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2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2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2

📩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

진짜일까요?
아니면 내 생각일까요?
『해심밀경』이 말하는
마음의 비밀을
잠시 함께 들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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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산책 62]

뉴스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
–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때 덕본(德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모든 법상(法相)에 공교한 보살을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법상에 공교한 보살이란 어디에 한하여 모든 법상에 공교한 보살이라 하며, 여래께서는 어디에 한하여 그들을 모든 법상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하십니까?”
그때 세존께서 덕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덕본이여. 그대가 지금 이와 같이 깊은 뜻을 여래에게 묻는구나. 그대는 지금 무량한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안락하게 하려고, 세간과 모든 하늘ㆍ사람ㆍ아소락들을 불쌍히 여겨 의리(義利)와 안락을 얻게 하려고 이렇게 질문하는구나.
그대는 자세히 들어라.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 모든 법상을 말하리라.” 이른바 모든 법상에 대략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이요, 둘째는 의타기상(依他起相)이요, 셋째는 원성실상(圓成實相)이다.
무엇이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인가? 이른바 이름으로 거짓되게 세워진 일체 법의 자성과 차별이고, 나아가 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무엇이 모든 법의 의타기상인가? 이른바 일체 법의 인연으로 생기는 자성이니,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는 것이다. 이른바 무명(無明)은 행(行)의 연이 되고, 나아가 순전히 큰 괴로움의 덩어리를 부르고 모은다.
무엇이 모든 법의 원성실상인가? 이른바 일체 법의 평등한 진여이다. 이 진여를, 모든 보살들은 용맹 정진을 인연하기 때문에 진리대로 생각하고 잘못됨 없이 사유하는 것을 인연하기 때문에 통달할 수 있다. 이러한 통달에서 점점 닦고 모아서, 나아가 위없는 정등보리(正等菩提)를 바야흐로 원만하게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남자여, 만일 모든 보살이 모든 법의 의타기상 위에서 여실히 변계소집상을 깨닫는다면 곧 일체 모습 없는 법[無相法]을 깨달을 것이며, 만일 모든 보살이 여실히 의타기상을 깨닫는다면 곧 여실히 일체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雜染相法]을 깨달을 것이며, 만일 모든 보살이 여실히 원성실상을 깨닫는다면 곧 일체가 청정한 모습의 법[一切淸淨相法]을 깨달을 것이다.
선남자여, 만일 모든 보살이 의타기상 위에서 여실히 모습 없는 법을 깨닫는다면 곧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을 끊을 것이요, 만일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을 끊는다면 곧 청정한 모습의 법을 증득할 것이다. 이와 같아서 덕본이여, 모든 보살은 여실히 변계소집상과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을 깨닫는 까닭에, 여실히 모든 모습 없는 법과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과 청정한 모습의 법을 깨닫는 것이다. 여실히 모습 없는 법을 깨닫는 까닭에 온갖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을 끊고, 일체 잡되고 물든 모습의 법을 끊는 까닭에 일체가 청정한 모습의 법을 증득한다. 이에 한하여 모든 법의 모습에 공교한 보살이라 하며, 여래는 이에 한하여 그들은 모든 법의 모습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한다.”
대당(大唐) 현장(玄奘) 한역, 해심밀경(解深密經) 제1권
그때 승의생(勝義生)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바라건대 여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이 열반이라고 하신 말씀에 담긴 밀의를 해석해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 승의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승의생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세 가지 무자성성(無自性性)의 밀의에 의지해 일체 법이 모두 자성이 없다고 말한다. 이른바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ㆍ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ㆍ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이다.
선남자여, 무엇이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인가? 이른바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는 거짓된 이름을 말미암아 세워져서 모양이 된 것이요, 자상을 말미암아 세워져서 모양을 삼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무자성성이라 한다.
무엇이 모든 법의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인가? 이른바 모든 법의 의타기상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는 다른 연의 힘을 의지했기 때문에 있는 것이요, 자연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생무자성성이라 한다.
무엇이 모든 법의 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인가? 이른바 모든 법이 생무자성성을 말미암는 까닭에 무자성성이라 부르니, 즉 인연으로 생긴 법도 승의무자성성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 가운데서 만일 이 청정으로 반연한 경계라면 나는 그것을 드러내 승의무자성성이라 한다. 의타기상은 청정으로 반연한 경계가 아니니, 그러므로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 부른다. 또 모든 법의 원성실상이 있으니,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일체 법의 법무아(法無我)의 성품을 승의(勝義)라 하며, 또는 무자성성(無自性性)이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체 법의 승의제이기 때문이며, 무자성성에서 나타난 것인 까닭이다. 이러한 인연에 의지해 승의무자성성이라 한다.
선남자여, 비유컨대 ‘허공의 꽃’과 같아서 상무자성성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비유컨대 꼭두각시의 모형과 같아서 생무자성성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1분(分)의 승의무자성성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비유컨대 허공은 오직 모든 색(色)이 없는 성품이 나타난 것으로서 일체 처소에 두루 함과 같이, 1분의 승의무자성성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법무아의 성품이 나타난 것인 까닭이며, 일체에 보편한 까닭이다.
대당(大唐) 현장(玄奘) 한역, 해심밀경(解深密經) 제2권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62]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
–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안녕하세요.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세상,
정말 있는 그대로일까요?
아니면 내 생각과 감정이 덧붙여 만든 또 하나의 세계일까요?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는 것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도,
내가 내린 판단도 대부분 맞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 믿음부터 다시 물으십니다.
오늘은 『해심밀경』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 질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때, 덕본(德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의 모습을 잘 아는 보살이라 하셨는데,
어떤 이가 그 모든 법상(法相)을 제대로 아는 보살입니까?”
이에 부처님께서는 우리 마음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밝혀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실제보다 덧붙여 보기도 하고,
인연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이해하기도 하며,
마침내 분별이 사라진 있는 그대로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제 경전에 나오는 표현으로 그 하나하나를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입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두운 밤에 노끈을 보고 뱀이라고 착각하듯이,
우리는 실제와 다르게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착각은 눈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현실 위에 내 생각과 감정을 덧붙여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나를 싫어해”
“나는 왜 항상 안 될까”
이런 생각도 사실이라기보다 내 마음이 만들어낸 해석일 뿐입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둘째, 의타기상(依他起相)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세계는 그저 마음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원인과 조건이 모여 잠시 드러난 모습입니다.
꽃 한 송이도 햇빛과 물과 바람과 시간, 이 모든 인연이 모여 피어나듯이,
나 역시 수많은 인연 속에서 지금 이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서로 기대어 일어나고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셋째, 원성실상(圓成實相)의 자리가 드러납니다.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이러한 분별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지고 왜곡 없이 드러나는 진실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같은 현실을 두고도 생각을 덧붙이면 괴로움이 되고,
인연으로 보면 한 걸음 벗어나게 되며,
그대로 보면 집착이 사라집니다.
즉,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차이가 괴로움과 자유를 가르는 길이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이 세 가지 모습조차 붙잡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처음에는 없는 것을 만들어 괴로워하고,
조금 더 나아가면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인연으로 생긴 것조차 고정된 실체는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우리가 이해한 것,
심지어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여기는 생각조차
모두 잠시 나타난 것일 뿐,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했을 때
우리는 “나를 무시했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은 여러 조건이 모여 일어난 일일 뿐이고,
그 해석은 내 마음이 덧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그 감정조차 붙잡을 실체가 없는 흐름일 뿐입니다.
이렇게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덜 괴롭고, 조금 더 자유로워집니다
부처님은 세상을 다르게 보라고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생각, 그것마저 내려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생각과 감정,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조차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 곧 무자성(無自性)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진짜라고 착각할 뿐입니다.
이 사실을 이해할 때 마음은 가벼워지고
집착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은 이 질문 하나를 마음에 남기고 마치겠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진실일까요,
아니면 생각일까요?
그리고 그 생각마저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잠시 멈추어 스스로의 마음을 조용히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우리가 붙잡고 있던 많은 것들이
이미 놓여 있음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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