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성 고대사 역사 칼럼

전우성 고대사 역사 칼럼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환단고기」 논란에 대하여

 

 

 

얼마 전에 「환단고기」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이제 이에 대하여 차분히 생각해 본다. 역사학자의 한 사람으로써 이에 대하여 진정으로 할 말이 많다. 결론은 핵심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동안 「환단고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선명히 구분되었다. 하나는 ‘위서’라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진서’라는 시각이다. 이에 대하여 그동안 연구한 바에 의하여 명확히 확인해 본다.

[1]

‘위서’라는 시각에 대하여 살펴보면,

이러한 역사 인식과 지식의 바탕에는,

(1)지금으로부터 80년 전 일제강점기 시기 일제 식민사학 논리인

①우리 민족의 역사는 한반도와 인근에만 존재하였고,

②BC2,333년의 고조선 건국 사실의 불확실성,

③중국 한나라의 식민기관인 한반도 평양의 낙랑군 등에 의한 영향으로 우리 고대국가 형성

(2)「환단고기」에 대한 소위 정사 기록과의 연계 및 입증 연구 확인하지 않고,

(3)일부 잘못된 기록 만에 의한 허구성 제기

(4)다른 나라의 건국신화 관대한 용인 대비 적대적 비융통성

등이 존재하고 있다.

[2]

반면에 ‘진서’라는 시각에 대하여 살펴보면,

위의 ‘위서’라는 시각과는 정 반대로,

(1)일제 식민사학과는 달리

①우리 민족의 역사는 대륙을 중심으로 한반도와 인근에 걸쳐 넓게 존재하였고,

②BC2,333년의 고조선 건국 사실은 물론 만리장성 바깥 지역의 고조선과 연계되는 ‘홍산문명’과 중국 대륙 동쪽 산동성 지역의 ‘대문구, 용산문명’에 의한 이전 시기 역사 존재

③중국 한나라의 식민기관인 낙랑군 등의 대륙 위치 사실

이러한 역사 인식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2)「환단고기」에 대한 소위 정사 기록과의 연계 및 입증 연구 확인하지 않거나, 설사 하였더라도 기존 왜곡된 역사 해석을 그대로 따라 이를 해석함으로써

①소위 환국은 멀리 파내류산(파미르 고원)부터, 천해(북해)(바이칼 호수)에 이르는 것으로 넓게 설정한 반면,

②이후 배달국, 단군조선, 북부여, 발해 등은 모두 급격히 축소된 채 한반도와 만주 일대로만 설정

함으로써 스스로 ‘위서‘ 논란을 자초하였음이 확인된다.

[3]

이에 대한 역사학자로써 「환단고기」에 대한 소위 중국 및 우리나라 정사 기록과의 연계 및 입증 연구 확인 결과,

(1)소위 삼조선이라는 환국, 배달국(환웅조선), 단군조선, 북부여, 발해(대진국)의 건국지로 「환단고기」상에 각각 기록된, 흑수, 백산, 불함산, 웅심산, 동모산 등은 모두 중국 정사 기록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전』 상의 기록인 “장성의 북쪽에 있다는 부여 동쪽의 ‘숙신-읍루-물길-말갈’ 지역”에 지금도 그 이름 그대로 존재하는 태백산, 흑수하로 확인된다.

이곳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전』 상의 진나라 만리장성으로 확인되는 하북성 보정시 서수구 수성현의 실제 연장성 및 진장성이 확인되는 위치 그 북쪽의 산서성 대동시 인근 지역이다.

이 사항은 중국 정사 기록인 『진서』, 『위서』, 『북사』, 『수서』, 『구당서』, 『신당서』 등에 의하여 입증 확인된다.

이 위치는 소위 홍산문명이 서남쪽의 산동성 대문구 문화 및 황하문명의 앙소문화로 연결되는 ‘Y벨트’ 상의 길목이다. 이곳에서는 오래 전 시기의 유적, 유물이 확인되기도 한다.

특히 환국의 건국지로 「환단고기」 상에 기록된 파내류산, 천해(북해) 역시 중국 정사 기록에 의하여 이 위치가 지금의 중국 대륙 산서성 태행산맥 위치의 산서성 삭주시 및 동쪽 위치로써 이미 확인된 백산과 흑수 지방과 동일한 지역으로 입증되어 확인되기도 한다.

이러한 결과는 『환단고기』가 우리 민족의 역사서로써의 ‘진서’로서의 가치가 있음이 확인되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 민족의 고대사가 단지 한반도와 인근에 머무르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바이기도 하다. 또한 『환단고기』에 대한 중국 정사 기록과의 연계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좌표를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역사학자로서의 개인적인 연구결과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후추 연구에 의하여 검증하여 확인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이 의견이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일정한 좌표가 되어 『환단고기』에 대한 연구 성과에 의하여 우리 민족 역사 발전에 기여가 되었으면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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