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1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1

📩 오늘, 부처님은 어디에서 나를 만나고 계실까요?
절에서, 사람 속에서,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잠시 멈추어,
그 뜻을 함께 들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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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산책 41]
여래의 세 가지 몸 – 화신(化身) 응신(應身) 법신(法身)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영축산 꼭대기에 계셨다.
그때 허공장(虛空藏)보살마하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는 합장하고 공경하며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부처님의 매우 깊고 비밀한 법을 어떻게 닦아 행하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선남자야,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사유하고 기억하라. 내가 그대를 위해 분별하여 해설해 주겠노라.
선남자야, 모든 여래에게는 세 가지 몸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화신(化身)이고, 둘째는 응신(應身)이며, 셋째는 법신(法身)이니라. 이러한 세 가지 몸이 구족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받아 지닌다. 만일 이것을 똑똑히 안다면 생사의 윤회에서 재빨리 벗어나리라.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화신을 똑똑히 아는 것인가?
선남자야, 여래는 옛날 수행하는 단계에 있을 때 온갖 중생을 위하여 가지가지 법을 닦았다. 이렇게 닦아 익혀서 수행이 원만해졌을 때 닦아 익힌 힘으로 인해 큰 자재를 얻었고, 자재의 힘으로 인해 중생의 마음과 중생의 행과 중생의 경계를 그대로 모두 다 알아 분별할 수 있었으며, 때를 기다리지도 않고 때를 놓치지도 않고 곳에 맞게, 또 때에 맞게, 행에 맞게, 설하는 법에 맞게 여러 가지 몸을 나타내었으니, 이것을 화신(化身)이라 한다.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이 응신을 똑똑히 아는 것인가?
이른바 모든 여래께서는 보살들이 모든 것을 통달하도록 진제(眞諦) 승의제(勝義諦), 또는 제1의제(第一義諦)라고도 한다. 진은 진실무망(眞實無妄), 제(諦)는 의(義)의 뜻이다. 세간법(世間法)을 속체(俗諦), 출세간법(出世間法)을 진제(眞諦)라 이름한다.
를 말씀하신다. 그들로 하여금 생사와 열반이 한 맛[一味]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신견(身見) 오온(五蘊)이 일시적으로 화합한 신체를 영원히 존재하는 주체인 ‘나’로 생각하고, ‘나’에 따른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이다.
을 가진 중생의 두려움과 기쁨을 없애기 위하여, 가없는 불법을 위한 그 바탕을 짓기 위하여, 실상 그대로 여여(如如)와 여여의 지혜[如如智] 불교 용어로서 ‘여여(如如)’는 흔들림 없이 고요하고 변함없는 진리의 본질을 의미하며, ‘여여의 지혜(如如智)’는 이 여여한 본질을 깨달은 지혜를 가리킨다.
에 상응하려는 근본 원력 때문에 이 몸을 나타내게 되는데, 32상과 80종호를 갖추고 등 뒤에는 둥근 광명을 갖춘다. 이것을 응신(應身)이라고 한다.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법신을 똑똑히 아는 것인가?
모든 번뇌 등의 장애를 없애 버리고 모든 착한 법을 갖추고는 오직 여여(如如)와 여여의 지혜[如如智]만을 가지는데, 이것을 법신(法身)이라 한다.
앞의 두 가지 몸은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하는 것이라면, 이 세 번째 몸은 참으로 진실하게 있다는 것이고, 앞의 두 몸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의 여여(如如)를 여의고 분별없는 지혜[無分別智] 무분별은 分別(분별)의 반대개념이며, 분별이란 나누고 분리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분별이란 앎(知)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를 떠나서는 어떤 부처님에게도 별다른 법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은 지혜를 갖추고 온갖 번뇌를 죄다 끊어 청정한 부처님의 지위를 얻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법의 여여(如如)와 여여의 지혜[如如智]는 모든 부처님의 법을 포섭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해와 달이 분별이 없고, 또한 물과 거울이 분별이 없고, 광명이 또한 분별이 없어서 세 가지가 화합하여 그림자가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마찬가지로 법의 여여(如如)와 여여의 지혜[如如智]도 분별이 없이 원력의 자재를 쓰는 까닭에 중생들이 응화신(應化身)을 나타낸다고 느끼는 것은, 해와 달의 그림자가 화합하여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은 세 가지 몸은 어떤 의미에서는 영원하다[常]고 말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무상하다[無常]고 말한다. 화신은 언제나 법륜을 굴리면서 곳곳에서 인연을 따라 나타나면서 방편에 의해 계속되고 끊어지지 않으므로 영원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근본이 아니기 때문에 큰 활용을 갖추었으되 전부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무상하다고 말한다.
응신은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계속하여 끊어짐이 없었고, 모든 부처님의 불공(不共) 불공(不共)은 ‘함께 하지 않는다’ 또는 ‘공통되지 않다’는 뜻으로, 주로 불교 용어로 사용되어 부처님만이 가진 특별한 덕성을 나타낼 때 쓰인다.
의 법을 잘 거두어 갖기 때문에 중생이 다함이 없고 용(用) 체는 근원(根源)이고, 용은 현상(現象)을 말한다.
도 다함이 없다. 그러므로 영원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근원이 아니므로 용(用)을 갖추었으되 전부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무상하다고 말한다.
법신은 행법(行法) 행법은 부처님께 응답하기 위한 수행 방법을 말한다.
도 아니요, 다른 모습이 없고, 근본인 까닭에 마치 허공과 같다. 그러므로 영원하다고 말한다.
의정(義淨) 한역,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 줄여서 『최승왕경』, 『금광명최승제왕경』이라고도 한다. 이 경은 사천왕을 비롯한 여러 천신(天神)과 선신(善神)들이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준다는 내용을 설하였다. 경전의 내용 중에, “만약 왕이 부처님 법을 보호하고 널리 편다면 많은 공덕을 얻게 된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보고서 불교를 믿게 된 왕이 늘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경이다.
 2권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1]
여래의 세 가지 몸 – 화신·응신·법신
안녕하세요.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입니다.
절에 가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은 한 분인데, 왜 전각마다 모습이 다를까?”
어떤 부처님은 자비로운 미소로 서 계시고,
어떤 부처님은 찬란한 광명을 두르고 앉아 계시며,
또 어떤 부처님은 모습이 아닌, 진리 그 자체로 계신 분이라 말합니다.
오늘은 이 물음에 답해 주는 아주 깊고도 따뜻한 가르침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바로 『금광명최승왕경』에 설해진
여래의 세 가지 몸, 화신·응신·법신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왕사성 영축산에 계실 때
허공장보살이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깊은 법을 닦을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남자야, 모든 여래에게는 세 가지 몸이 있느니라.
화신(化身), 응신(應身), 법신(法身).
이것을 바로 알면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리라.”
그럼, 우리 곁으로 다가오시는 부처님부터 떠올려 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마음과 형편을 모두 아시기에
그 사람에게 맞는 모습과 말로 다가오십니다.
경전에서는 이를 이렇게 설합니다.
“여래는 중생의 마음과 처지를 그대로 알고,
때와 곳과 행에 맞게 여러 가지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한다.”
이처럼 중생을 위하여 변하여 나타나는 부처님,
그분을 우리는 화신불이라 부릅니다.
힘들 때 건네는 한 사람의 위로,
막막할 때 우연히 만난 한 문장,
마음이 꺾일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인연들,
그 모두가 화신불의 모습입니다.
이번에는 절에서 마주하는 부처님의 모습으로 가 보겠습니다.
응신불은 우리가 절에서 직접 마주하는, 장엄한 모습의 부처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부처님은 정말 계신가?” “나도 과연 깨어날 수 있을까?”
이런 의심을 내려놓도록
눈으로 보고 믿을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경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진리를 깨닫고,
생사와 열반이 하나임을 알며,
집착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큰 원력으로 이 몸을 나타낸다.”
그래서 32가지 위대한 상과 80가지 거룩한 특징,
광명을 두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이러한 몸을 응신불이라 합니다.
극락전의 아미타불,
미륵전의 미륵불,
약사전의 약사여래,
관음전의 관세음보살도
응신의 성격을 지닌 분들입니다.
이제 그 모든 모습의 근원이 되는 부처님을 생각해 봅니다.
법신불은 눈에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로 계신 부처님입니다.
오고 감도 없고, 나뉨도 없으며,
허공처럼 모든 곳에 가득한 근본의 부처님입니다.
경전에서는 법신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든 번뇌를 끊고, 오직 변하지 않는 진리와 그 지혜만을 지닌 몸,
그것을 법신이라 한다.”
화신과 응신이 나타날 수 있는 뿌리도 바로 이 법신입니다.
비로자나불은 한 부처님의 근본 진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분으로,
법신불이라 불립니다.
부처님께서는 삼신의 관계를 이렇게 비유하셨습니다.
“빛을 내는 근원인 법신과,
그 빛을 받아 비추는 응신의 작용이 함께할 때,
비로소 중생에게 드러나는 화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즉, 법신은 해와 달처럼 빛의 근원이고,
응신은 그 빛을 받아 비추는 물과 거울 같으며,
화신은 그 빛이 그림자처럼 드러난 모습입니다.
셋은 서로 다른 부처님이 아니라, 한 부처님의 하나의 작용입니다.
부처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절에서 뵙는 부처님도,
지금 내 삶 속에서 만나는 인연도,
내 마음을 비추는 진리도
모두 같은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절에서는 응신불로 예경하고,
일상에서는 화신불로 알아차리며,
마음속에서는 법신불로 관하십시오.
부처님은 지금도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이 자리에도, 내가 함께 있다.”
부처님은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도,
삶 속 인연으로도,
마음을 비추는 진리로도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부처님을 믿고, 오늘도 한 걸음 깨어서 살아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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