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9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9

[영등포 소비자저널 =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9

🌿 왜 부처님은 육식을 금지하셨을까?

『대반열반경』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잠시 함께 들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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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산책 49]

왜 부처님은 육식을 금지하셨을까?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이제야 나의 뜻을 옳게 알았으니, 법을 수호하는 보살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선남자야, 오늘부터는1) 성문 제자가 고기 먹는 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단월의 보시를 받게 되거든, 그 음식을 볼 때 아들의 살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까?”

“선남자야, 고기를 먹는 것은 큰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전에는 비구에게 세 가지 깨끗한 고기[三淨肉]2) 먹는 것을 허락하셨습니까?”

“가섭아, 그 세 가지 깨끗한 고기는 그때마다 형편을 따라서 점차로 제정하였던 것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열 가지 부정한 고기에서 아홉 가지 깨끗한 고기에 이르기까지도 허락하지 않으십니까?”

“가섭아, 그것도 형편을 따라 점차로 제정한 것이고, 이것은 곧 고기를 먹지 말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찌하여 부처님께서는 생선과 고기가 맛있는 음식이라고 칭찬하셨습니까?”

“선남자야, 나는 생선이나 고기가 맛있는 음식이라고는 말하지 않았고, 사탕수수ㆍ멥쌀ㆍ꿀ㆍ보리ㆍ모든 곡식ㆍ우유 등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였다. 비록 가지가지 의복을 저축하라고 말하였으나, 저축하는 것은 모두 색깔[色]을 없애라 하였는데, 하물며 생선과 고기를 탐내서야 쓰겠느냐?”

“부처님께서 만일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신다면 저 다섯 가지 맛, 우유ㆍ타락(駝酪)3)ㆍ생소(生酥)ㆍ숙소(熟酥)4)ㆍ호마유(胡麻油) 따위와 명주 옷ㆍ구슬ㆍ자개ㆍ가죽ㆍ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 따위도 받아 사용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선남자야, 외도들과 같은 소견을 품지 마라. 여래가 제정한 여러 가지 금하는 계율은 제각기 다른 뜻이 있다. 다른 뜻으로 세 가지 깨끗한 고기를 허락하였고, 다른 생각으로 열 가지 고기를 금하였고, 다른 생각으로 여러 가지를 금하며 저절로 죽은 것까지를 금하였다.”

“가섭아, 나는 오늘부터 제자들에게 모든 고기를 먹지 말라고 제한한다. 가섭아, 고기를 먹는 이가 가든가 앉았든가 섰든가 누웠든가 간에 중생들은 고기 냄새를 맡고 모두 두려워한다. 마치 사람이 사자에게 가까이 가면 여러 사람들이 보고 사자의 냄새를 맡아 또한 두려운 마음을 내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마치 사람이 마늘을 먹으면 고약한 냄새가 나서 다른 이가 냄새를 맡고 버리고 가는 것과 같다. 먼 데서 보는 이도 보기를 싫어하는데, 하물며 가까이하는 것이겠는가? 고기를 먹는 이도 그와 같으니, 모든 중생들이 고기 냄새를 맡고는 모두 두려워하여 죽을 줄 생각하며, 물에 살고 육지에 살고 허공에 사는 중생들이 모두 달아나면서 ‘저 사람은 우리의 원수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고기를 먹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고기를 먹기도 하나 보기에는 먹는 것 같으나 실상은 먹지 않는다. 선남자야, 보살은 깨끗한 음식도 먹지 않는데, 하물며 고기를 먹겠는가?”

“선남자야, 내가 열반한 뒤 여러 백 년 동안에 네 종류 성인[四道聖人]5)이 모두 다시 열반하여 정법이 없어진 뒤 상법(像法) 시대6)에 비구들이 겉으로는 계율을 지니는 듯하면서도 경전을 읽지 않는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즐겨 호사롭게 지내면서 몸에 입은 옷은 추악하고 얼굴은 여위고 위의가 초라하며 소와 양을 기르고 땔나무를 지고 다니며, 머리카락ㆍ수염ㆍ손톱을 길게 길렀으니 가사를 입었으나 사냥꾼과 같다.

또한, 자세하게 보고 천천히 걷기를 마치 쥐를 엿보는 고양이같이 하면서 항상 말하기를 ‘나는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병고로 더러운 데서 누워 자며, 겉으로는 점잖은 체하나 속으로는 탐욕과 질투가 가득하여 벙어리 모양을 하는 바라문 같아서, 실제로는 사문이 아니지만 사문 행세를 하며 나쁜 소견이 치성하고 바른 법을 비방한다. 이런 무리는 여래가 제정한 계율과 옳은 행동과 위의를 파괴하고, 해탈의 과를 말하면서도 청정한 법을 여의고, 깊고 비밀한 교법을 깨뜨리며 제멋대로 경과 율에 어기는 말을 지어내어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이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셨다.’

이처럼 제가 만든 이야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 하여 서로 다투면서 제각기 부처님의 제자라고 한다.”

“선남자야, 그때 또 모든 사문들은 곡식을 모아 두고 생선과 고기를 가져다가 제 손으로 음식을 만든다. 기름병과 보배 덮개를 지니며, 가죽신을 신고, 임금이나 대신이나 장자를 가까이한다. 관상 보고 천문을 말하고 의술을 배우고 종들을 두고, 금ㆍ은ㆍ유리ㆍ차거ㆍ마노ㆍ파리ㆍ진주ㆍ산호ㆍ호박ㆍ벽옥 등과 가지각색의 과실을 쌓아 둔다.

여러 기술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며 불상을 조성하고 글자를 만들고 글을 가르친다. 초목을 심고 가꾸고 방자[蠱道]7)하는 방법과 주문(呪文)과 환술 따위며 약을 만들고 풍류를 배우며, 꽃과 향수로 몸을 단장하고, 바둑과 놀음과 여러 가지 야릇한 기술을 배울 것이다. 그런 때에 어떤 비구가 이러한 나쁜 일들에서 벗어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제자라 이름할 것이다.”

“세존이시여,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들은 다른 이를 의지하여 생활하는데, 걸식하다가 고기 섞인 음식을 받게 되면 어떻게 먹어야 청정한 법에 맞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아, 물로 씻어서 고기를 가려 놓고 먹어야 하며, 식기에 고기가 묻었더라도 거기에 맛이 배지 않았으면 사용하여도 죄가 없다. 음식 가운데 고기가 많이 섞였으면 받지 말아야 하며, 고기가 드러난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하니, 먹으면 죄가 된다. 내가 지금 고기를 끊으라는 제도를 말하였지만, 이것을 자세히 말하려면 다할 수가 없다. 열반할 때가 다가오므로 간략히 말하니, 이런 것을 묻는 대로 대답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담무참(曇無讖) 한역,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4권 「여래성품(如來性品)」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49]

왜 부처님은 육식을 금지하셨을까?

— 『대반열반경』이 던지는 질문, 그리고 오늘의 불자에게 필요한 태도

안녕하세요.

오늘은 불교 안에서도 오래도록 의견이 갈려 온 주제,

‘불교와 육식’에 대해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불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질문이 자주 나옵니다.

“불교는 원래 채식을 해야 하나요?”

“초기 경전에는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하지 않나요?”

이 질문들은 모두 일정 부분 옳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불교의 전체 흐름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합니다.

불교의 육식 문제는 한 문장으로 단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경전의 성립 배경과 수행이 지향하는 방향 속에서

점차 깊어져 온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장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방식은

불교의 전통을 ‘허용–성찰–지양’이라는 흐름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초기불교의 율장과 팔리 경전을 보면,

육식 그 자체를 절대적인 금기로 삼기보다는

그 음식이 살생과 어떤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살폈습니다.

이때 제시된 기준이 바로 삼종정육(三種淨肉)입니다.

자신을 위해 죽이는 장면을 보지 않았고,

그렇다는 말을 듣지 않았으며,

그럴 것이라는 의심조차 들지 않는 경우라면

탁발로 받은 음식 가운데 고기가 섞여 있어도 수용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기준이 말해 주는 핵심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고기를 먹느냐’가 아니라,

‘살생의 원인이 되는가’라는 점입니다.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스리랑카·미얀마·태국 등 남방 상좌불교 국가들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의 스님들은 보시된 음식을 가리지 않되,

그 대신 오후불식과 절제된 수행을 엄격히 지키는 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수행의 중심이 보살의 길과 자비의 실천으로 옮겨가면서

질문은 한 단계 더 깊어집니다.

“살생에 연루되었는가?”를 넘어서

**“이 선택이 자비의 마음을 넓히는가?”**를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육식을 강하게 경계하는 경전들이 등장합니다.

『대반열반경』, 『능가경』, 『범망경』 등이 대표적입니다.

『대반열반경』에서 가섭보살이 묻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고기를 먹는 것은 큰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다.”

그리고 왜 과거에는 삼종정육을 허용하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그것은 그때그때의 형편을 따라 점차로 제정한 것이었다.”

이 말씀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초기의 허용은 교단의 현실을 고려한 방편이었고,

지금의 금지는 자비를 온전히 완성으로 이끄는

궁극의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대반열반경』은 매우 인상적인 비유를 들려줍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 곁에 다가온 중생들이,

그 몸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고

“이 사람은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일으켜

놀라 달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냄새가 아닙니다.

보살이 중생 곁에 설 때,

중생이 느껴야 할 것은 공포가 아니라 안심이라는 점입니다.

“저 사람은 나를 해치지 않는다.”

이 확신이 있을 때에야

중생은 마음을 열고, 법을 듣고, 다가올 수 있습니다.

『대반열반경』이 육식을 금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보살이 중생 앞에 서는 존재의 태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 지점에서 흔히 이런 오해가 생깁니다.

“그러면 초기불교는 틀렸고 대승불교가 맞는가?”

혹은 “대승은 이상론이고 초기불교는 현실적인가?”

그러나 불교의 전통은 옳고 그름을 겨루는 싸움이 아닙니다.

초기불교의 조건부 허용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중도의 가르침이었고,

대승불교의 엄격한 경계는 자비의 이상을 끝까지 밀어 올리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를 부정하는 관계가 아니라, 현실 위에 이상을 더해 가는 하나의 흐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불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우리는 더 이상 탁발로 하루를 이어 가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음식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며,

그 선택은 곧 개인의 윤리이자 삶의 태도가 됩니다.

이제 질문은 더 이상 “고기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선택이 내 마음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내 삶의 자비는 지금 확장되고 있는가를 묻는 자리로 옮겨옵니다.

채식이 자비를 키우고 수행을 돕는다면, 그것은 분명 의미 있는 실천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건상 채식을 하지 못한다면, 나는 과연 그 생명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는가,

탐욕 없이 절제하며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지니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불교가 묻는 것은 음식의 종류가 아닙니다.

그 음식을 대하는 나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만들어 가는 삶의 방향입니다.

집착으로 채식을 고집하는 것도 수행이 아니며,

아무 성찰 없이 소비하는 육식 또한 수행일 수 없습니다.

불교가 늘 경계해 온 것은 극단이었지, 선택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대반열반경』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내 식탁에서조차 자비를 키우고 있는가?”

이 물음 앞에서 각자의 삶은 곧 수행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1) 대반열반경에서 말하는 오늘부터라는 말은 열반에 드시려는 날이다. 그렇지만 육식금지를 다루는 다른 경전인 능가경에서는 열반에 즈음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전에 말하는 것으로 설하고 있다.

2) 부처님이 병든 비구에게만 먹을 것을 허락한 고기의 세 가지. 즉 자신을 위해 죽이는 것을 직접 보지 않은 고기(不見), 자신을 위해 죽였다는 것을 전해 듣지 않은 고기(不耳), 자신을 위해 죽였다는 의심이 들지 않는 고기(不疑)를 말한다.

3) 타락(駝酪)은 세끼를 갖 낳은 암소에서 짠 우유를 부르는 말로, 현대 한국어에는 타락죽이라는 단어에 남아 있다.

4) 인도에서는 소의 젖에서 우유(젖)ㆍ타락ㆍ생소ㆍ숙소ㆍ제호(醍醐) 등 다섯 단계의 유제품을 정제해 낸다. 『대반열반경』 제10권 「여래성품」에서 “성문은 우유와 같고, 연각은 타락과 같으며, 보살은 생소나 숙소와 같고, 부처님은 제호와 같다”라고 하였다.

5) 사도성인(四道聖人)란 『주역』·「계사전」에서 ‘성인(聖人)이 네 가지 도를 『역』에 담았다’고 명시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6) 정법시대가 끝난 다음의 일천년간으로 민중의 불법에 대한 소질(素質)은 정법시대보다 열악하지만, 불법을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은 정법시대와 닮았으며 불교전(佛敎典)의 번역이나 해석, 탑사(塔寺)의 건립 등을 통하여 불법의 이익이 전해지는 시대로 불법이 형식화돼 형태만 남은 시대를 말한다.

7) 고도(蠱道)는 정도(正道)가 아닌 사도(邪道)로, 주문(呪文)이나 흑마술(黑魔術)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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