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뉴스 Archives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news/category/media/photo 영등포 소식,소비자평가,뉴스,영등포구 지역포털 Sat, 20 Jun 2026 16:17:22 +0000 ko-KR hourly 1 https://wordpress.org/?v=7.0 https://ydpcj.kr/wp-content/uploads/2017/07/cropped-panelbiz_logo-32x32.jpg 포토 뉴스 Archives » 영등포 소비자저널 https://ydpcj.kr/news/category/media/photo 32 32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8 https://ydpcj.kr/news/21812 https://ydpcj.kr/news/21812#respond Sat, 20 Jun 2026 16:15:54 +0000 https://ydpcj.kr/?p=21812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8 🌿 사자후는 큰 소리가 아니라 진리를 두려움 없이 말하는 용기입니다. 부처님의 사자후 이야기, 잠시 마음 쉬어 가며 들어 보세요 🙏 https://www.youtube.com/watch?v=LBHx7T2nOt4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8www.youtube.com [경전산책 58] 부처님께서 사자후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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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8

🌿 사자후는 큰 소리가 아니라

진리를 두려움 없이 말하는 용기입니다.
부처님의 사자후 이야기,
잠시 마음 쉬어 가며 들어 보세요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8www.youtube.com

[경전산책 58]
부처님께서 사자후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부처님께서 모든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너희들이 만일 부처님이 있는지 없는지, 법이 있는지 없는지, 승가가 있는지 없는지, 괴로움이 있는지 없는지, 집(集)이 있는지 없는지, 멸(滅)이 있는지 없는지, 도(道)가 있는지 없는지, 실제[實]가 있는지 없는지, 내[我]가 있는지 없는지, 즐거움이 있는지 없는지, 깨끗함이 있는지 없는지, 항상함이 있는지 없는지, 승(乘)이 있는지 없는지, 유(有)가 있는지 없는지, 인(因)이 있는지 없는지, 과(果)가 있는지 없는지, 지음[作]이 있는지 없는지, 업이 있는지 없는지, 과보가 있는지 없는지가 의심된다면, 너희 마음대로 물어라. 내가 너희들에게 낱낱이 해설하겠다. 선남자야, 나는 진실로 하늘이나 사람이나 마군이나 범천이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내게 와서 묻는 것을 대답하지 못한 것이 없다.”
그때 그 회중에 이름이 사자후(師子吼)라고 하는 한 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용모를 단정히 하며 의복을 바로 하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여쭙겠으니 여래께서는 크게 어여삐 여기시고 허락해 주십시오.”
그때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너희들은 지금 마땅히 이 보살에게 공경하는 마음으로 존중하고 찬탄하며, 가지각색 향ㆍ꽃ㆍ풍류ㆍ영락ㆍ번ㆍ일산ㆍ의복ㆍ음식ㆍ좌복ㆍ의약ㆍ집ㆍ전당으로 공양하며 영접하고 전송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지나간 부처님들께 선근을 깊이 심어 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지금 내 앞에서 사자후를 하려는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사자가 자기의 기운을 알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뽐내며 네 발로 땅을 짚고 굴속에 있으면서 꼬리를 휘두르며 소리를 내지르듯이, 이런 여러 가지 모양을 갖추면 이는 크게 사자후하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자왕이 새벽에 굴속에서 나와 몸을 다듬고 입을 벌리고 사방을 살피면서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열한 가지 일을 위해서이다.
그 열한 가지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사자가 아니면서 사자 행세를 하는 무리를 부수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몸에 있는 기운을 시험하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있는 곳을 깨끗이 하려는 것이고, 네 번째는 새끼들로 하여금 있는 처소를 알게 하려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여러 동무들로 하여금 두려운 마음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또 여섯 번째는 자는 놈을 깨우려고 하는 것이며, 일곱 번째는 마음을 놓아버린 짐승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것이며, 여덟 번째는 여러 짐승들로 하여금 와서 복종케 하려는 것이며, 아홉 번째는 향상(香象)들을 조복하려는 것이며, 열 번째는 새끼들을 가르치려는 것이며, 열한 번째는 자기의 권속들을 장엄하려는 것이다.
모든 짐승들은 사자후하는 소리를 들으면, 물에 사는 짐승들은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뭍에 사는 짐승들은 굴속에 숨고, 날아다니는 놈들은 떨어지고, 향상들은 두려워 달아나며 똥을 지린다.
선남자들이여, 여우는 사자를 100년 동안 따라다녀도 사자후를 하지 못하는데, 사자의 새끼는 3년만 되어도 큰 사자처럼 사자후를 한다.
선남자야, 여래 정각(正覺)께서는 지혜의 이빨과 발톱이며, 4여의족(如意足) 초기불교의 수행법을 체계적으로 담고 있는 37보리분법 가운데 세 번째 주제는 네 가지 성취수단(iddhi-pāda, 四如意足)이다. 초기 경에서 잇디(iddhi)는 신통이나 성취를 의미하고 빠다(pāda)는 다리[足]를 뜻한다. 중국에서는 이를 여의족(如意足)으로 옮겼다. 주석서는 ‘성취를 위한 수단’과 ‘성취가 된 수단’의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성취수단은 열의(chanda), 정진(viriya), 마음(citta), 검증(vīmamsa)의 네 가지이다.
과 6바라밀을 만족한 몸에 10력이 용맹하고 대비(大悲)로 꼬리를 삼아서 4선정의 청정한 굴에 있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사자후를 하신다.
마군을 쳐부수고 중생에게 10력을 보이시며, 부처님이 행하는 곳을 나타내어 사견(邪見)을 가진 사람에게 귀의할 곳을 만드시며, 생사를 두려워하는 중생들을 편안히 어루만져 무명의 졸음에서 깨어나게 하시며, 나쁜 짓을 행하는 이가 뉘우침을 내게 하고, 사견을 가진 중생들을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사자후를 하신다.
또, 육사외도는 사자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까닭이며, 부란나(富蘭那) 육사외도의 한사람인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은 인과응보를 부정하고 윤리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여 도덕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였다.
들의 교만한 마음을 깨뜨리려는 까닭이며, 2승((二乘) 성문과 연각, 보살은 모두 불제자이지만, 보살은 이타(利他)가 있어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동시에 강조하는 반면, 성문, 연각은 자리(自利) 즉 자신의 깨달음 즉 열반의 증득에 치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초기의 대승불교에서는 성문과 연각의 2승(二乘)과 보살을 구별하여 3승을 말하기도 하였으나 『법화경(法華經)』에서는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을 고취하여 성문·연각·보살을 구분하면 참된 일승(一乘)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들로 하여금 뉘우치는 마음을 내게 하려는 까닭이며, 5주(住) 보살 5주 보살은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수행 계위인 10주(住) 중 5번째 단계인 ‘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를 의미한다.
들로 하여금 큰 힘을 구하는 마음을 내게 하려는 까닭이며, 바른 견해를 가진 사부대중으로 하여금 사견을 가진 4부중에게 두려운 생각이 없게 하려는 까닭에 사자후를 하신다.
거룩한 행ㆍ청정한 행ㆍ하늘의 행을 하는 굴속으로부터 몸을 쭉 펴면서 나오는 것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교만을 깨뜨리려는 까닭이며, 입을 벌리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선한 법을 내게 하려는 까닭이며, 사방을 살피는 것은 중생들이 4무애(無礙) 네 가지 막힌 곳이 없는 것으로 법무애(法無礙), 의무애(義無礙), 사무애(辭無礙), 요설 무애 (樂說無礙)의 네 가지이다.
를 얻게 하려는 까닭이며, 네 발로 땅을 짚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지계(持戒)바라밀에 구족하게 머물게 하려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자후를 하시는 것이다. 사자후라 함은 결정한 말이니, 모든 중생이 모든 불성이 있으며, 여래는 항상 계시어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성문이나 연각들은 한량없는 백천 아승기겁 동안에 여래 세존을 따라다니더라도 사자후를 하지 못하거니와, 10주 십주는 보살이 수행하는 열 가지 단계를 말한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52 보살 계위설이 정착된 이래 11번째인 초발심주(初發心住)부터 20번째인 관정주(灌頂住)까지의 계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가 변화하였다. 10주(十住)는 마음이 진제(眞諦) 즉 진리에 안주하는 단계라는 뜻에서 주(住)라고 한다. ①발심주(發心住) ; 참 마음을 깨닫고자 발심하는 것이다. ②치지주(治地住) ; 잘못된 마음을 다스려 가는 것이다. ③수행주(修行住) ; 열심히 닦고 익혀 가는 것이다. ④생귀주(生貴住) ; 그래서 귀한 마음이 나는 것이다. ⑤구족방편주(具足方便住) ; 수행에 편이한 여러 가지 방편을 이해하는 것이다. ⑥정심주(正心住) ; 마음을 바르게 갖는 것이다. ⑦불퇴주(不退住) ; 물러섬이 없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⑧동진주(童眞住) ; 천진난만한 마음을 얻는 것이다. ⑨법왕자주(法王子住) ; 법왕의 아들이 됨을 자부하는 것이다. ⑩관정주(灌頂住) ; 진리의 물로 이마를 씻는 것이다.
 보살이 이 세 가지 행을 닦기만 하면 능히 사자후할 것을 알지니라.”
담무참 한역, 『대반열반경』 27권 「사자후보살품」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8]
부처님께서 사자후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 두려움 없는 진리의 선언
안녕하세요.
불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자후(獅子吼)입니다.
청법가에도 나오고, 부처님께서 앉으신 자리를 사자좌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왜 하필 사자일까요?
사자는 짐승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 가운데 가장 위대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을 사자에 비유합니다.
또 사자는 상대가 아무리 작아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온 힘을 다한다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부처님도 어떤 중생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끄십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사자의 포효에 비유해 ‘사자후’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대반열반경』 「사자후보살품」의 말씀으로 그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부처가 있는지 없는지, 법이 있는지 없는지,
괴로움과 그 원인과 멸과 도가 있는지 의심된다면 무엇이든 물어라.
나는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못한 것이 없다.”
이 말씀은 중요합니다.
부처님은 믿음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의심이 있으면 묻고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질문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전은 이어서 사자의 모습을 비유로 설명합니다.
사자가 한 번 울면 그 소리는 숲을 흔들고,
거짓을 드러내고, 잠든 것을 깨우고,
흩어진 질서를 바로잡습니다.
그래서 사자후가 울려 퍼지면 짐승들은 숨고,
방심한 것들은 정신을 차리며,
허세를 부리던 것들은 정체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래의 사자후도 이와 같다고.
사자가 이빨과 발톱으로 위엄을 드러내듯 여래는 지혜를 힘으로 삼습니다.
사자가 꼬리를 세워 기운을 드러내듯 여래는 대자비를 바탕으로 삼습니다.
깊은 굴에서 나와 울 듯 여래는 깊은 선정 속에서 중생을 위해 사자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사자후는 감정에서 나오는 외침이 아니라
지혜와 자비가 완성된 자리에서 나오는 진리의 선언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사자후를 하셨을까요?
경전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마군의 힘을 무너뜨리고,
삿된 견해를 깨뜨리며,
두려움 속에 있는 중생을 안심시키고,
무명의 잠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경전은 가장 중요한 선언을 남깁니다.
“사자후란 결정된 말이다.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으며, 여래는 항상 존재하여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자후의 핵심입니다.
두려움 없는 진리의 선언이며,
누구나 본래 깨달을 수 있다는 확신의 선언입니다.
경전은 또 한 가지 비유를 듭니다.
여우는 사자를 백 년 따라다녀도 사자후를 하지 못하지만,
사자의 새끼는 몇 해만 지나도 사자처럼 울 수 있다고 합니다.
진리는 흉내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깨달을 때 자연히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사자후는 권위가 아니라 깨달음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시대의 사자후는 무엇일까요?
요즘 우리를 흔드는 말들 가운데는 편안하게 들리지만,
마음을 더 묶어 두는 말도 있습니다.
“적당히 살아도 된다.”
“욕망을 따라도 괜찮다.”
“깨달음은 특별한 사람만의 이야기다.”
편안함은 주지만, 자유까지 데려다주지는 못하는 말들입니다.
만약 부처님이 오늘 우리 앞에 계셨다면,
아마 이렇게 사자후를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너희 안에는 이미 밝은 마음이 있다.”
“탐욕과 두려움은 본래 너의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사자후는 큰 소리가 아닙니다.
진리를 두려움 없이 말하는 것이며,
자기 안의 가능성을 믿게 하는 선언입니다.
두려움 대신 용기를 선택하는 순간,
집착 대신 내려놓음을 선택하는 순간,
미움 대신 자비를 선택하는 순간—
그때 우리는 이미 자기 삶 속에서 작은 사자후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어떤 소리를 내며 살고 있는가?
두려움의 소리인가, 자유의 소리인가?
조용히 마음을 바라보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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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7 https://ydpcj.kr/news/21797 https://ydpcj.kr/news/21797#respond Sat, 20 Jun 2026 16:10:08 +0000 https://ydpcj.kr/?p=21797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7 💬 달콤한 말이 항상 바른 말은 아닙니다. 『대반열반경』이 말하는 정법을 가르는 기준. 이 영상의 나눔이 곧 정법을 세우는 일입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I2y2q5fVLQk&t=24s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7www.youtube.com [경전산책 57] 마군의 말과 부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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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7

💬 달콤한 말이

항상 바른 말은 아닙니다.
『대반열반경』이 말하는
정법을 가르는 기준.
이 영상의 나눔이
곧 정법을 세우는 일입니다.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7www.youtube.com

[경전산책 57]

마군의 말과 부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선남자야, 이 미묘한 대반열반 가운데 네 종류 사람이 바른 법을 수호하고 바른 법을 세우며 바른 법을 생각하며, 세상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고 불쌍히 여겨, 세간의 의지가 되고 천상과 세간 사람을 안락하게 할 것이다.

무엇을 네 종류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세상을 벗어나고도 번뇌의 성품을 구족하였으니 이것이 첫째이며, 수다원(須陀洹)을 얻은 사람과 사다함(斯陀含)을 얻은 사람은 둘째이며, 아나함을 얻은 사람이 셋째이며, 아라한을 얻은 사람이 넷째이다. 이 네 종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서 세간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고 불쌍히 여기며 세간의 의지가 되어 천상과 세간 사람들을 안락하게 할 것이다.

어떤 이를 번뇌의 성품을 구족한 이라 하는가? 계율을 받들어 지니고 위의를 갖추어 바른 법을 세우며, 부처님께 들은 것을 글과 뜻을 이해하고 다른 이에게 분별하고 연설한다. 탐욕이 없는 것은 도이고 탐욕이 많은 것은 도가 아니라 하며, 큰 사람이 깨달을 여덟 가지 법을 자세히 말한다. 죄를 지은 이에게는 죄를 털어 놓고 참회하게 하고 제거하여 소멸하게 하며, 보살의 방편으로 행하는 비밀한 법을 잘 안다. 이는 범부이고 제8인(人:忍)이 아니며, 제8인은 범부라 하지 않고 보살이라 하며, 부처라고는 하지 않는다.

둘째는 수다원과 사다함이니, 바른 법을 얻으면 그대로 받아 지니며,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는 들은 대로 쓰고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며 다른 이에게 말한다. 만일 법을 듣고도 쓰지 않고 받아 가지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서, 하인이나 부정한 물건을 쌓아 두라고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이를 둘째 사람이라 하니, 이 사람이 비록 둘째 자리나 셋째 자리를 얻지 못하였더라도 이름을 보살이라 하며 수기를 받은 것이다.

셋째는 아나함이니, 아나함은 바른 법을 비방하거나 종이나 하인 따위의 부정한 것을 두도록 허락하셨다고 말하거나, 외도들의 경과 논을 받아 가지거나, 객진(客塵) 번뇌에 장애가 되거나, 모든 업의 번뇌에 덮여 있으며, 여래의 진실한 사리(舍利)를 간직하였거나, 밖의 병(病)의 해침을 당하거나, 4대 독사의 침해를 받거나, 나라는 것을 주장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내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면 옳은 것이며, 세상 법에 집착한다고 말하면 옳지 않고 대승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옳은 것이다. 태어나는 몸에 8만의 벌레가 있다고 한다면 옳지 않고, 음욕을 영원히 떠나서 꿈에서도 부정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옳은 것이며, 임종할 때에 두려움을 낸다고 한다면 옳지 않다. 아나함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 이 사람이 돌아오지 않음은 위에 말한 것과 같으며, 모든 허물이 영원히 오염시키지 못하고 오고 가면서 주선하므로 보살이라 이름하고, 이미 수기를 받았으므로 오래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이것을 세 번째 사람이라고 한다.

넷째는 아라한이니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끊어 무거운 짐을 버렸고, 자기의 이익을 얻어 할 일을 이미 마쳤고, 제10지에 머물렀으며, 자재한 지혜를 얻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지가지 빛과 몸매를 모두 나타내어 모든 장엄과 같이하여, 부처님 도를 이루려 하면 곧 이룰 수가 있다. 이렇게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였으므로 아라한이라 한다. 이러한 네 종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서 세상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하고 가엾이 여기며, 세간의 의지가 되어 천상과 세간 사람들을 안락하게 하여, 천상과 인간에서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여래와 같으므로 사람 가운데 수승하며 귀의할 곳이 되는 것이다.”

그때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가섭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네 종류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구사라경(瞿師羅經)』에서 부처님께서 구사라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늘 사람이나 마군이나 범천들이 바른 법을 파괴하려고 부처님의 모양으로 변화하면, 32상과 80종호(種好)를 두루 갖추고, 둥근 광명이 한 길이며, 얼굴은 보름달처럼 원만하고 양미간의 백호상(白毫相)은 옥이나 눈보다도 희다. 이렇게 장엄하고 너에게 올 것이니 너는 잘 살펴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정하여야 하며, 깨닫고 나서는 항복받아라’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마군들이 부처님의 형상으로도 변화하는데 하물며 아라한 등의 네 가지 몸으로 변화하지 못하겠습니까? 허공에서 눕고 앉으며 왼쪽 옆구리로는 물을 내고 오른쪽 옆구리로는 불을 내며, 몸에서 불꽃과 연기 내기를 불더미같이 할 것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저는 그 속에서 신심을 낼 수 없으며, 혹 말을 하더라도 그대로 받을 수 없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하는 말에도 의심이 있으면 그대로 받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그런 것에 있어서이겠느냐? 그러기에 잘 분별하여 좋은 일인지 좋지 못한 일인지, 할 만한 일인지 그렇지 못한 일인지를 알고서 행하면 긴긴 밤중에 즐거움을 받을 것이다. 선남자야, 도둑개가 밤에 집에 들어오는 것을 그 집 하인들이 알았으면, 곧 호령하여 쫓아 보내면서 ‘빨리 나가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고 하면, 도둑개가 듣고 곧 도망갈 것이다. 그대들도 오늘부터 파순을 항복시켜야 하니 파순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는 그런 형상을 꾸미지 마라. 만일 일부러 꾸민다면 다섯 가지 속박으로 너를 묶을 것이다.’

그러면 파순이 듣고 곧 달아나기를 도둑개같이 하고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중략]

담무참 한역, 『대반열반경』 제6권

“세존이시여, 위에서 말한 네 종류 사람들에게 마땅히 의지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선남자야, 나의 말과 같이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네 가지 마군이 있는 까닭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마군이 말한 경전과 계율을 받아 가지는 것이다.”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마군1)과,마군이 말한 것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저희들이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중생이 마군의 행을 따르는지,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지, 그런 무리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가섭아,내가 열반한 지 7백 년 뒤에 마왕 파순이 점점 나의 법을 혼란하게 할 것이다. 마치 사냥꾼이 몸에 가사를 입듯이 마왕 파순(波旬. Pâpîyâs)2)도 그와 같이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모양을 가장하기도 하고, 또 수다원(須陀洹)의 몸과 아라한의 몸과 나아가 부처님의 몸을 꾸미되 마왕의 유루한 형상으로 무루한 몸을 가장할 것이다. 마왕 파순이 나의 바른 법을 파괴하면서 말할 것이다.

‘보살이 옛날에 도솔천에서 없어지고 이 가비라성의 정반왕궁에 올 때에 부모가 애욕으로 접촉한 것에 의지하여 그 몸을 낳아 기른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에 나서 모든 세간의 인간과 하늘 대중에게 공경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옛적에 고행할 때에 머리와 눈과 골수와 나라와 처자까지 가지가지로 보시한 까닭에 지금 불도를 이루었으며, 그런 인연으로 천상 사람ㆍ세간 사람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3)의 공경을 받는다.’
만일 이렇게 말을 한 경전이나 계율이 있으면 마군의 말인 줄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야,만일 경과 율에 말하기를

‘여래는 벌써부터 불도를 이루었지만 지금 성불하는 일을 보이는 것은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부모의 애욕으로 인하여 태어난 것이다. 세상을 따르기 위하여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라고 하였다면, 이런 경과 율은 참으로 여래의 말인 줄을 알아야 한다. 만일 마군이 말한 것을 따른다면 마군의 권속이며,부처님께서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다.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래가 처음 태어났을 때 시방[十方]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마군의 말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기를 ‘여래가 세상에 나서 시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은 것은 여래가 방편으로 보인 것이다’라고 말하면 이것은 여래가 말씀한 경전과 율이다. 만일 마군이 말한 것을 따르는 이는 마군의 권속이며 부처님께서 말씀한 것을 따르는 이는 보살이다.”[중략]

담무참 한역, 『대반열반경』 제7권4)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7]

무엇이 마군의 말이고, 무엇이 부처님의 말씀인가

— 참된 가르침을 분별하는 법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

어떤 가르침이 나를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 이끄는가?

『대반열반경』 제6권과 제7권에서는 이 문제를 매우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깊은 대반열반의 가르침 속에서 네 종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

바른 법을 지키고 세우며, 그 가르침이 사라지지 않도록 이어 갈 것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가엾이 여기며,

세간의 의지가 되어 하늘과 인간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세간의 의지’란,

혼란과 방황 속에서 사람들이 붙잡을 수 있는 든든한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말로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길을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 네 종류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직 번뇌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계율을 지키며 바른 법을 전하는 사람,

수행의 문을 열어 더 이상 거친 악행으로 돌아가지 않는 단계에 들어선 사람,

번뇌가 크게 옅어져 다시 세속의 집착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단계에 이른 사람,

그리고 마침내 모든 번뇌를 끊어 참된 자유에 이른 사람까지를 가리킵니다.

중요한 것은 단계의 높고 낮음이 아닙니다.

그들이 모두 바른 법을 왜곡하지 않고,

사람들의 탐욕과 집착을 줄이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가섭보살은 걱정합니다.

“세존이시여, 수행을 흐리게 하는 마군이 부처님의 형상으로,

아라한의 모습으로, 성인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믿고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오늘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겉모습은 그럴듯하고, 말은 번듯하고, 기적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과연 정법일까요?

부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말이라 하더라도 잘 분별하여라.”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부처님은 예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방향이 다른 말들이 있다는 겁니다.

“마군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부처도 결국 인간일 뿐이다.

보살행은 과장된 이야기다.

여래가 일곱 걸음 걸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등”

겉으로는 합리적인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도는 다릅니다.

깨달음의 위엄을 낮추고, 수행의 깊이를 약화시키며,

해탈의 가능성을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군의 말은 대개 수행을 느슨하게 만들고, 집착을 정당화하며,

“이 정도면 됐다”는 안일함에 머물게 합니다.

반대로 부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여래는 본래 성불하였으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남을 보인 것이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정법은 중생을 끌어내리는 말이 아니라, 중생을 일으켜 세우는 말입니다.

정법은 욕망을 합리화하지 않고, 욕망을 넘어가게 합니다.

그 끝은 늘 자유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종교와 사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굳이 그렇게까지 수행할 필요 없다.”

“편하게 살아도 된다.”

이 말들은 달콤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물어야 합니다.

그 말이 나를 더 깨어 있게 합니까, 아니면 더 안일하게 합니까?

그 가르침이 내 탐욕을 줄입니까, 아니면 탐욕을 정당화합니까?

그 길이 나를 자유롭게 합니까, 아니면 더 붙잡히게 합니까?

이 질문들이 바로 분별의 기준입니다

경전은 또 말합니다.

수행을 흐리는 힘, 곧 ‘마군’은 네 방향에서 우리를 흔듭니다.

내 몸과 생각에 대한 집착,

마음속 욕망과 성냄,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바깥의 유혹과 혼란.

그런데 이 마군은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나는 마음의 습관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좋은 일인지 좋지 못한 일인지,

할 만한 일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여 행하면

긴 밤중에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결국 분별은 지혜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계율을 지키는 삶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경전은 먼저

‘의지할 만한 사람’을 말하고,

이어 ‘가르침을 분별하는 기준’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질문을 마음에 남겨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달콤한 말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깨어 있게 하는 말을 따르고 있는가.

그 가르침은 내 욕심을 줄이고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더 단단히 묶고 있는가.

오늘 하루,

내 마음을 조금 더 맑게 만드는 쪽으로

한 걸음 옮겨 보십시오.

오늘은 그 한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1) 네 가지 마군이란 온마(蘊魔), 번뇌마(煩惱魔), 사마(死魔), 천자마(天子魔) 이다. 이와같은 마군들은 사람들이 행하는 도를 파괴하는 자로 보살의 수행을 방해하는 원수이다. 온마(蘊魔 ,skandha-māra)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이 쌓여 생사 고통의 과보가 생성되므로 마라 한다. 번뇌마(煩惱魔 ,kleśa-māra)란 몸 안의 108번뇌가 마음을 어지럽혀 혜명(慧命)을 빼앗고 보리(菩提)를 성취할 수 없게 하므로 마라 한다. 사마(死魔, mrtyu-māra)란 중생의 사대(四大)를 흩어 없애고, 수행을 계속하지 못하게 하므로 마라 한다. 천자마(天子魔, deva-putra-māra)란 사람의 선한 일을 해치고 성인의 법을 시기하여 수행인으로 하여금 출세간의 선근을 성취하지 못하게 하므로 마라 한다.

2) 파순을 파비야(波卑夜) 또는 천마파순(天魔波旬)이라고도 표현하며 항상 권속과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정법을 방해하고 불도를 이룸에 있어서 방해를 하는 마왕이다.

3) 불교의 여덟 수호신인 천 · 용 · 야차 · 건달바 · 아수라 · 가루라 · 긴나라 · 마후라가는 서역을 거쳐 중국이나 우리나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무장(武將) 모습으로 정형화되어 신라시대에는 탑에 가장 많이 조성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불화(佛畫) 특히 후불탱화 등에 조성되었다.

4) 『대반열반경』 제7권 사정품(邪正品)에는 무엇이 정도와 사도인지 자세히 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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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6 https://ydpcj.kr/news/21746 https://ydpcj.kr/news/21746#respond Sat, 06 Jun 2026 16:01:42 +0000 https://ydpcj.kr/?p=21746 🔔📰 띵동! 지금 시각 영등포 소비자저널 신문 배달왔어요!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6 🌿 좋은 일만 계속되는 삶은 있을까요? 『대반열반경』의 공덕천과 흑암천 이야기는 행복과 괴로움, 얻음과 잃음이 서로 따로 오지 않음을 일깨워 줍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좋은 것만 붙잡으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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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6

🌿 좋은 일만 계속되는 삶은 있을까요?

『대반열반경』의 공덕천과 흑암천 이야기는
행복과 괴로움, 얻음과 잃음이
서로 따로 오지 않음을 일깨워 줍니다.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좋은 것만 붙잡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삶을 더 넓게 바라보는 지혜를 함께 살펴봅니다.
이 가르침을 함께 나누는 일도
작은 전법의 길입니다.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6www.youtube.com

[경전산책 56]

공덕천과 흑암천 이야기1)

가섭아, 세간의 중생들은 뒤바뀜이 마음을 덮어서 태어나는 것은 탐하고 늙고 죽는 것은 싫어하고 근심한다. 보살은 그렇지 않아 처음 태어나는 것을 볼 때에 이미 허물과 근심을 보는 것이다.

가섭아, 어떤 여인이 다른 이의 집에 들어갔는데, 그 여인의 몸매는 단정하고 용모가 아름답고 좋은 영락으로 몸을 장엄하고 있었다. 곧 주인이 보고 물었다.
‘그대의 성명은 무엇이며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공덕대천(功德大天)입니다.’

주인이 물었다.
‘그대는 가는 곳마다 무슨 일을 하는가?’

공덕천이 대답하였다.
‘나는 가는 곳마다 가지각색 금ㆍ은ㆍ폐유리ㆍ파리ㆍ진주ㆍ산호ㆍ호박ㆍ자거ㆍ마노ㆍ코끼리ㆍ말ㆍ수레ㆍ노비ㆍ하인 등을 줍니다.’

주인이 듣고 환희한 마음으로 뛸 듯이 즐거워하며 말했다.
‘나에게 복덕이 있어서 그대가 지금 나의 집에 온 것이다.’

그리고 향을 사르고 꽃을 흩어서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배하였다.

또 문밖에 다른 한 여인이 있었다.

형상이 누추하고 의복이 남루하고 더럽고 때가 많고 피부가 쭈글쭈글하고 살빛이 부옇게 되어 있었다. 주인이 보고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며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의 이름은 흑암녀입니다.’

‘왜 흑암녀라고 이름하였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가는 데마다 그 집 재물을 소모하게 합니다.

주인이 그 말을 듣고는 칼을 들고 말하였다.
‘그대가 빨리 가지 않으면 목숨을 끊을 것이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대는 왜 그렇게 어리석고 지혜가 없습니까?’

주인이 물었다.
‘어째서 나를 어리석고 지혜가 없다고 하는가?’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대의 집에 들어간 이는 나의 언니이며, 나는 언제나 언니와 거취를 같이합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쫓아내려거든 나의 언니도 쫓아내야 합니다.’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서 공덕천에게 물었다.
‘밖에 어떤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그대의 동생이라 하니 사실인가?’

공덕천이 대답하였다.
‘그는 분명히 나의 동생입니다. 나는 항상 동생과 행동을 같이 하였고,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으며, 가는 곳마다 나는 좋은 일을 하고 동생은 나쁜 짓을 하였으며, 나는 이로운 일을 하고 동생은 손해나는 일을 하였습니다. 만일 나를 사랑하거든 그도 사랑하여야 하고,나를 공경하려면 그도 공경하여야 합니다.’

주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그렇게 좋은 일도 나쁜 짓도 한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으니, 모두 마음대로 가시오.’

두 여인이 서로 팔을 끌고 살던 데로 가고, 주인은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뛸 듯이 환희로움이 한량없었다.

그때 두 여인은 손에 손을 잡고 가난한 집에 이르렀다. 가난한 사람이 보고는 기쁜 마음으로 말하였다.
‘지금부터 갈 때까지 그대들은 나의 집에 항상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공덕천이 말하였다.
‘우리들은 어떤 사람에게 쫓겨 왔는데,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우리에게 있기를 청합니까?’

가난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대가 지금 나를 생각하기에 나는 그대를 위하여 저 사람을 공경하며 그렇기 때문에 둘 다 나의 집에 있으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가섭아,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천상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병들고 죽기 때문에 모두 버리고 조금도 받을 마음이 없는 것이다.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은 늙고 병나고 죽음의 걱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고 죽는 두 가지 법을 받으려고 탐하는 것이다.

담무참 한역, 『대반열반경』 제12권 「성행품(聖行品)」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6]

공덕천과 흑암천 이야기

— 행복만 붙잡으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라

안녕하세요.

우리는 늘 행복을 원합니다.

좋은 일만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건강도, 돈도, 사랑도, 명예도…

우리는 좋은 것만 내 곁에 오래 머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오늘의 경전산책은 『대반열반경』 「성행품」에 나오는

공덕천과 흑암천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섭아, 세간의 중생들은 태어남은 좋아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싫어한다.

즐거움은 탐하지만 괴로움은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보살은 그렇지 않다.

태어남 속에서도 이미 늙음과 죽음을 보고,

즐거움 속에서도 변화와 덧없음을 함께 본다.”

그리고 부처님은 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어느 날, 한 부자의 집 문 앞에 찬란한 빛을 두른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몸에는 보석이 반짝이고, 걸음마다 향기가 퍼졌습니다.

주인이 묻습니다.

“그대는 누구요?”

여인이 부드럽게 대답합니다.

“나는 공덕천(功德天)입니다.

내가 머무는 곳에는 재물과 복이 함께합니다.”

부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향을 피우고 극진히 맞아들입니다.

그런데 잠시 뒤, 문 밖에 또 한 여인이 서 있습니다.

얼굴은 수척하고, 옷은 남루하며, 그 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흑암천(黑闇天)입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재물이 줄고, 근심이 따릅니다.”

부자는 얼굴이 굳습니다.

“당장 나가시오! 내 집에 재앙을 들일 수는 없소!”

그러자 흑암천이 조용히 말합니다.

“주인장이여, 어찌 그리 어리석습니까?

방금 맞아들인 공덕천은 나의 언니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습니다.

나를 쫓아내려면 언니도 함께 보내야 합니다.”

놀란 부자가 공덕천에게 묻습니다.

공덕천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늘 동생과 함께 다닙니다.

내가 이익을 주면 동생은 손실을 가져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동생도 함께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합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온다면 나는 둘 다 받지 않겠소.”

두 여인은 조용히 그 집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다시 가난한 집에 이르렀습니다.

가난한 주인은 두 사람을 보고 말합니다.

“두 분 모두 우리 집에 머물러 주십시오.”

공덕천이 묻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다닙니다. 괜찮겠습니까?”

그는 담담히 답합니다.

“좋은 것만 붙잡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이익이 오면 손해도 따르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옵니다.

그러니 두 분 모두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뒤 부처님은 다시 가섭에게 말씀하십니다.

“보살은 천상에 태어나기를 탐하지 않는다.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늙고 병들고 죽기 때문이다.”

중생은 공덕천만을 원합니다.

행복만, 성공만, 인정만 붙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보살은 압니다.

공덕천과 흑암천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얻어도 지나치게 들뜨지 않고,

잃어도 삶 전체가 무너졌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보살은 즐거움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즐거움 속에서도 무상을 함께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보살은 얻음보다 ‘사라짐까지 함께 보는 눈’을 기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새 일을 시작하면 설렘과 함께 책임이 따릅니다.

사랑을 시작하면 기쁨과 함께 이별의 가능성도 생깁니다.

아이를 얻으면 웃음과 함께 걱정도 자랍니다.

손바닥만 원하고 손등은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묻습니다.

“왜 나에게만 힘든 일이 생기지?”

“왜 좋은 일은 오래 가지 않을까?”

사실은 흑암천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리석음은 좋은 것만 붙잡으려는 데서 시작됩니다.

지혜는 좋고 나쁨이 함께 흐른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받아들임은 체념이 아닙니다.

좋은 일이 오면 감사하고,

힘든 일이 오면 ‘이 또한 지나가는 인연’임을 아는 마음.

행복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집착하지 않고,

괴로움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평정심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햇빛만 계속 비추면 땅은 메말라 버립니다.

비가 있어야 싹이 납니다.

밤이 있기에 별을 보고,

겨울이 있기에 봄이 옵니다.

공덕천만 머무는 인생은 없습니다.

흑암천이 찾아올 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 소중한지 배우게 됩니다.

지금 내 삶에는 어떤 공덕천이 와 있습니까?

그리고 어떤 흑암천이 함께 서 있습니까?

나는 좋은 것만 붙잡으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어려움 하나 때문에 삶 전체를 어둡게 보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멈추어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좋음과 나쁨을 함께 품을 수 있을 때 삶은 덜 요동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보살의 눈을 조금 배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붙잡고 있습니까?

잠시 눈을 감고,

지금 내 마음이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조용히 바라보며 이 이야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1) 쾌락과 즐거움을 상징하는 공덕천과 괴로움과 불행을 상징하는 흑암천은 늘 함께 다닌다는 것이다. 동전의 앞면만 취하고 뒷면은 버릴 수 없듯이 항상 행과 불행은 함께 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아름다운 공덕천을 얻으려고 추한 흑암녀도 받아들인다. 지혜로운 자는 흑암녀을 버리기 위해서 공덕천도 포기한다.


발행정보

제호: 영등포 소비자저널

도메인: ydpcj.kr

발행처: 영등포 소비자저널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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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5 https://ydpcj.kr/news/21735 https://ydpcj.kr/news/21735#respond Wed, 27 May 2026 15:06:56 +0000 https://ydpcj.kr/?p=21735 🔔📰 띵동! 지금 시각 영등포 소비자저널 신문 배달왔어요!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5 🌿 많은 말이 오가는 때입니다. 하지만 말보다 중요한 것은 삶으로 보여 주는 실천입니다. 계율은 남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라 내 마음을 맑게 지키는 기준입니다. 나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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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5

🌿 많은 말이 오가는 때입니다.

하지만 말보다 중요한 것은
삶으로 보여 주는 실천입니다.
계율은 남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라
내 마음을 맑게 지키는 기준입니다.
나는 법을 말하는가,
아니면 법을 살고 있는가?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도선 스님이 일깨운
계율의 참뜻을 함께 돌아봅니다. 🙏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5www.youtube.com

[경전산책 55]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켜라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중생을 교화하심은 한 사람이라도 구제하고자 하심이니, 크신 가르침은 모두가 하나의 이치를 드러내는 것으로 귀결되기를 기약하는 것이다.그러나 중생은 욕심에 집착하고 욕심의 근본은 이른바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 품고 있는 마음에 따라 마음을 쉬게[止心] 하는 법을 열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욕심을 일으키는 근본이 되니, 욕심을 없애려면 반드시 무엇보다 먼저 마음을 쉬어야 한다
마음을 쉬는 것은 밝은 지혜로부터 말미암고, 지혜는 정(定)을 일으키는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며, 정(定)을 일으키는 공(功)은 계(戒)가 아니면 넓힐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특히 계를 존중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계는 무상보리(無上菩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부처의 깨달음)의 근본이니, 마땅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한 것이다.
계를 지키는 마음은 요약하면 두 가지 길이 있다. 지지문(止持門) 소극적으로 몸과 말로 하는 나쁜 짓을 억제하여 살생ㆍ투도ㆍ사음ㆍ망어ㆍ악구 등의 죄업을 짓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에 있어서는 계본(戒本) 계본(戒本)은 불교에서 승려가 할 계율을 모은 조항인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ratimoksya)를 말한다.
이 가장 표준이 되는 것이며, 작지문(作持門) 계율에서 산 것을 죽이는 일ㆍ훔치는 일을 행하는 것ㆍ거짓말을 못하게 하는 소극적인 행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보시ㆍ방생 등의 선한 일을 지어 계율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에 있어서는 갈마(羯磨) 수계 · 참회 · 징벌 · 의결 등과 같은 승가 내의 행사나 사건들을 처리하는 공식 회의를 말한다.
가 그 큰 조목을 맺는 것이다. 후배들은 먼저 수행을 하는 데 있어 이 법을 으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율장(律藏)에 이르기를, “만약에 계를 외우지 못한다면 평생토록 갈마(羯磨)를 여의지 말고 그에 의지하여 머무르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부처님의 법이 점차 중국으로 전하여지니 상법(像法) 부처님 열반 후 시대를 세 단계로 나눌 때, 정법(正法) 다음의 시기를 말한다. 겉모양은 불법이 남아 있으나 수행과 깨달음의 힘이 점차 약해진 시대를 뜻한다.
과 정법(正法)이 섞여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순박했다. 처음에는 2부(部)와 5부 2부는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뉜 최초의 분열을 말하고, 5부는 다시 세분된 주요 교단 다섯 갈래를 말한다.
의 다름이 있었고, 중간에는 18부와 5백 부 불교가 더욱 세분되어 18개 부파로 나뉜 시기를 말하며, 5백 부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매우 많은 분파로 갈라졌음을 뜻한다.
의 구별이 있었으며, 끝에는 여러 무리들이 서로 일어나 각자 서로 앞서 인도하는 사람임을 다투었으나, 더러는 연(緣)을 쫓아서 법이 기울어 떨어짐이 없었다. 그러므로 도(道)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어나고, 도를 크게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사람은 뒤집어지고 위태로울지언정 차라리 법은 맑고 바른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갈마(羯磨)는 성인의 가르침으로 예나 지금이나 면면히 이어져 왔고, 세상이 점점 번잡해짐에 따라 그 조목의 수가 더욱 많아졌다. 그 실제의 기록을 고찰하여 보면 흔히는 전에 들어서 배운 가르침을 요약한 것으로, 그 으뜸이 되는 실마리를 살펴보면 간략하여 본래의 근거는 없어졌으며, 마음을 본받아 법으로 제정한 것이 적지 않으나 낱낱이 밝혀서 외워야만 할 것들이 지극히 많다.
성인의 말씀을 가벼이 업신여겨서 행동이 형법(刑法)의 그물에 걸려들게 되었는데도 같지 않은 견해에만 모두 힘써서 다투어 시비(是非)의 혼미함에 집착하고,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아 더욱 어두워지게 되니, 마침내 정법(正法)이 이때에 이르러 땅에 가라앉게 되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에 갈마를 하는 것이 백법(白法)만 같지 못하고 백법을 행하는 것이 갈마법(羯磨法)만 같지 못하다면, 갈마를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점점 바른 법이 없어지게 만드는 것이니, 마땅히 문구(文句)를 그대로 따라야지 보태거나 빼서 법과 비니(毘尼-계율)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셨으니, 이와 같이 배우고 가르쳐야 마땅할 것이다.
만약 망령되게 지칭해서 올바른 뜻이 혼란하게 되면, 예전에는 여러 관(關)에서 편찬한 『행사초(行事鈔)』가 있어서 그 종류가 많으면서도 자세하였으나 여러 가지 일들이 너무 많아서 끝내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갈마 한 가지만 간략하게 들어서 구별하여 표시를 하고 제목을 붙였다. 이를테면 과택(科擇-조목을 나누어 판단함)ㆍ출납(出納-받아들이고 내보냄, 즉 허용과 금지의 구분)ㆍ흥폐(興廢-세우고 폐함, 시행과 중지)ㆍ시비(是非-옳고 그름의 판단) 같은 것은, 저 『행사초』에서는 그것을 설명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다만 법 그 자체를 중심으로 하여 사례(事例)에까지 미쳤고, 증거를 끌어다가 인용한 것은 권(券)의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고 적용하는 것에 두었다.
그러나 율장(律藏)에는 빠져 있어서 뜻에도 버릴 것과 보충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여러 부(部)를 통괄하고 본문(本文)을 간추렸으니, 반드시 이것과 저것이 모두 없다면 이치가 다 어그러지고, 아울러 편(篇)에 이르러 갖추어 드러내더라도 옛 율장의 흔적과 다르게 될 것이다.
갈마는 비록 그 수가 많으나 요약하여 나누면 여덟 가지가 된다. 처음은 심념갈마(心念羯磨) 마음속으로 결의하여 성립하는 가장 간단한 갈마(의결 절차). 공식적인 회의 형식 없이 스스로 마음으로 결정하여 성립되는 경우를 말한다.
로 시작하여 마지막은 백사갈마(白四羯磨) 승가의 공식 의결 절차 중 가장 완전한 형식. 한 번의 고지(白)와 세 번의 확인을 거쳐 총 네 번의 선언으로 성립된다. 출가 수계나 중대한 의결에 사용되는 엄격한 절차이다.
로 끝나는데, 이들은 각각 구제(救濟)를 완성하는 공덕이 있기 때문에 모두를 율(律)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표시하였다. 이제 그때에 나아가 그것으로서 요점을 드러내어 밝히고 같은 종류를 모아서 편(篇)으로 엮었다. 글은 열 편으로 배열하였고 뜻은 모두 일곱 가지이다. 어찌 감히 여러 배우는 이들에게 전할 수 있으리요. 그것으로 스스로를 밝혀 늘 힘쓰고자 한다.
도선(道宣) 중국 남산 율종(南山律宗)의 시조로, 645년 현장(玄奘)이 귀국하여 홍복사(弘福寺)에서 역경할 때 감문가(勘文家)가 되어 수백 권의 율부와 전기를 써냈다. 특히 사분율종(四分律宗)을 이루어 이른바 남산 율종을 세웠다.
 편집,
『담무덕부사분율산보수기갈마(曇無德部四分律刪補隨機羯磨)』 서문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5]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켜라
— 법은 맑고, 사람은 흔들린다
안녕하세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괴로움에서 건져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많은 가르침도 결국은 하나로 돌아옵니다.
마음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쉽게 흔들립니다.
욕심이 일어나고, 분노가 치밀고, 집착이 붙잡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을 끊고자 한다면 먼저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경전은 이렇게 일러 줍니다.
계(戒)가 바탕이 되어 정(定)이 일어나고,
정이 깊어질 때 지혜가 밝아진다고.
그래서 계를 존중하지 않고는 깨달음으로 나아갈 길이 바로 서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경에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계는 무상보리(無上菩提), 곧 더할 나위 없는 깨달음의 근본이니, 마땅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켜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도덕 권고가 아닙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어디서 생기는지,
수행의 뿌리가 어디에 놓이는지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계는 뿌리이고, 정은 줄기이며, 지혜는 꽃과 같습니다.
뿌리가 흔들리면 그 위에 아무것도 설 수 없습니다.
계율은 단순한 금지 조항이 아닙니다.
계율은 마음을 흐리지 않게 지켜 주는 기준입니다.
생명을 해치지 말라.
남의 것을 빼앗지 말라.
거짓말로 상처 주지 말라.
이것은 남을 통제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내 마음을 맑게 지키기 위한 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형식은 남고 정신은 흐려지기 쉽습니다.
절차는 지키지만 마음은 비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또는 반대로 “마음만 중요하다”고 하면서 기본을 가볍게 여기기도 합니다.
도선 스님은 바로 이 점을 깊이 경계합니다.
불교에서 갈마(羯磨)는 승가 공동체가 법에 따라 합의하고 실행하는 공식 절차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말합니다.
절차만 남고 바른 실천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것은 법을 점점 흐리게 만드는 길이 된다.
또 선한 마음만 말하면서 정해진 법의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그 또한 법을 무너뜨리는 길이 된다.
형식과 정신은 따로가 아닙니다.
둘이 함께 설 때 법이 바로 섭니다.
도선 스님이 살던 시대는 정법과 상법이 뒤섞이고
여러 종파가 서로 앞섰다고 다투던 혼란기였습니다.
그 속에서 스님은 단호히 일깨웁니다.
사람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법은 본래 맑다.
법이 흐려 보이는 것은 법이 변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흐려졌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도는 믿음에서 피어나고, 그 믿음을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는 힘이 바로 계율입니다.
계율은 남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닙니다.
나를 바로 세우는 기준입니다.
작은 거짓을 멈추는 용기,
작은 이익을 내려놓는 결단,
작은 분노를 다스리는 태도.
이 작은 실천이 마음을 단단하게 합니다.
그 단단함 위에서 정이 자라고, 그 위에서 지혜가 밝아집니다.
그래서 계는 깨달음의 첫걸음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
그것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내 마음을 흐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법은 늘 맑습니다.
우리가 그 맑음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 나는 어떤 작은 계율을 지키며 살 것인가.
그 작은 실천이 나를 지키고 세상을 지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본 말씀은
중국 남산 율종의 시조인 도선(道宣) 스님이
『담무덕부사분율산보수기갈마』의 서문에서 밝힌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도선 스님은 계율을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법을 지탱하는 근본으로 보았습니다.
법은 늘 맑게 서 있습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마다 그 맑음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힘,
그것이 계율을 지키는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떠한가.
나는 법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법을 살고 있는가?
그 답은 말이 아니라, 나의 하루가 증명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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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4 https://ydpcj.kr/news/21726 https://ydpcj.kr/news/21726#respond Sat, 23 May 2026 15:47:57 +0000 https://ydpcj.kr/?p=21726 🔔📰 띵동! 지금 시각 영등포 소비자저널 신문 배달왔어요!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4 🔥 화가 날 때 그 불씨를 키울 것인가, 내려놓을 것인가.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달마다라선경』의 가르침을 통해 “분노를 멈추는 자비 수행”을 함께 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EwBFBruXLSE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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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띵동! 지금 시각 영등포 소비자저널 신문 배달왔어요!
[영등포 소비자저널=조석제 대표기자]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4

🔥 화가 날 때

그 불씨를 키울 것인가, 내려놓을 것인가.
오늘의 경전산책에서
『달마다라선경』의 가르침을 통해
“분노를 멈추는 자비 수행”을 함께 해보세요,🙏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4www.youtube.com

[경전산책 54]
누가 나를 욕할 때 이렇게 생각하라
수행을 하는 자가 만약 널리 자비로운 마음을 닦고자 한다면 마땅히 먼저 그 마음을 소연(所緣-마음이 붙드는 대상) 마음으로 인식하는 대상, 곧 6식(六識)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6경(六境)과 같은 것을 말한다.
에 묶고 이를 점차 익혀 한량없는 허물과 죄를 없애서 마음이 다투는 바 없고, 또한 원한으로 맺음이 없으며, 성냄이 없고 청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하는 자가 자심(慈心)의 방편을 닦고자 한다면 먼저 이를 평등한 마음으로 사유하여 모든 중생들을 인연하여 그 마음을 견고하게 해서 성냄을 멸하여 없애고 자심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든 중생을 한꺼번에 바라보며
“모두 행복하기를” 하고 크게 자비를 내는 것으로도 오히려 성냄에 얽매인다고 한다면, 그런 자는 마땅히 그 나에게 가장 고맙고 사랑스러운 사람에 대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자심을 닦고 다음으로 보통으로 가까운 사람,조금 덜 가까운 사람, 특별한 감정이 없는 사람 , 및 나를 힘들게 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에 대하여 차례로 자비를 아홉 단계로 세밀하게 나누어 닦아 익혀 차츰 성냄의 마음을 여의고 따뜻하게 아끼고 걱정해 주는 마음을 일으켜 갖가지 기쁨과 편안함이 될 만한 것들을 함께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즐거움을 함께한 다음에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법의 도움이 되는 마음을 일으켜 광대자(廣大慈-넓은 자비)ㆍ극원자(極遠慈-멀리까지 미치는 자비)ㆍ무량자(無量慈끝이 없는 자비-)의 세 가지 자심을 닦아야 한다. 성냄을 없애 부드럽고 어진 사랑의 마음에 머물게 하고, 그 상응하는 공덕과 선근에 따라 모든 불법을 기꺼이 함께 나누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갖가지 법락(法樂)과 더불어 갖가지 자심을 닦게 하는 것이다. 먼저 출가의 즐거움을 주고, 다음으로 깊이 집중하여 마음이 맑고 고요해지는 즐거움을 주며, 다음으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즐거움을 주고, 다음으로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열반의 즐거움을 준다.
혹시 수행이 성냄으로 인하여 교란을 당할 경우 이와 같이 생각하라.
‘내가 본래 이와 같은 성냄으로써 많은 살해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치에 거스르는 큰 죄를 일으켜서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되었으며, 큰 지옥에서 다시 고통의 독을 받고, 혹은 벌ㆍ전갈ㆍ지네ㆍ독사ㆍ악룡(惡龍)ㆍ해귀(害鬼)ㆍ나찰(羅刹)이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갖가지 독과 해(害)의 종류를 만들었으니, 지금 이를 제거하여 없애지 않는다면 또다시 그와 같은 고통들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편이 능히 저 성냄을 중지시킬 것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하라.
‘욕을 하는 자나 받는 자나 너와 나를 구별할 것 없이 다 같이 덧없는 것들이어서 잠시 잠깐도 머물러 있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둘이 모두 지나가 버리어서 그 나쁜 소리 또한 이미 사라져 버렸거늘 나중에 일어난 두 사람이 까닭 없이 서로 다툰다. 그러나 지금 이들 두 사람 또한 순간순간 사라져 버려서 허망하여 아무런 실상이 없는데, 대체 누가 욕을 하고 누가 욕을 먹는단 말이며, 왜 이처럼 거꾸로 되어있단 말인가? 이는 마치 허공과 더불어 서로 싸우면서 이를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니, 귀가 허망으로부터 잘못된 생각을 일으켜 번뇌의 업이 일어난 것이며, 저 사람의 혀 또한 이와 같다. 모두가 인연을 따라서 생멸하는 것인데, 대체 누가 욕을 하고 누가 이를 듣는단 말인가.’
수행하여 이와 같이 사유할 때 성냄의 결박이 풀어져 능히 자심을 닦아서 번뇌의 때를 여의고 청정해질 수 있다.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한역, 『달마다라선경(達摩多羅禪經)』 이 경은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가 한역한 경으로 줄여서 『달마다라경(達摩多羅經)』ㆍ『달마선경(達摩禪經)』이라 하고, 별칭으로 『달마다라선경』ㆍ『달마선경』ㆍ『부정관경』ㆍ『수행도경』ㆍ『수행도지경』ㆍ『수행방편선경』이라고도 한다. 이 경은 달마다라라는 비구가 수집한 삼매법에 대한 경이라는 뜻으로 부처님 이후의 선법의 계승에 대해 설한다.
 2권
[박영동 법사의 경전산책 54]
누가 나를 욕할 때 이렇게 생각하라
— 성냄을 끊는 자비의 수행
안녕하세요.
살다 보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억울하게 욕을 듣거나 이유 없이 비난을 받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분노가 올라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경전산책은 『달마다라선경(達摩多羅禪經)』에 전해지는
아주 구체적인 수행의 방법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경전은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자비를 널리 닦고자 한다면, 먼저 마음이 향할 대상을 분명히 세우고
그 마음을 익혀 성냄과 원한을 없애야 한다.”
“자비의 방편을 닦고자 한다면, 먼저 평등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인연하여 그 마음을 굳건히 하라.”
마음이 향할 대상을 분명히 세운다는 것은
한 사람을 떠올려 그가 편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그 마음을 꾸준히 길러 가는 것입니다.
‘평등한 마음’이란 가까운 사람과 미운 사람을 가르지 않는 마음이며,
‘모든 중생을 인연한다’는 것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
누구에게나 자비를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속의 다툼과 원한은 서서히 옅어집니다.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면 경전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나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닦고,
그 다음 보통으로 가까운 사람,
특별한 감정이 없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까지
차례로 자비를 넓혀 가라는 것입니다.
경전은 이를 자비를 아홉 단계로 세밀하게 익히는 수행이라 설명합니다.
자비는 단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한 마음은 점차 경계를 넘어
결국 모든 존재를 향해 열립니다.
자비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상대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참된 평안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경전이 더욱 빛나는 부분은 바로 여기입니다.
수행 중에 누군가가 나를 욕하여 마음이 흔들릴 때
이렇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나는 성냄 때문에 수많은 고통을 겪어 왔다.
이 분노를 그대로 두면 또다시 괴로움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사유합니다.
“욕하는 자도, 욕을 듣는 나도
모두 잠시 잠깐 존재하는 덧없는 존재다.
그 말도 또한 이미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누가 욕하고 누가 욕을 듣는가?
귀는 잠깐 소리를 들었을 뿐이고,
혀는 잠깐 말을 내었을 뿐이며
모두 인연 따라 생겼다 사라질 뿐입니다.
경전은 말합니다.
허공과 싸우면서 그것을 ‘나’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고.
이렇게 깊이 사유할 때 성냄의 결박은 조금씩 풀립니다.
이 가르침은 고대 수행자만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댓글 하나에 상처받고,
단체 채팅방의 말 한 줄에 밤잠을 설치고,
직장에서의 한마디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오늘의 우리에게 더 절실한 이야기입니다.
분노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 여파는 오래갑니다.
화를 낼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잘못했어.”
“저 말은 참을 수 없어.”
하지만 그 말은 이미 지나간 소리입니다.
분노는 상대를 향해 던지는 불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 안에서 먼저 타오릅니다.
이미 지나간 말을 붙들고 스스로를 태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비는 상대를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행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분노를 표현하는 것을 솔직함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노를 그대로 내는 것은
용기라기보다 즉각적인 반응일 때가 많습니다.
진짜 힘은 분노를 선택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진짜 강함은 상대를 꺾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습니다.
자비는 부드럽지만 약하지 않습니다.
자비는 성냄을 넘어선 자리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힘입니다.
욕하는 자도,
욕을 듣는 나도,
모두 잠시 머물다 사라질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성냄인가, 자비인가.
분노는 나도 해치고 남도 해칩니다.
자비는 남을 살리고 먼저 나를 자유롭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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