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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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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www.youtube.com
[경전산책 6]
중국 최초의 사찰 백마사가 건립된 배경
명제(明帝)는 영평 7년 갑자(甲子, 64)에 신장이 1길[丈] 6척이 되고, 목에는 일륜(日輪) 범어는 ‘sūrya’로 태양이다. 항상 허공에 있으면서 수미산의 허리를 돌면서, 차례로 수미산의 동ㆍ남ㆍ서ㆍ북에 있는 4대주(四大洲)를 비춘다. 일륜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은 중생의 업력(業力)으로 일어나는 바람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을 두르고, 광명이 번쩍거리는 금인(金人) 금신(金神), 부처 또는 불상을 일컫는 말이다. 부처님의 몸이 금빛인데서 이름한다.
이 공중에서 날아와 정전(正殿 : 왕이 일을 보는 전각) 앞에 이르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에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널리 물어보았다.
“이 무슨 신이(神異)한 일인가?”
통인(通人) 부의(傅毅)가 나아가 대답하였다.
“신(臣)이 듣기로는 ‘서역(西域) 역사적으로, 서역(西域)은 전한(前漢: BC 206-AD 8) 때 한족들이 옥문관(玉門關: 돈황으로부터 서북쪽으로 98km 떨어진 곳)과 양관 밖의 자신들의 경계를 벗어난 서쪽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 서쪽을 부르던 말이다.
에 득도한 사람이 있는데 부처라고 한다’라고 합니다. 폐하께서 꿈꾸신 바도 필시 그분이었을 것입니다.”
황제는 그럴 것이라 여기고서, 낭중(郎中) 채음(蔡愔)과 낭장(郎將) 진경(秦景)과 박사제자(博士弟子) 왕준(王遵) 등 18인에게, 천축(天竺) 천축(天竺)은 한자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인도를 가리킬 때 사용하던 단어이다.
으로 가서 불법(佛法)을 찾도록 하였다.
그때 채음 등은 대월지국(大月支國) 고대 중앙아시아의 국가. 기원전 3세기 중반 경~기원전 1세기 중반 경 중앙아시아와 북아시아에 존재했던 유목 민족이며 그 국가를 부르는 말이다. 월지는 한자를 차용한 이름이며 실제 이름은 토가라(Thogara)로 추정한다.
에서 가섭마등(迦叶摩腾) 67년 후한 시대 때 명제(明帝)의 초청을 받고 축법란(竺法蘭)과 함께 낙양으로 갔다. 명제는 그들을 위해서 백마사(白馬寺)를 세운 뒤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축법란과 함께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번역했다. 이는 중국에 전래된 최초의 불경으로 알려져 있다. 낙양(洛陽)에서 입적했다.
을 만나서 한나라로 함께 갈 것을 간곡하게 청하여 마침내 함께 낙읍(洛邑)에 이르렀다. 명제는 후한 상을 내려 접대하고, 또 가져온 불경과 화상(畵像)을 흰 말에다 싣고[白馬] 함께 낙양(洛陽)에 이르러서, 가람(伽藍 : 사찰)을 세우고 이름을 백마사(白馬寺)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여러 고을에서는 다투어 절을 지어 백마의 은혜를 갚았다.
가섭마등은 백마사에서 『사십이장경』을 번역하여, 처음에는 난대(蘭臺) 한나라 때 궁중의 장서각 이름으로 석실을 돌로 꾸민 견고한 집으로 책을 간직하는 서고를 가리킨다.
의 석실 14번째 칸 안에 봉안하여 두었다. 그로부터 불교는 구름처럼 앞다투어 일어났다. 사문과 재가 불자들이 연이어 번역하여 전하였고, 목록에 의거하여 편집하였으니, 바로 이것이 중국 땅에 경전과 불법이 있게 된 시초였다.
지승(智昇) 지음,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개원석교록은 중국 당(唐)의 승려 지승(智昇)이 730년에 서숭복사(西崇福寺)에서 편찬한 책으로 후한 명제(明帝) 영평(永平) 10년부터 당 현종(玄宗) 개원(開元) 18년(730년)까지의 664년의 기간 동안 중국에서 한역된 대승과 소승의 경·율·논 3장 및 역자가 알려지지 않은 실역(失譯), 결본(缺本) 등을 정리하여 수록한 목록집이다. 약칭 개원록(開元錄), 별칭 개원목록(開元目錄)·지승록(智昇錄)이라고도 한다. 전20권.
고려시대에 이루어진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의 목록 역시 《개원석교록》에 유역유본록에 의거한 것이다. 지승은 이 유역유본록 부분을 《개원석교록약출》(開元釋敎錄略出) 4권으로 편집하여 따로 간행하였다. 고려의 승려인 대각국사 의천은 《개원석교록》의 체제를 본떠 고려와 송·요·일본등에서 불교 자료를 수집하여 목록을 정리하고 《신편제종교장총록》이라 하였다.
』 1권
※ 개원석교록을 편찬하며 자승이 발원한 글
선서(善逝) 선서(善逝), 범어로는 sugata, 부처님 열 가지 이름의 하나이다. 수가타(須伽陀)라 음역하며, 호거(好去)ㆍ묘왕(妙往)이라고 한역한다.
이시며,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며,
무상사(無上士) 무상사(無上士), 범어로는 anuttara, 부처님 10호(號)의 하나이다. 부처님은 유정 가운데 가장 높아서 위가 없는 대사(大士)라는 뜻이다.
이며, 조어장부(調御丈夫) 조어장부(調御丈夫), 범어로는 Puruadamyasārathi, 여래 10호의 하나이다. 부루사담먁사라제(富樓沙曇藐娑羅提)라 음역하고, 가화장부조어사(可化丈夫調御師)라 한역한다. 부처님은 대자대비하며, 대지(大智)로써 부드러운 말, 간절한 말, 또는 여러 가지 말을 써서 중생을 조복 제어하고 바른 이치를 잃지 않게 하는 이라는 뜻이다.
이신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절하옵니다,
또한 삼승(三乘) 삼승(三乘)은 성문ㆍ연각ㆍ보살에 대한 세 가지 교법(敎法)을 말한다.
의 청정하고 오묘한 법과
팔배(八輩) 4향(向)과 4과(果)의 성자를 말한다. 사향사과를 사쌍팔배(四雙八輩)라고도 하는데, 수행의 네 단계를 행도(行道)와 과위(果位)로 구분한 것이다. 행도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을 말하고, 과위는 수행의 결과로 얻게 되는 지위를 말한다. 이른바 수다원향(須陀洹向), 수다원과(須陀洹果), 사다함향(斯多含向), 사다함과(斯多含果), 아나함향(阿那含向), 아나함과(阿那含果), 아라한향(阿羅漢向), 아라한과(阿羅漢果)이다.
와 응진승(應眞僧) 아라한(阿羅漢, Arhat)을 말한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 의역하여 살적(殺賊) · 응공(應供) · 응진(應眞)이라고 한다. 살적은 수행의 적인 모든 번뇌를 항복받아 죽였다는 뜻이고, 응공은 모든 번뇌를 끊고 도덕을 갖추었으므로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는 뜻이며, 응진은 ‘진리에 상응하는 이’라는 뜻이다.
께 예배합니다.
저는 경의 목록을 지어 불법의 성을 지키고자 하오니
삼보께서는 자비를 드리우사 가호(加護) 부처님 자비의 힘으로써 중생을 보호하여 주는 일이다.
하소서.
원하옵건대 법의 등불이 온 밤 내내 비추어
미혹한 무리들이 이로 인하여 지혜의 광명 얻으며
정법이 영원토록 세간에 머물러 있게 하여
이를 의지하고 배워서 위 없는 자리에 속히 오르게 하옵소서.
📖 경전산책 6
백마를 따라 온 빛 – 중국 첫 사찰이 세워지다
영평 7년(서기 64년), 후한의 황제 명제는 특별한 꿈을 꾸었습니다. 금빛으로 빛나는 사람이 공중을 날아와 황궁 앞에 이르렀고, 그 목에는 해처럼 둥근 광명이 걸려 있었습니다. 깨어난 황제는 이 신령한 꿈의 의미를 여러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이에 통인이던 부의가 말했습니다.
“신이 듣기로 서역에 도를 이룬 성인이 있으니, 그를 ‘부처’라고 합니다. 황제의 꿈은 틀림없이 그분과 관련된 일일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감동하여, 낭중 채음과 낭장 진경, 박사 왕준 등 18인을 인도로 보내 불법을 구하게 하였습니다. 사신 일행은 중앙아시아 대월지국에서 가섭마등과 축법란이라는 두 스님을 만나, 낙양으로 함께 돌아오게 됩니다. 그들은 불경과 불상을 흰 말에 실어 후한의 수도로 들어왔고, 황제는 그들을 위해 절을 지어 “백마사(白馬寺)”라 이름하였습니다. 중국 불교 최초의 사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섭마등과 축법란은 이곳에서 『사십이장경』을 번역하여 궁중의 장서각인 난대에 봉안하였습니다. 이후 불법은 중국 땅에서 비로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사문과 재가 신자들은 앞다투어 경전을 번역하고 공부하였습니다. 목록을 만들고, 정리하고, 전하는 일들이 이어졌고, 중국 불교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개원석교록을 편찬하며 자승이 발원한 글
선서이시며,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며,
무상사이며, 조어장부이신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절하옵니다,
또한 삼승의 청정하고 오묘한 법과
팔배와 응진승께 예배합니다.
저는 경의 목록을 지어 불법의 성을 지키고자 하오니
삼보께서는 자비를 드리우사 가호하소서.
원하옵건대 법의 등불이 온 밤 내내 비추어
미혹한 무리들이 이로 인하여 지혜의 광명 얻으며
정법이 영원토록 세간에 머물러 있게 하여
이를 의지하고 배워서 위 없는 자리에 속히 오르게 하옵소서.
📚 경전 출처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권1, 지승 지음
🌿 깊이 있는 말
불교는 한 황제의 꿈과 한 걸음의 사신, 그리고 두 스님의 인연으로 중국에 전해졌습니다.
경전은 마음을 여는 열쇠이고, 사찰은 그 열쇠를 간직한 집이었습니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
백마를 따라 온 빛
안녕하세요.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입니다.
오늘도 부처님의 말씀과 불교의 역사를 통해,
마음을 밝히는 한 걸음을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불교가 한 나라에 전해질 때,
그 시작에는 언제나 깊은 인연과 서원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중국 불교의 첫 사찰이 세워지던 순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원력과 빛을 나누고자 합니다.
때는 후한(後漢) 명제의 시대, 서기 64년.
당시 중국은 한나라의 번영 속에서도,
학문과 사상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명제는 유교와 도교를 아울러 포용하려 했고,
외국의 사상에도 관심이 깊었습니다.
그 마음이 결국 불교와의 첫 인연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영평 7년, 황제 명제는 특별한 꿈을 꾸었습니다.
금빛으로 빛나는 한 사람이 하늘을 날아와 황궁 앞에 섰고,
그 목에는 해처럼 둥근 광명이 걸려 있었습니다.
깨어난 황제는 이 꿈의 의미를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통인(通人) 부의(傅毅)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역(西域)에 도를 이룬 성인이 있으니, 그를 ‘부처’라 부릅니다.
황제의 꿈은 틀림없이 그분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황제는 크게 감동하여,
채음과 진경, 왕준 등 18인을 서역 인도로 보내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게 하였습니다.
사신 일행은 중앙아시아 대월지국에서
가섭마등(迦叶摩腾)과 축법란 두 스님을 만나,
함께 낙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들은 불경과 불상을 흰 말에 싣고 수도로 들어왔습니다.
황제는 그들을 위해 절을 세워 ‘백마사(白馬寺)’라 이름하였습니다.
이것이 중국 불교 최초의 사찰이었습니다.
두 스님은 이곳에서 중국에 전래된 최초의 불경으로 알려진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번역하여 석실을 돌로 꾸민 궁중 장서각인 난대(蘭臺)에 봉안했습니다.
이후 중국 곳곳에서 경전 번역과 교학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백마사는 단순한 절이 아니라,
중국 불교 문화의 씨앗이 뿌려진 ‘첫 터전’이었습니다.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에는,
경전 목록을 편찬하며 발원한 글이 전해집니다.
“불법승 삼보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옵니다.
저는 경의 목록을 지어 불법의 성을 지키고자 하오니
삼보께서는 자비를 드리우사 가호하소서.
원하옵건대 법의 등불이 밤새도록 비추어,
중생이 지혜의 광명을 얻고
정법이 영원히 세간에 머물게 하소서”
한 황제의 꿈, 한 걸음의 사신, 두 스님의 인연이 모여
중국 불교의 문이 열렸습니다.
경전은 마음을 여는 열쇠이며, 사찰은 그 열쇠를 지키는 집입니다.
우리도 일상 속에서 부처님의 법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 빛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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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에도 부처님의 지혜와 역사 속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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