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11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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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산책 11]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의 출가이야기 『경률이상』 제7권과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17권, 『사분율』 34권, 『불본행집경』 등에도 라훌라의 출가 이야기가 전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목건련(目犍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가비라성에 가서 나의 아버지 정반왕(淨飯王)과 이모 파사파제(波闍波提) 마하파자파티(Mahāpajāpatāī)라고도 하며, 카필라성 정반왕(슈도다나왕)의 왕비로, 석가의 생모 마야 왕비의 동생이다. 석가를 매우 사랑하여 석가의 출가를 누구보다도 슬퍼하였다. 불교 교단 최초의 비구니가 된 그는 나이가 많았음에도 항상 계율을 지켜 다른 비구니들의 모범이 되었다.
 부인과 그리고 곡반왕(斛飯王) 가비라국(迦毗羅國)의 임금이던 사자협왕(師子頰王)의 셋째 아들. 정반왕(淨飯王)의 둘째 아우. 여래(如來)의 숙부. 곡반왕의 맏아들은 마하남(摩訶男)이고, 작은 아들은 아나율(阿那律)이다.
 등 세 분의 숙부에게 문안하고 또 라훌라(羅睺羅)의 어머니 야쇼다라[耶輸陀羅] 야쇼다라(Yasodharā)는 석가모니 부처가 출가하기 전 싯다르타라는 이름으로 샤카국 왕자로 머무르고 있었을 때 그의 아내로, 싯다르타와의 사이에서 라훌라를 낳았다. 석가모니 부처 성도 이후 그에게 귀의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
를 위로하고 깨우쳐서 은혜와 애정을 끊고 라훌라를 출가케 하여, 사미(沙彌) 불교교단에 처음 입문하여 사미십계를 받았지만, 아직 정식 승려가 받는 구족계는 받지 못하고 수행하는 남성 출가자를 말한다. 불교 교단 최초의 사미는 석가모니의 아들인 라훌라(Rahula)이다.
가 되어 성도(聖道)를 배우도록 하여라.
왜냐하면 모자(母子)의 사랑은 즐겁기가 잠깐인데,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면 어미와 자식은 서로 알지도 못하고 아득하고 캄캄한 채 영원히 이별하여 만 가지의 고통을 받으리니, 그때 후회한들 무엇 하겠느냐. 라훌라가 도를 얻으면 반드시 어머니를 제도하여 영원히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의 근본을 끊고 열반에 이르게 할 것이니, 마치 오늘의 나와 같을 것이니라.”
목건련은 분부를 받들고 곧 선정(禪定)에 들어갔는데, 마치 역사(力士)가 팔 하나를 굽혔다 펴는 듯한 짧은 순간에 가비라성 정반왕에게 이르러 여쭈었다.
“세존께서 간절히 물으셨나이다. 기거하심이 경쾌하시며 기력이 평안하시옵니까? 그리고 대부인 파사파제 부인과 세 분의 숙부, 곡반왕들에게도 역시 문안을 여쭈시라 하셨습니다.”
그때 야쇼다라는 부처님께서 왕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 시종을 보내어 소식을 살펴보게 하니 시종이 돌아와서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사자를 보내시어 라훌라 아기를 데려다가 사미를 만들겠다고 하시더이다.”
야쇼다라는 이 소식을 듣고 곧 라훌라를 데리고 높은 다락에 올라가서 감관(監官)에게 명령하여 모든 문들을 걸어 닫고 견고하게 숨게 하였다.
그때 목건련이 태자궁 문 앞에 이르렀지만 들어갈 수도 없고 또 소식을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곧 신통력으로써 높은 다락까지 날아올라 야쇼다라가 앉은 자리 앞에 우뚝 섰다. 야쇼다라는 목건련이 온 것을 보고 기쁨과 근심이 엇갈리어 어찌할 줄 모르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절하며 문안드렸다.
“먼 길을 지나오시니 얼마나 수고로우셨습니까?”
목건련에게 자리를 권하여 앉게 하고 다시 물었다.
“세존께서는 안녕하시며 중생을 교화하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십니까? 그런데 스님을 보내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목건련이 여쭈었다.
“태자 라훌라께서 나이 이미 아홉 살이니, 응당 출가하여 성도(聖道)를 배우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자(母子)의 사랑이 잠시 동안은 좋은 듯하지만 하루 아침에 목숨이 다하여 3악도에 떨어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캄캄하고 아득한 가운데 어머니는 아들을 모르고 아들은 어머니를 모르게 되옵니다. 라훌라가 도를 얻으면 반드시 어머니를 제도하여 영원히 생ㆍ노ㆍ병ㆍ사를 떠나 열반에 이르게 할 것이니. 지금의 부처님과 같게 되실 것이옵니다.”
야쇼다라가 목건련에게 대답하였다.
“석가여래께서 태자로 계실 때에 나를 맞아 아내로 삼으시어, 태자를 받들어 섬기기 천신(天神)을 모시듯 하여 한 번의 실수도 없었거늘 부부가 된 지 3년도 못 되어 다섯 가지 욕망을 버리시고 궁성의 담을 날아 넘어 왕의 밭(王田)으로 달아나 버리셨습니다.
부왕께서는 빨리 돌아오시기를 바랐지만 어기고 좇지 않았으며, 차닉(車匿) 범어로는 Chandaka, Chanda. 원래는 석가족의 노예의 아들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할 때에 흰 말을 끌고 간 마부(馬夫)의 이름이다. 석존께서 성도후 고향을 방문했을 때 출가한다. 성격이 고만하고 거칠었다고 하며, 부처님 열반시에 실단죄(悉檀罪:누구도 말 상대가 되어 주지 않는 죄)에 처해졌다고 한다.
과 백마(白馬)만을 보내시고 자신은 도를 이루어야 돌아오리라 서원하셨습니다. 사슴의 가죽을 입으시니 마치 미친 사람과 같았고, 산에 숨어서 6년 동안 고행을 쌓아 부처를 이루시고 돌아오셔서는 도무지 가까이하지 않으시니, 옛날의 은혜와 애정을 잊은 것이 길가는 사람보다 더하였습니다. 부모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 기거하시니 우리들 모자는 외로움과 궁색만을 지킬 뿐 삶의 보람은 없었습니다. 오직 죽고 싶기만 하였지만 사람의 목숨이 소중한 것이어서 마침내 스스로가 끊지 못하고 독기와 원한을 품은 채 억지로 생명을 유지하니 비록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었어도 축생(畜生)만도 못하였습니다. 이런 재앙에 다시 재앙이 덮치니, 어찌 이러할 수 있으리까.
이제 다시 사자를 보내시어 나의 아들을 데려다가 그의 권속을 삼겠다고 하시니 어쩌면 이다지 가혹하십니까. 태자께서는 도를 이루시고 스스로 자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자비라면 응당 중생을 안락하게 해야 할 것이거늘 이제 도리어 사람의 모자를 헤어지도록 하시는군요. 괴로움 가운데 더욱 심한 것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만 한 것이 없는데, 이번 일로 미루어 보건대 무슨 자비가 있다 하겠습니까. 목건련이여, 돌아가시거든 세존께 나의 말을 여쭈어 주십시오.”
그때 목건련은 방편과 여러 가지 인연으로 마땅한 이치에 따라 두 번 세 번 거듭 권하고 깨우쳤지만 야쇼다라는 끝내 허락할 뜻이 없었다. 물러나와 다시 정반왕에게 가서 앞서 일을 자세히 아뢰니,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마하파자파티 부인을 불렀다.
왕이 부인에게 말하였다.
“우리의 아들 싯다르타 불교의 교조(敎祖)이자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 고타마가 성씨이며 싯다르타가 이름이다. 싯다르타는 그의 아버지가 지은 이름으로 “소원성취” 혹은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호칭 석가모니는 ‘샤캬무니’를 음역한 것으로 ‘샤캬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또한 ‘깨달은 자’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붓다(佛陀, 불타),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라고도 칭한다.
가 목건련을 보내어 라훌라를 데려다가 도를 들어 성스러운 법을 배우게 하려 하는데, 야쇼다라는 여자인지라 어리석어서 법요(法要)를 알지 못하고, 마음과 뜻이 굳은 까닭에 사랑에 얽매어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그대는 그에게 가서 거듭 타일러 그의 마음이 열리도록 하시오.”
그때 대부인이 5백 명의 시종을 거느리고 야쇼다라가 거처하는 궁전에 이르러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적당히 타이르기를 두세 번 거듭하였지만 야쇼다라는 여전히 듣지 않고 부인께 여쭈었다.
“제가 집에 있을 때에 여덟 나라의 왕들이 다투어서 저를 맞아가려 했건만 부모님께서 모두 허락하시지 않은 것은 석가 태자의 재주가 여러 사람보다 뛰어났던 까닭이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저의 배필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태자가 그때부터 세상에 있지 않고 출가하여 수도할 것을 생각하셨다면 무슨 까닭에 간절히 저를 구했습니까? 대체로 사람들이 부인을 맞는 것은 바로 사랑과 영화를 위한 것이옵니다. 모여서 즐거워하고 만세에 대를 이어가면서 자손이 끊이지 않게 하여 종실(宗室)의 혈통을 잇는 것은 세상의 바른 예절입니다. 태자는 이미 갔거니와 다시 라훌라까지 출가시켜 도를 배우게 하여 영원히 나라의 대를 잇는 것을 끊으면 무슨 이로운 것이 있겠나이까.”
황후는 그때 이 말을 듣고, 잠잠히 앉아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세존께서 변화한 사람을 보내시어 공중에서 말하게 하셨다.
“야쇼다라여, 그대는 지난 세상에 맹세한 일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석가여래는 그때 보살도(菩薩道)를 위하여 은전 5백 냥으로써 그대에게 다섯 송이의 연꽃을 사서 정광불(定光佛) 불교에서 과거불로, 석가모니의 전생에 수기를 준 부처이다. 산스크리트로는 Dipamkara라 하는데, 이를 의역하여 정광(定光)여래·등광(燈光)여래·보광(寶光)여래·정광(錠光)여래·연등여래라고 하며, 음역하여 제화갈라·제원갈이라고도 한다.
에게 바쳤더니, 그때 그대는 나에게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함께 부부가 되기를 간절히 구하였소.
나는 듣지 않고 그대에게 말하기를 ‘나는 보살이 되어 여러 겁 동안 원력을 수행하고, 일체를 보시하여 남의 뜻에 어긋나지 않았노라. 그대의 소원이 그러할진댄 나의 아내로 맞겠노라’ 하였더니, 그대는 선 채로 서원을 말하기를 ‘세세생생 나는 곳마다 나라와 성과 처자와 나의 몸까지 그대가 마음대로 보시하더라도 맹세코 뉘우치지 않겠다’고 하더니 이제 무슨 까닭으로 라훌라를 아껴 집을 떠나 도를 배우게 하지 않으려 하는가?”
야쇼다라가 이 말을 듣고 지난 세상이 업과 인연을 환하게 깨치니, 지난 일이 어제 본 것처럼 분명하여 아들을 사랑하는 애정이 저절로 사라졌다. 다시 목건련을 불러서 참회하고 라훌라의 손을 잡아 목건련에게 넘겨주며 아들과 이별하는 눈물을 흘리었다.
그때 라훌라는 어머니가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어머니에게 하직하는 말을 여쭈었다.
“어머니는 슬퍼하시지 마옵소서. 라후라는 지금 가서 세존께 문안 인사만 드리고 바로 돌아와서 어머님을 뵐 것입니다.”
그때 정반왕이 야쇼다라를 위로하고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곧 나라 안의 호화로운 족성(族姓)을 소집하고 말하였다.
“금륜 왕자(金輪王子)는 지금 떠나 사위국으로 가서 부처님에게 도를 배우려 하오. 경들도 모두 아들 하나씩을 보내서 나의 손자를 따르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모두 즐겁게 대왕의 명령을 받드니 잠깐 동안에 50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라훌라를 따라 부처님의 처소에 이르러 머리를 숙여 절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시켜 라훌라와 그들 50명의 머리를 깎으니 모든 공자ㆍ왕자들이 사문이 되었다. 사리불에게 명령하여 화상(和尙) 화상(和尙)은 옆에서 시봉해야 할 은사(恩師)스님 및 친교사(親敎師)로 경전을 가르치는 스승을 말한다.
을 삼고 대목건련으로 아사리(阿闍梨)1) 아사리(阿闍梨)는 규칙 · 규범을 가르치는 모범적인 스승이라는 뜻에서 궤범사(軌範師)라고도 하며, 바른 행동을 보여준다 하여 정행(正行)이라 하기도 한다. 승려의 교육을 담당하는 승가의 스승을 총칭하는 말이다.
를 삼아 10계를 주어 사미(沙彌)가 되게 하였다.
담경(曇景), 『불설미증유인연경(佛說未曾有因緣經) 이 경은 부처님과 그의 부인ㆍ부모ㆍ아들이 모두 과거로부터 대단히 깊은 인연[未曾有因緣]이 있었음을 현대 소설과 같은 표현으로 잘 엮고 있다.』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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