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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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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산책 5]
미래에 다가올 교단의 혼란을 말하고 경책하다
이때 가정(迦丁)비구가 법회에 모인 대중들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조용히 잘 들으십시오.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처음이나 중간이나 끝이나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와 같아 어긋나거나 착오됨이 없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악하게 변하여 지극히 무섭고 두려울 것입니다. 그대들이 알려고 한다면 제가 지금 닥쳐올 커다란 공포에 관해 말해 줄 것이니, 열심히 정진하며 선업(善業)을 닦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는 부처님의 은혜를 입어 지금 편안함을 얻었습니다.
그대들도 출가하여 마땅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만 합니다.
인간의 수명은 백세를 넘어서는 이가 적고, 그 보다 적게 사는 이는 많을 것입니다. 앞으로 닥쳐올 세상에서는 악법이 흥성하고 사악한 비구가 출현하여 불법을 파괴할 것입니다.
법이 다하여 없어지려 할 때는 인간의 마음이 박약하고 뜻을 세워 힘쓰지 않으며 질투하는 마음을 품어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으며 문자에 탐착하여 지묵(紙墨)을 친근히 하며 힘써 자신의 명망을 드날리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대들은 재산이나 보배를 탐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마음속의 생각과 입으로 하는 말이 서로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경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뜻을 거꾸로 해석합니다.
말해주는 사람이 본래의 뜻과 상반되게 설하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또한 전도됩니다.
언어가 바르지 못하여 경게(經偈) 불교의 경전과 게송을 말한다.
가 자주 착오되고 배운 바가 적은데도 교만한 마음을 품고 다른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 지극히 많을 것입니다.
스승에게 오만하게 굴고 받들어 섬기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세 분의 스승이 자신이 말한 바는 진실하고 다른 사람들이 말한 바는 허망되고 거짓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이런 무리의 비구들은 세속의 옷을 입고 속인[白衣] 인도에서는 승려가 염색한 옷을 입는데 대해 속인은 흰옷을 입고 있으므로 속인을 뜻하는 말이다.
들의 행실을 친근하여 그것을 익히고 배우면서 한적한 곳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어리석고 마음이 산란하여 탐내고 사모하여 연분을 맺어 그를 멀리 하지 못합니다.
비록 사람들이 절을 세우더라도 서로 질투하고 사방의 비구들이 지나다니면서 머무르려 하면 반드시 주지에게 보상을 해야 머무를 수 있으며, 비록 머무를 수 있더라도 내심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만약 그가 떠난다면 후에 모두가 다 기뻐하며 절 안에 거주하는 비구들은 다시 서로 투기(妬忌) 부부나 애인 사이에서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미워하고 싫어함을 말한다.
합니다.
금전이나 재산에 대해 투기하고 용모에 대해 투기하며 공양물에 대해 투기하고 종성(種姓) 종성이란 원래 “가문, 씨족, 가족” 등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불전에서는 사회적 의미 대신에 정신적 의미에서 ‘본래부터 주어진 깨달을 수 있는 선천적인 근거’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종자(種子)와 계(界), 본성(本性)의 동의어라고 설한다.
에 대해 투기하며 경법(經法)에 대해 투기하고 은밀하게 아껴서 전수하지 않기도 합니다.
부귀한 사람이나 세력을 지닌 사람을 따라 다니며 마음이 꺾이어 불법을 무너뜨립니다.
돈․재물․노비․육축(六畜) 집에서 기르는 대표적인 여섯 가지 가축으로 소, 말, 양, 돼지, 개, 닭을 말한다.
을 쌓아 모으고 정원의 수목을 가꾸며 이것을 으뜸으로 여기니 안팎이 바뀐 것입니다. 일부러 가사를 입고 머리를 자른 다음 밤낮으로 은밀하게 관청의 일에 관여하며 나라 안의 신하들 가운데 세력이 있는 사람을 쫓아다니면서 마치 종복처럼 그를 받듭니다.
단월(檀越:信徒) 단월(檀越, da-napati)은 사회생활을 하며 승단에 의식주를 베풀고 깨끗한 믿음으로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단(檀)은 단나(檀那, da-na)의 줄임말로 원래는 다나발지로 시주(施主)라는 뜻이다. 즉 보시(布施)를 실행하는 재가신도(在家信徒)를 말한다.
의 집안에서는 삼존(三尊) 여기서는 삼보(三寶), 즉 불(佛), 법(法), 승(僧)을 뜻한다.
을 존중하기 때문에 아내나 자식의 몫은 줄이고 덜더라도 감히 옷이나 음식을 풍족하게 입거나 먹지 않고 탑이나 절을 세우고 승방에 의복과 침구 등을 모두 풍족하게 보시합니다.
또한 부족할까 염려하여 출가 중에는 이름 있고 훌륭한 보배를 탑 안에 갖다 놓습니다. 절에 거주하는 사문은 관가의 우두머리를 쫓아다니며 공경히 섬기기를 원하여 단월의 탑 안에 있는 것을 관가의 우두머리에게 가져다줍니다. 관가의 우두머리는 재물이 탐나 그 본말을 문제 삼지 않고 이익을 얻는 것을 최선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탐욕과 질투 때문에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비구도 명예와 이익을 탐착하여 삼보(三寶) 삼보는 불자가 귀의해야 한다는 불보, 법보, 승보의 3가지를 가리킨다. 석가모니 자신이 불보이고, 부처님의 설한 가르침이 법보이며, 부처의 제자로서의 비구, 비구니의 출가 교단이 승보이다. 삼보는 현전삼보(現前三寶), 주지삼보(住持三寶), 일체삼보(一切三寶)로 나누기도 한다. 현전삼보는 부처가 생존했던 당시의 삼보를 뜻한다. 주지삼보는 부처가 멸한 이후의 각 시대의 삼보를 말한다. 일체삼보는 삼보를 철학이론상 셋이 아니라 일체라고 하는 해석이다. 불교도는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시작되며 최후까지 삼보에 귀의해야 한다고 할 만큼 대승과 소승 모두 삼보를 중요하게 여겼다.
의 재물을 제멋대로 취함으로써 은혜를 허망하게 하였으니, 이 죄 때문에 죽어서는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비구는 몸으로 온갖 악을 범하고 삼존을 내세워 금전과 재물을 취하고 그 사례(謝禮)로 다른 사람들을 구하여 해탈시켜 준다고 합니다. 혹은 어떤 비구와 일반 백성들은 삼존의 재산을 탐내 강제로 빼앗다시피 하고 죄를 부여해서 심하게 갈취하여 갑니다. 이런 무리의 사람들은 다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법사(法師)가 되어 계율을 간직하고 4아함(四阿含) 아함(阿含)이란 산스크리트어 아가마(Agama)의 음역으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차례로 전승(傳承)되어온 교설 또는 성전(聖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전해 내려온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 놓은 경전이란 뜻이다. 이는 붓다의 가르침을 원형 그대로 담고 있어 불교학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4아함(四阿含)은 비교적 장문(長文)으로 이루어진 장아함, 중문(中文)으로 이루어진 중아함, 단문(短文)으로 이루어진 잡아함, 1법에서 10법까지 법수의 순차에 따라 분류 편찬한 증일아함으로서 모두 183권 2,088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 통달하였더라도 각기 세속인 가운데 세력이 있는 사람과 함께 친구가 되어 세속인의 평상에 앉아 함께 비밀스런 말을 나누며 다른 사람들의 선악이나 아름답고 추한 면을 이야기하며 세속 사람들에게 의지하여 그 위세를 자랑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기뻐하지 않고 위해를 가해 그를 해칩니다. 법을 설하는 경우에도 그릇된 것을 바르다고 말하고 바른 것을 그릇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을 천하에 법답지 못한 부분이라 합니다.”[중략]
가정비구가 여러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장래에 악하게 변하는 일이 이와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부처님의 법이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에 존재하나니, 마땅히 그것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바른 법은 초목이 무성한 깊은 늪지와 같아서 중생이 그것을 우러르면 모자라는 법이 없습니다. 만약 초목이 자라는 늪지가 고갈되면 중생은 굶주리는 곤경에 처하여 생사의 기로에 떨어지게 되니, 이는 마치 장사꾼이 열심히 일할 마음이 없으면 재산과 보화가 날마다 줄어들어 부모나 처자를 보살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몸과 마음이 타도록 후회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바른 법이 존재하여 그것을 지극하게 행할 수 있는데, 제멋대로 어떤 도를 취한다는 것입니까? 만약 다시 방일하여 정진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헛되이 얻는 것이 없으며 오히려 삼도(三塗) 6도(六道) 가운데 지옥도·아귀도·축생도에 해당한다. 3악도(三惡道)·3악취(三惡趣)·3도처(三道處)와 동의어이다. 한자어 도(塗)에는 ‘길[道]’의 뜻도 있지만 괴로움의 뜻도 있는데, 3도(三塗)는 악을 행한 유정이 윤회하여 태어나는 3가지 생존 상태에서 겪게 되는 괴로움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에 빠지게 되니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그대들는 부처님의 무거운 은혜를 생각하고 윗사람은 어버이처럼 받들고 아랫사람은 자식과 같이 여겨야 합니다. 그대들은 사대(四大)가 강건하고 마음이 견고하고 의지가 용맹하니, 부지런히 정진하면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만약 일단 몸과 마음이 미약해지면 늙음과 병이 넘겨다보게 되니 후회해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 나라 안의 백성들이 아직 악이 치성한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군대가 아직 일어나지 않아 백성들이 편안하고, 곡식 값이 안정되어 걸식하기가 쉬우니 열심히 정진할 생각을 하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때 모든 제자들이 이 설법을 듣고 모두 대선(大仙)의 발에 머리를 숙여 예를 올리고 마음속으로 공포심이 일어 몸을 떨며 슬피 울면서 아뢰었다.
“장래의 세간에 법이 사라질 때에 그 세상을 보고 있는 이들의 마음은 어떠할 것이며, 어떻게 참고 그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오늘 이런 일에 대해 설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무너져 파괴될 지경입니다. 저 세간의 사람들이 이런 악을 만나면 몸과 마음이 찢어져 어찌 많은 토막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때 모든 제자들은 홀연히 다시 자기들끼리 논의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땅에 엎드려 한 목소리로 스승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몹시 당혹스럽고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를 얻어 이런 고통을 면하고 이런 고뇌를 만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선께서 말씀하셨다.
“도에는 멀거나 가까움이 없고 부지런히 구하면 얻을 수 있으며 앞뒤가 따로 없다. 이 경의 명칭을 『대선가정소기당래비참요집(大仙迦丁所記當來秘讖要集)』이라고 하니,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면 이런 고통을 면할 수 있으리라.”
『가정비구설당래변경(迦丁比丘說當來變經)』 실역인명(失譯人名) 송록(宋錄)에 부록되어 있는 이 경전은 앞으로 다가올 오탁악세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하고 있다. 『가정비구경(迦丁比丘經)』이라고도 한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
다가올 세상의 혼란을 경책하다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법회에 모인 제자들 앞에서 가정(迦丁) 비구께서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대들은 조용히 잘 들으십시오. 제가 지금 말하려는 바는 처음도 바르고 중간도 바르며 끝도 바르니, 부처님의 뜻에서 어긋남이 없습니다.
다가올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무서운 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인간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법을 따르는 이들은 드물어지며, 탐욕과 질투가 세상을 덮을 것입니다. 비구들마저도 오만해지고, 문자에만 집착하며, 참뜻을 잃고 경전을 제멋대로 해석할 것입니다.”
가정 비구께서는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가난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명예와 이익을 좇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며, 스승을 공경하지 않고, 서로 비방하고 다툽니다. 절마저도 다툼과 질투가 끊이지 않고, 재물을 놓고 분노하며, 서로 미워합니다.
단월들이 공경심으로 탑을 세우고 옷과 음식을 공양하면, 어떤 비구는 그것을 탐하고 관가의 권력자에게 아첨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출가인의 겉모습만 갖추고 속인처럼 살아가며, 육축을 기르고, 관청의 일을 돌보며, 명예와 이익을 위해 삼보의 재산을 가벼이 여깁니다.”
이러한 상황을 경계하시며, 가정 비구께서는 법이 사라져가는 말법의 시대를 슬퍼하셨습니다.
“비구는 법을 지켜야 하거늘, 오히려 법을 어지럽히고 세속과 어울려 사사로운 감정을 따르니, 법은 점점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처님의 법이 살아 있으니, 그대들은 게으름을 버리고 정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정 비구께서는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늪지에 초목이 무성하듯, 지금 법은 풍요롭습니다. 그러나 늪이 마르면 초목도 시들고 중생은 굶주리게 됩니다. 지금이 정진할 때입니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부지런히 수행하여 괴로움을 벗어나십시오. 부처님의 은혜를 깊이 새기고, 서로를 부모와 자식처럼 아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모두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고, 부처님의 법이 사라져가는 세상을 떠올리며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아뢰었습니다.
“스승님, 저희는 몹시 두렵고 당혹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고통을 피하고 도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가정 비구께서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란 멀지도 않고, 가까운 것도 아닙니다. 부지런히 구하고 실천하면 반드시 얻게 되리니, 마음을 바로 세우십시오. 이 경의 이름은 『대선가정소기당래비참요집(大仙迦丁所記當來秘讖要集)』이라 하니, 이 말씀을 깊이 새겨 실천한다면 장차 닥쳐올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출처: 『가정비구설당래변경(迦丁比丘說當來變經)』.
💡 깊이 있는 말:
말법의 시대에도 바른 수행과 청정한 마음이야말로 가장 큰 방패입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더욱 마음을 밝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일이 소중해집니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
미래에 다가올 교단의 혼란을 말하고 경책하다
안녕하세요.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입니다.
오늘도 부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의 마음과 세상을 비추는 지혜를 함께 찾아가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이 점점 어지러워진다”는 말을 합니다.
욕심과 다툼, 거짓과 분열이 당연한 듯 흘러가고,
정직과 바른 길은 점점 보기 어려워집니다.
오늘은 『가정비구설당래변경(迦丁比丘說當來變經)』에 나오는
가정(迦丁) 비구의 가르침을 통해,
다가올 세상의 혼란과 그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길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법회에 모인 제자들 앞에서 가정 비구께서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대들이여, 제가 전하는 이 말은 처음도 바르고, 중간도 바르고, 끝도 바르니, 부처님의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가올 세상은 점점 악해지고, 두려운 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사람들의 수명은 짧아지고, 법을 따르는 이는 드물어지며, 탐욕과 질투가 세상을 덮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비구들마저 오만해지고, 글자에만 매달려 경전의 참뜻을 잃고 제멋대로 해석할 것입니다.”
그는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법(末法)의 시대를 묘사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욕심이 없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명예와 이익을 좇고,
말과 행동이 다르며, 스승을 공경하지 않고, 서로 비방하고 다툽니다.
절 안에서도 질투와 분노가 그치지 않고, 재물을 놓고 다투며,
세속 권력에 아첨하고, 출가인의 모습만 갖춘 채 속인처럼 살아갑니다.”
또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그 시대에는 법을 배우는 이는 줄고, 배우더라도 행하는 자는 드물 것이며,
불탑과 사찰은 화려하게 세워져도 그 안에서 올바른 수행은 사라질 것이다.
신심은 얕아지고, 공양은 형식이 되며, 삼보의 재산을 사사로이 쓰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가정 비구께서는 깊은 한숨과 함께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부처님의 법이 남아 있는 지금, 게으름을 버리고 정진해야 합니다.
늪이 마르면 초목도 시들듯, 법이 사라지면 중생은 굶주리게 됩니다.
부지런히 수행하고, 부처님의 은혜를 새기며, 서로를 부모와 자식처럼 아끼십시오.”
이 말씀에 제자들은 모두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스승님, 어떻게 해야 이런 고통을 피하고 도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가정 비구께서 부드럽게 대답하셨습니다.
“도는 멀리 있지도, 아주 가까이 있지도 않다.
부지런히 구하고 실천하면 반드시 얻게 되니, 마음을 곧게 세우라.”
이 말씀은 비단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삶 속에서도, 진실보다 이익을, 지혜보다 권력을 좇는 모습은 곳곳에서 보입니다.
부처님 법이 풍요로운 지금이 바로 정진할 때입니다.
마음이 흐트러지고 몸이 약해진 뒤에는, 후회해도 늦습니다.
오늘 하루,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고,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법을 지키는 작은 실천을 시작해 봅시다.
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바른 마음과 바른 행위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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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에도 부처님의 지혜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