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비구들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옛날 어느 한 나라에 왕이 있는데, 이름은 경면(鏡面)이었다. 그 경면왕은 일찍이 어느 때에 여러 시각장애인을 보며 장난삼아 즐기고자 하여, 곧 칙명을 내려 널리 국내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알려서 모두 모이게 하였다.시각장애인들이 모이자 왕은 그들에게 이렇게 물었다.‘너희 시각장애인들은 코끼리의 생김새를 잘 아느냐? 그 모양이 어떻든가?’그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한결같은 소리로 대답하였다.‘천왕이시여, 우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참으로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지 못합니다.’그러자 왕이 다시 말하였다.‘너희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코끼리에 관해 알지 못하였다면 지금이라도 코끼리의 형상을 알고 싶지 않느냐?’그때 그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다시 같이 대답하였다.‘천왕이시여, 우리는 정말로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왕의 은혜를 입는다면, 어쩌면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경면왕은 즉시 명령을 내려 코끼리 조련사를 불러서 말하였다.‘그대는 속히 나의 코끼리가 있는 우리에 가서 코끼리 한 마리를 내 앞으로 몰고 와서 여러 시각장애인들에게 보이라.’그때 코끼리 조련사는 왕의 칙명을 받고, 즉시 코끼리를 몰고 와서 왕의 궁 앞에 놓고 여러 시각장애인들에게 말하였다.‘이것이 코끼리입니다.’그때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각각 손으로 그 코끼리를 만졌다.그때 코끼리 조련사는 다시 여러 시각장애인들에게 말하였다.‘그대들은 코끼리를 만져 본 뒤에 사실대로 왕에게 아뢰십시오.’그러자 여러 시각장애인 중에 어떤 이는 코를 만졌고, 어떤 이는 어금니를 만졌고, 어떤 이는 귀를 만졌고, 어떤 이는 머리ㆍ목ㆍ등ㆍ갈비ㆍ꼬리와 다리의 여러 신체 부분을 만지고 더듬었다.
그때 왕이 물었다.‘시각장애인인 너희들은 코끼리 생김새를 이미 알았느냐?’여러 시각장애인들이 함께 왕에게 대답하였다.‘천왕이시여, 저희들은 이미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았습니다.’그때 왕이 다시 물었다.‘너희 시각장애인들이 만약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았다면, 코끼리는 어떤 모양이더냐?’그때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제각기 왕에게 아뢰었다.‘천왕이시여, 코끼리의 모양은 마치 동아줄과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의 모양은 말뚝과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키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항아리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는 집의 들보와 같습니다.’
‘천왕이시여, 코끼리는 용마루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대자리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절구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는 비와 같습니다.’‘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천왕이시여, 코끼리 모양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그러자 왕은 여러 시각장애인들에게 말하였다.‘너희들은 코끼리인지 코끼리가 아닌지도 모르면서 하물며 코끼리의 모양을 알 수 있겠느냐?’그때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각자 자기를 고집하며 서로 다투었는데, 저마다 손으로 그 얼굴들을 막고 서로 옳다고 말씨름하면서 상대를 헐뜯으며 각각 말하였다.이때 경면왕은 그 시각장애인들이 이렇게 다투는 것을 보고 크게 웃으면서 즐거워하고 좋아했다.왕은 그때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들 여러 시각장애인들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멋대로 이 일에 관해 서로 다투지만일찍이 가르쳐 말해 준 이 없었으니어떻게 코끼리의 몸을 알 수 있으리요.’
비구들아, 정말로 그러하니, 세간의 여러 사문과 바라문들도 그와 같아서 이미 진실하게 괴로움의 진리, 괴로움의 원인인 집(集)의 진리, 사라짐[滅]의 진리, 도(道)의 진리를 알지 못하였다. 이미 진실하게 알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다투고 생사를 헤매면서 서로 헐뜯고 서로 욕질을 한 줄 알아야 한다. 이미 다툼질하고 고집부리기를 쉬지 않으며, 각각 손으로 그 얼굴을 스스로 막는 것이 마치 저 여러 시각장애인들이 함께 서로 시달리고 어지럽히는 것과 같다.”
사나굴다(闍那崛多) 등 한역, 『기세경(起世經)』 제5권 『불설장아함경』 19권 「세기경(世記經)」, 『육도집경(六度集經)』 8권 「경면왕경(鏡面王經)」, 담무참 한역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2권, 『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 1권에도 실려 있다. 임금은 여래ㆍ정변지에 비유하고 대신은 방등의 대열반경에 비유하고 코끼리는 불성에 비유하고 소경들은 모든 무명 중생에게 비유하였다.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4]
내가 본 것이 전부일까?
— 코끼리를 만진 사람들
안녕하세요.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다 알아.”
“그건 이미 판단이 끝난 문제야.”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부분을 보고 전체를 안다고 믿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깊은 무명(無明)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기세경(起世經)』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 전해지는
아주 유명한 비유,
‘코끼리를 만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다시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 비유는 동아시아에서 ‘군맹무상(群盲撫象)’, 곧 보지 못하는 이들이 코끼리를 더듬는다는 뜻의 사자성어로 전해집니다.
옛날, 한 나라에 경면왕(鏡面王)이라는 임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은 앞을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장난삼아 시험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고 있느냐?
그 모양이 어떻든가?”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전하, 저희는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였으니
코끼리의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왕은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알고 싶지 않느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왕은 코끼리 한 마리를 궁 앞으로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손으로 만져 보고, 사실대로 나에게 말해 보아라.”
어떤 이는 코를 만졌고,
어떤 이는 상아를,
어떤 이는 귀를,
어떤 이는 다리를,
어떤 이는 등을,
또 어떤 이는 꼬리를 만졌습니다.
왕이 묻자,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예, 전하. 이제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코끼리는 모두 달랐습니다.
“동아줄 같습니다.”
“아닙니다, 말뚝입니다.”
“아닙니다, 키와 같습니다.”
“아닙니다, 항아리입니다.”
“아닙니다, 집 들보입니다.”
“아닙니다, 용마루입니다.”
“아닙니다, 대자리입니다.”
“아닙니다, 절구입니다.”
“아닙니다, 빗자루입니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만진 곳만을 옳다며 서로 다투자,
경면왕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조롱이 아니라,
부분만 보고도 전부를 안다고 믿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한눈에 본 데서 나온 씁쓸한 웃음이었습니다.
서로가 모두 조금씩만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기 주장만 옳다고 고집하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너희는 코끼리인지도 모르면서,
어찌 그 모습을 안다고 말하느냐?”
그리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너희들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멋대로 이 일에 관해 서로 다투지만
일찍이 가르쳐 말해 준 이 없었으니
어떻게 코끼리의 몸을 알 수 있으리요.”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아, 세상의 사문과 바라문들도 이와 같다.
삶이 왜 괴로운지,
그 괴로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서로 다투고 헐뜯으며 끝없는 생사 속을 헤맨다.”
부분만 보고,
자기가 만진 것만이 전부라 믿으며
서로를 부정하고 싸우는 모습은
바로 이 이야기 속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말합니다.
모든 중생은 진리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각자 자기 경험과 생각에 따라
“내가 옳다”고 믿으며 살아간다고.
즉, 사람마다 자기만의 부처님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 모습이
바로 코끼리를 만지는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입니다.
만약 그들 중 한 사람이 눈을 떠 코끼리 전체를 보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잘못 보았는지를 먼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뉴스 한 줄, 영상 한 장면,
누군가의 말 한 토막만 보고
사람을 단정하고,
세상을 재단하고,
서로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진실은 더 멀어집니다.
그렇게 굳어진 마음이
진실을 외면하는 습관이 되고,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편견이 되어
결국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사는 사회까지도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부처님의 진리이자, 우리 안에 깃든 불성(佛性)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듬는 사람들은 어둠 속을 헤매는 우리 자신입니다.
코끼리는 하나인데,
우리 또한 각자 다른 부분만 만지며
그것이 전부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요?
진리는 하나이지만,
우리는 아직 부분만 보고
스스로를 다 안다고 믿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조금 더 멈추어 보고,
조금 더 들어 보고,
조금 더 넓게 바라보는
하루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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