구현되는 영역, 즉 몸〔身〕, 입〔口〕, 마음〔意〕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귀속된다. 첫째, 몸으로 짓는 선한 행위는 초기불교의오계(五戒)중 살생을 금하는 불살생(不殺生), 도둑질을 금하는 불투도(不偸盜), 삿된 음행을 금지하는 불사음(不邪淫)을 포함한다. 둘째, 입으로 짓는 선한 행위는 오계의 불망어(不妄語) 외에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는 불양설(不兩舌), 저주를 퍼붓지 않는 불악구(不惡口), 무의미한 잡설을 지껄이지 않는 불기어(不綺語)를 포함한다. 마음으로 짓는 선한 행위는 흔히 모든 번뇌의 근본으로 지목되는 탐욕〔貪〕 · 분노〔瞋〕 · 무지〔癡〕의 삼독(三毒)으로부터 각각 자유로운 무탐욕(無貪慾) · 무진에(無瞋恚) · 정견(正見)을 포함한다.
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선한 업의 도는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선한 업의 도는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계율 지킴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지킴은 바르게 기억하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바르게 기억함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바르게 기억함은 바르게 관(觀)하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바르게 관함은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바르게 관함은 굳게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보살마하살이 몇 가지 마음이 있어야 인(因)을 성취하고 과(果)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네 가지 마음이 있어서 인을 성취하고 과를 성취할 수 있나니, 네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처음으로 발심함이요, 둘째는 행하는 발심이요, 셋째는 물러나지 않는 발심이요, 넷째는 일생보처(一生補處) 이전 부처님이 입멸한 뒤에 성불해서 그 자리를 보충하는 이란 뜻. 곧 부처 될 후보자. 보살의 수행이 점점 나아가 최후에 도달한 보살로서의 마지막 자리. 일생만 지내면 바로 성불하게 되므로 일생보처라 한다. 미래에 성불할 미륵 보살을 보처존(補處尊)이라 하고, 그 밖에 일반으로 부처님 후보자 위치에 있는 보살들은 모두 보처보살이라고 한다.
의 발심입니다.
그때 대중 가운데 정광명주(定光明主)라는 천자가 있었는데, 그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때에 정광명주 천자가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이 모든 보살마하살들의 가장 요약된 도이기에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이 요약된 도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습니까?”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들의 요약된 도가 두 가지 있으니,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도로써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방편의 도이고, 둘째는 지혜의 도입니다.
다시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또 두 가지 요약된 도가 있으니,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도로써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돕는 도이고, 둘째는 끊는 도이니, 돕는 도란 5바라밀이요, 끊는 도란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산크리스트어 쁘라즈냐-파라미타(prajna-paramita)의 의역으로 최상의 지혜를 말합니다. 육바라밀에서의 반야바라밀은 보시에서 선정에 이르는 다섯 바라밀의 주도자이며 그들의 성립 기반이 되는 바라밀이라 할 수 있다.
이다.
또 두 가지 요약된 도가 있으니,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거리낌이 있는 도이고, 둘째는 거리낌이 없는 도이니, 거리낌이 있는 도란 5바라밀이고, 거리낌이 없는 도란 반야바라밀이다.
또 두 가지 요약된 도가 있으니,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번뇌가 있는 도이고, 둘째는 번뇌가 없는 도이니, 번뇌가 있는 도란 5바라밀이고, 번뇌가 없는 도란 반야바라밀이다.
또 두 가지 요약된 도가 있으니, 두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한량이 있는 도이고, 둘째는 한량이 없는 도이니, 한량이 있는 도란 상(相)의 분별을 취하는 것이고, 한량이 없는 도란 상의 분별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 법왕자를 칭찬하여 말씀하셨다.“훌륭하고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그대는 이제 여러 보살마하살들을 위해 본업(本業)의 도를 잘 설했으니, 진실로 그대가 설한 바와 같으니라.”
이 법을 설할 적에 십천의 보살들이 무생법인(無生法忍) 무생법인(無生法忍,anutpattika-dharma-kṣānti)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태어난 바가 없다는 무생법의 깨달음을 확신한다는 불교 교리로 비교적 초기부터 대승불교 문헌에서 나타나는 개념이다. 무생법인은 보살이 모든 법의 공(空), 무자성(無自性),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속성을 의심없이 확신함을 의미한다.
을 얻었는데, 문수사리 법왕자를 비롯해 일체 세간의 하늘ㆍ사람과 아수라 등이 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매우 기뻐하여서 믿음으로 받아 받들어 행하였다.
보리류지(菩提流支) 한역, 『가야산정경(伽耶山頂經) 북위(北魏)시대에 보리유지(菩提流支, Bodhiruci)가 508년에서 535년 사이에 번역하였다. 줄여서 󰡔가야정경󰡕이라고 하며, 별칭으로 󰡔가야정경론(伽耶頂經論)󰡕이라고도 한다. 깨달음과 보리심, 6바라밀을 비롯한 보살행 등에 대해 설한 경전이다. 이역본으로 󰡔대승가야산정경(大乘伽耶山頂經)󰡕․󰡔문수사리문보리경(文殊師利問菩提經)󰡕․󰡔상두정사경(佛說象頭精舍經)󰡕이 있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0]
가야산 정상에서, 보살의 길을 묻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경전산책에서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뒤,
가야산 정상에서 설하신 법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북위 시대에 보리류지(菩提流支) 존자께서 한역하신
『가야산정경(伽耶山頂經)』에 전해지고 있는 이 말씀은,
우리 중생이 보리심을 어떻게 내고, 그 마음에 어떻게 머무르며,
그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부처님께서는 천여 명이 넘는 비구 대중과 함께 계시다가,
어느 날 가야산 정상의 고요한 곳으로 잠시 홀로 드시어
깊은 명상 속에서 세상의 이치와 중생의 삶을 두루 살피며
이렇게 성찰하셨습니다.
‘나는 이미 위 없는 바른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다.
할 일은 마쳤고, 무거운 짐은 모두 내려놓았으며,
생사의 험한 길도 다 건넜다.
무명은 사라지고 갈애의 화살은 뽑혔다.
이제 나는 법의 배를 띄우고,
법의 북을 울리고, 법의 깃발을 세워
중생들에게 열반의 길을 보이리라.’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물으십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무엇으로 이 보리를 얻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떤 지혜로, 무엇을 통해 이 법을 증득한다고 할 수 있는가?
보리는 몸으로 얻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몸은 사대로 이루어진 무상한 것이며,
의복과 음식으로 잠시 유지된다 해도 마침내 허물어진다.
마음 또한 인연을 따라 잠시 일어나는 환과 같아,
고정된 모습도 없고, 머무를 자리도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결론지으십니다.
‘보리란 이름만 있을 뿐,
소리도 없고, 빛도 없으며 형상도 없다.
오고 감도 없고, 붙잡을 것도 없다.
세속의 이름과 언어를 뛰어넘고, 삼계를 벗어난 자리.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깨닫는 것도 없으며, 집착할 것도 없는 그 자리.
바로 그와 같이 보리는 증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보리를 얻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 법왕자 문수사리 보살이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보리가 이처럼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면
선남자와 선여인은 어떻게 보리심을 내어 머물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땅히 저 보리의 모습과 같이 발심하여 머물러야 하느니라.”
문수보살이 다시 여쭈었습니다.
“그렇다면 보리의 모습이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셨습니다.
“삼계를 벗어나고, 세속의 이름과 말, 소리로 일어나는 분별을 여의는 것이다.
발심이 없는 발심으로 모든 발심을 없애는 것,
이것이 곧 보리심을 내어 머무는 것이니라.”
그때 대중 가운데 월정광덕 천자가 문수보살께 물었습니다.
“보살마하살은 무엇을 근본으로 보살행을 닦습니까?”
문수보살이 답하셨습니다.
“보살행의 근본은 대비심입니다.”
“그 대비의 근본은?” “정직한 마음입니다.”
“정직한 마음의 근본은?”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마음입니다.”
“그 평등한 마음의 근본은?” “다름을 여의는 행입니다.”
“그 행의 근본은?” “깊고 깨끗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근본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입니다.”
그리고 문수보살은 수행의 뿌리를 더 밝혀 주십니다.
보리심의 근본은 육바라밀이며,
그 육바라밀은 방편과 지혜에 의지합니다.
그 바탕에는 방일하지 않음과
몸·말·뜻의 선한 실천, 계율과 바른 기억과 바른 관찰이 놓여 있습니다.”
이어 천자는 묻습니다.
“보살이 인과를 성취하려면 어떤 마음이 필요합니까?”
문수보살이 답하셨습니다.
“네 가지 마음입니다.
처음 마음을 내는 것(初發心),
실천으로 이어 가는 것(行發心),
물러서지 않는 것(不退轉發心),
마침내 부처가 되기 직전까지 나아가는 것(一生補處發心).
이 네 가지로 보살은 수행의 원인을 갖추고, 마침내 깨달음의 결과에 이릅니다.”
그때 또 다른 천자, 정광명주가 여쭈었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가장 빠르게 깨달음에 이르는 핵심 길은 무엇입니까?”
문수보살이 답하셨습니다.
“보살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방편의 길과 지혜의 길입니다.
하나는 중생을 돕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집착을 끊는 길입니다.
돕는 다섯 바라밀은 방편이고, 끊는 반야바라밀은 지혜입니다.
상(相)과 분별에 머무는 길은 한계가 있고,
상(相)과 분별을 취하지 않을 때 참된 길이 열립니다.”
이 말씀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문수보살을 칭찬하시며,
“그대가 설한 바가 바로 보살의 길이다”라고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법문을 듣고 많은 보살들이 깨달음의 확신을 얻었으며,
대중 또한 기뻐하며 믿음으로 받들었다고 전합니다.
이 경전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보리심은 어떻게 내야 하는가,
그 마음에 어떻게 머물 것인가,
그리고 그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가야산정경』이 보여 주는 답은 이렇습니다.
보리심은 ‘무언가를 붙잡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름과 분별과 집착을 놓을 때 드러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삶으로 이어질 때,
대비와 평등의 보살행이 비로소 길이 됩니다.
오늘 하루, 무언가를 더 붙잡기보다
내 마음이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조용히 비추어 보시면 어떨까요?
고맙습니다.
성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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