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16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16
(4분 동영상)​

[경전산책 16]

게송 반구절을 듣기 위하여 몸을 버리다

“대선이여, 내가 당신과 더불어 가서 시험할 것이다. 대선이여 진짜 금은 세 가지로 시험하면 참인지를 아는데, 녹이고 두들기고 갈아보는 것이다. 수행하는 이를 시험하는 것도 그와 같다.”

그때 석제환인이 변하여 나찰이 되었는데 형상이 흉악하였고 설산에 내려가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그때 나찰은 두려운 마음이 없고 용맹하기 짝이 없으며 조리 있는 변재와 맑은 음성으로 지난 세상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절반의 게송을 말하였다.

“모든 것은 무상하나니 [諸行無常]
이것이 바로 생멸의 법칙이다[是生滅法]”

이 절반의 게송을 말하고 고행자 앞에 서있는데, 얼굴은 험상스럽고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사방을 노려보았다.

고행하던 이는 이 절반의 게송을 듣고 마음이 대단히 기뻤으니 마치 장사치가 험난한 길에서 밤에 동행을 잃고 여러 곳으로 찾아다니다가 동무를 만나서 기쁜 마음으로 한량없이 뛰노는 듯하였다. 또는 오래 앓던 이가 용한 의원과 간호할 사람과 좋은 약을 만나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만난 듯하며, 바다에 빠진 이가 배를 만난 듯 목마른 이가 찬물을 만난 듯, 원수에게 쫓기다가 벗어난 듯, 오래 갇혔던 사람이 놓여난 듯, 농사꾼이 오랜 가뭄에 비를 만난 듯 길 떠났던 사람이 집에 돌아오자 가족들이 보고 기뻐하는 듯하였다.

선남자야,, 내가 그때 절반의 게송을 듣고 마음에 기쁘기가 그와 같아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머리카락을 거두어 들고 사방을 살펴보면서 지금 들려준 게송을 누가 말한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나찰만이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누가 이러한 해탈의 문을 열었으며 누가 능히 모든 부처님들의 음성을 우레처럼 우렁차게 외쳤는가? 나고 죽는 잠꼬대에서 누가 혼자 깨어 이런 게송을 읊었는가? 생사에 흉년 든 중생에게 누가 위없는 도의 맛을 보여 주었는가? 한량없는 중생이 나고 죽는 바다에 헤매는데 누가 능히 이 속에서 뱃사공이 되었는가? 모든 중생들이 번뇌의 중병에 걸렸는데, 누가 용한 의원이 되었는가? 이 절반의 게송을 말하여 나의 마음을 깨우쳐주니 마치 반쪽 달이 연꽃을 점점 피게 하는 듯하구나.’

선남자야, 그때 나는 아무도 볼 수가 없었고 나찰만이 보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저 나찰이 게송을 말하였는가?’ 하였다. 다시 의심하기를 ‘그는 이런 게송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 나찰은 형상이 저렇게 흉악한데 만일 이런 게송을 들었으면 모든 흉악하고 무서운 모양이 없어졌을 것이다. 어찌 저런 모양으로 이런 게송을 말할 수 있겠는가? 불 속에는 연꽃이 날 수 없으며 햇빛에서는 찬물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지혜가 없구나. 이 나찰이 혹시 지나간 세상에서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께 이런 게송을 들었는지도 알 수 없지 않은가? 내가 한번 물어봐야겠다’ 하고 나찰이 있는 데로 나아가서 이렇게 물었다.

‘대사(大師)여,그대는 어디에서 지나간 세상 두려움을 떠난 이가 말씀하신 절반의 게송을 얻었는가? 대사여, 그대는 어느 곳에서 이러한 반쪽 여의주를 얻었는가? 대사여, 이 절반의 게송의 뜻은 진실로 지나간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의 여러 부처님의 바른 도리이며, 모든 세간의 한량없는 중생이 항상 여러 가지 소견의 그물에 싸였으니 일생을 두고도 외도의 법에서는, 세상을 뛰어나서 10력(力)1)을 가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공한 이치를 얻어 들을 길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물었더니 나찰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대바라문이여, 그대는 나에게 이 뜻을 묻지 마시오. 왜냐하면 나는 먹지 못한 지가 여러 날이 되었소. 여러 곳으로 먹을 것을 구하려고 하였으나 구하지 못하여 지금은 기갈이 심하고 정신이 어지러워 헛소리를 한 것이고 나의 본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기 때문이오. 지금 나의 근력이 허공으로 날아다닐 수만 있으면 울단월2)이나 천상에까지 다니면서 먹을 것을 구하련만 그렇게도 할 수 없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오.’

선남자야, 내가 그때 또 나찰에게 말하였다.

‘대사여, 그대가 나에게 그 게송을 마저 일러주면 나는 일생 동안 그대의 제자가 되겠소. 대사여, 그대가 말한 절반의 게송은 글로도 끝나지 않았고 뜻으로도 끝난 것이 아닌데, 무슨 인연으로 마저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이오? 재물로 보시하는 일은 다할 때가 있지만 법으로 보시하는 인연은 다하지 않는 것이오. 법으로 보시함은 다함이 없고 이익이 많은 것이오. 내가 지금 그 반구 게송 법문을 듣고 마음으로 한편 놀라고 한편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지금 나의 의심을 풀어주시오. 그 게송을 마저 말하면 나는 평생을 두고 그대의 제자가 되겠소.’

나찰이 대답하였다.

‘그대는 지나치게 꾀가 있어서 제 일만 생각하고 남의 사정은 모르는구려. 나는 참으로 배가 고파서 말할 수가 없소.’

내가 곧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먹는가?’

나찰이 대답하였다.

‘그대는 묻지도 마시오. 내가 만일 말을 하면 여러 사람이 두려워 할 것이오.’

그래서 내가 또 말하였다.

‘여기는 우리 두 사람뿐이고 다른 이가 없지 않소? 나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찌하여 말하지 않는 것이오?’

나찰이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더운 살이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끓는 피요. 나는 복이 없어서 이런 것만 먹게 되었는데, 아무리 구하여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도 많지만 모두 복덕이 있고 아울러 천신들이 수호하고 있으니 나의 힘으로는 죽일 수가 없습니다.’

선남자야, 나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그 나머지 절반의 게송을 마저 말하여 준다면 나는 그 게송을 듣고 나서 이 몸으로 당신에게 공양하겠소. 대사여, 설사 내가 더 살다가 목숨이 다하여 죽더라도 이 몸은 다시 소용이 없소. 필경에는 호랑이나 늑대나 올빼미ㆍ독수리ㆍ부엉이 따위의 밥이 되어 조그만 복도 짓지 못할 것이므로, 나는 지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연약한 몸을 버리고 견고한 몸으로 바꾸려 하오.’

나찰이 또 대답하였다.

‘그대의 그런 말을 누가 믿겠소? 여덟 글자를 위하여 아끼는 몸을 버리겠다고 하는 것을.’

선남자야, 내가 곧 대답하였다.

‘그대는 참으로 지혜가 없소.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질그릇을 주고 7보 그릇을 얻으려는 것처럼, 나도 보잘것없는 이 몸을 버리고 금강 같은 몸을 얻으려는 것이오. 그대는 ’누가 믿겠느냐?‘ 하지만 내가 지금 증거를 세우겠소. 대범천왕ㆍ석제환인ㆍ사천왕들이 모두 이 일을 증명하고, 또 천안통을 얻은 보살로서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려고 대승행을 닦아서 6바라밀을 구족한 이들도 증명하실 것이고, 또 시방세계에 계시는 부처님께서도 중생을 이익 되게 하려는 이들이 내가 지금 여덟 글자를 듣기 위하여 생명을 버리려 하는 것을 증명하시는 것이오.’

나찰이 다시 말하였다.

‘그대가 만일 몸을 버리겠다면 그대에게 나머지 반 구의 게송을 말할 것이니 자세히 들으시오.’

선남자야, 그때 내가 그 말을 듣고는 기쁜 마음으로 몸에 둘렀던 사슴 가죽을 벗어서 나찰에게 설법하는 자리로 깔아 놓고 말하였다.
‘화상이시여,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

나는 그 앞에 합장하고 꿇어앉아 말하였다.

‘원하옵니다. 화상이시여, 나를 위하여 나머지 반 구의 게송을 말씀하셔서 구족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나찰은 즉시 게송을 말하였다.

태어나고 죽는 생멸(生滅)이 없어지고 나면[生滅滅巳]
없어진 자리에, 적멸(寂滅)은 그대로 즐거움이다.[寂滅爲樂].3)

그때 나찰이 이 게송을 읊고 다시 말하였다.

‘보살마하살이여, 그대가 지금 게송의 뜻을 구족하게 들었으니 그대의 소원은 다 만족하였소. 만일 중생을 이익하게 하려면 그대의 몸을 나에게 주어야 하오.’

선남자야,내가 그때 게송의 뜻을 깊이깊이 명심하고 그런 뒤에 각처에 있는 돌과 벽과 나무와 길에 이 게송을 써놓고 몸에 입었던 옷을 다시 정돈하여 죽은 뒤에라도 살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높은 나무로 올라갔다.

그때 나무 신이 또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내가 대답했다.

‘나는 몸을 버려서 게송 들은 값을 갚으려고 하는 것이오.’

나무 신은 물었다.

‘그 게송이 무슨 이익이 있는가?’

내가 대답했다.

‘이 게송은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에 계시는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법이 공한 도리를 말한 것인데, 나는 이 법을 위하여 몸과 목숨을 버리려는 것이고 이양이나 명예나 재물이나, 전륜성왕ㆍ사천왕ㆍ석제환인ㆍ대범천왕이나 인간ㆍ천상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며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이 몸을 버리는 것이다.’

선남자야, 나는 몸을 버리려 하면서 또 이런 말을 하였다.

‘바라건대 여러 간탐하고 인색한 사람들은 모두 와서 내가 몸을 버리려는 것을 보아라. 또 조금만 보시하고 뽐내는 사람들도 와서 내가 지금 한 구의 게송을 위하여 생명 버리기를 초개같이 하는 것을 보아라.’

나는 그때 이 말을 마치고 곧 손을 놓고 나무 아래로 몸을 던졌다. 떨어지는 몸이 땅에 닿기 전에 허공에서 가지가지 소리가 나며 그 소리가 아가니타천4)까지 들렸다.

그때였다. 나찰이 제석의 몸으로 돌아가 공중에서 나의 몸을 받아서 평지에 내려놓으니 석제환인과 여러 천신과 대범천왕이 나의 발에 예배하고 찬탄하였다.

‘장하여라, 당신은 참으로 보살입니다. 한량없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려고 캄캄한 무명 속에서 법의 횃불을 켜려고 하는데, 내가 여래의 큰 법을 아끼느라고 당신을 시끄럽게 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지은 죄를 참회하는 정성을 받아 주십시오. 당신은 반드시 오는 세상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 그때 저희를 제도하여주십시오.’

그리고는 석제환인과 하늘 대중들은 나에게 예배하여 하직하고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선남자야, 내가 지난 옛적에 반 구의 게송을 위하여 이 몸을 버린 인연으로 12겁을 초월하여 미륵보살보다 먼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던 것이다.

담무참, 『대반열반경』 14권 「성행품」5)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16]

나에게 목숨보다 귀한 것은 무엇인가?

안녕하세요,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입니다.

오늘은 『대반열반경』에 전해지는 감동적인 전생담 ― “게송 반 구절을 얻기 위해 몸을 버린 보살의 이야기”입니다.

옛날, 설산 깊은 곳. 한 수행자가 고행하며 단 한 마디의 진리, 깨달음의 한 구절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의 신 제석천(帝釋天, 천상 세계의 주재자)이 그 수행자의 마음을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석천은 무서운 형상의 나찰(羅刹, 사람을 잡아먹는 괴력난신)로 변해 나타나, 맑은 음성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게송의 반 구절을 읊었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諸行無常].”

“이것이 곧 생멸의 법칙이다[是生滅法].”

이 게송은 불교에서 널리 알려진 열반경 사구게 가운데 앞의 두 구절입니다.

순간, 수행자의 마음은 벅찬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긴 가뭄 끝 단비를 만난 농부처럼, 바다에서 구명선을 만난 사람처럼.

그는 간절히 청했습니다.

“나머지 반 구절을 들려주십시오. 평생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그러자 나찰이 말했습니다.

“나는 너무 굶주려 말할 힘이 없다. 사람의 살과 피가 아니면 살 수가 없소.”

수행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몸을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짐승의 밥이 될 이 몸, 차라리 진리의 게송을 듣고 바치겠습니다.”

나찰이 비웃듯 물었습니다.

“고작 여덟 글자를 위해 네 몸을 버리겠다는 것이냐?”

수행자는 굳건히 답했습니다.

“질그릇을 버리고 보배 그릇을 얻듯,

이 보잘것없는 몸을 버리고 진리의 금강 같은 몸을 얻고자 합니다.”

마침내 나찰은 나머지 반 구절을 전했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생멸이 다하면[生滅滅已],

그 자리에 적멸(寂滅, 모든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상태)이 있고,

그것이 곧 참된 즐거움이다[寂滅爲樂].”

이것이 바로 열반의 진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궁극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수행자는 그 게송을 가슴 깊이 새긴 뒤, 높은 나무에 올라 외쳤습니다.

“보라! 한 구절의 진리를 얻기 위해 나는 이 몸을 버린다!”

그는 몸을 던졌고, 대지가 흔들리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습니다.

그 순간 나찰은 본래의 제석천 모습으로 돌아와 그의 몸을 받들며 찬탄했습니다.

“장하도다! 진리를 위해 몸을 버린 그대야말로 참된 보살이로다.

그대는 반드시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보살은 진리 반 구절을 위해 목숨마저 내려놓았습니다.

그 불타는 서원이 오늘 우리에게도 빛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하루를 살고 있는가?

내 마음에서 가장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삶은 작은 이익이나 순간의 편안함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보살이 온몸으로 진리를 품었듯,

우리도 작은 집착 하나 내려놓을 때,

그 자리가 곧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로 채워집니다.

오늘, 작은 실천 하나가 세상을 밝히는 불씨가 됩니다.

오늘 경전산책이 마음에 울림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알림 설정까지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이 지혜의 여정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다음 시간에도 부처님의 깊은 말씀과 감동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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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썸네일 문구 제안: 목숨보다 귀한 건… 진리 한 구절이었다


1) 여래에게만 속하는 열여덟 가지 공덕법[十八不共法] 가운데 첫 열 가지 항목. 초기불교 때부터 여래가 지닌 지혜에 의해서 생기는 여래의 고유한 능력을 말한다.

2) 수미산 북쪽에 있는 세계의 이름이다. 남쪽에 있는 것이 염부제(閻浮提, Jambudvipa, 섬부주(贍部洲)), 북쪽이 울단월(鬱單越, Uttarakuru, 구로주(俱盧洲)), 동쪽이 불파제(弗婆提, Purvavideha, 승신주(勝身洲)), 서쪽이 구야니(瞿耶尼, Avaragodaniya, 우화주(牛貨洲))이다.

3) ‘열반경’ 4구게다. 어떻게 해야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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